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지(不動地) 보살/현정선원

2013. 1. 17. 23: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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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는 불법에 대해서 법정님의 모든 가르침을 읽고 이해하여 온 우주가

부족하거나 더한 것 없이 늘어나거나 줄지 않고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성문聲聞마냥 알아, 인연 따라 살아온 대로 살면 될 터인데도 제 상태가 이러하니

갈증은 끊이지 않습니다.
괴이쩍게도 자꾸만 성품을 증득하려 노력합니다.
마냥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저를 어여삐 여겨주시겠습니까?


<답>ⅰ) 이 세상엔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나(生)는 법은 없습니다.
ⅱ) 그런데 인연 따라 나는 모든 법은 자체성(自體性)이 없어요. 이에

<자체성이 없다>는 말은 곧,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 자체의 고유의 성품이 있다면 '다른 것'(因緣)에

기댈 것 없이, 스스로 존재할 터인데, 자체의 성품이 없기 때문에,

즉 그림자 메아리처럼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모습을 이루는 겁 니다. ― 그림
자는 물체에 의지해야만 그림자를 드리우고, 메아리는 음성에 기대야만

메아리를 이루 듯 말이에요.
ⅲ)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법은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자체성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生)기는 났는데, 난 것이 없으므로 <났다>고 말할

수가 없고, 멸하긴 멸했는데, 멸한 것이 없으므로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요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면, 이 세상은 그 겉보기완 달리 항상

공적(空寂)하여, 아무 일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골자입니다.
그러므로 무생법인을 증득한 보살을 일러서 <부동지(不動地) 보살>이라 하며,

이로부터 이 보살을 <큰보살>(大菩薩)이라 하는 겁니다.

이 지위에 이른 보살은 <불생불멸 법문>(不生不滅法門)을 분명히 깨쳤으므로,

곧 '무시지문'(無時之門)에 들고, 무공용지(無功用智)를 얻어서,

다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功을 들여서) 무슨 일을 이루려고 도모(圖謀)하는
일이 영영 없어집니다. 결국 모든 법은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무성(無性)이요,

무성이므로 일성(一性)이요, '일성'이기 때문에 평등(平等)한 겁니다.

모든 법이 평등한데 다시 무슨 득실(得失)을 논하겠어요?

요컨대, 온갖 <이러함>과 <이렇지 않음>, 나아가서 <있음>과 <없음> 까지도

모두가 빈 말 뿐이요, 전혀 실다움이 없으니, 이 가운데서 다시 무엇을

분별하고 취사(取捨)하겠어요?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지언정, 더는 보태고 덜고 할 일이 영영 없어지는 겁니다.

결국 <미혹함>과 <깨달음>이 둘이 아닌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

임을 알아야 하리니, 행여 <미혹함>을 떠나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쓰면,

이야말로 전형적인 생사법(生死法)이요, 이와 같은 개념(槪念)의 굴레에서 벗어
나지 못하면 영영 이승(二乘)의 경지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고인이 이르기를, 「<있는 그대로>면 빠르거니와 조작하면 더디니라」

했던 것이니, 초심(初心)들은 모름지기 잘못 알지 말아야 합니다.

 

- 현정선원 법정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