보리심 보리행/종범스님

2011. 12. 8. 23: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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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의 보리행/ 종범스님 음성법문 요약

 

보리행은 반야심경에 잘 표현되어있다.

관자재보살이 행심 바라밀다시(깊은 혜를 행할때) 오온(우리 몸)이 모두 공함을

밝게보아(照見) 통에서 벗어나게 된다(도일체고액)고 했다.

 중생은 생사를 보지 못하므로 집착하고 두려움을 가진다.  

이몸이 空한 상은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요 부증불감이다.

중생이 고목나무를 귀신으로 보는 것은 正見 眞見으로 보지 못하고 妄見 邪見으로

보므로 번뇌와 공포심이 생긴다.

혹에서 악업을 짓고 악업으로 고통이 생긴다(惑業苦라한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의반야바라밀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심무가애).

사량계교하지 않고 愛憎取捨가 없고 공포가 없다(무유공포).

꽃은 무심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피는 꽃도 지는 꽃도 봄일 뿐 두려움이 없어 

생사가 바로 바라밀다임을 알고 행하는데, 사람은 생사심과 취사심으로 고통이 따른다 

꿈속에 자기집에서 자기집을 찾는 것이 몽상이다. 반야바라밀로 보면 일체중생이

다 해탈이 되어 있건만 전도몽상으로 해탈을 따로 찾으니 고통이다.

꽃 한송이마다 다 봄이건만 봄을 모르면 꽃속에서 봄을 찾는 전도몽상을 한다

 

'세제불은 의바라밀다 득아묙다삼보리 개종출삼보리'

바라밀을 이롭고 도우는 행위를(利行, 助行) 하려면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을 행해야한다(보리행). 번뇌를 지혜를 바꾸는 것이 바라밀이다.

육바라밀은 나의 바라밀을 닦는 自利行이 된다. 남을 도우고 나도 도우고

마지막은 중생도 부처도 없는 필경無佛及衆生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참는 것이다.

인욕바라밀을 능엄경에서는 참는 것을 토하거나 뱉어내지 않는 것(不吐不呑)이라 했다.

한참 물고 있으면 녹아 없어져서 뒷탈이 없다. 정진은 할 일은 꾸준히 하고 하

않을 일은 멀리하여  할일만 집중하는 것이 선정이다.

선정 지헤(정혜)가 최고로 왕궁의 임금이고 인욕 정진이 궁(城)이고 보시 지계가

궁터라 했다. 허망한 마음이 일어나면 끝없이 괴롭고 보리심을 일으키면 끝없이

즐겁다. 바라밀은 번뇌를 지혜로 중생이 부처로 이끌어주고 중생도 부처도 없는

경지로 간다 (필경無佛及衆生)

 

보조스님 제자 혜심스님의 30권 첫번에서

세존이 도솔천에 떠나기도 전에 집을 떠나 왕궁에 오셨고

(세존이 미리도솔에 離家王宮하시고)

어머니 몸에 출생하기전에 도인을 다 제도하셨다(未出母胎에 도인이필이라)

달마스님 위주의 한국 중국은 반야를 중심으로 하는 반야선으로 화엄경이 주고,

동남아계통은 선정선으로 아함경이 주를 이룬다.  

  

四無量心은 慈悲喜捨 인데 慈는 사랑을 베풀고  悲는 發苦로 중생의 고통을

여의어 주고,喜心은 내기쁨처럼 중생의 기쁨을 기뻐하고 마지막에는 다 버린다.

詩經에서 '자식은 쑥과 같아서 어릴때 좋지 다 크면 쇠서 못먹으니 미련을 버리라'

했다.자식도 크면 어릴때 처럼 정을 주지 말고 스스로 스도록 해야한다.

 

육조단경에 '常大涅槃이 圓明常寂照로다'

반야의 지혜로 보면 생사가 대열반이다. 우리는 대열반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열반이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다. 반야는 둥글고 밝아 항상 밝게 비친다. 

공공적적하고 소소영영이다. 

 

'劫火消海정하고 풍구산산격이라도 眞상적멸락은 열반상여시로다'

겁화는 지구가 마칠때 나는 불로 바다를 다 태우고 산천을 다 부셔도 진정한

적멸락은 열반이라. 보리심은 산과 바다가 다 타도 항시 적멸한 그대로다

 

서산스님은 도를 깨치고 나서

<夜는 天開闔이요 春秋는 地死生이다 기저라 자一物이여 常光大光明이라>

'낮은 하늘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요 봄과 가을은 땅이 살아나고 죽는 것이다

이 한물건이 항시 대광명을 발하고 있구나'했다.

 

어느 것이 도인가 ?

- 目前에 無異草라 눈앞에 다른 풀이 없다

신심을 가지고 절만 지극해도 경전만 잘 읽어도 '家門前에 通長安'이라

우리는 누구나 신김을 갖고 정진하면 항시 도에 들 수 있다.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이요,

處處(처처)가 蓮花(연화)라> 하지요.

<지금, 여기>가 眞如(진여)의 자리요,

<앉은 자리가 꽃방석>입니다.

이 자리를 떠난 어디에도 부처와 열반은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法香이 진동하니 고통속에 있건 병고를 치루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외치시는

<구상>시인 님은 우리의 부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