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3. 23:3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부처님 되신 길, 무상(無常)에 대한 자각 / 종범스님
석가모니 부처님은 석가족의 영토인 인도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정반왕의 왕비 마야(摩耶)부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자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실달다(悉達多, Siddhattha)이며,
궁중에서는 ‘실달태자’ 또는 ‘태자’ 라 불렀다.
실달태자의 궁중생활은 매우 호화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에 부왕은 나를 위해서 여러 궁전을 지었다.
봄 궁전과 여름 궁전 및 겨울 궁전을 지어서 나를 노닐게 했다.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색깔의 연꽃 연못을 만들어 나를
노닐게 했다. 연못 언덕에는 수마나 꽃 ‧ 바사사 꽃 ‧ 담복 꽃 ‧
파라두 꽃 등 온갖 꽃들을 심어서 나를 노닐게 했다.
그렇지만 소년 실달태자는 깊은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농부는 흙 묻은 낡은 옷을 입고 땀 흘리며 일하고, 소는 농부의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밭을 간다. 그렇게 지어진 농사에 의해 편안하게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
태자는 명상에 잠기는 일이 갈수록 잦아졌다. 그러다가 인생에 대한 태산과
같은 충격에 부딪쳤다. 성문을 자주 나가 세상을 두루 살피면서 사람에게
늙음 ‧ 질병 ‧ 죽음이 있음을 안 것이다. 태자에게 있어서 이 일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장아함경』권1,「대본경」의 경문이 자못 구체적이다.
“태자는 수레를 타고 동산으로 나갔다. 그때 도중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그는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얼굴은 주름졌으며 허리는 구부러져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헐떡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늙었다고 하는가.’ ‘늙었다는 것은 앞으로 살 수 있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늙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귀하고 천함이 없습니다.’ 태자는 바로 수레를 돌려 궁중으로
돌아와서 자신에게도 늙음의 괴로움이 반드시 있을 것을 생각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태자는 다시 수레를 타고 성문 밖으로 나갔을 때 병자를 만났다.
그는 쇠약한 몸에 배는 붓고 얼굴은 검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병자입니다.’
‘어떤 것을 병이라 하는가.’ ‘병이란 여러 고통이 심하게 생겨서 살고
죽음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병이라 합니다.’ ‘나도 저런 고통을 면하지
못하는가.’ ‘그렀습니다. 나면 반드시 병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문 밖에서 죽은 사람을 만났다. 온갖 빛깔의 깃발이
앞뒤에서 인도하고 가족들은 흐느끼며 슬피 울었다. 태자는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죽음이란 끝나는 것입니다. 호흡이 끊기고 체온이
없어져서 온 몸이 해체됩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할 수 없어서 가족들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나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는가.’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에는 귀천이 없습니다.〔生必有死 無有貴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실달태자에게 늙음〔老〕 ‧ 질병〔病〕 ‧ 죽음〔死〕은 어떤
문제로도 대체할 수 없는 중대사로 인식되었다. 이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노쇠와 병환과 사망을 앞에 둔 한때의 젊음이
태자에게는 참으로 부질없게 보였던 것이다.
「유연경」에서는 이에 대하여 깊이 사유한 내용을 기술했다.
“남의 늙음을 보고 자신은 늙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것은 스스로 죽는
일이다. 남의 질병을 보고 자신은 질병이 생기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것은
스스로 죽는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젊음을 자랑하고 세력에 자만하여
수행을 하지 않는다.”
실달태자의 인생무상에 대한 명상은 점점 깊어갔다. 드디어 출가를 결심하고
부왕에게 출가의지의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부왕인 정반왕은 왕업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간곡하게 만류하며
무엇을 들어주면 출가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보요경』권3,「사출관품(四出觀品)」에 의하면 태자는 출가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부왕에게 네 가지 소원을 제시했다.
첫째는 늙지 않고〔不老〕, 둘째는 병드는 일이 없고〔無病〕,
셋째는 죽지 않고〔不死〕, 넷째는 가족 및 친지들과 이별하지 않는
부왕은 태자의 말을 듣고 슬픔만 더했을 뿐이었다.
태자의 출가의지는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고요한 밤중에 말을 타고 마부와 함께 왕궁을 나섰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궁성을 떠나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수행자의 길을 가기 위해 왕궁을 떠나는 것은 장차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태자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친분관계에서도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날이 밝은 후에도 계속 달려서 고행림(苦行林)의 근처에 이르렀다.
태자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던 장식용 보물을
마부에게 주어 말과 보물을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드리도록 했다. 마부와 헤어진 태자는 자기 모습을 살펴보았다.
숲 속에서 수도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태자의 복장이었다.
때마침 수행자의 옷을 입은 한 사람의 사냥꾼이 다가왔다.
어째서 수행자의 옷을 입고 사냥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수행자의 옷을 입고 있으면 사슴들이 안심하고 가까이 오기 때문에
그때에 사냥을 하기 위해서 입었다고 했다.
태자는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사냥꾼이 입었던 수행자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옷을 입고 나서 태자는 스스로 머리를 깎아
태자의 출가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왕궁을 떠나서 체발(剃髮)을
하고 왕족의 옷을 벗고 수행자의 옷을 입은 것으로 태자의 출가는
성립되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당시에 의복과 모발은 사회적 위상을
표시했었다. 그런데 체발을 하고 수행자의 법복을 입은 것은 귀족도
아니고 서민도 아닌 출격(出格)의 신분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태자가 아니라 수행자이다.
바로 ‘실달다수행자’ 인 것이다. 실달다수행자는 고행림으로
들어가서 수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실달다수행자는 저명한 수행지도자들을 찾아가서 만났다. 수행지도자
중에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비롯하여 각종의 사상체계를 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수행의 지도이념으로도 많은 주장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향락주의·
고행(苦行)주의·제례(祭禮)주의·선정(禪定)주의가 주류를 이뤘다.
향락주의는 이 몸이 생존해 있는 동안 최대한의 즐거움을 향유하자는
주장이며, 제례주의는 많은 제물을 바쳐 제례를 올려서 재앙을 소멸하고
복락(福樂)을 받고자하는 현세중심의 사상이다.
실달다수행자는 어떤 수행이 늙음·질병·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인가를 깊이 사유했다. 그리고 고행도 체험하고 선정도
체험했다. 선정에는 최상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실달다수행자는
어느 가르침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향락과 복락은 죽음을 면할 수가 없으니 해탈의 길이 아니었고,
고행주의에도 회의가 들었다. 고행의 목적은 하늘에 태어나는 것
〔生天〕이라고 하는데,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몸이 죽지 않고는
어려우며, 이 몸이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더라도 그 하늘에서 수명이
다하면 또한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으로 선정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선정주의는 마음의 고요함
〔寂靜〕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체험해본
결과에 의하면 선정에 들어있을 때는 고요함이 유지되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다시 시끄러워졌다.
선정만으로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실달다수행자는
많은 사람들이 지도하는 수행의 이념과 방법들을 모두 버렸다.
기존의 교설에서 길을 찾지 못한 실달다수행자는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이르러 마침내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하여
고통이 없는 열반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자한 것이다.
한다는 결심이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각오를<보요경>권6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나의 근육과
피부가 녹아버리더라도, 골절과 골수가 다 없어지더라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正使肌皮消 骨髓盡無餘 若不成佛道 終不起于座〕”
새로운 서원으로 정진을 시작한 실달다수행자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퇴전의 정진을 계속했다. 선정과 고행으로 닦아가는 용맹정진이었다.
선정은 의식이 정지된 멸진정(滅盡定)의 선정이 아니라
<방광대장엄경>권7에서는 고행의 정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몸 전체는 마른 나무와 같았고, 갈비뼈는 지붕에 걸린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 뼈는 대나무 마디처럼 드러나 보였고,
실달다수행자는 다시 사유했다.
고행으로 과연 생사해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깊이깊이 돌아보고 사유한 결과 지나친 고행은 생명을 해치게 될 뿐
생사해탈을 얻는 방법이 아님을 알았다.
우유의 공양도 받고 목욕도 하여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의 표현이었다. 당시의 수행자들은 대부분
고행을 중시했으며 고행자가 우유를 복용하고 목욕을 하는 것은
수행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겼다.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신으로 고행을 중지하고 몸을 도와서
기력을 고행이전의 상태로 회복하였다.
기력을 회복한 실달다수행자는 다시 정진을 시작했다.
이제는 고행을 위주로 하는 정진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고요히
하여 깊은 관찰을 계속하는 정진이었다. 실달다수행자는
이때의 서원을 본연부의『방광대장엄경』권8에서는 이렇게 기술했다.
“내가 이제부터 가장 높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이 몸을
부수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정진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고 또 계속하였다. 몸과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맑아졌다.
그런데 또 문제에 부딪쳤다. 깨달음을 이루는 데 마지막으로 부딪치는
문제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애착심이다.
애착심은 세속적인 허망한 것에 대한 애착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마군(魔軍)이라 한다.
마군은 탐욕, 근심, 기갈(飢渴), 집착, 졸음, 공포, 회의(悔疑),
분노,슬픔, 자찬(自讚) 등으로 나타났다.
무수히 일어나는 마군을 흔들리지 않는 ‘바른 마음 챙김(正念)’과
‘바른 관찰(正知)’로 모두 소멸시켰다.
실달다수행자는 마군에 동요하지 않고 더욱 깊게 정진하여 드디어
삶과 죽음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바로 깨달음으로써
깨달음에 관련된 내용을『방광대장엄경』권9의「성정각품(成正覺品)」과,
『불본행집경』권30의「성무상도품(成無上道品)」의
실달다수행자가 깨달음을 이룬 것은 해가 진 저녁이었다.
마군을 소멸하고 선정에 들었다. 선정은 4선정의
초저녁에 천안통(天眼通)을 얻어서 천안으로 중생의 생사를 폭넓게
관찰했고, 밤중의 시각을 맞아서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중생의 과거
백억 천억 생의 일을 소상히 볼 수 있었다.
새벽녘에 이르러 생사에서 해탈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의 깨달음을 12연기(緣起)로 설명했다.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행(行)이 있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識)이 있고,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으로 말미암아
육입(六入)이 있고,
수(受)가 있고, 수로 말미암아 애(愛)가 있고, 애로 말미암아
취(取)가 있고, 취로 말미암아 유(有)가 있고, 유로 말미암아
생(生)이 있고,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가 있다.”
①무명: 무아(無我)를 모르는 어리석음
②행: 몸을 자아(自我)로 집착하는 행위
③식: 행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의식
④명색: 느낌〔受〕, 지각〔想〕, 의지〔行〕, 인식〔識〕의 정신작용과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중생의 몸
⑤육입: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감각기관
⑥촉: 대상의 사물에 접촉함
⑦수: 느낌(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⑧애: 갈애(渴愛)
⑨취: 집착
⑩유: 내생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행위
⑪생: 내생에 다시 태어남
⑫노사: 생노병사의 고뇌가 계속됨.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육입이 소멸하고,
육입이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면 수가 소멸하고,
수가 소멸하면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면 취가 소멸하고,
취가 소멸하면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면 생이 소멸하고,
생이 소멸하면 노사의 고뇌가 소멸한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실달다수행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나의 생사는 끝났다. 수행은 이뤘다.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생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辦 不受後有〕”
게송을 읊고 하늘을 쳐다보니 샛별이 환하게 빛났다.
아! 참으로 처음 보는 별빛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별빛이었다.
이 별빛을 보는 순간에 지금까지 보아오던 천지만물은 간 데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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