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을 일으키는 禪 / 일붕 서경보 큰스님

2014. 6. 4. 09: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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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일으키는 禪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좌선수행을 하다보면  .정신의 집중력이 강화된다 .옛말에도 정신을 한곳에 쏟으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 것이 없고.쇠붙이나 돌도

꿰뚫어 볼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글을쓰는 삼매에 들어 있다고 하자 .손가락이

종이를 의식치 못하고 오직 그 무엇에 의해서만 글씨가 달리고 있다.

그 '무엇' 이란 과연 무엇인가 ?

 

종이와 붓과 손가락이 어떤 인연에 따라 서로 합일된 상태이다.

글을 읽을때나 글을쓸때.내가 지금 손가락으로 붓을 잡고 글자를

쓰고 있고.또 읽고 있다는 의식이 없다, 만일 이를 의식하고 글을 쓰거나 읽는다면 한 자도 쓰거나 읽지 못하게 될것이다, 그처럼 동시적으로 합일된 상태를 가리켜

의식이 없어진 경지라고 한다.

 

그럼 글씨를 쓰는것은 무엇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글씨를 쓰는가?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것 쉬운것도 명확히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것이 마음이라는 구심점으로 들어가 합리된

상태에서 다시 현현 (顯現)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 마음자리와 합일 (無)되어 용해 되었다가 나오는

글과 말은 마치 쇠가 녹았다가 다시 나올때 찌꺼기는 빠지고

참쇠만 나오듯이 글밖의 글 (言外言 ) 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불별의 진리로 되어 있는

말들은 이러한 禪 적인 경지를 알게 모르게 걸쳐서 나온 것들이다.

 

일찍기 소크라 테스가 시인들을 찾아가 창작 심리에 대하여

질문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돌아와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 시인들이 대상과 예지에 의해 조작하는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영감이라든가

감동이나 예감, 천리안과 같은 것의 영행을 받아서 쓰고 있음을 알았다 "

 

이것은 생각으로 조작하는것이 아니고 , 마음이라는 큰바다에

생각이라는 작은 파도들이 합일하여 큰 파도를 일으킨것과

같다는 말이다.

괴테나 하이네도 찰나적인 직관이 명작을 만들어 낸다고 확신했다 .

걸작이란 시인과 대상과 연필과 종이의 따로따로의 조작이

아니고 간발의 여유도

찰나적으로 합일되어 시인이 종이와 연필도 느끼지 못할때야말로

최고의 걸작이 나온다는 것이다.

시인이 시인이 아닐때 참 시인이 되고 ,

 

연필이 연필이 아닐때 참 연필이 되는 것과 같이 내가 ;'나 '

아닐때 ' 참 나 ' 가 현존케 된다 .창조다, 창작이다 하는 사실들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창조라는 용어를 현현 된다고 깨달아야 하며 ,

 

지금꺼지의 인간생활에 고유한 편견적 물질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현현이란 마음으로뷰터의 현현이다.

연필과 종이와 잉크와

시인과 대상을 버린다는것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깨달음 (覺 ) 이다 .

이 깨달음은 어떤 이론이나

설명을 통해서만 이를 알수도 없고 알릴수도 없다, 이것은

오직 선의 체험을 통해서만

깨칠슈 있는 것이다.여기에 담배가 있다고 하자.

이 담배를 설명함에 있어

이코틴의 몇% 이며 타르가 몇% 이고 탄소가 몇% 라고

해부학적인 설명을 가하고

그 맛이 쓰다느니 떫다느니 혹은 구수하다느니 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설명 하더라도 이를 정확히 설명할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직접 맛을 봄으로써만이 담배의 참맛을 알수있을 뿐이다.

그림 속의 떡이 아무리 맛있게 생겼어도 그것으로 배부를 수는 없다.

이처럼 글과 말로는 앵무새 처럼 찌꺼릴수있을지 모르나

직접 체험으로 느껴서 아는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전자는 지 知와 행行이 합일된 실상의 생명이요 ,

 

후자는 씨눈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계란과 같은 것이다.

이와같이 禪은 전우주를 한데 뭉치고 일체가 절대 평등 ( 空 )

한 속에서의 차별 ( 色 ) 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본이 대륙과는 동떨어진 별개위 섬으로 보이지만

실은 대륙과 붙어있는 땅덩어리로 지각변동에 의해 근본적으로는

대륙이면서 현상적으로는

섬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근본은 하나의  ' 나 ' 이면서

현상으로 나와 너로 다르게 보이게 되는것이다.그리하여

온세상 모두가 나이면서 너이고 너이면서

 

나인것이되는 깨달음의 자리가 곧 마음이라 하는것이다.

나와 너를 이루고 또한 만물을 이룬 이 마음만이 참 나 ( 眞 我  ) 요,

우주의 주인공이고 진리이며 佛 이다.

禪 사상은 어떤 형식이나 내용에 의해서 절대 불변의 것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고정된 틀 속에서의 형식화도 아니다.또 선에서는 선도 부정하고

물질도 부정하지만 보고듣고 말하게 하고 만물을 창조케 하는

이 마음자리만을

영원한 실재로 보는 것이다.

 

독자들은 TV에서 어떤 분이 자동차의 스프링을 맨손읋 쳐서

부러뜨리는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살과 뼈로 

된 손으로 강한 자동차의 스프링을

두드려서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눈앞에서 실현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랴,그러면 무엇이

그 스프링을 끊었겠는가?

 

손의 살인가,아니면 손의 뼈인가? 이도저도 아닌 마음인 것이다.

이토록 마음은 무서운 해머 일수도 있으며 무서운 칼날일수도 있다.

마음을 깨쳐 쓰기에 따라서

무한한 힘을 발휘할수 있다는 것을 요즘 서구의 사람들이 알게되어

과학자, 스포츠맨 ,학자들이 禪 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손으로 자동차의 스프링을 끊었다는것은 손으로 지구도

부술수 있다는말과 다를것이 없다.

 

이처럼 禪 은 우리 인간에게 초능력을 발휘케 한다.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


거문고 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