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의 영성 / 인경 스님

2013. 8. 29. 18: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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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에서의 영성 / 인경 스님

 

 

전통적인 심리학은 세속적인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데 집중한다면,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영성심리학, 혹은 초월심리학은 

인간의 근원적인 신성하고 거룩한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1997년 이런 동향을 인정하여 

인간의 건강을 몸건강, 마음건강, 사회건강이라는 기존의 관점에서 ‘영성건강’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첨가하고 있다. 

단순하게 질병이나 허약함의 결여가 건강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정의하여, 역동적인 온전한 
상태로서의 웰빙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된 영역은 바로 영적(spiritual)인 측면이다. 

 

영적 측면이란 특정한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렇게 건강의 개념이 변화하기까지는 그동안 

심리학계의 연구성과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면 심리학자들은 영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영성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널리 펴져 있어서 일률적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영성과 관련된 새로운 경향의 심리학파를 기존 심리학파인 

정신분석, 인지행동, 인본주의에 상대하여 제4세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성의 개념은 이들 학파와 별개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보니 영성에 대한 접근의 방식이 약간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영성개념이 자리를 잡는데 기여한, 주요 심리학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대표적으로는 정신분석에서 분파한 칼융(Carl Jung)의 경우이다. 

프로이트는 영성인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명상이나 

영성체험을 퇴행과 같은 부정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반면에 융은 원형(archetype)이라는 영적인 어떤 원리를 인정하였다. 

이때의 원형은 바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영적인 자기이다. 

이런 자기(Self)의 개념은 인도의 Atman이란 개념과 유사하다. 

융에게 있어 자기(Self)는 정신의 전체성이고, 참 본질로서 초월적인 

요소이고, 초월적인 자아로서 자기인격의 궁극적인 개아이다. 

 

융은 신체[身]는 감각과 정서로 구성되고, 마음[心]은 생각과 개념들로 구성된다면, 영혼[靈]은 제3의 관점으로서 이것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융은 영혼을 의미하는 soul과 정신 혹은 마음으로 번역되는 

psyche과 동의어로 함께 사용한다. 

다음으로 인본주의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영적 체험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은 매슬로우(maslow)이다. 매슬로우 역시 

종교적인 관심을 병적인 증후라는 프로이트에 반대하고, 

 

인본주의 심리학은 적극적으로 영적 가치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서 그는 인간에게 햇살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영적인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것들은 종교단체가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실존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경험을 절정경험(peak experience)이라고 불렀다. 이런 신비적인 경험상태가 앞으로 

심리학의 개척분야임을 강조한다. 이런 노력은 마침내 1969년에 

자아초월 심리학회지가 발간되는 결실을 맺었고, 이후로 켄 윌버(Ken Wilber), 로저 월쉬(Roger Walsh) 등에 의해서 발전되어왔다. 

 

영성체험을 중시하는 자아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적 

관점에 서 있는 심리치료자들은 내담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영성체험을 

유도하고 영성을 성취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기존의 

심리치료와는 매우 다른 성향을 보여주는 바로,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도 기존의 종속적인 의사-환자나 교사-학생과 같은 관계가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영적인 동반자로서 묘사된다. 

 

이것은 단순하게 개인적인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체험과 

성장을 목표로 한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이상 '영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 할 것인지는 아마도 개인의 고유한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괴독교는 영성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초월적 존재와 그에 대한 믿음과 관련되어서 이해한다면, 

 

불교적 이해방식은 초월적인 존재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내적인 자질이나 

성품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결정적인 차이점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전제를 가지고 출발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적인 스스로 구족한 본성으로 보는가 하는 점이다. 

이점은 철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지만, 

 

반면에 현실적인 현상을 중시하는 명상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보다는 구체적으로 영성을 어떻게 경험하고 

경험할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입장을 

취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오류는 작금에 이르러 그의 학문적 발표가 현대에

이르러  많은 실수와 미숙함를  보이고 있다고  밝혀지면서 심지어

그 프로이드는 사기꾼 이라고 혹평하는 이유는

 

그의 발표가 기본적 고유함을 얻으려 만들어 놓은 자신의 가설의

아상의 덧일수 있음은

그가 인정하지 않는 우리불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의 하나인 명상이나

자기관찰 등을 인정하지도 취급하지도 않은 프로이드 그 만의 각성하지못한 

특징에 서보여집니다

 

마치 괴독교에서 만든 바이블의 허구에 진실의 갑옷을 덧입히기 위해 많은 광신자들이 창조과학회라는 집단을 만들어 그들의 허구를 마치 과학인양으로

이어령 비어령 만듬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예를들어 어찌 노아의 방주에

과연 거대한 코끼리나 하마 악어 그리고  오로지 대나무잎사귀만 먹는 팬더를

실었을까요? 그리고 팬더가 그쪽 사막동네에 있었을까요? 호랑이는 요?

수많은 동물의 예를 들수있지만 여기까지만 하고요 그리고

 

내가 참선으로 얻은 고요를 하나의 정신적인 착각이라고 고집하는 것과 같음이니

우리 불교도 도 이같은 인경스님의 학문적 고찰에 한번 눈여겨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막바지 더위에 건안들 하십시요 

 





처음부터 만나면 안되는 인연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쳐 버릴 것을
붙잡아 가슴에 담았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면 안되는 사랑
지나는 구름처럼
보고만 있을 것을
지켜봐 눈빛에 담았습니다


사랑은 말도 없이
나에게 와서
사랑은 말도 없이
내게서 떠나 갑니다


사랑이 떠나간 후에도
그녀가 없다는 것 말고는
모두 예전과 같은 하루인데
가슴에 흐르는 그리움은
새록새록 자라납니다


사랑이 나를 버린 후에도
내 가슴은
사랑을 놓아줄 줄 모르나 봅니다


눈물없이는 하늘을 볼 수 없고
습관 하나조차 널 닮아 버려
더는 남은 힘이 없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말도 없는 사랑을 기다리다
오래된 녹이슨 자국처럼
가슴은 바보가 되여
하늘만 보고 울고 있습니다


사랑이 그리워
말도 없이
또 하루를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