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이 나쁜 것인가? - 실론섬

2013. 4. 26. 20: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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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이 나쁜 것인가?

실론섬 2013.04.21

 

 

업이란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스스로가 의도한 행위에 대한 책임 입니다.

내가 의도한 행위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속박이지요.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업을 쌓아 가는 한편으로, 과거에 만들어 놓았던 업에 대한'결과물에 대해서 응당한 방법으로 응분의 댓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도덕적/윤리적 행위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선하게 사는 것도 악하게 사는 것도 자비를 베푸는 것도 모두다 윤리적 행위 입니다.

 

 

우리가 어느 장소 어디에 있든지 간에 또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의 행위는 악을 멀리하고 선을 지양해야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업장소멸이나 액땜이라는 것을 반대하거나 나쁘게 보질 않습니다.

다만 업장소멸이라는 것이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겠지요.

 

진정한 업장 소멸은 스스로가 선업을 많이 쌓을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업장소멸 한다고 법당에서 기도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봉사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휴지 한 장이라도 줍는 게 업장소멸에는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곳 스리랑카도 기복이 한국만큼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고 미신도 엄청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사리신앙이 특별하다면 이곳은 보리수나무에 대한 신앙이나 믿음이 굳건합니다.

 

 

똑같이 미신이나 기복이 심한데도 이곳이 왜 청정하냐 하면,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수행승들이 기복을 가지고 돈 장사를 안 하기 때문 입니다.

 

수행승들이 스스로 부추기거나 중생의 나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돈 장사를 안 합니다. 

붓다께 빌거나 보리수나무에 빌거나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 수행승이 앞장서서 나서거나 관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기복에 자유로울 중생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복이 개인적인 행위에서 한정되느냐 아니면 수행승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저도 엄청 기복 합니다.

보리수나무에 가서 빌고 그것도 모자라서 힌두사원에까지 가서 복을 빕니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내 개인의 행위에 국한 됩니다.

사찰에서는 절대로 중생들 개개인을 위한 개인적인 기복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복을 할 때는 늘상 모두가 잘되게 해달라고 할뿐 나만 잘 되게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수는 절대로 없으니까요.

 

 

보리수나무나 힌두사원에서 빌고 오면 기분이 한결 좋고 행복한 마음이 오래 갑니다.

정신건강에 아주 유용하지요.

 

남방권은 피릿이라는 기복행위가 있습니다.

피릿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준비를 합니다.

 

저녁부터 염불을 시작하여 아침까지 합니다.

그리고 오른팔에 행사에 사용했던 실을 끊어서 매어 줍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자주 사찰에서 해 줍니다.

 

 

남방권을 여행하다 보면 사람둘이 오른손목에 실을 매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피릿이라는 행사를 했거나 아니면 사찰에서 수행승들이 중생들 손에 실을 매어 준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사진도 올려 드린 것이 있습니다)

 

 

기복을 하려면 정정당당하게 모두가 혜택이 가도록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아직은 깨닫지 못한 중생이니 무조건 기복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경전 곳곳에도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설법들이 있습니다.

여러 행사에서 자애경/길상경/보배경을 읊조리는 것도 사실 기복행위의 하나입니다.

결혼/회사개업/이사/확장이전/생일... 온갖 중생사와 관련된 일에는 꼭 암송되는 경전입니다.

 

하지만 경전의 내용이 워낙에 좋고 또한 그렇게만 한다면 다음 생에는 천상에 태어 날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고 참회하고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기복 입니다.

 

 

한국의 기복행위와 어떻게 다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절대자나 신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이기적인 그러한 기복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안전하다 꿈이기에 . . / 법상스님

 

당신은 안전합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이 조건 그대로,

심지어 당신이 최악의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당신은 완전한 삶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머지 않아 죽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안전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든 것이 꿈 속에서 일어나는 환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그 모든 인격, 지위, 직업, 개성, 경제력과 경력, 심지어 몸과 생각 등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진짜가 아니라

잠시 부여받은 꿈 속의 배역일 뿐입니다.

 

꿈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꿈꾸는 자는 사실 언제나 안전합니다.

 

꿈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불안전하고, 두렵고,

괴로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을지라도,

꿈에서 깨어나거나,

자각몽처럼 꿈 속에 이것이 꿈인 줄을 분명히 알게 되면

그 모든 '악몽'이나, 무시무시한 삶의 스토리들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자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그것이 꿈이 아니라 사실일 때

모든 문제는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이 꿈이라면

그 모든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당신에게 가해를 입히는 사람,

상처주는 사람, 욕하는 사람, 사기 친 사람,

그 모든 사람이

사실은 당신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곧 나와 다르지 않아요.

 

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가 선하든 악하든

모두가 꿈꾸는 자의 일부분인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습니다.

 

우리 삶의,

나와 인연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악역을 맡든,

나를 돕는 역할을 맡든,

모두가 근원에서 나와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꿈 속에서 일어난 일임을 안다면,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깨닫기 위해 잠시 만들어진

꿈 속의 스토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용서는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다는 자각에서 옵니다.

 

 

모든 것이 꿈이라고 하니,

잠시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 꿈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이 환영같은 꿈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배우고 깨닫고자 하는 것이지요.

 

꿈은 진짜가 아니지만,

그 환영의 순간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생생하게 현존하며 살아나감으로써

그 꿈이 주고자 하는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꿈 속의 모든 것들이 너무 생생하게 진짜처럼 느껴지다 보니까

그 속에서 다만 온전히 '존재'하면 되는데

거기에 욕심이 생겨 '소유'하려 들면서

수많은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꿈인 줄 안다면

사실 우리가 꿈 속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즉, 우리가 그렇게 가지고자 애쓰고,

벌고자 노력하고, 올라가려고 아웅다웅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실제가 아닌 꿈이기 진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꿈 속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저 주어진 자신의 꿈을

신나게 즐기면서 살면 됩니다.

 

꿈인 줄 알기에,

그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 없이,

꿈의 내용이야 좋든 나쁘든 상관 할 바 없이,

그저 주어진 꿈 속에서

신나고 재미있게 100% 온전히 꿈길을 거닐면 됩니다.

 

꿈의 스토리를 완전히 신뢰하세요.

그것은 언제나 당신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을 깨닫게 하고, 자비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분 자신이 우주법계와 공동으로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배역과 스토리는 언제나 완전합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흠결이나 문제도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문제 삼기 전에는 말이지요.

 

여러분 삶의 시나리오는

당신에게 너무나도 필요하고,

적합하며, 적절하고도 유효하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온전히 신뢰하세요.

 

그럴 때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비로소 내가 나 자신이 되어,

자기다운 삶을 살아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삶을 즐기다 보면

순수한 열정이 생겨나고

그랬을 때 놀라운 영감과 비전이

온 우주법계로부터(법신불),

꿈꾸는 자(자성불)로부터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실은 이 두 근원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나,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더 많이 깨닫도록 해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매 순간 이 진짜 같은 삶에 속지 않고

꿈이라는 진실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말씀 해 주신

명상수행의 방법을 실천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앞에서 꿈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자각몽처럼

꿈 속에서 이것이 꿈인 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삶의 모든 악몽이나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질은 꿈 속의 내가 아니라

꿈꾸는 자이기에 언제나 안전함을 알 수 있다고 했었지요?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 삶이라는 꿈에 속지 않고

꿈인 줄 바로 알고자 한다면

이 매 순간 순간의 삶 자체를

여실하게 바라보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관찰과 자각이 깊어지게 된다면

자각몽을 꾸는 것 처럼,

꿈 속에서도 이것이 꿈임을 알고 꾸는 꿈처럼,

우리의 삶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매 순간의 삶을 신나게 즐기며 살면서도,

바로 그 순간을 깊은 자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지혜'라고 말한 삶의 덕목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꿈을 나 혼자만 신나게 즐기기 보다는,

꿈 속의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 모두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

모두 함께 삶을 즐기고 누리며 살도록 도와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꿈 속의 등장인물이

꿈 속에서는 남들인 것 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꿈꾸는 자인 당신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실은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타인을 도울 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삶에서 깨달은 지혜가

자비로 회향이 되는

'지혜'와 '자비'라는 삶의 고귀한 덕목에

점점 더 다가가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가요?

우리가 삶에서 깨달아야 할 것,

실천해야 할 것이

사실은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모든 꿈은

사실 다 좋은 꿈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한 꿈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삶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신나고 재미있게

주어진 당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기만 하면 됩니다.

더불어 타인처럼 느껴지는 모든 이들에게도

저마다 주어진 자기 자신의 삶이야말로

온전한 줄 깨달아

그 완전한 삶을 아름답게 살아나가라고 속삭여 줄 수 있겠지요.

그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말이지요.

 

키타경음악모음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