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미움도, 읊으면 노래가 되는 게송

2014. 6. 25. 17: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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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미움도, 읊으면 노래가 되는 게송

 

 

 

 

연예인이야기로 가득한 종편방송

 

수십개의 TV채널이 있다. 공중파방송의 경우 HD화면을 제공하고 케이블채널의 경우 이보다 떨어지는 SD급 화질을 보여 준다. 이렇게 채널이 많다 보니 시청자에게는 다영한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케이블채널에서 제공되는 프로를 보면 재탕 삼탕 하는 것이 많아서 식상하게 만든다. 그나마 볼만한 것이 종편채널이다. MB정권 시절 기형적으로 탄생된 네 개의 종편방송을 보면 케이블 채널보다 다양하긴 하지만 공중파와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

 

종편에서는 돈이 들어 가지 않는 프로를 양산하다 보니 주로 뉴스나 대담프로가 대부분이다. 특히 연예인 관련 프로가 많은데, 이는 최소의 투자라 최대의 효과를 올리려는 속셈으로 보여진다. 인터넷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것인데, 이를 방송에서도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 개의 종편방송을 보면 연예인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종 하겠다고

 

채널A에서 남진과 나훈아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과거 라이벌 이었던 남진과 나훈아를 비교하면서 근황을 알려 주었는데, 포인트는 나훈아이었다. 왜 나훈아가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체널A 제작진은 나훈아가 살고 있는 양평집을 취재하러 간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을 뿐 접근조차 못한다. 그러자 무어 하나 건질 요량인지 카메라를 집주변에 들이 댄다. 그러나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자 집주변 에 있는 가게에 간다. 가게주인에 출입에 대하여 물어 보는 것이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못 듣는다. 그때 짚차 한대를 발견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시도하기 위하여 다가 가지만 그 짚차는 달아나 버리고 만다. 그러자 제작진은 짚차를 추격한다. 방송에서는 쫒고 쫒기는 추격전 장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짚차는 제작진을 따돌리고 만다. 그래서 채널A의 나훈아에 대한 취재는 실패로 끝난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곳이 언론이다. 특히 연예인과 관련 된 취재를 보면 염치를 불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훈아는 왜 대중들에게 나오지 않을까?

 

방송에서는 남진과 나훈아의 전성시대를 보여 주었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두 라이벌에 대하여 동호회원의 말을 빌어 설명하였는데, 인기절정의 70년대 초반의 남진에 대하여 도시의 귀공자스타일이라 하였고 나훈아에 대하여는 소도둑놈같은 인상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훈아의 경우 남성미가 있고 더구나 섹시하기까지 하여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훈아는 더 이상 대중들 앞에 나오지 않는다. 이는 대중들에게 자주 얼굴을 내 비치는 남진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나훈아의 은둔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그 중에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스타는 함부로 무대에 서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신비주의 전략같아 보인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을 잃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래서 잠적하고 은둔하며 대중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나훈아가 여러 이유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다시 한 번 대중들 앞에 서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불교를 소재로 한 나훈아의 공()

 

대중가요 중에 불교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나훈아의 노래 중에도 불교를 소재로 한 것이 있다. ‘()’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타령이나 눈물타령하는 것과 다르다. 가사에 불교의 공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공에 대한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나훈아  ()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 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띠리 띠리띠리띠리  띠 띠리 띠리
띠리 띠리띠리띠리  띠리디리띠리디리리

살다 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리는 세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였다는 것을
모두 꿈이였다는 것을

띠리 띠리띠리띠리  띠 띠리 띠리
띠리 띠리띠리띠리  띠리디리띠리디리리

(나훈아 ,
유튜브)

 

 

공의 가사를 보면 모두 꿈이였다는 것을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금강경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좋아 하는 게송으로 알려진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인데, 이는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꿈과 같고, 허깨비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공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나훈아의 공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 가사를 누가 만들었을까?

 

 

누가 가사를 만들었나?

 

노래는 작사와 작곡과 노래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야 좋은 노래가 된다고 한다. 방송에서 나훈아의 설명에 따르면 노래 하기 전에 오른 손을 치켜 들면 자신이 작사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왼손을 들면 자신이 작곡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고, 두 손을 모두 치켜 들면 자신이 작사작곡을 한 것이라 한다. 물론 노래는 모두 자신이 부른 것이다. 이렇게 작사도 하고 작곡도 하고 노래도 할 줄 알아 만능엔터테이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은 누가 작사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검색하여 보니 작곡은 나훈아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작사는 unknown’으로 되어 있어서 알 수 없다. 아마도 불교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 작사한 것이라 보여 진다. 이렇게 이름 모를 가사에다 곡을 붙이고 노래로 만든 것이 공이라 볼 수 있다.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자의 품을 모티브로

 

대중가요에는 불교를 소재로 한 수 많은 노래가 있다. 그런데 경전을 소재로 한 노래도 있다. 사랑도 미움도 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자의 품이 연상된다. 노래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도 미움도


1.

사랑하는 마음은 갖지 말자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
미워하는 마음은 더욱 괴로워
아아 사랑에 빠지지 말자 아아아
미움에 뿌리가 되기 쉬우니

2.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걱정 외로움 없을꺼야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
미워하는 마음은 더욱 괴로워
아아 사랑에 빠지지 말자 아아아
미움에 뿌리가 되기 쉬우니

 



      (권은경 - 사랑도 미움도 (1986), 유튜브)

       

        

       

       

       

       

       

      이 노래는 1986년에 권은경이 불렀다. 검색해 보니 작곡가는 원세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작사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가사를 만들었을 것이라 보여 진다. 그것도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자의 품에 있는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

       

       

      가사를 비교해 보면

       

      대중가요 사랑도 미움도와 법구경의 사랑하는 자의 품을 비교 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중가요 사랑도 미움도

      법구경 사랑하는 자의 품

       

      사랑하는 마음은 갖지 말자

      사랑하는 자도 갖지 말라.

      Dhp210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

      사랑하지 않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

      사랑하는 자는 만나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미워하는 마음은 더욱 괴로워

      사랑하는 않은 자는 만남이 괴로움이다.

       

      아아 사랑에 빠지지 말자 아아아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 말라.

      Dhp211

      미움에 뿌리가 되기 쉬우니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Dhp212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걱정 외로움 없을꺼야
      (2)

      사랑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어찌 또한 있으랴.

      Dhp212

       

       

       

      가사를 보면 법구경의 게송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210번과 211, 212번 게송에서 한구절씩 가져와 가사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자의 품 (Piyavagga, 16)’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초전법륜경 고성제에서 여덟가지 괴로움 중에 애별리고(哀別離苦)’원증회고(怨憎會苦)’와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S56.11)”라 하였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라 하였다. 대표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또 경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라 하였다. 이는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사랑도 미움도라는 노래에서는 사람마음으로 바뀌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마음은 갖지 말자.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로 되었다. 그러나 구성을 보면 법구경 210번에서 첫번째와 두번째 구절을 그대로 옮겨와 단지 단어만 바꾼 것으로 보여진다.

       

       

      읊으면 노래가 되는 게송

       

      초기경전을 보면 수 많은 게송이 있다. 이와 같은 게송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설법한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게송으로 말씀 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핵심적인 가르침이 압축된 게송은 네 개의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사구로 이루어진 사구게는 시와 똑같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게송에 대하여 시라고 번역하였다. 이런 시는 읊으면 노래가 된다. 또 누구나 곡을 붙이면 대중가요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노래의 가사로 볼 수 있는 것이 초기경전에서 볼 수 있는 게송이다.

       

      법구경은 모두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423개의 게송이 네 개의 구절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 곡만 붙인다면 모두 노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게송이 사랑하는 자의 품이라 보여진다. 사랑하는 자의 품에서 일부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자는 만나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만남이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것은 참으로 불행이다.

      사랑하는 자도 사랑하지 않는 자도 없는

      그 님들에게는 참으로 속박이 없다.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사랑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애착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애착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애착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쾌락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쾌락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쾌락 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욕망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욕망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욕망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갈애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갈애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갈애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계행과 통찰을 갖추고

      가르침에 입각하여 진리를 설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행하면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다.

       

      (법구경 Dhp210-218, 전재성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