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5. 23:2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중생은 본래 고통스럽고 불행한가?
문1.
‘죄 많은 중생이 별수 있어’, ‘중생은 어쩔 수 없어’, ‘중생은 본래 고통스럽고 불행한거야’,
‘아이구, 원수 같은 이놈의 중생 몸을 하루빨리 바꿔야지’ 불교인들에게 중생이라는 개념은
한 맺힌 용어이다. 사람들은 중생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믿는다.
중생은 고통과 불행의 상징이자 목숨 걸고 버리고 떠나야할, 반드시 벗어나야할 무거운
짐을 뜻하는 존재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고, 염불, 기도를 하고, 절하고, 참선하고, 보살만행을
하는 까닭도 오로지 중생을 벗어나 부처되는데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한국불교인들이 생각하는 중생의 실상이 이러함으로 문제의 중생에
대해서 사실대로 잘 알아야 문제를 제대로 잘 풀어갈 수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길안내자인 붓다에게 묻는다.
○ 석가 그대에게 중생이란 무엇인가.
○ 석가 그대는 왜 중생인가.
○ 석가 그대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중생이었는가.
답1.
㉠ 중생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한문자체로만 보면 어울려 이루어진 존재,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불교사전 내용을 녹여내어 재구성해 보면 “오온의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진 분별심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 “우주자연의 총화로 이루어진 감정을 갖고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불교의 사유로 더 설명을 하면 “우주 또는 인간의 존재법칙인 연기와 업의 진리에
의해 태어나 살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매우 보편적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비록 중생이라는 문제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 그 내용을 보면 부처니 중생이니 하고
인위적으로 이름을 붙이기 이전의 한 물건이다. 그야말로 그 자리엔 인위적으로 조작해낸
털끝만큼의 허물이나 차별도 없이 완전히 평등하고 원만하다.
절집말로 하자면 중생이 부처고, 부처가 중생이다. 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요, 본래 부처이다.
원효와 의상의 불교 세계관으로 보면 중생이 곧 부처임과 동시에 중생이 곧 우주이므로
중생과 부처와 우주가 본래 한 몸, 한 생명이다. 그 자리엔 문제의 중생도 희망의 부처도
저 멀리 우주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기존의 범신도 인간의 실체인
진아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니 중생이니 하고 인위적으로 이름 붙이기
이전 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의 법칙인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한 물건이 있을 뿐이다.
문제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살펴보면 범신도 진아도 중생도 부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중생,
부처, 범신, 진아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처, 중생, 범신, 진아는 사람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관념의 환상으로만 있다. 오히려 기존의 그 어떤 관념에도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직면한 세계, 삶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살펴보면 오로지 우주의
존재법칙인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세계와 인간의 법칙인 업으로 이루어진 삶의 주체인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부연 설명을 한다면 세상의 주인, 내 삶의 주인은 명칭으로만 있는 범신도
진아도 중생도 부처도 아니고 연기무아의 존재인 지금 여기 각자 자신인 것이다.
연기의 진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삶의 주인인 본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삶이 행복할지 불행할 지는 삶의 주인인 본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사고하고 말하고 행위
하느냐 즉 그 한 물건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좌우되어 진다. 부모가 나를 낳기 이전에도
그랬고, 나를 낳은 이후에도 그랬다. 살아서도 그렇고 죽어서도 그렇다.
[불교신문2949호/2013년10월2일자]
도법스님
구병규 / 꽃사슴. 가을구경
목표는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계속 고쳐야 한다.
배나 로켓, 미사일도 그렇다.
* 앤드류 매튜스(Andrew Matthews)
호주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만화 예술가, 대중 연설가.
시월의 의미/이영균
시월의 저 달
와글와글 달 밝던 써레질 논
복작거리며 생명 잉태한 달
부풀던 생의 푸른 기운
붉은 청사초롱 다 피고지고
무게가 실린 벼 이삭
여름내 무논 지켜선
저릿저릿 백로처럼
긴 다리 구부려 가슴에 안고
갈대 스산한 이 밤
만월의 달 속으로 날아오른다.
돌이켜 회상컨대
밀얼 속삭이던 그 밤의 달
이젠 출렁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별빛 촘촘히 쏟아내는
밤하늘 두둥실
다산의 결실로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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