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明을 밝히는 광륜光輪 - 청화큰스님

2014. 4. 2. 21: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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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을 밝히는 광륜光輪

 

 

                                  청화 큰스님  

 

 

    바야흐로 세계화시대의 지구촌은 참으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격변과 얼키고 설킨 심난한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지무명을 벗어나지 못한 무시업력無始業力의 소치로서 필연적인 인과응보의 인생고해人生苦海입니다.

 

    이제 불연佛緣이 도래하여 출범하는 『광륜光輪』지는 비록 그 출발은 소박하고 고독한 총총걸음이지만 역사적 사명을 통찰한 광륜법우光輪法들의 불타는 결의는 실로 삼천대천 세계를 뒤흔드는 투철한 구도정신이 세차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무릇, 모든 종교의 쇠락현상은 후기산업사회의 팽배한 물신物神 풍조와 아울러 각기 종교사회의 분열갈등과 편협한 신앙근본주의의 소산으로서 그 폐해는 가히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어 심각하게 인류사회의 평화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같이 혼탁한 역사적 혼란과 종교사회의 누적된 질곡을 벗어나는 일이 너무나 벅차고 험난한 형극荊棘의 길이기는 하지만, 우리 광륜법우들의 투철한 반야지혜와 불퇴전의 정진력은 한사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선구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사회는 비록 동북아시아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상처투성이의 한 많은 분단의 땅일지라도, 우리는 세계사의 숙명적 냉전冷戰 사생결단으로 대결하는 처절한 현장에서 오직 화해와 평화공존만이 우리 인간존재의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천혜天惠의 기회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데올로기의 치열한 대립을 비롯하여 천차만별로 반목갈등하는 모든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일체만유의 생명의 실상인 <진여불성眞如佛性>에 입각한 가장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새로운 휴머니즘에 의해서만 비로소 홍로점설紅爐의 해결이 된다는 자명

自明한 도리를 명증적으로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사회의 공동선共同善의 근원은 바로 동서양 모든 성聖者들의 무아평등無我平等한 한결같은 교훈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시대의 필수적인 과제는 우선 각기 자기종교신앙에 대한 순수한 정통성 확립과, 다른 세계적 종교에 관한 깊은 연찬硏鑽을 통한 화해협력의 증진인 것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 종교인들이 결코 피할 수도 없고 지체할 수도 없는 절박한 요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종교인들이 진정한 구도정신으로 인류사회의 대화회통大和會通을 위하여 혼신의 보살행을 다할 때, 우리는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반드시 빛나는 역사적 향도嚮導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광륜법우들의 비장한 서원과 환희용약하는 자랑이 있습니다.

 

 

   청 화 합장       

 

  <광륜 2002년 봄 창간호에서>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산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되풀이만 같다.

하루 세 끼 먹는 일과 일어나는 동작,

출퇴근의 규칙적인 시간 관념 속에서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온다.

때로는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또는 후회를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노상 그날이 그날 같은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간다.

이와 같은 반복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우리는 나머지 허락 받은 세월을 반납하고서라도

도중에 뛰어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안을 유심히 살펴보면

결코 그 날이 그날일 수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다행히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는 가구가 아니며,

앉은 자리에만 맴돌도록 만들어진

시계바늘도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 현상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 날마다 좋은 날.

하루하루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시들한 날이 아니라

늘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철저한 자각과 의지적인 노력으로

거듭거듭 태어나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늘 새로운 것이다.

우리 둘레는 하루하루가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데

어떻게 좋은 날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도전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력에 의해

의미가 주어진다.

날마다 좋은 날을 맞으려면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캐내야 한다.

하루하루를 남의 인생처럼

아무렇게나 살아 버릴 것이 아니라

내 몫을 새롭고 소중하게 살려야 한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서

좋은 날은 이루어진다.

 

- 법정스님의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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