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자의 길, 정토왕생의 길

2012. 6. 22. 21: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728x90

 

보현행자의 길, 정토왕생의 길



불교는 자력(自力)의 종교일까, 타력(他力)의 종교일까? 사람에 따라 이에 대한 답이 달라지는 것이 불교다. 지난 가을 ‘보현행원의 길, 정토왕생의 길’이란 주제로 열렸던 불광연구원의 학술연찬회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으로 진행됐다.

 

얼핏 보면 이 두 주제는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한 자리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주제처럼 느껴진다. 보현행원의 길은 스스로 보살행에 헌신하는 자력적 실천인 반면 정토왕생의 길은 아미타불의 인도를 따라 극락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타력신앙이기 때문이다.

 

 

보현행원의 길은 보살의 실천을 통해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현세에 대한 강한 긍정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보현행원의 길은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자신이 곧 보살이라는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적극적 실천이 중심을 이룬다.

 

 

반면 정토왕생의 길은 이 땅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모두 벗어버리고 극락으로 떠나고자 하는 타력적 신앙이 근간이다. 정토왕생의 길은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함으로써 사후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토신앙은 병고에 시달리거나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정토신앙의 믿음은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현세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끝나는 순간 ‘극락(極樂)’이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로 가게 된다는 믿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사라져갈 자기존재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극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토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극락으로 가는 출발이 된다. 따라서 사후에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은 현실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 주는 영혼의 진통제로 작용한다. 삶이 끝나는 순간 정토행자는 아미타불의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극락세계로 가고, 무량한 생명을 지닌 무량수불(無量壽佛)의 보살핌 아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결국 정토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삶이 끝나고 죽음의 문에 들어섬으로써 비로소 극락세계의 삶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토신앙에서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며, 진정한 삶과 지극한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번 연찬회는 과연 이 두 가지 신앙전통이 서로 분리된 것이며 별도의 길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자를 위한 보현행원의 길과 망자(亡者)를 위한 정토왕생의 길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사후에 누리게 될 극락에 대한 희망으로 현세의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도저히 벗어 날 수 없는 가난과 삶의 역경에 시달린 사람에게 죽음이 끝이라면 그의 고된 삶은 보상받을 길이 없으며, 힘겹게 살아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현세의 고난이 끝나는 순간 극락이라는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믿음은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며 삶을 지속해야할 당당한 생존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극락왕생하겠다는 그와 같은 신념과 실천은 현생의 삶을 부정하고 신기루와 같은 극락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극락에 대한 간절한 신념으로 인해 현세의 삶과 무수한 존재를 존중하게 만든다. 현세의 고통을 피해서 극락 가겠다는 신념은 오히려 현세의 무수한 실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락을 향한 신념에서 나오는 종교적 실천은 현세에서 그 사람의 삶을 정화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극락왕생하겠다는 강한 신념은 사후를 위한 준비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행동을 정화하고, 삶을 전환하는 원대한 실천의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보현행원의 길은 또 어떤가? 평소 보현행원을 강조했던 광덕스님은 보살행이라는 산자의 실천이 곧 이 땅을 정토(淨土)로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이론적 근거가 바로 유심정토론(唯心淨土論)이다.

 

 

유심정토론에 따르면 ‘나의 자성이 곧 아미타불이며(自性彌陀), 극락정토는 오직 마음속에 있다(唯心淨土)’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극락과 정토가 마음에 있다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생’과 ‘저 생’이라는 이원적 구분은 무의미해 진다.

 

 

광덕스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보현행원을 실천할 때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완전한 불성(佛性)을 드러낸 지고한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 그와 같이 거룩한 존재가 머무는 이 땅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극락정토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신념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극락정토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현세의 적극적인 보살행으로 인해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극락이 된다.

 

 

여기서 극락세계는 사후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예토(穢土)를 극락으로 바꾸는 수행의 주체로서 ‘나’와 나의 보살행이 펼쳐지는 거룩한 무대인 ‘이 세상’은 절대적으로 긍정될 수밖에 없다.

 

 

수행의 목표도 나를 구원해 주는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이나 사후의 극락세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사바세계’로 귀결된다. 따라서 죽어서 극락가기 위한 수행은 ‘지금 여기 이곳’의 문제로 전환된다.

 

 

따라서 사후에 극락세계에 가는 것을 지향하는 대신 중생들이 가진 무한한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을 불보살이 살아가는 불세계로 긍정한다. 그리고 사바세계 자체를 거룩한 보살행으로 아름답게 장엄(莊嚴)하여 극락으로 만드는 것이 보현행자의 실천이다.

 

 

이와 같이 보현행원을 통해 삶이 충실해지고 삶이 거룩해 질 때 더 이상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극락은 이미 이 땅에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보현행원의 길이나 정토왕생의 길은 결코 둘이 아니다.

 

사람의 근기(根機)와 심성(心性)에 따라 제시하는 처방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이다. 보현행자의 길과 정토왕생의 길은 둘 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곳이 중심적 실천공간이다.

 

 

보현행자의 실천도 바로 지금 이 세계를 긍정하고 실천하는 것이며, 정토왕생의 길도 극락왕생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성숙시키는 곳이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땅이다. 따라서 이 두 신앙이 불러오는 결과는 나의 삶 자체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서 있는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변화시키는 원력과 실천이다.

 

 

한쪽이 현실을 긍정하고 나를 믿고 현실을 바꿔나가는 길이라면, 또 한쪽은 아미타불을 믿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해 사바세계에 거룩한 씨앗을 파종하고 가꾸는 삶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는 결국 나와 세계의 변화이다.

 

 

보현행원은 현세의 삶을 보살로 살아감으로써 이 땅을 정토로 장엄해 가는 실천이다. 마찬가지로 정토신앙도 극락왕생하겠다는 신념으로 삶을 가꿈으로써 현재의 삶을 완성하는 길이다. 그러나 어떤 신앙을 선택하던 우리의 귀착점은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행복이 오는곳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무지개 구름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것일까? 산너머 저쪽에서 바람타고 오는 것일까?

 

그렇다.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밖에 누가 있어 가져다 주는것으로 알고 기다린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만약 행복을 잡으려고

밖을 향해 쫒아가면 쫒아갈수록 행복은 멀리 달아나 영영 손에 잡히지 않을것이다.

 

** 부처님 국토.행복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고 했다.

부처님 은혜의 나라는 바로 나에게 있고 당신에게 있고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했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의 나라로 통해있고 행복의 나라로 열려있으며 행복이 자신속에 가득가득 쌓여있다

 

***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그리고 멈추지 않고 정진하는 사람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그사람이 행복을 누릴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눈을 뜬 행복나라의 주인이다.

 자, 지금 주어져 있는 이자리에 감사하고 노력하자.기쁨을 머금고 희망을 불태우자.끊임없이 감사하며 정진하는 사람이 행복의 과실을 얻는다

 

 

               당신은 감사의 천사 

               당신에게 감사를 받으면

               그사람은 행복해진다.

 

               당신은 기쁨의 천사

               당신이 기뻐하면

               온천지가 기뻐한다.

 

               당신은 빛의 천사

               당신이 빛나면 온 가족,온 이웃이 행복해진다.

               당신에게 축복받고 칭찬받고

               사랑받을때

               당신과 사랑하는 그사람이 행복해진다.

               모두 모두는 당신의 사랑,감사,기쁜얼굴을 기다리고 있다.

 

           도피안사 刊, 광덕큰스님  법어집, "반야의 종소리 28-30p

 

 

물오징어를 다듬다가  / 유 안진 

 

 

네 가슴도 먹장인 줄 미처 몰랐다
무골호인(無骨好人) 너도 오죽했으면
꼴리고 뒤틀리던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진
검은 피 한 주머니만 껴안고 살다 잡혔으랴

바닷속 거기도 세상인 바에야
왜 아니 먹장가슴이었겠느냐

나도 먹장가슴이란다
연체동물이란다
간도 쓸개도 배알도 뼛골마저도 다 빼어주고
목숨 하나 가까스로 부지해왔단다

목고개 오그려 쪼그려
눈알조차 숨겨 감추고
눈먼 듯이, 귀먹은 듯이, 입도 없는 벙어린 듯이
이 눈치 저 코치로
냉혹한 살얼음판을 어찌어찌 헤엄쳐왔던가

 

 

 

 

Ronan Hardiman 로난하디만 / Secret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