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선시 게송/해설: 원인스님

2012. 2. 17. 14: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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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선시 게송

 

                                                       해설:  원인스님

 

 

   天 地 一 虛 堂     천지간에 텅 빈 집

   古 今 一 瞬 息     고금 간에 한순간이라

   其 中 一 主 人     그 속에 한 주인

   曠 劫 一 顔 色     영원토록 한 얼굴색이네

 

   千 聖 猶 難 測     일천성인도 헤아릴 수 없고

   六 凡 安 得 知     육범이 어찌 알리요!

   八 窓 虛 豁 豁     여덟 창이 텅 비어 있으니

   風 月 自 相 吹     바람과 달이 스스로 들어오네.

 

   十 年 奔 走 人     십년동안 분주했던 사람

   戱 遂 花 邊 엽     꽃을 쫒는 나비 격이네

   拂 枕 歸 山 眠     집을 떠나 산에 와 누우니

   淸 風 生 竹 葉     맑은 바람이 댓잎 속에서 나오네!

 

 

          覺 수좌에게

 

   好 是 淸 凉 地     맑고 시원한 땅 참 좋구나!

   白 雲 飛 滿 庭     흰 구름 뜰에 가득 날리네!

   視 身 如 草 葉     몸을 보기를 풀잎 같이 하고

   敷 坐 眼 惺 惺     자리 펴고 앉으니 눈빛이 성성하도다.

 

 

 

 

 

 

 

 

      하늘과 땅이 하나 텅 빈 집이라

이 말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사사무애의 도리를 말하는 것인데 사사무애란 공간성을

초월 했다는 뜻입니다. 즉 넓은 바닷물이 한방울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말과 한 티끌 속에

대천세계가 들어간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옛 과 지금이 한 순간 이구나!

시간성을 초월한 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라는 무한대의 세월이

한 순간의 시간보다 길지 않다는 사사무애의 이치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한 주인이 있으니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파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이기

때문에 이속에 한 주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한 모습이라.

시간과 공간의 주인공은 영원하여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천 성인도 헤아릴 수 없다.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분별심으로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도 중생이 어찌 알리요.

미혹한 중생의 경계가 아님을 보인 것입니다.

 

 

      여덟 곳 창이 활짝 열 여 있으니

마음의 문은 본래 막힘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람과 달이 스스로 들어오네.

참 모습은 걸림 없음을 보인 도리입니다.

 

 

     십년동안 돌아다닌 사람이

바깥 경계를 따라 오랜 세월 돌아다녀보니 라는 뜻입니다.

 

 

     꽃을 쫓아 다닌 나비 같았네.

명예와 이익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말 하는 것입니다.

 

 

     집을 떠나 산속에 누우니

모든 욕심을 떠나 자연에 머무르니

 

 

     맑은 바람 대 잎 속에서 나오네.

도와 하나 되어 참된 안락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어느 스님에게 준 시

   맑고 시원한 땅 참 좋구나.

   흰 구름 뜰에 가득 날리네

   몸을 보기를 풀잎 같이 하고

   자리 펴고 앉으니 눈빛이 빛나네.

 

 

이 시는 서산대사가 읊은 그대로 보시면 되므로 따로 해석하지 않겠습니다.

 

 

 

 

      7) 법정스님의 차(茶)시

 

 

 

"차 한 잔은 목과 입을 축여 주고

 

두 잔을 마시면 외롭지 않고

 

석 잔째엔 가슴이 열리고

 

넉 잔은 가벼운 땀이나 기분이 상쾌해지며

 

다섯 잔은 정신이 맑아지고

 

여섯 잔에 신선과 통하며

 

일곱 잔엔 옆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나온다."

 

 

  해설:

첫 잔이니까 목과 입을 적셔 주겠죠.

 

둘째 잔에 외롭지 않다 했습니다.

차의 향과 맛을 고요하게 느끼니 거기 외로움이 어디 있겠어요.

고요함이 이제 점입가경이라 점점 들어간다는 겁니다.

 

셋째 잔에 가슴이 열린다는 것은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넷째 잔에 땀이 나고 기분이 상쾌해 진다는 것은

차의 기운이 온 몸에 퍼져 땀이 나고 기혈이 열리므로 불쾌했던 나쁜 감정들이 소멸되고

순화를 이루니까, 기분이 상쾌해지고 맑은 정신을 갖게 되었다 하는 뜻입니다.

 

여섯째 잔에 신선과 통하고,

여기서 신선이라는 것은, 松巖隱現徑千劫이라 소나무와 바위아래 고요한 산속에서 무한 세월이 지나 간다. 라는 것처럼 신선의 맑고 고요한 경계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곱째 잔에 겨드랑에서 맑은 바람이 나온다.

이미 차를 통해서 신선처럼 맑고 한가한 경계에 들었으니 냄새나는 겨드랑에서 조차

맑은 바람이 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차를 통해서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순화하고 결국은 신선과 같은

그런 맑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게 되니 어찌 차를 멀리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날 같이 정서 고갈 시대에 차회(茶會)를 통해서 느림의 미학과 정서를 익히고 높은

정신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면 참으로 이 시대에 좋은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속에서는 술을 좋아하지만 절에서는 예부터 차를 상용 하였습니다.

차는 몸과 마음을 맑히고 안정하게 하니 가능한 한가한 시간을 내어 차를 자주 마시기를

권합니다.

 

  오늘날 중국차는 거의 모두 불량품이니까, 먹지 말고 우리나라 뽕잎차등 자연차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 합니다.

 

산승이 차에 대해 한수 읊어 보겠습니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마시는 자와 차가

       구별 되지 않을 때

       차와 도는 둘 아님이 되리.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