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5. 17:30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번뇌 가운데 닦아야 한다/설정스님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전(傳)할래야 전할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제일의제 (第一義諦)가 아니다.
선문(禪門)에서 공안(公案)과 기봉(機)은 선사들이 중생을 향한 자비심으로 만들어 낸 문(門) 없는 문(門)이고, 법(法) 없는 법(法)이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자신(自身)이 직접 보고 증득(證得)해야 한다. 이것은 정진(精進)해서 정력(定力)을 향상(向上)시키는 도리 밖에 없다. 일념불란(一念不亂)하여 정진해야 한다. 처음 공부(工夫)할 때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만 길게 해야 할 방법은 아니다.
진정한 정력(定力)은 번뇌(煩惱) 가운데 닦아야 한다. 환경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정력은 정력(定力)이라 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태도는 철저히 정중공부(靜中工夫)이지 동중공부(動中工夫)는 아니다. 정중공부에 길들여진 사람은 정처(靜處)에서는 좀 된 듯 하지만 동처(動處)에서는 지리멸렬 상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힘 있는 공부란 동정(動靜)과 처소(處所) 가 관계없이 하는 공부다.
경계(境界)가 없을 때의 무심(無心)은 진정한 무심이 아니다. 반드시 경(境) 을 마주하고 무심(無心)해야 정(定)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온실 속의 어린 새싹은 드넓은 벌판의 광풍(狂風)과 폭염(暴炎), 서리와 엄동설한(嚴冬雪寒) 에서는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행(修行)의 목적(目的)은 정동(靜動)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진세(塵世) 속에서 큰 작용을 하면서도 속세(俗世)의 유혹에 말려 들지 않는 것이다.
일념정진(一念精進)하여 능소(能所)가 모두 사라지고, 근진(根塵)이 비어지 고, 전후(前後)생각이 끊어져 분명(分明)하고 똑똑해 지면 여기에 생사영단 (生死永斷)의 진소식(眞消息)이 있는 것이다.
동정일여(動靜一如)하도록 정진할 일이다. 參禪無別事 當人勇猛工 驀然忘性命 法法一瞬通 참선은 별일 아니라네 용맹스럽게 공부할 뿐 단박에 제 성명 잊어버리면 모든 법 한 순간 통하리라.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선불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홉 단계의 근본선정 (0) | 2013.02.01 |
---|---|
하나의 진리/청화스님 (0) | 2013.02.01 |
정혜쌍수 (定慧雙修) / 일붕 서경보 큰스님 (0) | 2013.01.25 |
활구 (活句) 와 사구 (死句) / 일붕 서경보 큰스님 (0) | 2013.01.17 |
참선(參禪)의 요체(要諦) (0) | 2013.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