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은 평생 공부다

2014. 3. 26. 20: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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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修身)은 평생 공부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잠시 짬이 생겼을 때에나

혹은 아주 불행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에야

잠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요.

 

그 잠깐의 짬마저도 내지 못해

수신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활의 부담과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수신이야!

 

옛 선조들은

어떤 일을 하든 무슨 분야를 전공하든

절대로 포기해선 안된다며

평생을 바쳐 공부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수신(修身)이라고 여겼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도

'천자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

한결같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爲本)'라고 가르친다.

특히

송대(宋代)이래 각 분야의 유학자들이

이를 화두로 삼아 꾸준히 노력한 결과,

수신(修身)

독립적인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과 지식을 본질적으로 구분햇다.

수학, 물리학 등은 독서를 통해 습득할 수 있지만,

미덕은

이렇게 공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미덕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이 중요하다.

미덕이 부족한 사람은

반복적인 실천과 훈련을 하면 변화될 수 있다.

이는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절차탁마'의 정신과 일치한다.

 

일찌기 공자는 제자들에게

'학문의 근본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爲己)이지

타인을 위한 것(爲人)이 아니다'라고 타일렀다.

<논어>에서의 '배움(學)'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인격 수양을 가리킨다.

성인들의 교재인 <대학>은

어떻게 '대인(大人)',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될지를 가르친다. 

 

<대학>을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

맹자는 그 핵심을 '양(養)'에 있다고 말했다.

날마다 조금씩 쌓여 길러지는 것을 '양'이라 한다.

또한

수신을 통해 자양분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신하는 이유는

메마른 마음의 밭에 영양분을 공급해

마음을

윤택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신문을 펼치거니 TV를 켜면 온통 사건사고 소식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마음의 병을 지독하게 앓고 있다.

이에 수신의 필요성이 그어느 때보다 높다.

 

선인들의 심오한 이 학문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바둑이나 장기판의 하수들인 셈이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미아들인 셈이다.

그간

케케묵은 지식으로 폄하받던 이 학문이

이젠

현대의 하수나 미아들에게

참된 정신과 행복을 찾아주는 길잡이인 셈이다.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히던

'修身의 길'책으로 만난다.

이 책의 저자 팡차오후이

칭화대에서 강의한 <유가경전입문儒家經典道讀>

 宋明代의 이학(理學)을 바탕으로

유교, 도교, 불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대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문제들을 명쾌하게 점검하고 있다.

책 속에는 <채근담>, <명심보감> 등

우리에게

익숙한 책에서도 많은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고요한 뒤에야 능히 안정이 되며, (靜而後能安)

 

안정된 뒤에야 능히 생각할 수 있고, (安而後能慮)

깊이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 (慮而後能得)

- <대학(大學)> 중에서

 

 

'정(靜), 안(安), 려(慮), 득(得)'

수양의 과정을 대표하는 용어이다.

저자의 강좌는

강의 시작 전 5분간 정좌(靜坐) 시간을 갖는다.

정좌는

특정한 시간, 장소, 상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시도할 수 있다.

마음이 심란하면 정좌를 해보자

매일 정한 시간에 맞춰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하철, 버스정류장, 화장실, 쉬는 시간 등

어떠한 장소나 상황에서도 이를 실행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의 길고 짧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하루의 절반은 독서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좌를 한다.

半日讀書, 半日靜坐

- 이 동, 남송시대의 학자

 

 

 

 

WHO는 나쁜 생활 습관으로 야기되는 

고혈압, 심장병, 중풍, 호흡기 질환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총사망인구의 70~80%이지만,

저개발국에선 40~50% 뿐이라고 밝혔다.

 

현대인들은 과도한 업무에 몰두하느라

생명 자체가 삶의 목적임을 망각하고 산다.

맹자나 장자 등 고대 학자들은

누구나 '존양(存養)'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양'은 <맹자>의

'존기심(存其心) 양기성(養其性)'에서 유래한 말로,

보존하고 양생한다는 의미이다.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를 보자.

선인들이

태극권이나 기공 등을 수련하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그 목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수련을 통해 생명의 리듬을 파악하여

심신의 조화를 꾀하고,

몸은 쾌적하게,

성정은 온화하게 만들고자 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우승 또는 금메달에만 집중함으로써

과도하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진실로 잘 기르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기르지 않고 내버려 두면

사그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 <맹자> 중에서

 

 

 

맹자는

'우산지목牛(山之木)'을 예로 들어

인격 배양을 비유한 적이 있다.

제나라 동남쪽에 우산이라는 민둥산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끊임없는 벌목과 함께

뿌리에서 나온 새 싹을 소나 양이 먹어치우는 바람에

마침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누군가가

'우산의 나무는 일찌기 아름다웠다'고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처럼

생명에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요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실로 어렵다.

맹자는

'존심(存心)'과 '양심(養心)'을 사용해 이를 가르친다.

'존(存)'은

의식적으로 붙잡아 잃지 않으려는 행위를 뜻한다.

단지

보존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선 안된다.

즉,

양심(良心)을 보호하고 보존하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습관이란

오랫동안에 걸쳐 형성된 것이므로

한꺼번에 모든 결점을 없앨 수가 없다.

날마다 조금씩 없애나가는 것이다.

이에 '양(養)'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음 속에

마치

분재 한 그루를 키우는 것처럼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존심은

단기 행위이며,

양심은

장기적인 효과를 뜻한다.

둘 다 최종 목표는 '양기성',

즉 건전한 인격을 배양하는 것이다.

 

 

 

 

간장에 병이 들면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신장에 병이 들면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병은 남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생기지만,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이는 <채근담>에 나오는 구절로,

밖으로 드러난 것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근원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으며

드러났을 때에는

이미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후라는 얘기이다.

 

<좌전>에 소개된 고사에 의하면,

춘추 시대 제나라 환공의 아들이 군주(의공)가 되

땅 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

사람의 죽은 시신을 꺼내 발목을 자르고, 

그의 아들 병촉을 종으로 삼았다.

또 염직이란 사람의 아내를 빼앗아 차지하고

염직은 수레를 호위하는 시종으로 삼았다.

어느 여름,

의공이 연못에서 수영을 즐길 때

두 사람은 공모해 의공을 죽여

시체를 대나무밭에 버리고 도망을 갔다.

 

 

 

의공처럼

항상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사유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자신이 정당치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본능적으로 일련의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심지어 이런 잇속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자기 욕심을 차리는 행위를

자신의 인생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합당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목적을 이루면 기뻐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낙담한다.

이렇게

자신의 행위가 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고

또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생각을 마주할 수 없다.

자신의 사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자신을 지배해 온

사유 패러다임을 분명하게 평가하고

검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은 남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생기지만,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일 나 자신을 세 번 돌아보다. 吾日三省吾身

- <논어>. 학이(學而)편

 

 

 

 

수신은 평생 공부이다

 

 

 

한국 사회는 피로사회이다.

삶의 조건이 무너질 때마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약하디 약한 현대인들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은

바로 수신修身이다. 

                                                                             -출처:오대석

 

 

 

 

 

                                            풍도 바람꽃

 

 

                                                    따뜻한 봄날

                                                    풍도 수방산 기슭에

                                                    흰 눈이 내렸습니다

                                                    꽃으로 핀 흰 눈이

                                                    조그만 섬을 하얗게 하얗게

                                                    온통 눈꽃으로 물들였습니다

                                                    변산에서 바람타고 날아왔노라며

                                                    변산에서 살다가 찾아들었다면서

                                                    밝게 웃으며 눈인사를 보내는

                                                    아, 내 님 닮은 뽀오얀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