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금, 알면 똥 / 춘식스님

2014. 10. 7. 10: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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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금, 알면 똥 / 춘식스님

 

추석 연휴 다음의 토요일, 가을 치고는 제법 무더운 날씨에 대덕사를

찾았다. 스님께 인사드리고 도반들과 차를 마시며 법문을 들었다.

 

 

 

“인간이 수행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거짓이다.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다 그거야.

본래 그리 되어 있는 것을 어찌 수행해서 바꿔? 바꾸지를 못해.

본래 그리 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다.”

 

“생사 해결, 이것이 불법이다. 이것이 구경이야.

생사를 해결하지 못했으면 불법이 아니다. 구경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법은 구경각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위아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둘 아닌 이치로 들어간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고, 만남도 없고,

헤어짐도 없고, 두 개가 없어진다.

나와 너가 없어진다. 상대적인 것이 다 없어진다.

중생이 있으니까 부처가 있지,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는 것이다.

불법은 쌍망(雙亡)하는 것이다.”

 

“불법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눈 위에 서리를 더한 것이다.

또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이다. 머리가 이미 있는데 그 위에 왜 또 머리를 얹어?

그건 미친 짓 아닌가?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미친 짓 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내가 부처인데 성불하려 하고 있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내가 부처인데 이것을 못 깨달으니까 깨달으면 된다,

이렇게 마음먹고 공부를 해야 한다. 간화선이고 뭐고 그런 것이 객관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방편은 구경에 내가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

 

“경전을 보더라도 경전을 보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선사가 화엄경을 읽는 스님에게 ‘자네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니까,

‘화엄경을 봅니다.’ 그랬거든.

그러니까 ‘아니 보는 화엄경 말고 화엄경을 보는 놈이 무엇이냐?’ 하니까

대답을 못했다고 그래.

화엄경을 보는 것을 알아야 해. 이것이 진(眞) 화엄경이야.”

 

“내가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다만 이것이 문제로다.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깨쳐버리면 부처님이 된다.

모든 의심이 해결돼 버려. 무량겁의 생사 업이 해결돼 버려.

다시는 생사윤회에 들어가지를 않아. 들어가도 그런 일이 없어.

언제든지 자기니까, 자기 꿈 속이니까. 자기 꿈이니까 자기 하나만 있지?

그러니까 나도 따로 없지. 언제든지 나니까.

그런 이치를 견성성불이라고 그래. 자기 성품에 있어. 자기다 그 소리야.

그것을 스스로 깨달으라고. 바깥에 있지 않아.”

  

예불을 드리고 점심 공양을 한 후 오후엔 육조단경 법문을 들었다.

 

“무심이 도라고 하는데, 무심한 자기 마음자리를 깨달아야만 한다.

일체가 있지 아니하고 환(幻)인 그 마음자리를 깨쳐야 한다.

우주 삼라만상이 전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작용이야. 실제가 아니야.

자기 마음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이 우주 천지간에 예나 이제나 미래에 이르기까지 누구만 있어?

 [대중들 : 자기만 있습니다.] 그렇지! 그것을 깨치는 거야.

나만 있으니까 내가 어찌 나를 몰라. 다른 게 없는데. 자기야.

그게 견성성불이야.

그런데 우리는 나 아닌 다른 것이 있고, 성불이 있고, 조사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불법이 있고, 부처님의 비밀한 법이 있고,

이 따위로 아니까 점점 더 멀고 멀어진다.

내 마음만 깨치면 일체가 다 내 마음이다.

그래서 전불(前佛) 후불(後佛)이 이심전심(以心傳心)한다 했어.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 그랬어. 뭐가 있어야 전하지?

전할 게 없어. 한 법도, 한 물건도 없어.”

 

“우리는 부처 마음이 따로 있는 줄 알아서 찾아다닌단 말이야.

무량겁을 찾아 다녀도 있지 않아. 찾지 않아도 바로 자기였어.

내가 몰랐을 뿐이야.

왜냐하면 나는 나고 죽는 이것[몸뚱이를 가리키며]을 나로 알았거든?

한 생각 잘못되면 무량겁에 업보를 못 면해.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깨달으라고 하신 거야.

깨닫고 보니까 우주 천지가 모두 자기뿐이거든?

하나니까 오고 감이 있겠나? 나고 죽음이 있겠나?

두 법이 없지? 이 마음뿐이니까. 삼세제불도 이 마음이고, 전하고 받는 것도

이 마음이고, 그래서 이심전심했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했다 그 말이야.”

 

“우주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있는 것이 바로 자기 마음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자라고 학교 다니고, 부모형제와 친구들과

어울린 것을 우리는 실제로 아는데,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는 줄 아는데,

이제 관(觀)해 보니까, 실제가 아니고 내 꿈이었다. 자기 마음이었다.

인생 백년 온갖 조화부리는 놈이 바로 이 놈이야.

자기 마음이 그렇게 나툰 것이지 다른 물건,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야.

내 마음이 나툰 것이니까 진짜 있어? 없지?

그러니까 공(空)이라 한다 그 소리야.

공이라니까 없는 것을 찾아가면 아니 돼. 진짜 있는 게 아니고 실은

내 마음이었다 그 소리야. 있는 게 아니었다, 내 꿈이었단 말이야.”

 

“나 이외에, 이 마음 이외에 한 물건도 없다 그 소리야. 그래서 한 물건도 없다

하는 거야. 없다는 게 말 그대로 없다는 소리가 아니야.

우리가 개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있지 아니하다, 자성이 있지 아니하다

그 소리야. 그것을 공이라고 해.

있지 아니한데 오히려 없애려 한다면 그건 병에 병을 더하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고 무심하려고 하고 공이다 하면 안 된단 말이야.

본래 나인데, 있는 것도 이것이요, 없는 것도 이것인데, 없는 것이 불법이라고

공하려고 하니, 그래서 앉아서 수행한다고 있으니 그게 되겠어?

그게 아니야. 불법은 본래 이루어져 있어. 인간이든지, 어떤 신이든지 조작해서,

수행해서 되지를 않아. 본래 나뿐이니까 무량겁을 수행해도 나지.

본래 부처님만 계시니까 무량겁을 수행해도 부처님 이 한 물건이란 말이야.”

 

“이 도를 깨치면 진짜 생사가 해결되고, 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야.

그래서 자유자재가 되는 거야. 이치로만 아는 것은 아니야.

실제로 그리 되어야 해. 본래 그리 되어 있어. 그런 이치를 봐야 하는 거야.

그것이 자기 성품을 깨닫는 거야. 괜히 하나라고 해서 다 나다, 내 꿈이다,

꿈을 깨라, 이 따위 것 같고 견성성불이라고 하는 게 아니야.

그건 비유로 들어 이야기해 준 것이다.

결국에 가서 깨치지 않은 이상은 내 생사 해결이 안 되고, 내 죄업을 못 벗어나.

생사윤회를 못 벗어난단 말이야.

그래서 이 공부가 장난이 아니고 무섭다는 것이야. 말로 공부해서 알 것 같으면

불법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어?

온갖 경전과 온갖 큰스님들 법문에 통달해도 소용없어.”

 

두 시간여 남짓한 법문 내내 스님께선 노상 자기 스스로 직접 깨닫는 것만이

진정한 불법이고, 참된 성불이라 강조하셨다. 거듭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사실 불법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깨달음, 자기 생사 문제 해결이 아니겠는가?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단순한 셈법이지만 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 이 공부이다. 스님께 인사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솔길에

떨어지는 낙엽이 뼈저리게 무상(無常)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사랑 / 한용운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