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향하여 순수했나

2012. 7. 20. 09: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기도하는 마음

 

법을 향하여 순수했나

 

헤아릴 수 없는 머나먼 시간 전에 성불하시고

중생 건지기 위하여 그 모습 세간에 나투시네.

 

이 말은 부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며 믿음이다. 부처님은 법성이시며 진리자체이심을 알 때 부처님의 성불은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세감에 출현하신 것 부터가 중생 세간을 밝히는 횃불로 오심이요, 출가. 수도. 성불 모두가 대자비의 물결이시다. 진리이신 부처님이 생사 밖에서 생사 속에 들어 오시고 범부 세간에 몸을 나투시며 크신 자비 베푸시어 무진 설법 열어주신 그 은덕을 무엇으로 헤아리랴. 오직 감격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성도에서 비롯하고 부처님의 성도는 출가에서 결정 되었다. 이 세간에 무량공덕문을 열어 주신 결정적 계기가 된 부처님의 계기가 된 부처님의 출가법문 부처님의 출가재일인 328(음력 2 8)을 맞으면서 우리의 감동은 더욱 새로운 바가 있다.

 

부처님은 왜 출가 하셨던가.

불전에는 부처님이 성을 넘을 때 타고 가신 말 칸타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칸타카여, 나를 이 밤으로 숲으로 데려가 다오. 나는 불이 되어 인간과 천상 모든 중생을 구제 하리라.]

 

독백 형식을 띠운 부처님의 결의의 표명이다.

또 성문을 나설 때 마왕이 가로 막으며 말했다고 한다. 수일내에 사천하를 평정할 윤보를 얻을 것이니 출가를 멈추라는 것이었다. 그때도 역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나에게는 윤보도 사천하도 필요없다. 나는 불이 된다.]

 

역시 깊은 마음 속의 결연한 표명이다.

또 성을 넘고 강을 넘어 숲에 이르러 마부 찬다카를 돌려 보내며 부왕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씀 드리게 하였다.

 

[소자는 세간의 욕망도 천상의 욕망도 없습니다. 오직 중생이 바른 길을 잃고 고해를 윤회하는 것을 구하고자 출가합니다. 젊다고 안심되지 않습니다. 위 없는 도를 얻기 전에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의 출가는 위에 보인 부처님 말씀과 같이 오직 중생을 구하고 세간을 구하기 위하여 출가 하였다. 일신의 욕락이나 명예나 수승한 과보가 안중에 있을리 없다. 왕관도 천하도 필요 없었다. 부처님의 이 출가법문에서 우리들은 오늘 새롭게 다지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진리의 저 언덕을 향해서 전후 좌우를 돌보지 않고 돌진 하셨다. 진리 앞에 순수하게 심신을 바치셨다. 이 점이 오늘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울려오는 첫째다. 부처님 법문을 배움에 오직 일체 망념, 일체 이해를 말끔히 놓고 완전히 빈 마음으로 순수하게 부처님 법을 만드는 자신인가가 반문해지는 것이다. 법 앞에 순수, 이것이 첫째 반성이다.

 

둘째는 오직 진실과 중생과 세간을 위한 불붙는 열의다.

 

부처님은 부왕의 간곡한 만류도, 태자출가로 인한 조국의 국제적 상황변동도, 출가수행 앞에 가로 놓인 고난장애도 일체 안중에 없었다. 불붙는 것 같은 구도심으로 타올랐고 그것은 오직 중생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하는 뜨거운 자비심 뿐이었다. 오직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일체를 집중시킨 부처님의 대자대비가 우리의 가슴을 뒤흔드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출가하여 이런 서원으로 용진하여 무상법을 이루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보여 주셨건만 오늘날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진실로 중생을 위하여]라는 이 일 점에 모두가 집약되고 모두를  바치고 있는가가 되물어지는 것이다. [부처님 법 앞에]라는 뜻은 중생과 세간을 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자는 오직 한가지 [중생을 위하여]가 있을 뿐 거기에 어떠한 사족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 이해득실을 계산 밖에 두고 중생과 세간을 위하여 모두를 바치는 것이 불자인 것이다. 불자의 모든 행은 이 [중생을 위하여]라는 일구에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실지는 어떠한가. 과연 부처님의 이 법문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너무나 타산과 계교와 집착 시비가 많은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혹자는 말하기를 우리는 아직 중생이니까하고 중생을 빙자하여 중생행을 비호하고 변명하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우리는 모름지기 부처님의 중생을 위하여는 두번째 순수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출가 법문은 부처님의 크신 서원과 그 서원을 실천하는 순수와 용기로 집약 된다 하겠다. 그것은 출가불자들을 위한 법문만이 아니라 온 불자들의 진실 생명을 키우는 결정적 법문이다. 부처님은 스승이 없었다. 성을 넘고 산에 들고 스승을 구하고 도를 찾았다. 이윽고 독자적인 수행법을 통하여 무상대각을 이루셨다. 그리고 한없는 법문을 열러 주셨다.

 

부처님의 출가와 우리의 출가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여 스승없이 도를 구하는 출가였고 우리의 출가는 부처님 께서 이미 열어 놓으신 법문을 믿고 실천하는 발심의 출가인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감로법문을 순수하게 받들고 중생을 위하여 받들고 행하는 용기있는 정진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오늘의 우리 불자들, 부처님이 열어놓으신 법문을 오직 믿고 행하는 순수와 용기가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성취하게 되니 말이다.

 

거듭 크신 법문앞에  계수하여 서원을 바치는 바이다.

 

<85.>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346 p350 밝은 표정 밝은 마음에서, 불광출판사

 
 
 
한가한 내게 축하한다
                                                    
날마다 산을 보건마는
아무리 봐도 부족하고

 

언제나 물소리를 듣건마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자연으로 향하면
귀와 눈은 다 맑고도 상쾌해

 

그 소리와 그 빛 사이에서
평온한 마음 가꾸어야지

 

 

 
    충지(沖止. 1226-1292)
(고려 후기의 고승)

 

 
閑中自慶(한중자경)
 
日日看山看不足 (일일산간산부족)
時時聽水聽無厭 (시시청수청무염)

 

自然耳目皆淸快 (자연이목개청쾌)
聲色中間好養恬 (성색중간호양념)
 
 
 그림/오용길
산사의명상음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