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있는 집안에서 주의할 일들]

2014. 10. 7. 09: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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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있는 집안에서 주의할 일들]


 

오늘은 아픈 분이 있는 가정에서 그 가족들이 지켜야 할 일들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은, 생명 존중의 마음입니다.
살생은 일체 금물이며,  심지어 모기같은 미물도
아픈 분이 있는 집안에서는 가급적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몸에 좋다 하더라도, 내 건강을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으면 아니 됩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의 생명을 죽이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몸에 좋다고 굼벵이, 뱀, 흑염소 등을 먹는 것은 필히 자제해야 합니다.

 

 

불살생의 지침엔 가족들의 고기 섭취도 포함됩니다.
온 가족이 살생은 물론 죽은 고기마저 섭취를 금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이란 동질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가장 큰 복을 짓는 일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런 지침이 현대 의학의 섭생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원칙은 그러하다는 것은 말씀드립니다.

 


여기에는  채식도 포함됩니다.
필요없는 채식도 삼가야 합니다.

 

생명의 장에서는 모든 것이 등가의 가치를 가집니다.
채식을 하는 것은 그마저 섭취하지 않으면 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니 그러한 것일 뿐,
그러므로 쓸데없이 풀을 뽑거나 꽃을 꺾거나 맛에 취해 지나친 채식을 하는 것 역시
육식이나 생선을 먹는 것 같이 금물인 것입니다.

 

불경(유마경)에 보면
병에 걸린 유마 거사가 병을 낫는 방법 중의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연민'입니다.

 


"내가 아프더라도 나처럼 병으로 고통받는 다른 이는 나으면 좋겠다
그것이 안 되면 다음 생엔 내가 의왕(醫王, 醫師를 이름)으로 태어나
나처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꼭 낫게 하겠다..."
이런 마음이 내 병을 낫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타인에 대한 연민'은, 내 대신 다른 생명을 살리는 마음도 포함합니다.
타인을 살리면, 나도 사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알고 보면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가 하나의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개별적인 것 같지만 생명이란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
하나가 살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한다는 것은 우리 입장으로는 맞을지 모르나
우주적 본질에서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원칙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또 하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픈 분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병이란 어두운 마음, 어두운 삶의 결과이므로,
어디까지나 우리의 기도는
'저 분이 밝은 마음을 찾아 밝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밝은 마음 밝은 삶은,
병이 있고 없고, 낫고 안 낫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병이야 있든 말든, 병이야 낫든 안 낫든,
우리는 오로지 밝음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한 밝은 마음을 일으키는데는,
과거 성자들의 밝은 말씀을 읽는 것이 대단히 도움이 됩니다.
환자 본인이 읽을 수 있으면 본인이 읽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것이 힘들 때는 가족들이 대신 읽어 드리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을 때는, 가능한 한 소리내어 크게 읽도록 합니다.

 


이렇게 환자 당사자와 온 가족이,
일념으로 살생을 금하고 밝은 기도를 올리는 것.
이것은 아픈 분이 계시는 가족들이 필히 가져야할 마음이요 삶입니다.

 

       

                        普賢合掌

 

 

 

*덧글-불자들은 염불과 독경을 하도록 합니다.


1.염불은 제가 볼 때, 임종하실 분이 아니라면, 일반 환자들에겐,
광덕큰스님이 가르쳐 주신 '마하반야바라밀' 염불법이 가장 좋다고 봅니다.


임종을 앞둔 분은 마하반야바라밀이나 나무아미타불 중, 평소에 하시던 것을 하도록 합니다.


2.경전은 저는 '보현행원품'을 권합니다.
보통 일독 내지 삼독, 그리고 칠독까지 합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광덕큰스님의 '보현행자의 서원'을 읽도록 합니다.
공부, 수행이란 게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순간 순간, 찰나 찰나에 밝은 마음을 내는 게 공부입니다. 이런 글 하나라도 병을 앓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고, 그 분을 위해 이런 글을 꼭 전해드려야겠다...하는
마음을 낼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밝아집니다. 업장을 해소하고 오래고 고된 수행을 해서가 아니라, 한 마음 밝은 마음 낼 때 바로 그 즉시 밝아지는 겁지요..^^

 

일체 중생을 섬기고 공양하겠다
! 하는 그 마음이, 그 단순하고 소박한 한 마음이, 꺼져가던, 그리고 잊고 있던 내 무진등의 등불을 켜고 무량겁의 어둠을 거둬 버립니다. 어? 진짜냐고요? 한번 일단 그렇게 해 보시라니깐요...^^

 

그러니 보현행은 순간 순간 찰나 찰나에 밝아지는 가르침입지요
! 화엄경에 '찰나 찰나에..'란 말이 참 마니 나오는데, 다 그런 이유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찰나찰나, 염념에 밝은 마음으로 삶을 지으면,공부도 똑같이 그렇게 됩니다. 보현행을 하게 되면 삶뿐 아니라 수행에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게 되요. 공부 자체가 굉장히 밝아집니다
~!

 

물론 절 같은 것은 일
종의 체력 수련(?)이 있어야 하니,보현행을 한다고 천배나 삼천배가 저절로 되지는 않지요. 하지만 비록 10배를 하더라도 보현행자의 절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다와요. 공경이 넘치고 환희가 넘치거든요? 우리 큰스님 절하는 모습이 그러했다고 하시지요..^^

 

또한 보현행으로 염불을 하면, 그 소리가 그렇게 맑을 수 없어요!
듣는 사람이 신심이 그냥 솟습지요! 공경과 환희, 지혜와 자비가 뿜어나는 염불 소리가 나온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용수보살도 '불퇴전의 지위에 오르고 싶거든 공경심으로 염불하라!'-->이러셨거든요? 그러니 보현행원과 염불, 절, 참선 등이 별개의 것이 아닙지요! 그런데 한국불교가 이런 걸 전혀~~~ 이해하시지를 못하시는 듯...애재 애재라..ㅠㅠ

 

普賢 07.11.16. 19:44

저, 보현거사가 말씀드리는 보현행은, 저의 글이나 책 등에 나오는 보현행원 강의를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눈밝은 보현행자이시라면, '보현행을 하라!',또는 '보현행을 공부하라!'라는 저의 말씀은, 그저 책이나 강의 등을 듣고 보현행을 안다고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책 몇 권 읽으시고 강의 몇 번 참석하셨다 해서 마치 보현행원을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면, 그건 큰 착각!이십니다..^^

 

삼
세의 모든 부처님 행을 하는 게 보현행원의 정의입니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오실 부처님의 행마저 해야 겨우 보현행을 한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입지요. 그렇게 보면, 우리 광덕큰스님의 경우, 큰스님 삶 '전체'가 '보현행원'이십지요! 반야를 말씀하시건 큰스님이 범어사에서 선을 하셨건 소천선사와 금강경 각운동을 하셨건 말건, 그 전부가 보현행이요 큰스님 전체가 보현행원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걸 아셔야 합니다요...^^

 

그런데 겨우 제가 지은 작은 책, 제가 쓴 글 몇 개를 읽으시고 보현행을 다 아시는 것처럼 제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면 제가 굉장히 답답해져요.. 말씀하시는 분들도 나름대로 공부, 수행을 마니 하시고 불교계에서 일정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이신데, 그 분들 앞에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그래서 가끔 그런 분들께도 제가 '보현행원을 모르십니다
!'라고 아예 대놓고 말씀드릴 때도 있어요. 오죽 답답하면 제가 그러겠습니까...에고...ㅠㅠ

 

보현행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져요. 보현행으로 밥을 지으면 밥이 최상의 밥이 되고, 보현행으로 노래를 부르면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나옵니다. 보현행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고, 보현행으로 수행을 하면 수행 자체가 초보든 고참이든 그 자리에서 깨달음으로 변해요!

 

이런 진속에 무애한,진속에 원만한, 상즉상입 쌍차 쌍조의 보현행을, 왜 공부도 안 하시고 안다고 하시며 자꾸 기존 불교와 떨어져 생각하실까... 보현행 하면 절을 못하나, 아니면 염불을 못하나, 위빠사나를 못하나 참선을 못하나...그런 게 아닌데도 자기 수행, 자기 불교(?
)를 놓치 못하시기에 그렇게 되시는 건지...^^

 

  普賢 07.11.17 12:35

절을 할 때 '넓고 광대하게 절을 짓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꼭 이 절을 마치겠다!부처님 감사합니다! 꼭 절을 공양올리겠습니다!"-->이렇게 마음 내고 이렇게 서원하고 이렇게 절을 하면 '절이 보현행원'입니다. 보현행원과 절이 따로 가지 않습지다!^^

 

참선할 때 힘들고 의심이 나지 않고 화두가 타파되지 않아 어려울 때, '부처님
! 꼭 이 화두 타파하여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이 밝은 소식 공양 올리겠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기여코 화두를 깨뜰여 반드시 부처님 밝은 가르침 이웃에 전하겠습니다!'-->이렇게 마음짓고 이렇게 서원하고 이렇게 좌복에 앉으면, 그래서 이뭣고???하고 불같은 마음 지어나가면, 이것이 바로 '참선 보현행원'입니다!!!참선을 보현행원으로 지어가는 것입지요..그러니 참선과 보현행원이 다른 것이 아닙지요!!!...^^

 

사마타, 위빠사나를 할 때도, 처처에 알아지는 그 마음에 환희심을 내고 그 알아차림, 환희를 부처님께 감사하고 부처님께 공양하면, 이게 바로 '위빠사나 보현행원'입니다.
! 위빠사나를 보현행원으로 지어가는 것입지요...하나도 다른 게 없어요!..^^

 

염불은 본래, 보현행원 자체가 '행으로 하는 염불'입지요
! 그러니 보현행원이 염불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칭명염불이냐? 명호를 누구로 하느냐? 정토왕생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세부적인 것들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공경심으로 염불하고 칭찬으로 염불하고 공양으로 염불하면 바로 염불이 보현행원입지요..염불을 보현행원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현행원적으로 수행을 하면, 모든 수행에 차
별상이 없어집니다. 무슨 수행을 하든, 모두 '보현행원'에서 만나게 되요! 그러니 보현행은 원만행이요 무애행인 것입니다! 초보 불자가 아무 수행도 못하고 그저 공경, 찬탄의 고잘미! 하는 보현행 그 자체만 해도 보현행이요, 다른 수행을 곁들여 해도 보현행인 겁니다! 그러니 내 수행이 제일이다...내가 수행을 지었다...하는 수행상 자체가 없어져요! 얼마나 뛰어난 수행법입니까? 이런 것이 화엄에 와서 비로소 결집되어졌단 말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언제 한번 기회 봐서 독립된 글로 다시 한번 이 곳에 올려봅지요..^^

 

해리 09.06.24. 18:18

잘 읽어보았습니다. 생명존중 마음을 간직하는걸 잊지않겠습니다.감사합니다.
  普賢 09.06.24. 20:03
일단 보현행원품을 독송하세요! 뜻을 모르셔도, 내용을 모르셔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매우 급한 상태이니, 우선 불부터 끄고 봐얍지요! 자세한 내용은 차후 천천히 알아가기로 하고,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께 들려드린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 7 독씩 7 일 단위로 읽어 드리세요! 읽기 전에 '엄마! 부처님 말씀 들려드릴께요! 부처님 말씀 들으시고 얼른 건강한 몸 돌아오세요!부처님! 제 마음 부처님께 바칩니다 제 서원 부처님 모두 가져가시옵소서..'하고 원을 발하시고 독송하시면 더욱 좋습니다요...^.^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 -

 

- 행복(幸福) / 유치환 -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靑馬)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깃발'이란 시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의 국어수업을 참관한 후 담당 국어교사를 불러

"내 시가 그렇게 어려워요"라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오고 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시 <깃발>은 난해했다.

해설이 필요한 시다.

시 <행복>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짠하게 전달이 된다.

이는 연가(戀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남몰래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시에 공감을 하게 된다.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李永道, 1916~1976)

 

1940년대말~50년대말 통영에서 10여 년간 머물렀고,

50년 대 말에 부산으로 옮겨와서 67년 초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

청마가 세상을 세상을 떠나자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 살았고 뇌출혈로 삶을 마감했다.

청초한 아름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우선 간결한 표현이 맘에 든다.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행복>은 청마 유치환이 정운(丁芸) 이영도에게 보낸 시이다.

청마와 정운이 처음 만난 것은 통영여중 교사시절이었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정운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둔 29살 과부였다.

당시 통영으로 시집 온 그녀의 언니집에 머물러있었던 것이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와 미모를 갖춘 정운은 처음 수예점을 운영하다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

청마는 만주로 떠돌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되었다.

청마는 정운보다 아홉살이 많은 38살의 유부남이었다.

정운은 워낙 재색이 뛰어나고 행실이 조신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반도 끝자락의 작은 도시 통영은 예향(藝鄕)이다.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이중섭 등

수많은 예술인이 나고 자라고 활동한 곳이다.

통영의 골목골목에는 예인들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시에 나오는 청마거리의 통영 중앙동 우체국이다.

빨간 우체통 옆에 <행복>시비가 있다.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정운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퇴근 후에도 수예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정운을 보기 위해

청마는 수예점이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결혼한 청마와 홀로 된 정운은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연서로 그리움을 달랬다.

누군가에게 연서를 보낼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청마는 1947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3년 동안 편지를 쓰고 시를 써댔다.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창였다.

 

 

정운이 운영한 수예점과 그의 언니가 운영하던 약방 '박애당'은

우체국에서 바로 보이는 옷가게 '시선집중'터다.

청마의 집필장인 영산장과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2000년 폐원)이 있던 충무교회는

우체국에서 세병관 방향으로 불과 5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 그리움 / 유치환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정운은 유교적인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사랑의 시편들에

마침내 바위같이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적 사랑은 시작됐으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였기에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무제 1>은 정운의 첫 시조집 청저집(靑苧集)'에 실렸던 작품이다.

청마와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 무제Ⅰ/ 이영도 -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청마가 60살이 되던 1967년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한 후에야 이들의 사랑도 끝이나고 러브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1947년 이후 20년 동안

청마가 정운에게 뛰운 연서는 모두 5000여 통이였다.

사모의 정을 담은 편지를 거의 매일 보낸 셈이다.

정운은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 중 200통을 추려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의 서간집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청마 사후 정운은 <탑>이란 시를 통해 그녀의 애뜻한 마음을 표현했다.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사리로 남는 것이다.

 

 

 - 탑(塔) / 이영도 -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정운은 청마의 시 세계를 넓혀 주었고, 정운에게 청마는

외로움과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정신적 지주였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불륜이라고 지탄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예술인에게 영원한 테마다.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시를 시들지 않게 해준 자양분이 되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8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극작가 치진(致眞)은 그의 형이다.

23세인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시를 발표 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으나 문학청년과 어울려 술만 마셔 그의 아내는

신학공부를 권유하였으나 시작에만 전념했다.

평양으로 이주해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나

통영 협성상업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일제의 검속 대상에 몰리면서 잠시 만주로 나갔다가

1945년 37세 되던해 통영으로 돌아와서 부인은 유치원을 경영하고

윤이상.김춘수와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통영여자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1954년 경상남도 안의중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경주고·경주여중·대구여고·부산여상 교장을 지냈다.

살아 생전 청마는 교가도 많이 지었다.

통영초등 통영고 통영여고 둔덕중 대구여고와 부산고 동래고 등.

시비가 국내 시인 중 가장 많다.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 공원, 통영 남망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허무와 애수이며,

이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한다.

 

 

 

-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아사에게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What a Wonderful World / Eva Cassi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