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곳을 모르니/현정선원

2013. 2. 1. 07: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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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저는 아직 생사를 벗은 사람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온 곳을 모르니 가는 곳도 모르겠고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요?



<답> 질문한 사람이 머문 경지와 질문의 내용이 걸맞지 않는군요.

이 문답은 구경(究竟)에 바싹 다가선 사람하고나 나눌 수 있는

화두(話頭)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불법에 인연을 맺은 사람 치고 '불생불멸 불래불거'(不生不滅
不來不去)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나긴 참 어렵습니다.

 

직설적(直說的)으로 이야기하면,
<이 세상에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도무지 없다>는 게 바로 이
말에 내재(內在)하는 참 뜻인 겁니다. 사람들이 꿈속에서 모두들 <있다>고 하나,
꿈을 깨고 나면,
곧 성품을 보고 나면 티끌 만한 한 법도 봤다거나 들었다고

할만한 게 없지 않겠어요?

 

꿈속에서 겪는 온갖 일들은 모두 제 마음이 변해서 나타난 것임이 틀림없는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엔 이 모든 현전상(現前相)이 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저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실체(實體)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마음이 온통

대경(對境)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번뇌인 겁니다.

요컨대, 고불(古佛)의 법이 본래 생멸법(生滅法)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모든 법의 성품은 ― 유정 무정간에 ― 무생성(無生性)
허공성(虛空性)인 것이며, 이 법성지리(法性之理)에 계합하면 <법성의 마음>과
<법성의 물질>이 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을 갖추면서

<작용 없는 작용>(妙用)이 그지없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실제 모습인 겁니다.

 

고로 <있는데도 있는 게 아니므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는데도 없는 게 아니므로> '죽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진실이니,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지금 살아있는 걸까요? 죽은 걸까요?

 

어떻게도 결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게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겁니다.
이쯤 되면 초심자가 넘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모름지기 모든 법의 성품이
<있음>에도 속하지 않고, <없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철저히

구명해서, 고인의 말처럼 「유·무 양변을 넘나드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 전 까지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을

잘 이해해서 더욱 정진할 일입니다.


-현정선원 법정님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