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禪 과 정신적위기

2014. 6. 25. 17: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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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RƯỚC THỀM NĂM MƠI...
MIMI HUYNH THÂN CHÚC QUÝ PHẬT TỬ,TRÊN TOÀN  THỀ GIỚI.:
NĂM GIÁP NGỌ LUÔN ĐƯỢC'..
THÂN TÂM AN LẠC
PHƯỚC THỌ MIÊN TRƯỜNG
BỒ ĐỀ TÂM TĂNG TRƯỞNG
NAM MÔ A DI ĐÀ PHẬT

 

 

    

 현대인의 禪 과 정신적위기   / 일붕 서경보 큰스님

 

   

 현대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 양태도 기계적이고

조직적인방법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오토메이션 방법으로

대량생산되는 물산의 혜택이 현실사회를 전진만 계속하게 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내면적 정신세계는 오히려 긴장을

초래케하고 심지어 자연까지도 파괴케 하는 등 온갖 부조리 현상을 빚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신적 갈등과 심적불안을 면키 어렵게 되었으며

우리의 앞에는 어두운 미래만이 커다란 산맥처럼 놓여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내적인 안정을

 구할수 없으면 우리들은 비록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삶자체는

죽은 시체의 침묵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라디오 ,영화,TV ,

신문 등이 제공되어 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즐기고 이해 할수있는

정신상태가 비어있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인간을 불안케 하는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불안과 부조리가 우리사회에 팽배해지면

 

남녀의 이혼율이 높아져 가정의 안정이 깨어지고 인간이 잔혹의 극에

이르고 , 이를 기화로 사이비 종교가 범람하게 되고 신흥조교를 내걸고

 마치 자기가 신 처럼 행세하는등 현대가 위기에 처하게 되어

인간의 새로운 인격형성에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기도 한다.

 

소비시대인 20세기 후반은 대도시화의 현상으로 변모되어 인간자신을

각박한 현실속에 속박해 버린다.부모와 자녀간의 혈연관계는 하나의

단순한 인과관계로 생각하여 부모를 천대하는 참으로 인간의 본성이

무시된 앞으로의 세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것인가  생 각 할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이같은 사태가 오늘의 우리에게 방향에 대한 목표를 세울수 없을 만큼

불안과 초조속에 빠지게 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과 초조를 벗어날수

없게된다.그러면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불안의식을 禪 을 통해

각성하려는 계기를 찾기 위해 몇개의 위기의식을 분석해 보겠다 .

 

먼저 교육에 대한 위기 의식이다. 동양에서 교육적 태도는 한 세기를

전후하여 서양문화를 수용하는데 급급했다 . 우주의 진리가 서양에만

있는것처럼 착각한데서 야기된 소치 이다.그리하여 동양의 문화는

점점후퇴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서구어를 습득 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았겼으며 외래문화에 도취되어 학업은 내적인 면보다 외적인 면으로만

성취되어가 마침내 우리 동양인은 서양의 문화를 자기화 할수있는

태도를 갖추지 못한채 답습하거나 고수하는데 불과했다.

 

그렇기때문에 그것을 개조할수있는 정신적여유란 조금도 찾아볼수

없게되었다.동양에서 받아들인 서양의 것이란 대체로 유물론적인

것이거나 회의론적인 것이다.이러한 것은 어느 의미에서 전통적

동양문화에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것은 멀지않은 장래에 다음세대들에게 문화의 내적인 연관을 잃게 하여

더욱 정신적 불안에 빠뜨리게 할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필자는 세대의

책임을 뼈아프게 느끼지 않을수없다.우리가 서양문화를 받아들일때,

좀 더 그 수용태도가 건전하고 옳았다면 이미 그것은 우라것으로

화했을것이다.그렇게 되었더라면 오늘의 젊은 세대와 다음세대들의

정신적자세는 확고해 젺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다른 어느때 보다 진정한 이념이 대학교육에서 전개되어야 할

시대이다.대학교육이 다만 직업을 얻는 방편으로 화 하면서도 상아탑

운운하는 야누스 적인 이중성을 띨때 미래에 대한 미로는 어떻게 될지 ?

 

참으로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할수없다.여기에 禪 을통하여 진정한

자신을 깨달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각성하는 길만이 남아 있을뿐이다.

그 다음은 종교에 대한 위기 의식이다 .

 

종교는 인간양심의 최후의 보루이다.믿음을 통해서 넓고 깊은 진리의

 세계를 각성하는데 종교위 목적이 있다.그런대 현대에는 이 종교마져

위기의식에 처해있다.우리나라에 불교가 정착한 이래 어느나라에

못지않는 찬란한 개화기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불교는

그 세력을 잃어가고있다 .물론 또 다른 태동의 싹이 트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

 

하여간 새로운 신흥종교와 신흥종파가 여기저기에 일어나 참다운

종교적 의식보다 의료행위,위선적인 자선사업을 기화로 그야말로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대낮에도 유유자적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전체종교의 위기의식인 것이다.그러나 어떠한 사회적

악풍토에도 굽히지않고 반석과같은 부동의 자세, 즉 禪의 자세와

정신이야말로 오늘의 종교적 위기를 극복할수있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그러면 오늘에 이러한 위기의식을 어떻게 禪 을 통하여 극복 할수있을까

생각해 보자 . 요즘  禪 에 대한관심이 동서를 막론하고 그 열의가

높아지고 있다.물론 그 태도나 목적이 각양각색이기는 하지만

어쨋든 관심이 높다는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수 없다.

 

 불교계는 물론 타 종교계에도 신부나 수녀 목사 신학자 등이 禪 을

연구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심리학자,정신분석학자 등이 禪 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있다. 禪 은 원래가 ' 인간의  본성을 구명 '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그러기에 선 은 곧 인간을 가장 좋은 상태로

 인도하려는데 있다.

 

禪 은 인간을 가장좋은 상태로 이끌어나가는 실천적 행위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어느시대에도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특히 오늘의 현실은

인간및 자연에 관하여 왜곡된점을 사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내면 근본적인 문제라 할수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불만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고 ,

또한 자기가 남을 미워하면서도 반대로 남이 자기를 미워하는것으로

착각하는등 허다하다.또는 어떤사람에게 기대를 가졌다가 그것이

자기가 목적한바와 일치하지 아니할때 남을 원망 하기도한다.

 

우리가  선을 통하여 이러한 현실적인 "나"를 직관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기를 반성할수있는 계기라고 할수있다.선 은 그러한 외적인 상황을

자기와 일치시켜 인간본연의 자세로 돌아갈수 있게한다.

 

인간은 어떤일에 열중 했을때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은 이미 대상이 아니라

자기와 그 대상이 하나가 된다. 자기는 관찰자나 비판자가 아니라

'보는것' '보이는것 '이 별개의 것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하나가 되는것이다.

 

마음속의 갈등이 대립으로 느껴지던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자기속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그러한 경지를 얻게 된다.禪 에는 자기와 남과의

대립이 있을수 없다. 모든것이 자기 이다.환언하면

진정 자기는 없다는 것이다.여기에서 말하는 자기는 타他 를

대상으로하는 자自가 아니라

 

自他를 초월한 절대의 자기인 것이다.즉 無我로서 모든것이 '나'이며

내가 즉 일체이다.이렇개 모든사상을 일체화 한다면 자기가 무한대의

공간에 퍼져있음을 알수있다.이것이 진실한 자기이며 곧 佛性 이다 .

 

그러면 여기에서 달마대사와 혜가와의 선문답을 예로 들기로 하자 .

 

 " 소생의 마음이 몹시 불안한데 저를 위하여 스승께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십시요" 

'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 , 내가 그대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리라 ' 

 

,,선문답에서 보는 것과같이 불안으로 말미암아 불안해서 견딜수없는

마음을 가져오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요구라고 아니할수없다.그

렇다고 혜가의 입장에서 마음속을 끄집어 내어 스승앞에 받칠수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 마음을 잡아내 보이려고 했으나 마음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 그것보아라 불안하여 동요하는 마음이란 존재하는것이 아니기에

너의 마음은 이미 안정되어 있느니라 ' 

 

 달마대사의 " 마음은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 는 가르침에 혜가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혜가가 자기의 마음을 찾다가 찾지못하고

 ' 얻을수 없습니다 ' 라고 대답 했을때 , 스승인 달마는 혜가의 눈에서

깨달음의 소지를 엿보았던 것이다.'

 

 얻을수없다는것은 空 이요 ,無 이다.이것은 분명 잡을수가 없는 것으로

잡았다고 생각하면 벌써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空이 여러 인연을 따라 변하여 전우주를 현성 (現成) 한다 .

 

空 이란 아무것도 없는 허공상태 즉 제로를 뜻하는것도 아니며,

아무런 작용도 없고 죽어버린 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러기 때문에

空 에서는 어떠한 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얻을수 없는것 이 공 이기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천쌍만화 (千雙萬化 ), 임기웅변이 된다 .획일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자세로서는 상대에게 당하고 만다 .얻을수 없는 것

즉 空을 잡고만 있다면 비록 천지가 뒤집힌다고 하더라도 태연히

앉아있을수 있다.

 

'공 ' 과  '무 '야 말로 안주의 땅이라고 달마선사께서 설파하신 일이 있다.

인간을 끊임없이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속박의 쇠사슬을 끊는

 충분한 능력을 발휘 할수있게 하는 조건이 바로 空 이요,無요 ,

얻을수 없음 이다 .

 

일찍이 서양의 선학자 후고 에노미아 러셀은 다음과 같이 그의 논문에서

적고있다 . ' 나는 동양인과 동양문화에서 끼친 신의 영향이

지대하므로 선 수행을 통해 동양정신을 극복하고 깊은

내적평안에 이를수있는 열쇠가 바로 禪 임을 알았다 ' .

 

  선이란 마치 큰 無 라는 용광로에  삼라만상 일체가 용해되어 지꺼기와

불순물이 다덜어지고 참의 쇳덩이만 나오듯이 참의 삼라만상이

현전됨으로써 거기에는 상相이 없어진 상태여서 대립이 성립되지

아니하므로  '너 '와  '나 ' 가 일체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禪적인 가정은 어린아이의 장래와 청년들의 활동, 노인들의

경험이 합친 하모니의 극치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와 같이 풍부한

화해와 협동속에서 단란이 이루어지고 또 이것만이 불안한 마음으로

병이 될수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출하는 길이 될것이다  .

 

이것이 바로 禪 의 입장이다. 禪의 정신은 유리 동양 민족성에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다. 이 禪의 불길은 저 깊은곳 재 밑에서

뜨겁게 타고 있다. 이 불길을 누구나 붙여가기를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자. 동서가 결합해서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고

서로가 풍요해 지기를 원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더욱 더

 

禪을 통해서 생존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이러한 禪의 길이야 말로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정신을 고양 사킬수있고,

오늘의 가치관을 물질일변도 에서 탈피시켜 진정한 삶의 가치관을

확립 시킬수 있는것이다.

 

禪 이 가진 고양된 정신적태도는 또한 민족의 거화炬火 가 되어

먼 장래까지도 밝힐것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불안과 초조함 ,

그 잡다한 현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직 이 하나의 禪의 길을

택할것을 제언한다.

 

우리자신들이 스스로 믿음을 통하여 禪의 대도의 길로 나아 간다는것은

세계평화와 민족중흥 의 커다란 과업앞에 절실한 요청이기도 하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