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5. 10:45ㆍ일반/금융·경제·사회
대행큰스님의 열반-21세기 불자는 세기적 사명에 눈 뜨야
http://www.youtube.com/watch?v=V40arpobkp4&feature=player_embedded#!
- /조계종 총무원 제공
대행큰스님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벌써 십여 년도 훨씬 전에 열반에 드시려 하셨으나, 스님의 열반을 늦춰달라는 저희들의 서원을 받아들이시어 병든 몸을 이끄시고 십여 년 넘게 저희들 옆에 머무시다 드디어 오늘 열반에 드셨습니다.
큰스님의 열반은 많은 것을 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 세대의 마감입니다. 현대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오신 스승님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구니 스님 한 분 가신 것이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가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큰스님의 열반은 그렇게 가벼이 볼 일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 오신 많은 큰스님들이 2000 년 전후를 기하여 열반에 드셨는 바, 대행큰스님 역시 함께 열반에 드시려 했으나 저희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열반을 늦추시다 이제 열반에 드신 것입니다.
큰스님의 법력은 제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으로 출가자(비구니)가 되신 탓으로 큰 법력에도 불구하고 남성 출가자(비구) 위주의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그다지 대접(?)을 받은 편은 못되지만, 큰스님의 공부 경계나 법력은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어느 큰스님 못지 않습니다. 아니, 근래에 열반하신 큰스님들 중 대행큰스님만큼 공부가 깊은 분도 정말 드무리라 봅니다. 더구나 뛰어난 공부 못지 않게 중생에 대한 자비심도 깊으셔서, 큰스님의 깊은 자비행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뛰어난 큰스님이신데, 저는 큰스님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교적 젊은 날의 큰스님 얼굴에는 늘 노기(?)가 서려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도 밝고 자비도 깊으신 큰스님께서 어째서 얼굴에 노기를 거두지 못하실까? 늘 무언가 불만(?)에 차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 큰스님의 노기 띤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노기 띤 얼굴이 언젠가부터인지 몰라도 씻은 듯이 사라져 저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본래의 그 밝고 자비로운 모습이 나오신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큰스님의 노기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마 일종의 분별실집(分別實執)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남회근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수행해서 마음이 밝고 맑아지면 세상의 일을 밝게 볼 줄 아는 분별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남의 잘못을 잘 알게 되고 또 이에 대해 고치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러다 보면 미움이 일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큰스님의 경계는 이런 종류의 분별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아무리 바로 일러 주고 밝게 알려주어도 제 고집을 못 버리고 자꾸만 어두운 곳으로 가는 중생들이 안타까와 나오는 대자비의 노기는 혹시 아니었나 합니다(중생의 습은 그렇게 깊지 않습니까). 마치 티벳불교의 존자 중에 분노존이 있듯, 십일면 관세음보살의 모습에도 분노하는 모습이 있듯 말입니다.
가지 말라 해도 가는 분들을 막으려면 어느 정도 노기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큰스님의 노기는 그런 자비심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런 노기마저 어느 때부터인가 사라지고, 큰스님은 한없는 광명으로 제게 다가 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아마 십수년 전, 큰스님이 열반에 드시려 하셨던 때 같습니다.
어쨌든 큰스님의 열반으로 한 시대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의 시대입니다. 저희들이 큰스님이 못다 하신 일들을 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큰스님의 밝은 공부를 저희들이 이어 받아 밝아지고, 그래서 이 밝은 가르침을 동시대의 이웃들에게 전하여 모두를 부처님 밝은 세계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스님의 열반 소식에 더욱 경건해 지고 옷깃을 여미는 이유입니다.
*큰스님 이전의 시대가 출가자의 시대였다면, 큰스님 이후의 시대는 재가자의 시대입니다. 전 세계의 불교가 재가자 중심으로 이끌어질 것이며, 우리 한국 불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이 세기적 사명에 눈 뜨셔야 합니다. 21세기 불교는 재가 중심의 불교입니다. 잊지 맙시다.
*큰스님의 열반에 우리가 흔히 습관처럼 하듯 <극락정토 왕생>이나 <얼른 다시 오셔서 저희들을 이끌어 달라>는 말씀은 가급적 하지 마셨으면... 그건 어찌 보면 모두 <못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큰스님은 이제 좀 쉬게 해 드려야 합니다. 또 자비 깊은 우리 큰스님이 극락에 아니 가실 리도 없고, 가셔도 거기 오래 계실 리도 없습니다. 금방 오십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대신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큰스님이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큰스님이 하시고자 하던 일, 그리고 가시고자 한 길을 우리가 행하고 갈 때 큰스님의 열반은 비로소 완전한 무여열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 큰스님이 되고자 하지 않고, 그래서 큰스님 그리운 이웃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래서 우리도 큰스님처럼 그렇게 밝고 그렇게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하고 그저 가신 큰스님만 부여 잡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은 정말 못됩니다. 우리 모두 가신 큰스님을 그리워할 것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큰스님처럼 되어 큰스님 그리운 모든 이웃들에게 나투어 드리시길..._()_
그림; 정봉길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
올곱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바른 길 보다는
산따라 물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면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When It's Springtime In The Rockies (록키산에 봄이 오면) Sung By Slim Whitman(1924 ~ Tampa, Florida) When it's springtime in the Rockies I'll be coming back to you Little sweetheart of the mountains with you bonny eyes of blue. 록키산에 봄이 오면 나는 그대에게 돌아가겠어요. 아름다운 하늘빛 눈을 가진 귀여운 내 연인 그대 산들에게로 once again I'll say, "I love you" yes I love you While the birds sing all the day. 새들이 온종일 노래하는 동안에 다시 한번 나는 '당신 사랑해요' 라고 말하겠어요. When it's springtime in the Rockies, in the Rockies, far away. 록키산에 봄이 오면, 저 멀리 록키산에 봄이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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