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제일ㆍ지행합일의 명 재상, 부필 거사

2014. 8. 13. 07: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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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거사선

 

인욕제일ㆍ지행합일의 명 재상, 부필 거사

 

 

중국 송(宋)나라 때 부필(富弼, 1004~1083)은 도량(度量)이 아주 넓은 인물로 유명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욕할 때면 못 들은 척 했고 실제로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했다.

한번은 아주 흉악한 사람을 만났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에게 욕을 해댔다.

곁에 있던 누가 보다 못해 그에게 일러바쳤다.

 

“저 사람이 지금 선생님을 욕하고 있어요!”

그러자 그는 도리어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많으니 부필이 꼭 나라고 할 수 없겠지요.”

 

욕설을 퍼붓던 그 사람은 부필이 끝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이상 욕을 하지 않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웬만큼 인내심이 강한 사람도 까닭 없는 욕설을 들었을 때는 이유라도 알고 싶어

따지기라도 했으리라. 외도들의 비방과 욕설을 들을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부처님과 같은 인격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의 경계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할

수 있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런 분은 필시, 앎과 실천이 한결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니,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누구든지 선지식이나 스승, 성자라고 존경해마지

않을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할 분이 바로 인욕보살이자 지행합일의 명 재상이었던 부정공(富鄭公)

부필 거사이다. 부필 거사는 ‘남악 선사 문하의 방(온) 거사, 백장ㆍ황벽 선사

문하의 배휴 거사’에 비견되는 거사로서 운문종의 선풍을 선양하는데 크게 기여한 분이다.

그는 자가 언국(彦國)이며, 하남 낙양 사람으로 인종(仁宗) 시기에 추밀부사, 영종(永宗)

시기에는 배추밀사 등의 고관을 역임했고, 송대의 뛰어난 재상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훗날 부정공이라 불린 것은 정국공(鄭國公)에 봉(奉)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부필 거사는 젊어서는 다른 사대부 관료들처럼 불교를 배척하다가 설숭 스님의 글을

읽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거사전』에 따르면, 그는 청헌공 조변(趙抃)이

보낸 “부귀가 이미 극에 이르고 도덕 또한 매우 높은데, 어찌 여래의 일대사인연에

뜻을 두지 못하는가?” 라는 편지를 받고 비로소, 참선에 뜻을 두고 주야로 정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참선공부란 것이 앉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선지식의 가르침과 지도편달, 점검이 없다면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서울 가는 길도 모르고 무작정 걷는 형국이 되고 만다. 그래서인지, 부필 거사 역시

드디어 스승을 찾아나서는 참문(參問)을 시도한다.

그가 진호주(鎭豪州)에 부임하던 시기, 영주(潁州) 화엄원(華嚴院)에 주석하던 수옹

(修顒) 선사를 친견하고서 비로소 당신의 스승임을 직감하게 된다.

마침 선사는 법좌에서 대중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부필이 들어오자 한 번 바라보는

모습이 부필에게는 마치 코끼리 왕(象王)이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단번에 임자를 알아본 것이다.

 

좌우 돌아보는 수옹 선사의 모습 보고 깨달아

 

부필 거사가 진호주를 다스릴 때는 수옹 선사를 초대해 그의 관할구역에 묵도록

하고 아침 저녁으로 심법(心法)을 묻는 정성이 있었으니, 고관대작으로서 남다른

하심과 간절함을 갖춘 대근기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근기도 깨닫는 과정에서는 고비가 없지 않았다.

수옹 선사는 처음에는 부필의 질문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까지 해주었으니,

며칠이 지나자 점점 태도를 바꾸었다.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아꼈으며, 제자가

이해한 바를 말씀드릴 때마다 “불법은 그런 게 아니오”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또 며칠이 지나서는 아예 대답을 말로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옆으로 흔드는

것으로 길을 안내할 뿐이었다. 이쯤 되면 웬만한 관리들은 화가 나서 질문을

중단하거나 스승의 경지를 의심하거나 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평생 여러 공덕을 많이 쌓은 탓인지 거사는 왜 스승이 자신의 답을 모조리

틀렸다고 하는 것인지, 더욱 화두의심에 몰입했고 마침내 화두삼매에 드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필 거사는 자신이 말만 꺼내면 선사가 틀렸다고 했던 까닭을

확연히 깨달았다. 수옹 선사가 법좌에 올라가 좌우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깨달은 거사는 훗날, 수옹 선사의 스승인 원조종본(圓照宗本) 선사에게 게송을

지어 보냈다.

 

수옹 스님을 한 번 뵙고 깊이 깨달아

이 인연으로 노스님의 심법을 전해받았으니

천리강산이 가로막혀 있다 해도

신령스런 그 모습 오묘한 그 음성이 눈앞에 선하외다.

 

一見顒師悟入深 因緣傳得老師心

江山千里寥云隔 目對靈光與妙踵

 

그렇다면, 부필 거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나호야록』에 보이는 부필 거사가 수옹 선사에게 보낸 아래 편지 글을 보면

시사점을 엿볼 수 있다.

“제가 스님을 만난 것은 시작도 없는 때로부터 잊었던 일을 하루 아침에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는 반드시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날 것이니 이는 예사로운

만남이 아니며, 아무리 해도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음공부의 목적은 생사로부터의 해탈

 

 

 

 

 

 

 

 

 

 

 

 

 

 

거사가 무시이래로 잊고 있다가 다시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본래의 얼굴(本來面目),

자성(自性)이자 불성이 아닌가. 법좌에서 좌우를 돌아보는 스승의 당체, 그 모습을

보고 잊었던 자기의 본래면목을 확인한 제자의 당체는 둘이 아니다.

선사의 본래 얼굴이나 거사의 본래 얼굴은 둘이 아닌 하나의 진여자성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무시겁이래 잊고 살았던 자성을 깨닫는 순간, 오래된 생사윤회의 고해에서

벗어나 대자유의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승려를 업신여기는 형조관리 장은지(張隱之)에게 따끔한 편지를 써 경책을 하고

참선을 닦을 것을 권하는 편지 글이 담긴 『총림성사』를 보면, 부필 거사가

어떠한 정신자세로 참선공부에 매진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만일 몸과 마음을 결택하기 위하여 배운다면 빈틈없이 치밀하게 탐색해야 할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뼈 속에 사무치도록 깨달아 모든 것이 그대로 완전한 맑은 광명으로서

한 점 티끌도 가리우지 않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그대에게 고개를 숙이리라.”

 

이 글을 보면 부필 거사는 철두철미한 공부의 결과, 뼈 속에 사무칠 정도의 깨달음을

얻어 완전히 맑은 광명(자성)을 회복하여 한 점의 번뇌ㆍ망상도 치성하지 않도록

일상 속에서도 빈 틈 없는 보임공부를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어지는

글에서는 마음공부의 목적이 일대사인 생사의 해탈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은지여! 이 일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당장에 무시이래로 있어 온 생사의

뿌리에서 벗어나 생사를 관장하는 염라대왕과 맞서야지, 사람들의 쓸모없는 말을

듣고 참선을 배울 것이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될 것이다.”

 

부귀공명 얻은 재상이 道를 이루다

요즘은 더욱 심하지만, 당시만 해도 말과 문자로 선(禪) 도리나 배워서 지식을

자랑하거나 음풍농월(吟風弄月) 하는 선시나 읊조리는 문자선(文字禪)의 폐해가

적지 않았나 보다. 육신의 죽음이란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여여하게 생사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선어록과 공안(화두)집을 달달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필 거사는 세간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란 재상의 부귀공명을 누리면서도 늘 겸손한 자세로

백성을 대하고 스승을 극진하게 공경했으니, 해행(解行)이 상응(相應)한 선지식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호야록』에 기록된 아래와 같은 평가는 세간과

출세간에서 모두 존경을 받은 부필 거사의 높은 도와 덕(道德)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 옛날 부처님께서 ‘부귀를 누리면서 도를 배우기는 특히 어렵다’고 하셨다.

더구나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이르렀고 공명(功名)을 한 몸에 지닌 그가

도를 이루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포난(飽暖)에 사음욕(思淫慾)이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명심보감)

배부르고 따뜻하면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 찰 것이고, 춥고 배고플 때 도심을

발할 것이라 했다. 요즘처럼 살기 좋고 편한 세상에 과연 누가 도를 닦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먹고 살만하고 적당히 행복하다면 생사 해탈에 관심을 갖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종교의 위기, 불교의 위기 시대에 더욱 수행에 무관심해지고 나태해진 불자들은

부귀와 공명을 누림에도 쉼없이 정진한 부필 거사의 구도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먹고 살만하게 생을 누린다 한들, 그 유한한 행복이 과연 얼마나 갈 것인가.

숨 넘어가기 전에 부지런히 염라대왕과 맞설 힘을 길러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는 마음공부 밖에 없음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끝없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정진을 발원해 본다.

 

 

-푸른바다 김성우 합장

이 글은 월간 <고경>에 발표한 글입니다.(작자와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 바닷가 추억 영상
 

행복 / 신현림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는 일
정성스런 손길이 닿는 곳마다
백 개의 태양이 숨 쉰다 믿는 일

그리운 사람들을 부르며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다 보면
모든 강 모든 길이 만나 출렁이고
산은 산마다 나뭇가지 쑥쑥 뻗어 가지
집은 집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음악이 타오르고
폐허는 폐허마다 뛰노는 아이들로 되살아나지

흰 꽃이 펄펄 날리듯
아름다운 날을 꿈꾸면
읽던 책은 책마다 푸른꿈을쏟아 내고
물고기는 물고기마다 맑은 강을 끌고 오지

내가 꿈꾸던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고
백 개의 연꽃을 심는 일
백 개의 태양을 피워 내는 일

 

 

 

 

 

慈心一切平等하면 眞如菩提自現이어니와

若懷彼我二心하면 對面不見佛面이니라

 

자비한 마음이 일체에 평등하면

진여와 보리가 저절로 나타나리.

 

만약 남과 나라는 두 마음이 있으면

대면하고도 부처님 얼굴을 보지 못한다.

 

 - 대승찬에서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림자가 있는 곳에 빛이 없어서는 안 된다. 
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실려온 것이 아니다.
나는 있어야 하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