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엔 화두가 없다

2012. 7. 20. 09: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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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엔 화두가 없다

고(故)로 운(云), 정전백수자화(庭前栢樹子話)는
용장소미유저(龍藏所未有底)라 하시니라.

정전백수좌화라.
이것은 조사 가운데에서도 조주 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화두입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것을 조사서래의라고 하는데,
한 스님이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이냐 묻자
조주스님께서 하신 말씀하십니다.
뜰 앞의 잣나무다.

질문도 화두지만 대답 또한 화두입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을 물었는데,
왜 조주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라 하셨을까.
의심이 일지요.
이것이 화두입니다.
그런데 화두는 부처님의 경전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조사의 선문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의 말씀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합니다.
교에는 없습니다.
경전 밖에 따로 전하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화두를 흔히 공안(公案)이라고도 합니다.
공안은 관공서의 비밀문서입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비밀문서라 할 수 있겠지요.

요즘 화두라는 단어는 세간에도 보편화돼 있습니다.
조사 선문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공안이 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주 썼습니다.
또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도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썼습니다.
줄()은 알 속에 있던 새끼 병아리가
부리가 생겨 안에서 알을 쪼고,
탁(啄)은 그 때를 맞춰 어미 닭이
밖에서 동시에 알을 쪼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좌의 화두가 무르익어 막 터져 나오려고 할 때
그때 조사는 마치 어미 닭처럼,
툭 던진 한마디 말로 개화시키는 것입니다.
달마와 혜가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화두를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달마가 중국으로 온 뜻을 묻는 질문에 조주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화두인데
일본에서 잣나무는 잎이 다섯 개 혹은 여섯 개 달리는데,
달마에서 혜가, 승찬, 도신, 홍인, 육조 이렇게 하면 6명이니까.
이것을 뜻한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구(死句)입니다.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닙니다.
화두는 자신이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을 직접 먹어봐야 짠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짠 맛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화두 참구는 무념이 돼야 합니다.
모든 잡념이 떠나야 비로소 화두가 잡힙니다.
의심해야 합니다.
의심만이 오로지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화두를 의단(疑團)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화두 그것 하나만 의심해야 합니다.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다만 한 가지 의심으로 귀결돼야 합니다.
"나에게 한 물건 있다. 위로는 하늘을 바치고
아래로는 땅을 궤고 밝기는 해보다 밝고
어둡기는 철통(칠흑)보다 어둡다.
동정(動靜)간에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육조 단경에 나오는 화두입니다.

남악혜양 스님이 혜능스님을 찾아왔을 때
혜능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이렇게 왔는고."
그러자 남악 혜양 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돌아가서 8년을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물(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뭣고 화두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어떤 스님들은 잠 잘 때는 잠자는 놈이 이뭣고,
슬플 때는 슬픈 이놈이 이뭣고.
이렇게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입니다.
이뭣고 이것만을 참구해야 합니다.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하나로 귀결돼야 하는데
이렇게 화두를 벌리면 일념이 되기 어렵지요
.

분별 떠나야 흔적 남지 않아


 

 

 

 

 

 

Вечерный звон(저녁 종)

Вечерний звон (бом-бом)
Вечерний звон (бом-бом)
Как много дум (бом-бом)
Наводит он! (бом-бом)

О юных днях (бом-бом)
В краю родном (бом-бом)
Где я любил (бом-бом)
Где отчий дом (бом-бом)

И как я с ним (бом-бом)
На век простясь (бом-бом)
Там слышал звон (бом-бом)
В последний раз (бом-бом).

저녁 종, 저녁 종!
얼마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어린 시절 시골 고향
내가 사랑하고, 아버지 집이 있던 곳.
난 저녁 종과 영원히 이별했었네.
거기서 마지막으로 종소리를 들었지!

이젠 살아있는 이 몇 없네
그땐 즐거웠고, 젊었었지

저녁 종, 저녁 종!
얼마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볼가강의 뱃노래

에이 우흐넴 에이 우흐넴 에이 우흐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우리는 길러봅시다 자작나무를
우리는 길러봅시다. 울창한 나무를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길러봅시다 울창한 나무를

우리는 자작나무 따라서 걸어간다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게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게 노래를 불러주 면서

에흐 너 볼가강이여,
강의 어머니여 넓디넓고 깊고도 깊구나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넓디넓고 깊고도 깊구나

ei ukhnem ei ukhnem ei ukhnem ischio razik ischio ras
razaviom myi biriozu razaviom myi
kudriyavu aidada aida aidada aida
razaviom myi kudriyavu myi pa birioschku iziom
pesniu sonyischku paiom aidada aida aidada aida
pesniu sonyischku paiom ekh tyi vokga matzz rika
schiroka I gluboka aida da
aida aida da aida schiroka I glubo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