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神의 종교를 믿지않고, 人間의 종교인 불교를 믿느냐고 묻거든...|

2013. 2. 8. 11: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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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의

 

탐구과제

-         인생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가를 깨닫습니다.

-         본래 생명, 본래 나가 어떤 존재인가를 명상합니다.           

-         싯다르타의 성도(成道) 우리 자신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발견합니다.

 

생명은 스스로 주인

 

19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평화로운 니르바나의 세계를

    나는 마땅히 찾아야 아닌가?”  - 아함경-

 

      싯다르타의 통렬(痛烈) 자기질문(自己質問) 들으면선 생사는 한때의

      위안으로 타협할 없는 인생의 무거운 짐인줄을 나는 이제 깨닫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우리 스스로 짊어지고 해결해야 우리 인생의 주체적 과제

      (主體的課題)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생사는 결코 대신할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 부모님도, 연인

      (戀人)..., 누구도 나의 생사를 대신할 없기 때문입니다. 저분들이

      나를 위하여 죽을 있을지언정, 그누구도 죽음을 대신할 없는

      까닭에 우리는 어쩔 없이 스스로 생사의 짐을 지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엄마의 품이 아무리 그립고 포근하여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진실된 인생을 찾아서 외롭고 힘든 길을 떠나려는

      것입니다. 생사의 짐을 지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20  우리는 생사의 짐으로부터 도피할 없습니다. 누구에게 위탁할 수도

    없고, 자포자기하고 물러설 수도 없습니다.

      ? 나는 스스로 생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자주(自主), 스스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나의

      이것은 가요의 구절이 아닙니다. 엄연한 생명의 대진실(大眞實)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자신일 , 누구도 나의 () 없습니다.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을 잊고 허덕입니다. 스스로 생사의

     짐을 피하고 무력(無力) 방랑자가 되거나, 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은총에 매달리는 비루한 종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며 고통과 불행의 근본 원인입니다. 자기상실(自己喪失),.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할 길고 험한 종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주인임을 포기할 우리는 인생의 고뇌와 더불어 기쁨마저

     포기하고 맙니다.

     ? 종에게는 참된 고뇌도 없고 진정한 자유의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서 소꼬리가 되지 말고 닭의 머리가 되라하는것 아닙니까?

     다스리는 사람을 원망하는 장자(長子) 아내 시가아라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예속되는 것은 모두가 고통이니라. 스스로 자기의

     주인 되는것은 즐거우니라.”

 

 

피조물이 어찌 생명인가

 

22       우리가 여기에서 문제삼는 생명은 무엇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주어지는 그런

    피조(被造) 생명, 이차적(二次的)생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해결하려는

    생명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그런 유한(有限) 거짓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로 생명을 찾기 원합니다. 스스로 주인인 생명,

    결코 소멸되지 아니하는 생명, 진실생명(眞實生命), 태초생명(太初生命),

    그자체를 찾기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생명, 참나를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거짓 생명, 거짓 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짓 생명, 거짓 위에 온갖 성벽을 쌓아 올리고 속에 안주(安住)하려

    합니다.

    그러나 벗이여! 밀물이 밀려오면 바닷가 모래성() 어찌 되고 맙니까?       

    무서운 불길이 덮치면 낡은 초가(草家) 어찌 되고 맙니까?

    세존께서 우리를 위하여 경고하십니다.

 

   아들이다, 재산이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 허덕인다.

     나의 이미 없거니,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인가. ”   -법구경 우암품-

 

 

 

23  나의 이미 없거니.”

    무슨 말이냐? 내가 이렇게 있지 않은가.’

    벗이여 행여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의 나가 이미 없다면 세상이 실로 무의미하지 아니한가?

    죽자 살자 고생해서 뭣하나?’

    벗이여, 행여 이렇게 움츠리지 마세요. 말씀은 뜨라.” 부처님의

    자애로운 조언이십니다. “ 떠서, 자신의 생명을 보아라,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너를 찾으라.” 세존의 간곡하신 일깨움입니다.

    불생불멸,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아니하는 생명.’

    정녕 이러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갈망합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그런

    영생이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 죽을래야 죽을 없는

    생명을 그리워합니다.

 

24  불생불멸,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어찌 그런 생명이 있을까? 관념에 불과하겠지.’

    벗이여, 행여 이렇게 의심하지 마세요. 문득 우물 개구리생각이 납니다.

    요행히 우물 밖으로 나가 바위를 구경한 개구리가 친구들 생각이 나서

    우물로 돌아왔습니다.

    여보게들, 우물을 벗어나면 바다라는 세계가 있다네. 바다는 크기가

    엄청나서 데를 없고, 푸른 파도가 출렁 거리고, 바다 속에는 고래

    상어 문어 거북..., 온갖 생명들이 재주껏 뛰놀고 바다는 정말 무한(無限)하고

    신바람나는 별천지(別天地)라네.

    여보게 친구들, 좁은 우물을 버리고 우리 넓은 바다로 가지 않으려는가?”

    그랬더니 개구리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릴며 그를 공박하였습니다.

    미친 녀석, 그런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하다니.”

 

25  벗이여, 푸르른 바다를 두고 어찌 우리가 없다 하겠습니까?

    숲이 우거지고 사슴이 뛰노는 니르바나 동산, 바로 저곳에 우리 생명의

    푸르른 바다가 굽이치고 있습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세계불생불멸, 영생불멸의 세계가

    영겁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젊은 구도자 싯다르타는 니르바나 동산을 찾아서 달려 갑니다.

    가빌라(Kapila, 석가모니가 나신 나라의 서울) 높은 성벽을 뛰어 넘어

    ()으로 동으로 달려갑니다. 생사의 무거운 짊어지고 달려 갑니다.

    싯다르타는 성벽을 넘으며 스스로 맹세합니다.

    설사 해골이 썩을지라도, 생로병사의 근원을 다하지 않고서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본생경 1 -


 

성도는 스스로 주인되는

 

26      6 고생 싯다르타는 마침내 찾았습니다. 영생 불멸이 넘쳐 흐르는 니르바나 동산을

    찾았습니다. 목숨을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생사 일대사의 무거운 짐을 풀고 하늘을

    날으는 새처럼 훨훨 대자유의 주인되셧습니다. ‘크나큰 깨침 성취하고 거룩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운명적 갈등을 남김없이 부수고 그는 이제

    무한생명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인류사상 최대 사건을 성도(成道)하셨다.”이렇게 찬탄합니다. 성도란

    부처님이 되셔서 길을 열으셨다. 만생령(萬生靈)앞에 니르바나의 , 영생 불멸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 이런 뜻입니다.

    크나큰 깨침 새벽 부처님께서는 붓다가야(Buddhagaya, 성도하신 聖地)

    보리수(菩提樹) 아래 사자(獅子)처럼 앉아서 한소리 크게 선포하십니다. - 밝아오는   

    동녁 하늘을 향하여 사자후(獅子吼)하십니다.

    이제 어둠은 영영 사라졌다.

     어둠의 흐름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 다시 생사의 따르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자설경-

 

27   이제 어둠은 영영 사라졌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서, 영생 불멸을 성취하였다. 무한생명의 바다를 찾았다라는

     자기 선언입니다. 환희에 넘치는 주인 선언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나와 당신을 부르시는 자애(慈愛)로운 음성입니다. 생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향하여 내미시는 따뜻한 구원의 손길입니다.

     벗이여, 모두 이리로 오시오. 여기 니르바나 동산 보리수 아래로 모두 오시오.

      여기에 불멸이 있고, 영생이 있고, 일체의 고통을 해결하는 완전한 해답이 있소.”

     부처님께서 이렇게 사자처럼 외치고 계십니다.

 

27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부처님께서는 진실로 우리가 짊어진

    생사고뇌(  死苦惱) 대하여 완전하고 궁극적인 해결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붓다가야의 우렁찬 사자후와 더불어, 나와 당신 앞에 대자유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생사의 공포에서 영영 벗어나, 우리들의 사랑스런 일상(日常) 삶을

    아무 괴로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있는 행복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장장이 춘다를 좇아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만나 뵙고

      진리의 들었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

      세상 다시 있으랴.

      수많은 ()쌓은 공덕

      이제사 () 이뤘네.

      죽음과 병과 실패와

      악몽은 밤처럼 사라지고

      영생불멸,

      건강과 성공의 기쁨이

      새벽걸음으로 찾아오니

      사슴동산에 쏟아지는 햇빛

      - 신나는

      인생의 출발이어라.”

 

 

회향발원(고통스런 주인의 길로)

 

 자비하신 부처님,

괴롭고 슬플 , 자신이 정녕 힘없는 존재임을 발견할때, 저희는 문득 자신을 던져

버리고 무엇에 매달려 빌고 싶습니다. 자포자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성벽을 넘어 새벽길로 달려나가는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피를 말리며

고행하는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 생명의 주인은 진정 자신일 이라는 엄연한

진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신 부처님,

  저희를 고통스런 주인의 자리로 나가게 인도하소서.

 

 

자료출처 : '우리도 부처님 같이' ( 김 재영 저 / 불일출판사)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

 

 

 

癸巳年 立春을 맞이하여 

 

회원 여러분의 家內에 좋은 일 많으시고


生氣 넘치고 慶事스러운 일 많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