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이 대웅전이요, 선방이다

2013. 3. 28. 20: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지금 이곳이 대웅전이요, 선방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생에서 갖기 어려운 것이 네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고, 두 번째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세 번째 바른 법을 가진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네 번째 진리를 깨우쳐 부처가 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중 세 가지를 가진 행운을 얻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고, 한국에 계신 많은 선지식들로부터 올바른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깨닫는 일만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누군가 서울을 찾아왔을 때, 여러분은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혹은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만약 질문을 받은 사람이 “모릅니다.”라고 답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기 전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리고 왜 오셨나요? 그 대답 역시 “모릅니다.”일 것입니다. 누구도 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내 “저는 한국에 태어나고 싶으니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 뱃속에서 나와 쳇바퀴 도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바보가 되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나는 어디서 오고, 왜 왔으며, 무엇을 하러 왔는가? 또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원대한 물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6년 동안의 수행을 거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컵 안에 들어있는 것을 미국 사람은‘워터(Water)’라고 하고, 한국 사람은‘물, 중국 사람은‘스웨이’, 스페인 사람은‘아쿠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워터입니까, 물입니까? 혹은 스웨이입니까, 아쿠아입니까? 만약 물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물’이라는 말에 집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워터’라고 답한다면 영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에 가서 목이 말라 아무리 물을 달라고 외친들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침내 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리키며 “이게 바로 내가 필요한 물이다.”라고 말해도 그들은“이것은 물이 아니라 워터입니다. 죄송하지만 이곳엔 물은 없고 오직 워터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모두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워터건, 물이건, 아쿠아건 이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다 한 가지입니다. 단지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뱀은 호랑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호랑이는 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자신들끼리만 이해하며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아주 색다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글에서는 호랑이와 코끼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지만, 인간은 호랑이나 코끼리와 교류할 수 있으며 심지어 호랑이가 코끼리 등위에 올라타도록 훈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는 곧 인간의 마음이 무한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근래 인간들은 큰 집단을 이루어 함께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작은 그룹들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로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 몸, 즉 입과 위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지난 밤 술자리를 떠올려 보십시오. 입으로는 “소주 더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분명 위에서는 “그만 들어와.”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몸 안에서조차 견해가 달라 서로 싸우는데, 어떻게 세계평화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25년 전 LA에 있는 한국 절에 있을 당시, 숭산 큰스님께서 제가 있는 절로 오셨습니다. 그때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물들에게 어떻게 하면 세계평화가 구현되는지 물어봤지. 그랬더니 모든 인간이 다 죽고 나야 세계평화가 온다고 하더군.” 모든 동물들은 인간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천지에 가장 나쁜 것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만이 서로 싸우고, 많은 동물을 죽여 육식을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공기와 물을 더럽힙니다. 우리 삶에 있어 인과관계는 매우 분명합니다. 만일 자연을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미래에 엄청난 문제가 닥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진리는 말이나 글 또는 어떤 사람의 견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개는 멍멍 짖는다, 설탕은 달콤하다’ 이런 것들이 바로 진리입니다. 즉 우리는 진리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진리를 바탕으로115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오직 그 일에만 몰입하십시오. 만약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를 타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탔다면 분명 엉덩방아를 찧었을 것입니다. 생각을 멈출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상이라 부릅니다. 명상이란 좌선만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명상의 참뜻은 어떤 일을 할 때 단지 그것에만 몰두하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은 우리를 생각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아 분명히 보고 정확히 들으며, 진리를 얻어 그것을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남편 때문에 속상해, 애들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설거지를 할 때, 이곳은 주방이 아니라 대웅전이요 선방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순간이 참된 명상의 시간인 것입니다. 즉 설거지 명상을 하는 것이지요. 불교 수행과 일상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매 순간 어떻게 우리 마음을 유지할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단지 그것에만 집중한다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한 본성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보살님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그분은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딸을 키워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딸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학원도 보내고, 딸의 공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엄마는 이를 악물고 일하면서 딸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뒷바라지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딸은 불행했고 압박을 느꼈으며 점점 더 뚱뚱해졌습니다. 그런 딸을 보면서 엄마는 ‘이 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강아지를 키우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라고 몰아붙이면 딸은 하기 싫어했지. 방 좀 치우라고잔소리하면 방 치우기를 싫어했고. 그런데 강아지 돌보는 일 만큼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 했었잖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엄마는 더 이상 딸을 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차라리 학원비에 들 돈을 모아 딸이 졸업하면 동물병원이나 애견센터 같은 것을 하나 차려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엄마는 마음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딸은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곧 예전의 ‘통통’한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은, 내 생각을 붙들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 가졌던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한 발짝 물러나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생각에 대한 집착이 없으셨기에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지켜보면 지혜를 떠올리셨고,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아셨던 겁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주변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도움과 행동이 자동적으로 우러나올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참된 본성을 되찾는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무언가를 할 때 그냥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본성을 찾는 길입니다. 언젠가 숭산 큰스님께서는 “올바른 목표와 그곳으로 가려는 마음이야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행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것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언젠가는 올바른 목표와 그것을 실천하려는 마음자체가 곧 깨달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냥 하면 된다.” 이 시간 이후 여러분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돌아가실 겁니다.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좋은 답이 떠오르시면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하지만 답을 모르시겠거든, 그냥 모르는 채로 계셔도 좋습니다. --------------------- 대봉 스님 ː 1950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으로, 1977년 뉴헤이븐 선원에서 숭산 스님 법문에 감화되어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화계사로 출가해 한국불교에 귀의하고, 같은 해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8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선원에서 비구계를 수지하고, 1992년 숭산 스님으로부터 인가 받아 전법제자가 되었다. 1999년 계룡산 국제선원무상사로 와 줄곧 수행 정진했으며, 2000년 무상사가 정식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무상사조실을 맡고 있다.

 

우리의 몸은 물과같다/무불스님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모두는 아침 이슬과 같다.

이 것이 무상(無常)이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면,

쌓았든 바닷가 모래가.

파도에 밀려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같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

 모두가 무상이다.

 

마음을 깊이,

적적히 젖어,

공부하게 되면.

경.을 통해서 밝은 자신을 보게되고,

참선을 통해서 참 나인 자성.을 만나게 된다.

또한 꾸준한 염불을 통해서 부처님 나라의 태어나는 자기를 볼수 있다..

 

우리들이 잘아는,

더벅 머리 육조 스님도 시장에서 나무팔다.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단 박에 도를 깨치셨다.

 

공부의 장애,

도(道)의 장애가.

무엇이 겠는가.?

나태하여 선지식을 찾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장애다

.

그 중에도 제일 무서운 장애는 . 

총명은 총명인데.

 변재 총명으로.

자기 생각으로만 하는 총명 이다.

또,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자기식 알음알이  아망(我妄) 이다.

 

아상(我相)에 갇히면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아망심 자기 기준이 제일 큰 장애다.

 

공(空)을 알면,

모든 장애가 봄 눈 녹듯이 녹는다..

 

알고보면,

늙고 병들어 가는 내 모습이 .아미타불 이다.

어리석은, 무명의 내가 사라지고.

지혜로운 내(我)가 나타날수 있는 법.

그 것이, 공.의 도리 공심 이다.

 

 

신.혜.행.증 나를 알고,

닦아서 믿고 .

실천하면 자연히 증득한다.

 

우리의 몸은.

물과 같아서.

집착의 욕구들이 엉키면 .

차디찬 어름이 되고,

원망과 분노가 끓으면 .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된다.

내 몸.속에 ''

한빙지옥과. 화탕 지옥이 있음이다.

 

불심은 내 몸속에 있어서.

삼독심만,

 풀어내면.

아침 이슬이 감로수가 되는 .

자성불(自性佛)이  나타나 함빡웃음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