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의 위대성/광덕스님

2012. 6. 29. 09: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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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고잘미운동) ♧ 

 

***고맙다, 잘했다, 미안하다의 위대성***

 

 

우리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수행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고마운 일에 고맙다, 잘한 일에 잘 했다,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는, 이 세 마디

말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온 천지가 고마운 일뿐이고 온 중생이 잘한 일뿐이며

온 세상이 은혜 투성이(?)인 것을 알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하는데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수행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수행자라면 이 세 마디가 아니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도 바로 이 내용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因此有彼 無此無彼),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生彼生 此滅彼滅)는 것이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 없이 모든 존재가 서로가 이 세상을 받치려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고, 또 그런 노력으로 이

법계가 장엄하게 되니 모두가 잘한 일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은혜 속에 내가

존재하니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기법을 흔히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기에 관한 설명은 숱하게 이루어지며 웬만한 불자라면 이러한

연기법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기법은 알지만

'연기의 실천'까지 나아가시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론으로서 연기를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연기를 알았다면 연기 너머의

세계까지 가야 합니다. 연기를 알기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고맙다 잘 했다 미안하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세 마디는, 우리로 하여금

이론으로서의 연기를 넘어 현실 속에서 직접 연기를 실천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엔 본디 고마운 마음, 찬탄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말을 좀처럼 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그것은 교만심, 자만심이 본래 밝은 내 마음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량한 자존심, 내 잘 난 마음이 고마운 일을 보고도 고맙다 소리 한 마디

못 하게 하며, 잘한 일을 보고도 잘 했다 칭찬 한 마디 못하게 하고, 미안한

일에도 미안하다 소리 한 번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일이 자꾸 쌓여 갈 때, 선량한 우리들 가슴에도 어느새

오해가 생기고 서로의 가슴에 피멍이 맺히게 됩니다

 

 

 

 

 

 

수행이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이런 어리석은 마음, 전도된 마음을 거두는

것입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나의 자존심을 수행의 불길로 녹이고, 잘난

마음으로 뒤덮힌 내 마음을 수행의 밝은 힘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런 말, 그런 행을 할 수 없다면 아무리 남이 넘볼 수 없는

깊은 수행을 하고 아무리 높은 선정에 든다 하더라도 도무지 보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헛된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맙다 잘 했다 미안하다! 이 세 마디는 수행의 결과, 수행의 공덕일 뿐 아니라,

무량 겁 동안 나의 본성을 덮어온 무명의 구름을 걷어내는 작업도 됩니다.

고맙다 잘 했다 미안하다란 말을 끊임없이 외칠 때, 무량 겁 동안 숨어있던

마음의 고마움, 내 마음의 찬탄, 내 마음의 참회가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에는 내 잘난 마음이 없습니다. 내 잘난 마음이 있을 때는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상대에 대한 공경이 꽉 차 있을 때 고맙다!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잘했다는 말에도 나라는 아상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미안하다!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나라는 아상은 어디로 가고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 마디 말은 '중도의 실천'입니다. 내가 없는 곳에는 양 극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극단이란, 나라는 것이 있을 때 나를 기준으로 생기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하면 감사할 일이, 찬탄하면 찬탄할 일이 생깁니다.

또 미안해 하면 미안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오게 됩니다.

고잘미!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말들은, 그 어떤 수행 못지 않은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글; 일상 보현행원 수행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