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대비 / 지안스님

2012. 1. 20. 23: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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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대비 / 지안스님

 

부처님의 거룩한 인격을 흔히 '동자대비(同慈大悲)'라고 표현한다. 나와 남 사이에 추호의 타산이 없이 사랑과 연민을 한껏 베푼다는 뜻이다. 특히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쏟을 때, 이것을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한다. 이 동체대비는 부처님의 정각에서 얻어진

무한한 이타심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범부와 성인의 차이는 인간성 성숙의 높고 낮음이다. 
성숙된 인간성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대자(大慈)의 
마음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기적 욕망을 앞세우고 살아가는 범부의 심리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대비심을 상실하고 끝없는 투쟁심리를 가지고 욕구충족을 위해 애쓴다. 
개인적인 이익 도모와 집단의 이익을 내세워 갖가지 주장을 
관찰하려는 것이 서로 상충되어 불화와 적대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유대를 이루지 못하고 사는 것은 
곧 인간사회 자체의 비극임에도 불구 하고, 
분파주의의 갈대에 나누어진 사회구조는 
끝없는 대립과 갈등을 불식하지 못하는 모순이 있다. 
사람의 인격은 수양과 비례한다. 
수양되지 못한 인격은 결국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덕을 
성취하지 못한다.
 
불만의 응어리를 삭이지 못하고 원증의 감정을 앞세워 
조그마한 잘못도 용서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매도해버리는 
폭발성 감정풀이가 우리 사회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심리에 흐르는 정신기류가 불안해지고, 
그것에 감전된 사회의 제 현상이 비상식적으로 나타날 때, 
가치관이 전도되고 
규범이 서지 않아 안온한 삶의 휴식처를 상실하고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할 때 우리는 곧잘 범하고 응징하는 죄와 벌의 
악순환 속에서 
자타 공영을 외면하고 쓸데없는 분쟁을 야기시킨다. 
인간의 현실이 생존경쟁의 마당으로만 해석될 때, 
살벌해지는 투쟁심리는 더욱 앞설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는 사회는,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새로운 정신 운동에 의하여 
극복하고 계도해 간다. 
특히 인간이 종교적 심성을 가질 때, 삶의 본질을 향해 기울이는 
정성의 도(度)가 높아지므로 사회의 정신공기를 
그만큼 순하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내가 나 아닌 남의 좋은 것을 사랑하고 좋지 못한 것을 
이해로 받아들여 잘못된 것을 용서해주는 미덕을 함양하여
 
삶의 의미를 높여가는 질적 창조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인 바,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부단히 자기 자신을 성찰해가야 한다. 
유리태자가 석가족을 멸망시키려 가필라성을 향해 진군할 때,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른 길섶에 부처님이 앉아 군대의 진군을 막았다. 
그러나 세 번째 행군을 끝내 막지 못한 부처님은 수심의 얼굴을 하고 
탄식을 하였을 뿐 유리태자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는 용서하지 못할 죄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였다. 
원한의 감정은 다시 원한을 불러 서로 교차되어 이어질 뿐 
평화를 불러오지 못한다.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는 말은, 용서할 것도 화해할 것도 없는 
본래 평등한 관계에서 타인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시비를 논하는 것은 정사(正邪)를 가려 올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적 수단이지만, 
 
이기적 감정 속에서 시비를 따지는 것은 
자기 마음 속의 욕심과 성내는 기질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마음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갓난아기에게 잘잘못을 따지지 않듯이, 
마음이 훤히 밝아진 자, 세상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품지 않는다. 
오로지 보살의 원력이 있을 따름이다. 
이타행을 실천하기 위하여 대비심을 발하고 세상의 고통스러운 경계를 
인내하면서 괴로움을 이겨가며 낙을 찾는다. 
아무리 세상이 발달되어도 불만이 없는 세상은 중생세계의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의 불만이라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이기심 때문이다. 
사실 이기적 욕구가 없을 때는 불만도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진리를 따르면 된다. 
나를 낮추고, 자비심을 가지고, 인정을 베풀고, 
용서를 베풀고, 모든 것에 대한 완고한 고집을 꺾고, 
인격의 신뢰를 회복하여 서로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지안스님의 동체대비 를 배우기전에 우선 우리 불자의 자격을

논 한다면 웃습지만 그래도 굳이 하자하면 우선은 하심이며

그리고 자비심 일것입니다

 

자비심이 점점 없어지는 이시대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고

내가 과연 불제자의 덕목을 얼마만큼 지키느냐는 곧 우리가

불자의 소임을 다 하느냐 하는것 일겁니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외우더라도 그 행이 없는자는

아무 소용없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안스님께서도 범부와 성인의 차이는 인간성 성숙의 높고 낮음에

비롯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생의 탐심 욕심 이것은 마약 과도 같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도

깨닫고 아파합니다 대비심은 커녕 타인에게 자비로운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허당의 불교를 공부 하는것입니다

몇일있으면 우리의 명절 설 입니다

 

만나지는 주변 인연들에게 아무리 자신이 잘 나셨드라도

제발 참아지리이다 나에게 소용되는 귀한물건은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운 선물이니이다

명절때면 참으로 선물을 마음다해 준비하는 자세가

우리 불제자들의 자세이며 형편이 따라 주지않는다면

 

우리 불제자 들만이 할수있는 더 큰 선물인 무재칠시까지

우리의 마음을 보일때입니다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우리인연들에게 미소띠며 반가워하는 마음씀씀이가

가슴에서 우러나는 다정한 말한마디 이것이

우리 불제자들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날들되소서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헉헉대며 올라가는 산길.

프로 산악가에겐 그런 길이 힘들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험한 산길 올라가니

프로나 아마추어인 나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

다만 조금더 힘들고 덜 힘든 차이만 있을 뿐,

산을 타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헉헉대며 뛰어가는 마라톤길.

늘 그 길을 뛰는 이들은 힘들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은 것.

늘 뛰는 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다만, 좀더 인내하고 덜 힘드는 법을 알 뿐,

아득한 그 길은 프로에게도 힘들다.

 

삶도 마찬가지.

많은 분들이, 수행 많이 하고 영성 뛰어난 분들은 삶이 힘들지 않은 줄 안다.

그리고 실제로 수행 많이 하고 밝아진 분들은 그렇게 우리 앞에 다가오신다.

그러나 나는 그 분들의 그러한 모습을 믿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든 법.

그 사실을 알기에, 언제나 우리 앞에 만면의 미소만 짓는 분을,

나는 믿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잠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

행복의 푸른 하늘 잠시 비추이면, 삶은 다시 힘든 구름으로 덮힌다.

그러나 어이 하리, 이것이 삶의 진실인 것을...

 

소설가 김 성동 선생은 그의 소설 <만다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왜 부처는 웃음 짓는 분만 있냐고!

왜 중생의 고통에 아파하고 찡그리는 부처는 없냐고!

 

그래서 만다라의 구도자 비구 지산(知山)은,

고통에 일그러진 부처를 한사코 나무에 그린다.

후배 법운(法雲)이 그렇게 말려도 지산은 그렇게 자신만의 부처,

고통 받는 부처의 모습을 나무에 사무치게 새긴다.

 

중생의 고통을 모르는 부처는 없다며,

늘 웃음짓는 부처님은 거짓이라며,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깨친 부처라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도 만들지 않는 일그러진 부처를 그렇게 만들고 또 만들고 간다.

 

아! 지산의 이 행동은,

치기인가, 아니면 누구도 알지 못할, 진실의 몸부림인가...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

이 힘든 삶을, 공부하면, 수행하면, 구원 받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이웃을 속이는 일.

밝게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차마 할 일이 아닐지라!

 

공부하고 수행하고 아무리 구원 받아도,

알고 보면 삶은 한결같이 힘들기만 한 곳.

잠시 구원받고 해탈한 것 같아도,

삶은 끝없는 물결 밀려오는 곳.

 

어찌 하늘에 비가 뿌리지 않고,

어찌 바다에 풍랑 일지 않겠는가.

비가 오는데 힘들지 않은 이 어디 있으며,

풍랑 이는데 마음 편한 항해자 어디 있는가.

그러니 삶은, 언제나 힘든 것.

 

그러니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참음(忍辱)의 세계,

사바(裟婆)>라 한 것일 터. 다만 공부하고 안하고 수행하고 안하고

구원 받고 안 하고의 차이는,

그 힘든 것에 얼마나 젖지 않고 이 힘든 삶을 헤쳐나가는가에 있을 뿐,

삶은 누구나, 언제나 힘든 것.

 

그러니 가짜 웃음 짓지 말고 이웃 속이지 말고,

허심탄회 하게 이 힘든 삶을 함께 헤쳐나갔으면.

그래서 아픈 이웃 더 아프게 하지 말고,

그래서 힘든 이웃 더 상처 받게 하지 말고,

우리 모두 함께,

이 힘든 곳,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며,

그렇게 밝고 힘차게 헤쳐나갔으면...

 

 

* 苦海를 건너는 최상의 길은

  부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