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혜명 이어 지혜·자비 실천해야 불제자/고암스님

2012. 6. 7. 12: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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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혜명 이어 지혜·자비 실천해야 불제자"

                                                    / 고암(古庵) 스님(1899∼1988)

 

 

"중생 마음은 본래 밝은데 번뇌망상으로

마음의 광명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불자들은 늘 계를 닦아 탐욕을 제거하며

지혜 닦아 어리석음 떨치고 중생제도해야"

 

눈 마주칠 때 계(戒)는 전해졌고 받은 것입니다.

계를 전하는 사람과 계를 받는 이의 눈이 서로 마주칠 때,

그러니까 계사의 '자비한 눈'과 수계자의 '간절한 눈'이

무념(無念)으로 마주볼 때

계(戒)가 형성됐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받은 계라야 영겁을 두고 파계됨이 없이 정(定)을 닦아

성불하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눈과 마주칠 때 계는 받아 마쳤다고 했습니다.

 

10대 제자와 1200 대중들이 모두 이렇게 계를 받은 것입니다.

낱낱이 계목을 설함이 없이 마주보고

'어서 오너라, 비구여(善來比丘)'하면

곧 계가 전해지고 받아졌습니다.

이와 같이 계를 주고받는 것을 목격전수(目擊傳授)라고 합니다.

 

그 어떤 형식보다도 마음에 바탕을 둔 이와 같은 계라야

금강석처럼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곧 금강계단(金剛戒壇)인 것입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뒤 고심(古心) 율사는 청량산 문수보살 앞에서

수계하려고 삼보일배(三步一拜),

즉 세 걸음마다 절 한 자리씩 하면서 3년을 걸려

청량산 동구(洞口)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한 노승이 문득 나타나더니 '고심아!'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고심 율사는 깜짝 놀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그 때

 

'나는 문수 보살이다. 계는 이미 전했으니 그대는 계를 받은 것이다'

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라의 자장(慈藏) 율사도 중국의 청량산에 들어가 계를 받으려고

문수 보살상 앞에서 7일 7야를 용맹 기도하였습니다.

 

회향날 새벽에 한 노승이 나타나 마주보고는

'자장아, 나는 문수 보살이다'하고

'서로 보고 마주칠 때 계는 이미 전했으니 그대는 계를 받은 것이다'하고

부처님이 쓰시던 가사와 바리때 등을 주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수는 금산사의 진표(眞表) 율사에게도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

지리산 칠불(七佛) 아자방에서 대은 율사도 목격전수 했습니다.

 

그래서 목격전수한 계는 불계(佛戒)이고 승계(僧戒)이며,

심계(心戒)․자성계(自性戒)․대승계(大乘戒)․최상승계(最上乘戒)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계는 상근대지(上根大智)에나 해당될 일이고,

․하 근기를 위해서 부처님은 다른 방편으로 설계하셨습니다.

 

즉,

나후라가 어려서 출가하게 되자 지계제일(持戒第一)인 우바리로 하여금

사미 십계(十戒)를 일러 주게 하였고,

 

혹은 비구 250계와 비구니 348계를 설해 주고,

재가신도(在家信徒)에게는 오계(五戒)를 일러 주어 신남 신녀라하고,

뒤에는 보살계를 일러 주어 출가 보살․ 재가 보살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 계법의 근본은 대승 보살이 지녀야 할

계법(戒法)인 삼취정계(三聚淨戒)입니다.

 

첫째는 섭률의계(攝律儀戒)로서 모든 계율을 모아 중생의

악습을 없애게 함이요,

 

둘째는 섭선법계(攝善法戒)로서 8만4000법문을 말하여 온갖 선을 닦게 함이요,

셋째는 섭중생계(攝衆生戒)로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소승의 온갖 계법이 다 이 가운데 속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섭(攝)이라 하고,

그 계법이 본래 청정하므로 정(淨)이라 합니다.

 

또 계(戒)는 불교 수행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흐트러지기 쉬운 중생의 마음을 거두어들입니다.

 

그래서 계를 그릇에 비유하여

계기(戒器)가 완전해야만 정(定)의 물이 고인다고 합니다.

 

또한 지혜는 그 정(定)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삼학(三學)의 기초는 바로 계(계)입니다.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의 번뇌를 물리치려면

계(戒)․정(定)․혜(慧) 삼학의 힘이 아니면 안됩니다.

 

탐내고, 성질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삼독심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행동을 하고, 온갖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중생을 교화해야 합니다.

나만 잘 되려고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불법(佛法)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모든 행동이나 계행(戒行)이 깨끗해야 하고, 계를 많이 받고 실천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은 본래 맑은데

 

다겁다생(多怯多生)에 죄를 많이 지어 왔기 때문에

시커먼 구름이 태양을 덮어 버리는 것과 같이 번뇌망상이 차 있기에

마음의 밝은 광명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면 항상 분별심을 없애야 합니다.

화두를 잘 간택하든지,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른다든지,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든지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면 저절로 나쁜 생각이 없어지고 하늘에

구름이 차츰 없어지고

우리의 마음은 태양보다도 더 밝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업장을 없애주고, 밝

은 지혜를 밝히는데 더욱 정진해야 합니다.

 

항상 계를 닦아 탐욕을 제거시킴으로써 모든 악을 끊을 수 있는 것이고,

정을 닦아 성내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힘으로써

온갖 선행을 할 수 있으며,

 

지혜를 닦아 어리석음을 떨쳐버림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 직전에

'계로써 스승을 삼으라'하신 말씀은 만고 불변의 유촉이며,

우리들 수행의 요체입니다.

 

우리들이 금강계단에서 보살계를 설하고 받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제자된 본분과 사명을 거듭 맹세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

 

각박한 이 세상에서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가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 받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행을 제자들이 대신하자는 것입니다.

 

계란 출가한 스님이나 재가 불자들이 잘 지녀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는 받는 것보다 지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즉,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온갖 선행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는 이기적인 생활을 해왔을지라도

보살의 계를 목격전수(目擊傳授)한 제자들은 이타행(利他行)을 함으로써

보살의 일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눈이 마주칠 때 받은 계라야 성불할 때까지 파계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럼 어떻게 지녀 가야 하겠습니까.

 

一塵入眼 外敵亂侵(일진입안 외적난침)

한 티끌이라도 눈에 들면 바깥 도적이 어지러히 침범하리.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 경허선사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인 것을
 
저 강을 건너가면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한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어 
곧 바람 멎고 불꺼지리라
 
꿈속의 한 평생을 탐하고 성내면서 
        너다 나다 하는구나    

 

 

 

 

 Au Bord de Riviere(강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