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초발심 공덕

2012. 3. 16. 11: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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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 
화엄경의 '초발심공덕품'에서는 처음 발심하는 공덕이 얼마나 
수승한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경의 내용은 제석천왕이 법혜(法慧)보살에게 초발심의 공덕에 
대하여 묻는다. 
이에 대해 법혜보살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초발심의 공덕은 설하기 어렵고[難說], 
알기 어렵고[難知], 분별하기 어렵고 [難分別],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難信解], 증득하기 어렵고[難證], 행하기 어렵고[難行], 
통달하기 어렵고[難通達], 생각하기 어렵고[難思惟], 
헤아리기 어렵고[難度量],  들어가기 어려우니라[難趣入]." 
이와 같은 열 가지 이유 때문에 초발심의 공덕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발심의 공덕이 한량없다는 
말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발심한다.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종족,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널리 남녀·
노소·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베풀어주기 
위해 발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불보살십종대은(諸佛菩薩十種大恩) 가운데 
첫 번째가 발심보피은 (發心普被恩)인 것이다. 
발심보피은이란 널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발심한 은혜라는 
뜻이다. 
그러면 발심을 한 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남자야,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해야 할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좋은 벗을 가까이함이요, 
둘째는 성내는 마음을 끊음이요, 
셋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름이요, 
넷째는 연민의 정을 일으킴이요, 
다섯째는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는 일이니라"라고 했다. 

처음 발심한 보살의 공덕은 갖가지 수행을 다한 사람의 공덕보다도 크다고 한다.

경전은 이것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번째의 사람은 일념 사이에 동방의 무량한 세계를 통과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무한한 시간을 다 허비해도 그는 결코 세계의 끝까지는 갈 수 없었다.

두 번째 사람은 더 큰 신통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념 사이에 첫 번째 사람이 통과한 세계보다

더 많은 세계를 갈 수 있지만, 그러나 역시 무량한 세계의 끝까지는 갈 수 없었다.

이와 같이 해서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으로 갈수록 신통력은 점점 커져서

마지막 백 번째 사람은 최고로 수승한 신통력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백 번째 사람도 초발심보살의 공덕이 얼마나 넓고 심오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보리심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청정한 법계와 같고,

집착도 의지하는 곳도 없으며, 물듬도 없어 마치 허공과 같네.

 

 보리심은 한이 없다. 그것은 일체의 모든 집착을 떠났으며, 어떠한 곳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에 의해 살아가므로 의지함이 없이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의지할 곳이 있는 자는 약하다. 그러므로 담운은 일생 동안 홀로 좌선을 하였다.

물론 법회나 참선하는 곳에 초청을 받으면 기꺼이 보시행을 나섰다.

그러나 의지해야 하는 것은 전부 다 버렸다. 그가 오대산 북대에서 수행한 것도 어쩌면

일체를 버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갖가지 행을 닦아서 적멸하여 아무 곳에도 의지하는 바가 없고,

그 마음은 안제나 편히 머물러 요동하지 않음이 마치 수미산 같네.

 

담운처럼 의지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마음은 수미산과 같이 부동이다.

법을 보시하는 것 외에는 일체 행하지 않았던 담운의 마음은 미동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운의 40여 년의 도심(道心)을 지탱시켜 준 것은 초발심의 일념이었다.

 

항상 씩씩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빨리 보리심을 내어야 하고,

최상의 훌륭한 법을 구하려 하면 온갖 번뇌를 끊어야 하네.

 

씩씩하고 부지런한 마음으로 항상 열심히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생활에서 최상의 안락은 무엇인가? 좌선이야말로 안락의 법문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든 타인이든 아무튼 누군가를 '위하여' 행한다.

그러나 좌선은 깨닫기 위해서도, 위대하게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좌선하는 것, 그 자체가 최상의 안락인 것이다.

이 최상의 안락을 구하려면 모든 번뇌, 즉 일체의 욕망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번뇌를 끊어버린 60세의 담운에게는 빈대나 벼룩도 감히 물지를 못했던 것이다.

 

삼세의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어른과, 일체의 모든 공덕의 업과

위없는 최상의 보리 열매는 모두 초발심에서 생긴 것이다.

 

여기서 삼세의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어른이란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의 경계와 무량한 공덕과 위없는 보리는 초발심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깨닫고 알았네.


중생의 죄악이 깊고 두려움이라
백 천겁 동안 부처님을 못 보아서
생사(生死)에 표류하며 온갖 고통 받을 때
이들을 구하려고 부처님이 세상에 오셨네.

여래(如來)가 모든 세간(世間)을 구호함이여
모든 중생 앞에 다 나타 나사
저 나쁜 갈래에 굴러다니는 고통을 쉬게 하시니
이러한 법문은 오늘 우리가 들었네.

중생의 나쁜 업(業), 무거운 장애(障碍)를
부처님이 묘한 이치로서 열어 알게 하시니
마치 밝은 등불로서 세간을 비추듯 함이라
이러한 법(法)을 오늘 우리가 능히 보았네.

부처님의 지혜는 허공처럼 끝이 없고
법신(法身)은 광대해서 부사의(不思議)함이라
그러므로 이 세상에 다 출현하시니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관찰했네.

모든 갈래에서 묘한 소리를 내어
법을 설하여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함이여
그 소리 이르는 곳마다 온갖 고통 소멸하시니
이 방편(方便)에 든 이는 오늘 여기 있는 우리들이로다.

사도(邪道)에 머물고 있는 일체중생을 위하여
부처님이 정도(正道)의 부사의 함을 보이사
능히 세간에 법의 그릇을 이루게 하시니
이것도 오늘 우리가 능히 깨달았도다.

세간에 있는 모든 복업(福業)을
모두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비춤이라
부처님의 지혜바다 측량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것도 오늘 우리가 맞이한 해탈이로다.

생각건대 지나간 겁(劫) 끝이 없거늘
부처님이 그 동안에 십력(十力)을 닦으사
모든 힘을 원만케 하시니
이것을 오늘 우리들이 알았네.

 

- <화엄경>

 

 

 

    그대는 봄인가요 / 오광수

    그대!
    봄인가요?
    그대는
    갈 곳 없는 낙엽들을 보듬어서
    연녹색 옷으로 지어 입히며
    하늘 사랑을 가르치는
    남풍입니다.
    그대는
    파란 하늘을 떠다니며
    종다리를 불러내어
    보리밭 이랑 사이 사이에서
    사랑을 속삭이게 하는
    아지랑이입니다.
    노란 개나리가
    숨어있질 못하고
    삐죽 삐죽 길거리에 나옴은
    그대의 
    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며
    돌 틈에 쭈그리고 있던 개울물이
    소리치며 흐르는 것도
    그대의 노래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하얗게 눈 덮힌 곳에서는
    가끔 찬바람이 매섭고
    응달은 잡은 손을 놓지않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아이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그대는
    조용히 조용히
    걸어오는 봄인가요?

 

                                                                   

              낭만의피아노곡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