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행위/ 일붕 서경보 큰스님

2014. 10. 14. 13: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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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혹의 행위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우리 인간의 심리상태에 의해 고락이 경험은 크게 변화하여 간다

변화하는 이유를 살펴보고 사람의 심리상태를 조사해 보면,필경엔

마음에 의지하는것이요, 번뇌에 의해서 일어난다는것을 알수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마음의 본질적인 의혹에 의해 갖가지 망상이

일어나고 그 망동에 의해서 온갖 인생 경험이 나타나게 됨을볼수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혹업고 (惑業苦)인데, 불교위 인연설은

이것을 토대로 성립된것이다.

이 혹업고 에 대하여 잠깐 설명하기로 하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우리들의 마음이나 생명의 본질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애욕이다.이것을 불교 술어로 갈애 (渴愛) 라고

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다.이것을 또 유애 (有愛 ) 라고도 한다

 

이 유애가 움직여서 외계에 대하여 여러가지 욕망으로 나타난다.

이 욕망을 실현에 옮기면 그것은 업 ( 業 ) , 즉 행위라고 부르게 된다

 

이 업이 움직이는 것을 신업 ( 身業 ).구업 ( 口業 ).의업 ( 意業 )으로

나누는데,그 어떤 업이 발동할때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상의 작용 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어떤 색채의 값진 물건을 보았을적에  가지고자 하는 등의

그것이다. 이 욕망은 우리인간의 생존력의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보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의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소유한 사람에 대해서는 질투로 바뀌고 만다.

 

이것을 의업 ( 意業 ) 이라고 하는데 ,이 의지가 업이거나 몸의

기관을 통해 표면에 나타나면

구업 ( 口業 ). 과 신업 ( 身業 ).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런데 이 신 ( 身 ) .구 ( 口 ) . 의 ( 意 ) 의 삼업 ( 三業 ) 은

어떤 것이 발동하든지 한번 움직인 이상 그 흔적이 얼릉

멸되지는 않는다.소멸되지 않는 다는것은 ,

 

그것이 자기의 마음속에

그림자를 남기고 가기 때문이다.

 

어떤 좋지못한 일을 할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다른 사람이 알고

내가 알고 있어서 '꺼림직 하게 여기는 것은 그 행위가 결코

소멸되지 않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하늘이 알지 못하고 땅도

알지 못하고 다른사람을 모를지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

이러한 행위가

반드시 사람의 성격상에 음영 ( 陰影 ) 을 주는 것이다.

 

이 음영을 불교에서 무표업 ( 無表業 )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출생할때 가지고 온 본연의 성격위에 이 무표업 이라는

색채가 가해져 있는 것이다 .

 

이 무표업은 우리가 죽은 뒤에라도

무수히 첨가되기 마련이고, 때문에 인생은 자기가 지은 업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음영이 쌓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의 업에 의해 자기의 성격을 만들고 ,그 성격은

그에 상응하는 고락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예를들면 도둑질을 했다던가 ,

살인을 했다던가 하는 업에 의해 혹종 ( 或種 )의 강박간념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건에 대해서

공포감을 느끼고 강박감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들의 고락 경험은 우리들 스스로의 업에 의한 것

이라고 규정 지을수 있다 .이것은 곧 흑업고 에 대한 인연설 이다

.이에 대해 다짐하여 둘것은 ,같은 업 중에서도 부처님게서

 

특히 의업 ,,의업 ( 意業 ) 을 중요시 했다는 것이다.

죽이고 죽이려고

생각하였어도 미쳐 죽이지 못하 것은 법률상으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우리의 성격상에는 비장한 영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죽이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었지만 어쩌다 과실로 죽게

한것은 법률상으로는 죄가 되지만 성격상으로는 전기와 같은 공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윤리학상으로 볼것 같으면

결과에 중점을 두지 않고

동기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불교는 이러한 점이 다른 종교와 다르다.

 

예를 들면 석가세존 당시에 같이 널리 퍼진 자이나교가 있었는데 ,

그 교에서는 업을 말하지 않고 벌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생각은

신벌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중대하게 보지않고 사실이 나타나서

 

신벌 (身罰 )을 받게 되것을 중대한 것으로 보아왔다.자이나교 에서는

상식적 .법률적.외적 결과를 중시했고,

불교는 정신적.종교적.내적.동기론적 가르침이 었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세존은 결과론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동기론적으로

주장하셨는가 하면 ,또한 업론 ( 業論 )에 중점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무표업 의 훈습과 성격의

 경험이 우리의 행위에 의해

자기의 성격을 만들고 또 각자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부처님게서 겷과 보다도 동기를 중시하는것에 대하여 한두가지

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율장에 보면 어떤 스님이 신자집에 초대를 받았다.

스님이 안방으로

들어가다가 방문앞에 어린 젖먹이를 포대기로 덮어 놓은것을 모르고

잘못 밟아 죽이고 말았다.이 스님도 과실로 그 어린아이를 죽게 한것이

 두려었거니와 다른 스님들이 승려의 신분으로 살생을 하였으니

 

어찌 저 비구와 같이 살수있겠느냐고 부처님께 고했다. 부처님께서는

살인한 비구를 불러 , "" 네가 고의로 그 유아를 밟아 죽였느냐,

전혀 모르고 밟았다가 그런 죄를 저지렀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비구는 , ' 소승이 어찌 수계자로서 사람인줄 알고야 밟았겠습니까?

전혀 모르고 밟았다가 그만 이와같은 살인죄를 범하였습니다 '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너는 죽일 생각을 가지고 고의로

죽이지 않았았으니 죄가 될수 없느니라 ' 하고 용서 하셨다 .

 

또 미증유경 <未曾有經 >에 보면, 기타태자가 부처님께 말하기를 , " 먼저 오계를 받았사오나 주계 酒를 지키기가 심히 어렵사옵기로,이제 계를 버리고 십선계 ( 十善戒 )나 받아서 봉지할까 하옵니다 '

 

" 네가 음주할때 무슨 허물이 있었더냐? '

' 나라의 호족이 가끔 모이므로 그들을 접대 하기 위해 술을 나누어

마시며  즐겼을뿐 , 음주 중에는 주과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른 악행을 저지른 일이 없습니다 '

 

"" 너와같이 술을 마신다면 종신토록 음주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

하고 5계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

 

법정제업장경 < 法淨諸業障經 > 에 보면,비구가 무구광이란 주술에

말려들어 행음을 하고 정사 (절 ) 로 돌아와 죄책감으로 부처님께

사실을 이야기 하고 음계를 범하였으니 속퇴를 하겠다고 말했다 .

부처님게서 물으시되,

""네가 유심 으로 범하였느냐? 무심으로 범하였느냐?"

' 무심으로 범한 것이지 유심으로 범한 것이 아니옵니다 ' 

 

""네가 네가 이미 무심으로 범하였거늘 어찌 여범 ( 女犯 ) 이라 하겠느냐"

 하고 용서하고 속퇴를 허락하지 아니했다.이것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얼마나 동기론을 중요시 하였으며

 

신범 ( 身犯 ) 보다는 심범 ( 心犯 )을 중대시 하였는가를 알수있다.

 우리가 출생할때 타고난 선천적 소질과 성격은 전생의 마음으로

지은 업의 결과로서 그것이 매일의 경험에 의해서

자기 행위에 점철된결과 라고 보겠다.

 

이 업에 의해 빚어진 성격은 그 성격에 상응한 세계를 갖게 된다 .

그러므로 이것을 동기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수있다.

이상 기술한 것이 업론의 요점이라 하겠다.

 

불교에 일수사견 ( 一水四見 )의 유명한 설화가 있다.

똑같은 강물을 ,고기는 집으로 보고,아귀는 불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天人은 보석으로 덮인 대지大地 로 본다는 것이다.

 

이 고기와 아귀와 사람과 천인의 성격이 다르기때문에 그 성격에

쫓아 같은 강물이라도 각각 다르게 보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격상응 ( 性格相應 ) 의 고락의 세계를 갖는다는것이

불교업론 ( 佛敎業論 ) 의 주장인 것이다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5권 

 "반야심경은 살아있다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