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없다 / 춘식스님

2014. 10. 14. 13: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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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없다 / 춘식스님

육조단경 법회 둘째 주. 어느새 서늘해진 날씨에 성큼 가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는

비가 촉촉이 내린다. 도반 여러분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고 법문을 들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도 그럴 수 있고, 과거 큰스님들도 그랬고 나도 그랬는데,

공부하다 보면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수가 많거든?

그럴 때 스스로 돌이켜 보라. 자신이 생사를 해결했는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이 우주에 나고 죽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면 견성성불한 게 아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것마저도 속아버려. 이 마음이 참으로 신묘해.

그래서 자기가 생사를 해결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생각도 못하는 온갖 이치를 들이대서 생사가 없다 그런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견성했다, 성불했다 그런다고. 그런 사람들이 우주에 가득 찼어.

불법을 공부 안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도 그래.”

 

“부처님 경전에 여자는 성불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자라고 하면 성불 못하는 거야.

벌써 남자, 여자라고 하면 두 개가 되지? 그래서 내가 여자다 하고 한 쪽에 들어가

버리면 안 된다는 소리야. 나는 몇 개야? 하나지?

그렇다면 나 하나 가운데 어찌 남자, 여자가 있겠나? 전부 자기지? 그러면 성불한다

그 말이야. 왜냐하면 성불은 자기니까! 견성성불하라고 했지만 그것은 자기를

가리킨 거야. 그것이 마음이 곧 부처란 소리와 같은 거야. 견성성불은 뭐냐 하면,

저 32상 80종호와 신통묘용을 갖춘 부처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어봐야

그것은 헛것이고 꿈이야. 그 꿈을 꾸는 근본이 누구야? 자기지?

그러니까 꿈을 깨면 돼. 잠에서 깨면 돼. 그러면 누구로 돌아와? 나밖에 없지?

이것이 견성성불, 자기가 부처가 되는 거란 말이다.

그 외의 일은 꿈이지? 꿈이란 말은 진짜가 아니란 말이지?

우리 현실 세계, 나고 죽고 하는 일은 진짜가 아니고, 내가 꾸는 꿈이란 말이야.”

 

 

“육조단경의 가장 핵심이 뭐냐 하면 돈문과 점문, 돈점을 밝힌 거야.

불교는 이 돈점 사상이 확실하면 해결이 돼. 소승에서는 무량겁을 수행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능력을 갖춰야 부처로 알아.

그래서 다음에 성불할 부처는 미륵 부처뿐이라고 그래. 자신은 부처님과 같은

능력이 없으니까 다겁에 닦아서 부처가 된다 그러거든? 이것이 점수 사상이야.

이것이 소승 견해야. 무엇을 이루어 가지고 된다 이거야.

그러나 부처라는 것은 본래 이루어져 있어. 하나니까! 단 두 개가 없어!

그러니까 자기지! 두 개가 있어야 나 아닌 다른 것이 있지.

자기라는 것은 나고 죽는 이 몸뚱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인 것,

이 전체인 자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자기를 깨달아라 그 말이다.

우주는 애초부터 본래 하나다. 본래 하나뿐인데 어떻게 닦아서 부처를 이루겠느냐

그 말이다. 닦아서 이루어도 있는 그것 하나뿐이지. 점수 사상은 닦아서 부처가

되는 줄 아는데 그것은 진불(眞佛)이 아니다.

진불은 본래 있는 그 근본, 근본을 깨치면 지엽이고 근본이고 없어.

언제든지 온통 이것이니까! 온통 자기뿐이야. 이것은 본래 있어!”

 

“부처가 되려고 부처를 쫓아갈 것이 아니라 부처가 무엇인지 그 근본을 요달하면

된다 그 소리야. 부처가 바로 자기, 내 마음이고 내 꿈이지?

이것이 부처를 요달하는 것이다 이 말이야. 모두가 나라면 한 물건이라도 있어?

뭐 있다 하면 두 개가 되잖아? 본래 이것뿐이니까 한 물건도 있는 것이 아니지.

그래서 나는 있는 데도 속하지 아니하고, 없는 데도 속하지 아니한다.

있고 없는 것이 다 나니까, 우주 만법이 다 나니까. 이렇게 전체를 통달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 소리야. 이것이 어디에 체하고, 걸리고, 머무르는 것이 없는 것,

툭 터진 것, 해탈한 것이야. 이것의 이름이 해탈이야.

그런데 해탈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해탈이나 속박이나 모두 한 물건이지?

자기지? 그러니까 이것이 둘이 아닌 것을 깨치는 것이 견성성불이다 그 말이야.”

 

“도라는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어. 자기야. 나라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있잖아?

이것이야. 전부 이 한 물건이다 이 말이야. 다른 물건이 아니야. 그런데 나 아닌

다른 물건인 줄 알고 찾으려 하니까, 그것은 찾을 수가 없어.

나뿐인데 어떻게 찾겠어? 있지를 아니 해. 이것은 이루고 얻는 게 아니야.

본래 갖춰져 있다 이거야. 얼마나 신비하고 신묘해?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본래 나라는 게 있어. 아, 내가 부처구나! 본래 있었구나!

내가 그걸 몰랐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부처님 은덕은 갚을 길이 없는 거야.

자기를 찾아주는 거야. 사람들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비웃지만,

그게 아니야. 사람들은 나고 죽는 그것을 자기로 알아. 나고 죽는 자기가 아닌 거야.”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이 말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못 깨달았으면 중생이고, 내가 깨달았으면,

꿈을 깼으면 부처님이란 말이야.

본래 자기니까 부처님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본래 있어 없어?

본래 이루어져 있잖아? 본래 있잖아! 이것이 본래 나구나 하고 깨치면 그게 성불이고,

내가 있지만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생사윤회하는 그것을 나로 알고,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을 나로 아니까, 우주 전체가 자기인 것, 우주 전체가

하나인 이치를 모른다 이 말이야. 그러면 생사윤회를 못 면하고 부처가 아니다 그 소리야.”

 

“나라는 것은 대상이 아니야. 상대적인 게 아니야. 자기인데 어떻게 상대가 돼?

그런데 상대가 되어야 알고, 보고, 느끼고, 깨달을 게 아니야?

그런데 이것은 대상이 아니니까 아는 게 아니야. 형상으로 알려 하거나 보고

들으려 하지 마. 알 수 없는 거야. 대상이 아니야. 자기야.

그러니까 오직 깨달아야 한다. 크게 깨쳐라. 깨닫는다는 것도 이름인데,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을 견성한다, 성불한다 그러는 거야.

깨닫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는 소리가 아니야. 찰나 간에 깨쳐!

자기가 자기 찾는 것이 어찌 어려워? 그런데 못 깨달으면 어렵다 그 이야기야.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다 그 이야기야.”

 

“육조단경은 전부 돈오 사상이야. 이것이 부처님의 정견이야. 본래 이루어져 있다

그 말이야. 닦아서 이루는 게 아니다. 만드는 게 아니다. 본래 만들어져 있어.

내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야. 내가 바로 그거니까! 나 아닌 다른 것이 부처가 아니야.

삼세제불과 우주 시공간, 만법이 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자성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알고 공부하라. 자기, 이 마음을 떠나서

한 물건도 있지 아니하다. 이것이 불법의 요지야. 이것이 선법이야.

여러분이 이렇게만 알고 들어가면 바로 들어가는 거야. 믿음을 가지고 공부하면

되는 거야. 내가 잠시 시간을 내서 공부하러 오는 것이 소홀히 생각할 것이 아니야.

이것이 내가 성불하는 길이야. 언하에 깨치는 거야. 말 한 마디에 생사를 해결해 버려.

본래 이루어져 있으니까. 닦아서, 저 성현들처럼 난행고행해서 20년 동안 장좌불와

잠 안 자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다 그 말이야. 자기란 게 있어 없어?

[대중 : 있습니다.]

바로 그 이치야. 본래 있어. 본래 되어 있어. 이것은 항상 있는 거야.

그런데 내가 죽기는 뭐가 죽어? 내가 있는데 죽는다 없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거야.

사람들이 겉으로 몸뚱아리가 죽는 것을 보고 죽는 줄 안단 말이야.

그런 어리석은 생각하지 말아라. 그래서 누가 제사지낼 때도 제일가는 법문이,

‘내가 있습니다.’ 그 소리야. ‘나는 안 죽었습니다.’ 하하하.

[대중 : 웃음]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 마음으로 그러란 말이야.

그것이 영가(靈駕)를 살리는 법문이야. 나는 안 죽었어, 지금 살아 있어.

그것이 당신도 안 죽었다는 소리야. 당신이 나다 그 소리야. 걱정하지 마시라.

 그것이 제일가는 제사야. 그런데 음식 잔뜩 차려 놓고 절하는 것, 그리고

곡하는 것? 그것은 아주 유치한 거야. 인간이 지혜가 없어서, 어리석어서 그래.”

 

“내 마음이 석가모니가 되고, 하느님이 되고, 온갖 변화 작용한다 그 말이야.

내 마음이 중생이 되고, 내 마음이 시간 공간을 이루었다 이 말이야.

그게 자기다 그 소리야. 그게 하나야 둘이야?

[대중 : 하나입니다.]

그렇지. 꿈 속의 나란 모습만 내가 아니고 꿈 전체가 나이듯이 우주 전체가 자기다.

자기 몸이다. 이것이 청정법신이란 거야.”

 

“전부 내 마음이니까 내가 걸어가도 걸어간 바 없고, 차를 타고 가도 부산이든

어디든 나 자체는 물론 차까지 포함한 전부가 내 마음 하나지? 내 꿈이지?

그게 실제 있는 게 아니다 그 소리야. 이 장소고, 시간이고, 아침, 낮, 저녁도

전부 자기 마음이야. 자기 하나뿐이니까. 그러니까 어디 거기 걸리겠느냔 말이야.

그런 모양이 나타나도 이것은 내 마음이다, 내 꿈이다 알고 만법에 자유자재하게 돼.

나만 살고 죽는 게 아니고 우주 생사 자체가 내 마음, 실이 아니란 말이야.

꿈이니까, 나니까. 내가 달리 도를 안 닦아도 다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이야.

이것이 ‘자성 가운데 만법이 다 있다’는 소리야.

이렇게 공부하면 신통묘용이 다 갖춰져 있어. 이것을 선지식들은 ‘도적’이라고 그래.

다른 사람이 실컷 애써서 이룬 공덕이 다 내 마음이 지은 거거든?

자기는 손 하나 까딱 안 했는데 우주의 온갖 보배의 주인이 나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주의 도적 아니가? 이런 이치다 그 소리야.

 

그래서 부처님을 만법의 주인이라 한다 이거야. 주인이야 주인! 종이 아니고.

우주 운명의 주인! 인과법칙의 종이 아니고, 노예가 아니라 내가 인과법칙의 주인이야.

그래서 만법이 있어도 환이지. 이 세상에 한 물건도 없는 거야.

내가 가든 오든 그런 경계가 없어. 내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서 부산이다,

서울이다, 산이다, 강이다 그러는 거야. 그대로 청정하다 그 말이야.

본래 부처다. 자기다 그 소리야. 이것을 스스로 공부를 해서 체득해야지,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고 설명해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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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를 마치고 법당을 나오자 비가 거의 개어 있었다.

도반 한 분이 아직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 그 분

어깻죽지를 쿡 찔렀다. 이렇게 본래 있는 것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쿡 찌를 때마다 분명할 뿐

이것을 붙잡아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이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문득 회심의 미소를 지으실 수 있는 시절인연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날이 서늘하다.

 

- 심성일님이 올린 법문  - 13 9/7 대덕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