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재탄생 (6) ~ (7)

2014. 8. 20. 18:1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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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재탄생 (6) ~ (7)

 

 

6.

Now we come to some further important questions. First, if there is no self, what is this thing we call "a person"? What are we? We can say that this is a collection of ingredients, of various parts compounded together. We can talk about mind and body if we wish, the two primary ingredients. We can also talk about the five khandhas: body, feeling, perception, thought, and consciousness. We can talk in terms of the elements (dhatu), both physical and non-physical. What we call "a person" is these ingredients and components which have been brought and put together. Still, they are anatta. If each of those parts, khandhas, and elements are not self, then their combination is also not-self. Simply having a collection of things holding together for a little while does not mean that one has a self. [27]

 

이제 더 중요한 물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물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아가 없다면 사람이라 부르는 이 사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여러 구성요소들,

서로 합성되는 여러가지 부분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두 가지 근본

요소로 몸과 마음을 말할 수 있으며, 다섯 가지 요소(오온)로 몸, 느낌, 인식,

 생각(의지 작용) 및 의식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물질과 비물질의 요소(다뚜, 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함께 모여 결합된 이 구성요소와 성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것들은 무아입니다. 이 각 무더기와 요소들이 무아라면

그 집합체(합성체)도

무아입니다. 얼마동안 다른 사물들이 함께 결합된 집합체(합성체)를 취한다고 해서

이것이 자아를 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아와 재탄생  (7)

 

 

7.

The second question is: If there is no self, then who acts? Who produces all these physical, verbal, and mental kammas (actions) and receives the result of those actions (kamma-fruit)? Who experiences happiness and dukkha? The "who" is "nobody." There isn't a need for anybody. In fact, we need not use the word "who" at all. The mind can feel, be aware, and think. It has its needs and can make the body act or the mouth speak accordingly. The mind thinks and as a result of that thinking there is an action: a physical, verbal or mental action (kamma). The mind that thinks is not self, the body that acts is not self, the mouth that speaks is not self, so that action is not self. The action really happens, but it is not self. Then there's a reaction that happens as kamma-fruit. If it affects anything, just that thing is the receiver of the kamma-fruit. But really, if we speak correctly and straight-forwardly, there is nobody who receives the fruit of kamma. Although a reaction occurs, it happens to the next thing. It is a process of one thing or event conditioning the next.

 

두 번째 물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아가 없다면 누가 행위를 합니까? 누가 이 모든

육체적 깜마(행위), 언어적 깜마(행위), 및 정신적 깜마(행위)을 만들고 

이 깜마(행위)의

결과(과보)를 받습니까? 누가 행복과 둑카(고)를 경험합니까?'

이 누구(who)는 없습니다

(nobody). 누군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누구(who)'란 말을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은 느끼고 알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몸으로 행동하게 하거나 입으로 말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생각하고 이 생각의 결과로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깜마)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마음은  자아가 아니고, 행동하는 몸도 자아가 아니고,

말하는 입도

자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자아가 아닙니다.

 

행위가 실제로 일어나지만 이것은 자아가 아닙니다. 그리고 행위의 결실(과보)로

일어나는 반작용(또는 반응)이 있습니다. 이 반작용(또는 반응)이 어떤 사물에 영향을

끼친다면 이 사물은 과보를 받은 사물(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행위의 결실을 받는 자는 없습니다. 반작용(또는 반응)이 일어나지만

이것은 다음 사물에 일어납니다. 이것은 다음 사물의 조건이 되는 한 사물

또는 사건의 과정입니다.

 

If we look carefully, we see that there is one mind that thinks, that has the intention behind the action, but the reaction is experienced by a different mind. From one moment to the next it is a completely different mind. It is never the same mind, let alone a self or a "who." ("Who" implies self.) This citta is the maker of the kamma the fruit of kamma happens to that (next) citta. It isn't the same citta anymore. Still, without any atta, the citta can make kamma, it can act. And the citta which isn't atta can experience the fruit of kamma. Whether happiness or dukkha is experienced, there is just mind experiencing it. one doesn't need an atta, there is only experience. There is only foolishness or intelligence. Take it as happy, it's happiness (sukha); take it as dukkha, it's dukkha. The mind alone feels sukha and dukkha, it doesn't need an atta. Thus we say that "nobody" makes kamma. If we speak in line with Buddhist principles, "nobody makes kamma." Although there is the acting of kamma, there is nobody who makes it, or receives its fruit, or is the happy one or the miserable one. There's merely citta together with body; that's all that's needed for experience. And all of it is not-self. [28]

 

주의깊게 보면, 생각하는 하나의 마음이 있고 행동의 배후에 의도가 있으며, 반작용

(또는 반응)은 다른 마음에 의해 경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옮겨가면 완전히 다른 마음이 있습니다.

자아 혹은 '누구'('누구'는 자아를 암시함)는 말할 것도 없고 결코 같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 찌따(마음)는 깜마(행위)를 만들고 깜마(행위)의 결과는 다음 찌따(마음)에

일어납니다. (이어지는) 이 찌따(마음)는 같은 찌따(마음)가 아닙니다.

 

어떤 자아가 없어도 찌따(마음)는 깜마(행위)를 일으킬 수 있고 행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찌따(마음)는 자아가 아니지만 깜마(행위)의 결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행복을 경험하든지 둑카(고)를 경험하든지 바로 그것을 경험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아는 필요없고 경험만이 있습니다. 오직 무지나 지혜만이 있습니다.

 

행복으로 여기면 행복(숙카)이고 둑카(고)로 여기면 둑카(고)입니다.

마음 혼자서 행복이나 둑카(고)를 느낍니다. 자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깜마(행위)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원리에 따라 말한다면 아무도 깜마(행위)를 만들지 않습니다.

비록 깜마라는 행위가 있지만 깜마를 만들거나 그것의 결과를 받거나 행복한 자나

비참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몸과 함께 찌따(마음)만 있습니다.

경험하는데 필요한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

무아(자아 아님)'입니다.

 

 

 

 

* *One I Love - Mea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