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지( 曹溪宗旨) / 일붕 서경보 큰스님

2013. 10. 31. 10: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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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지( 曹溪宗旨)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조계종지의 조계 ( 曹溪 )라는 두글자는 조숙량이라는 사람이 시냇물위에

정사를 지어 육조 혜능대사를 청하여 모셨다고 하여 "조계" 라고 한것이다.

그래서 조숙량의 '조'와 계상의 '계'자를 합하여 '조계'라고 한것이니

뒤에 혜능대사가 거처 하신 산의 이름도 그 뒤에는 조계산이 되었고,

혜능대사를 근본으로 삼는 종명 宗名이 된것이라고 한다 .

육조는 달마대사로 부터 6대가 되는 까닭으로 '6양'이라고 일컫게 되었으니

성은 노 (盧)씨 이니,지금 광동성의 조경부 신흥땅 출신이다.

 

출생후 6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24세가 되도록 뗄나무를

베어 저자거리에 가서 파는 나무장사꾼을 하여 겨우 쌀을 사서 그날 그날

모자가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읽는데,'마땅히 주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는 경문을 듣고

홀연히 깨닫고,그 스님에게  "이런 경을 어디서 배웠느냐" 하고 물었더니 ,

 

근주부 황매산 에 있는 5조 홍인대사에게 배워 들은것이니 자세히 알고 싶거든

그곳으로 가보라 했다 그래서 노총각은 그말을 듣고 출가를 결심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함형 2년 (서력671)에 당나라의 황매산

에 있는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열반경>을 독송하는 무진장

비구니가 있는 여승 절을 들리게 되었다 ,비구니가 일찍이 품고 있던

<열반경>의 의문처를 믈었더니 노총각은 거침없이 시원하게 대답하는

것이 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책을 펴놓고 글자를 물었더니 노총각이 말했다,

 

"나는 글을 배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글자를 모른다" 했다 비구니가

의아해서 다시 , " 글자를 모르면 뜻을 어떻게 아느냐?' 물었더니

'모든 부처님의 묘한 이치는 문자에 상관이 없다' 고 했다 그래서 그후부터

육조를 가르켜 문자를 모르는 무식한자로 취급했다 , 그러나 그분이 <금강경>의

서문이라든지 구결(口訣) 한것을 보면 도저히 일자무식의 무식자 라고는

할수가 없다 ,그 뒤에 그가 황매산에 당도하니 5조가 묻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한다. '영남에서 왔나이다' 하였더니 5조가 다시 말하되 , '무슨일을 구하러 왔느냐?"'

"오직 부처를 구하러 왔나이다 "

'영남사람은 성질이 사납고 짐승같아서 불성이 없느니라'

 

노총각이 다시역습하여 묻기를 , " 사람은 남북이 있을지언정 불성이 어찌 남북에

있으,리까? 하자 5조는 벌써 범상한 사람으로 알아채고 꾸짖어 말하되,

'너는 오늘부터 부엌일이나 하라"', 고 부엌으로 쫓았다가  다시방앗간으로

몰아넣서 8개월 동안이나 쌀만 찧게 했다. 어느날 5조 홍인대사가 문하생들의

득법심천(得法深淺)을 시험하고자 하여 각자 글을 지어 오라고 했다 .

 

그런데 이때는 신수 라는이가 수업제자 가운데 뛰어났으므로 대중들이 신수를 추천하고

감히 글을 지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신수는 글을 지어서 밤중에 다른이를

시켜 벽에 붙였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인 것이니

때때로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다음날  아침에 5조가 이것을 보고 칭찬하고 대중도 따라서 칭찬하니,이 소리가

방앗간에도 들리게 되었다.노총각인 혜능은 이말을 듣고 아직 미급한 것이라 하고 ,

깊은밤에 사미승을 시켜서 자기가 지은글을 그 옆에다 붙이게 했다,

보리수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명경대 또한 대가 아니로다

본래 한물건도 없으니

어떤 곳에 먼지가 끼일것인가.

 

그 이튼날 아침에 5조 홍인대사가 이글을 보고 점두 하고 밤되기를 기다려서

가만히 혜능을 조실로 불러들여서 법인法印 을 전하고 달마대사로 부터 내려온

가사와 바리때를 전하여 신 信 을 표했다 .

혜능은 대중들의 시기와 질투를 피하여 즉시 황매산을 떠나 서 남방으로 가

사냥꾼과 어부들 속에 섞여서 18년을 숨어서 근고수행 하고 서력676년1월15일에

법성사에 들어가서 삭발중이 되었는데,같은 해 2월 8일에 서경의 지광율사를 '

수계사 授 戒師 로 하고 소주 의 혜정율사를  교수사敎授師 로 하고 ,

중청국의 기다라 율사를 설계사로 하고,서국의 밀다라 삼장을 중계사로 하여

비구계를 받았다 . 그 뒤에 조계산을 본거지로 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다가

선천 2년 7월 1일에 문도를 모아놓고 분답을 한끝에 같은 해 8년 3월5일에

신주 국은사에서 임종계를 남겨놓고 입적하였으니 그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오똑하게 앉아 선도 닦지않고

등등하게 날뛰어 악도 짓지 않아

적적한 속에서 보고 들음을 끊으니

탕탕하여 넓어서 마음에 착함이 없네

 

육조대사 이전에는 선풍의 종파가 분파된 일이 없었는데 육조대사 이후로

중국에서 5종 宗으로 갈라졌으니,남악과 마조 이하로 부터 임제종.위앙종.운문종.

법안종.조동종.등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조게종이란 것은 위에서 말한

5종과 관계없이 덕립된것이니,5종으로 분열되기전에 마조대사 의 방계인

창주,서당,염관,마곡,남전,장경 으로부터 신라시대에 9산문의 개조인

도현,홍척,도의,혜철,범일,철감,현욱,이엄 등이 당나라에 들어가서

선법을 전해 왔는데 ,육조의 종지를 그대로 전수하여 왔다고 해서

조계산 이름을 따서 조계종 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선종을 중흥한 불일 보조국사가 9산문중

조계종  사굴산 범일 국사의 후손이어서 국사가 있던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고치어서 조계종풍을 선양하게 되었다.

이것이 고려 말엽에 이르러서 조선시대의 한국불교 종조인 태고보우 선사가

중국에 들어가 임제종파인 석옥천공선사에게 선법을 인가 받아왔으므로

태고선사가 임제종 스님인것 같은 감이 있으나 ,실은 태고 선사는 엄연히

한국 조계종 승적을 가진 스님으로서 중국에 유학해서 석옥 청공선사에게

인가를 받은것 뿐이다.그러므로 그뒤에 우리나라 조사들이 모두

조계 후인이라고  자처 했었다 ,

 

예를 들어 <선가귀감>을 쓴 저자 서산 청허선사도 조계퇴은술 이라고 했다 .

퇴은은  서산대사의 별호이다 그리고 <선가귀감>의 발문을 지은 사명대사도

조계종유 사명종봉 이라고 했다 종명은 사명대사의 별호 이다.

이것을 보면 외면적으로는 임제종 인듯한 감이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신라시대의 조계종인 범일국사의 종명을 이어서 고려의 보조국사가

전해왔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서산,사명이  조계종을 이어 왔으므로

해방 전후에 한국불교는 조계종이라고 단정하게 되었으니,조계종이란것은,

중국의 5종이 분리되기전에 육조대사의 종지를 바로 전해 온것이라고 하겠다.

 

조계종의 근원을 들여다 본다면 역시 달마대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이니,

교외별전,불립문자직지인심 견성성불 이 선종의 근본이라 하겠으나

이것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의 무언의 진리를 전한 것이요,

교화방편에 있었서는 달마의 혈맥론이 있고,사가행론이 있으니 이것이

조계의 근본종지라 하겠고,육조대사가 강설하신 <반야경> 구결과

<법보단경> ,고려시대 보조가 지은 <수심결> .<직심직설> . <간화 결정론>.

<권수정> .<혜결주문 > . <계초심학인문> .<원동성불론>.등이 중요한 것이요.

 

서산대사가 지은 <선가귀감>이 중요한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경허선사가 조계종지를 중흥하였으니,

<경허집> 이 또 종계종지의 중요한 자료라고도 하겠다.

그 강요를 들면 아래와 같다

 

이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쫓아오므로 밝고도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것이라,이름할 수도 없고,모양을 지을수도 없으니

불조가 출세하신것이 바람 없이 물결을 일으킴 이니라,그러나 법에는

많은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많은 기틀이 있으니 시설을 하는것도

방해롭지않다,억지로 여러가지의 이름을 세워서 혹은 마음이라 하고

 

혹은 부처라 하고 혹은 중생이라 하니,가히 이름을 지어서 알음알이를 내지 말지니

당체가 문득 이것이라 생각을 움직이면 걷 어긋나니라 ,

세존이 세곳에 마음을 전한 것은 선지가 됨이요,일대에 설한바는

교문이 됨이라,그런까닭으로 이르되,선은 이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이 부처의 말이니라, 이런까닭으로 만약에 사람이 뜻을 얻지 못하고

말로만 하고 종지를 잃어버리면 염화미소가 다 이교의 자취요,

 

마음으로 깨달아 얻으면 세간의 거친말과 시시한 말들이 다 교 밖으로

전하는 선이니라.  내가 한마디 하겠으니 생각을 끊어 반년을 잊고

일 없이 오뚝하게 앉아 있으니 , 봄이와 풀은 자연히 푸르도다,

교문은 오직 일심법을 전하고 선문은 오직 견성법을 전하니라 .

 

위에 인용한 서산대사의 법문이 선의 요지 잘 설명한 것이다

특히 서산대사는 우리나라 선불교계의 유일무이한 고승으로서 우리 조계종

선불교의 근본종지를 명백하게 제시하여 주셨다.

따라서 한국불교 조계종의 선풍을 배우고 알려면 먼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잘 배우고 참고해야 될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

 

 

 

 

 

 

*  80세(계유생)인 고은씨는 83년 50세 때 14세 년하의 아내

(영문학자 이상화)씨와 결혼하면서 무절제한 일상에서 막을 내렸다

사랑하는 연인, 영감을 주는 존재, 든든한 동지로서

늘 그의 곁을 지켜주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는 땅속에 박힌 바위와 같다'고 비유하곤 했다.

 

"아내의 말을 나는 미치도록 잘 듣는다.

아내 없이는 문학세계도 내 존재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술을 먹고도 살아 잇는 것은 아내 덕분이다.

옛날처럼 살았다면 벌써 땅속에 있을 것이다.

결혼후 내 문학도 질과 양 측면에서 달라졌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힘이 생긴다

그리고 깊이 사랑받으면 용기가 생긴다>고 했던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 시는 무엇인가?

"시는 누구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우애를 삶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일반적 우정이 아닌 하나의 사유 체계로 개념화한 의미로 말이다

옛날엔 문학은 교사역할을 했지만

난 그저 누구의 친구, 진실과 비애의 친구가 되고싶다

시인은 타인의 가슴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시인이란 세살 '때부터 남을 위하여 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타자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

 

좌우로 가르는 세상에 어느편인가 묻자

"나는 영원한 회으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회의한다"고 했다.

 

 

- 동아일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