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엔 늘 공경이 흐릅니다
보현행원을 공부하는 분들은 삶에서 늘 공경이 흐릅니다. 공경 속에서 공부하고 공경 속에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認定)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르고 내가 사는 방식과 다를지라도, 공경이 있는 분들은 그 다름은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남탓 하는 일도 없고, 원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저 분들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이겠지...하면서 상대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공경 속에는 험한 말, 거친 행동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늘 긍정 속에 살기에 남의 허물을 보질 않고, 설사 보더라도 긍정 속에서 상대를 바라봅니다. 잘못할 분이 아닌데, 사람은 훌륭한데 잠시 착각으로 저런 허물을 보이는 것 같구나 하는 생각에서 허물을 보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주를 이룹니다. 잘할 수 있는 분이 잠시 착각으로 잘못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늘 밝은 곳으로 이끌어 드리고 싶은 마음뿐, 상대의 허물을 미워하거나 배척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늘 안아드리고 더 잘 모시고 싶은 마음뿐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보현행을 하는 분들은 늘 반듯하고 너그럽고 따스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본래 완전하지 못해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보현행을 하는 분들은 금방 미안해하고 사과를 합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늘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잘못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뜻이고, 이런 깨어있음은 초기불교 수행에서 강조하는 <싸띠>가 보현행원에서는 늘 일상임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당신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기에, 보현행을 하는 분들의 이런 점을 잘 모르십니다. 당신이 거칠기에 보현행을 하는 분들도 당연히 거칠고, 당신이 남의 잘못을 맹렬히 부정하고 배척하기에 보현행 하는 분들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십니다. 때에 따라서는 보현행 하는 분들의 겸허하고 공손한 모습을 쇼(?)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니, 다른 분의 삶을 이해하지를 못하시는 것입니다.
늘 공경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보현행. 그래서 보현행은 대립과 다툼이 없습니다. 모두가 훌륭하고 모두가 존중 받고 모두가 인정 받아야 마땅한 존엄한 분들이기에, 보현행을 하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찬탄하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普賢合掌
*보현행의 세계는 참으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들어가 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 못하는 게 보현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보현의 세계를 <불가사의(不可思議解脫境界>라 하며, 보현의 세계를 들어가는 것을 <입(入)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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