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4. 12:44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무아와 재탄생 (9)
9.
Consider the meaning of the word "birth." Birth is an important word which we hardly understand at all. There are three kinds of birth. The first is the kind of birth that everybody knows about, physical birth. The body is born out of the womb, and then grows older and older, and then dies and is put in a coffin. That is physical birth, it leads to physical death. The second kind of birth is mental. It happens within the mind following the stream of dependent origination. Whenever there is the thought "I am," "I do," "I act," "I have," "I own," "I want," "I get," "I exist," the birth of any one of these "I" thoughts is one birth. This is the "birth" of upadana along the stream of paticca-samuppda, which is the birth of the ego. Such mental or spiritual birth is another kind of birth. The third kind of birth is very difficult for most people to understand. It is when one of the ayatana, that is, sense bases, performs its respective function. Performing some function means "that thing is born." You might not understand that when the eye performs the function of seeing, then the eye is born. When the eye stops functioning, then we say it ceases. When the ear performs its function, the ear is born; when it stops, the ear ceases. It is the same with the nose, tongue and so forth. There is the arising and ceasing, arising and ceasing, of the ayatananika-dhammas. Whenever something does its function, it is born, and when it is no longer in action, then it ceases, it ends. Each time the eye functions and ceases, then functions again, it is a different eye. Can you see how the physical eye itself from one function to the next is not the same eye? How it is never the same ear, never the same nervous system? All these things are happening in this way but each time there is a birth, a different thing is born. There are only these functions, these processes, these activities happening over and over again. However, there is no same thing holding it all together that we could call a self. There are these three kinds of birth, nonetheless they aren't the birth of the same person or of the same thing. So there is no rebirth. Please get to know these three kinds of birth: the physical birth, the mental birth through attachment, and lastly, the third kind of birth happening whenever there is a sensory function. [31]
'탄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탄생'은 매우 이해하기가 어려운
중요한 말입니다. 세 종류의 탄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탄생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육체적 탄생입니다. 몸이 자궁에서 나와 점점 자라고 그리고
죽어 관 속에 들어갑니다. 육체적 죽음으로 이끄는 육체적 탄생은 이것입니다.
두 번째 종류의 탄생은 정신적 탄생입니다. 이것은 연기의 흐름에 따라 마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 '내가 한다', '내가 행동한다', '내가 가진다',
'내가 소유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갖는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을 때
마다 이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자의 탄생이 하나의 탄생입니다.
이것은 연기의 흐름에 따라 집착이 탄생하여 에고(ego)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적 또는 영적 탄생이 두 번째 종류의 탄생입니다.
세 번째 종류의 탄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이해하기가 어려운 탄생입니다.
이 탄생은 '아야따나(ayatana)', 즉 감각 기관의 하나가 그 기능을 수행할 때
일어납니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그 사물(기능)이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눈이 보는 기능을 수행할 때 눈이 태어났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그 기능을 멈추었을 때 눈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귀가 그 기능을 수행할 때 귀가 태어나고 그 기능을 멈추면 귀가 사라집니다.
코, 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 기관(아야따나니까 담마)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어떤 사물이 그 기능을 할 때마다 태어나고 더 기능을
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끝납니다.
순간마다 눈은 기능을 하고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기능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다른 눈입니다. 어떻게 육체적 눈 자체가 한 기능에서 다음 기능으로 옮겨가면 같
은 눈이 아니라고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것은 결코 같은 눈이 아니고 같은
신경조직이 아닙니까? 이 모든 사물은 이런 식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순간에 탄생이 있고 다른 사물이 태어납니다. 계속 일어나는 이 기능,
이 과정, 이 행위 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합쳐서 자아라고 부를 수 있는
동일한 사물은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탄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탄생들은 동일한 사람
또는 동일한 사물의 태어남이 아닙니다.
육체적 탄생과, 집착으로 인한 정신적 탄생과, 마지막으로 감각 작용이 있을 때마다
일어나는 세 번째 종류의 탄생이라는 이 세 가지 종류의 탄생을 알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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