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법상스님

2014. 12. 13. 10: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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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渭東流白髮垂(청위동류백발수)
동으로 흐르는 맑은 위수 가의 백발노인

一竿誰見釣璜時(일간수견조황시)
낚싯대 하나로 패옥 낚음을 그 누가 알았던가

悠悠湖海多漁父(유유호해다어부)
유유한 호수와 바다에 어부들도 많건마는

不遇文王定不知(불우문왕정부지)
문왕 같은 분을 만나지 못한 사람 그 얼마던고

조선 중종 때 신광한이 지은 '呂望(여망)'이라는 시죠.

역사인물열전, 오늘은 주나라 문왕, 무왕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제자백가들의 시조가 되어 '백가종사(百家宗師)’로 불리는 태공망 여상에 대해 살펴볼까요.

1.도광양회(韜光養晦)

"매가 먹이를 덮치려 할 때는 날개를 거두고 낮게 날며, 맹수가 먹이를 덮치려 할 때는 귀를 내리고 몸을 낮추는 법입니다. 이처럼 성인이 움직이려 할 때는 반드시 어리석은 척합니다. 달빛 속에서 은밀히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할 수 있으면 바로 천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고 지혜로운 처세로 상(商)을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하여 끝내 난세를 평정한 태공망 여상,

그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깊은 산 속에서 홀로 향기를 피우는 난초처럼 강가에서 홀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죠.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혈투가 벌어지는 난세의 시기에 그는 한가하게 바늘없는 낚시를 이용해 세월을 낚고 있었죠.

그의 본명은 강상(姜尙)인데, 선조가 여(呂)나라 제후에 봉해진 까닭에 여상(呂尙)이라 불리기도 하죠.

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상(商)에서 주(周)로 넘어가는 역사의 뒤안길을 훑어야 하죠.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 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 남녀가 벌거 벗고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죠. 

반면 당시 서쪽의 제후였던 희창(姬昌, 훗날 주 문왕)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죠. 

이를 두려워한 주왕은 희창을 옥에 가두고 그가 진실로 성인인지를 시험해보겠다며 그의 맏아들을 죽여 곰탕을 끓인 뒤 먹게 하죠.

그 날 아침 점괘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의 현명함이 알려져 무고한 백성들을 구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희창은 그 곰국을 묵묵히 받아먹죠. 

이러한 아픔과 함께 희창은 감옥에서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을 통해 주역 64괘 하나 하나의 총론에 해당하는 '괘사(卦辭)'를 완성하죠.

이후 많은 미녀와 준마와 금은보화를 바치고 풀려난 희창은 민심을 잃을 대로 잃은 주왕을 토벌하기로 하고 자신을 도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싸울 만한 인재를 물색하기 시작하는데··

2.수어지교(水魚之交)

그와 문왕의 만남은 쌍방이 서로를 선택한 결과죠.

문왕은 상(商)을 멸하기 위해 인재를 필요로 했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펴기 위해 유능한 군주를 찾고 있었죠. 

그와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만난 이야기는 역사와 신화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죠. 

어느 날 문왕이 사냥에 나서기 전에 점을 쳐본 결과 용도 이무기도 호랑이도 곰도 아닌 왕을 보필할 자를 잡을 것이라는 점괘가 나오죠. 

문왕은 위수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고, 아니나 다를까 풀 위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나게 되죠.

“선생은 낚시를 즐기고 있소?”

이때 그가 답하죠.

“군자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즐기고, 소인은 눈앞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즐깁니다. 지금 제가 낚시질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것으로 결코 낚시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문왕 曰 “비슷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오?” 

“낚시에는 3가지 권도(權道)가 있습니다. 미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녹봉을 주어 인재를 얻는 것과 같고, 좋은 미끼로 큰 고기를 잡는 것은 후한 녹봉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신을 얻는 것과 같고, 물고기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은 인품에 따라 벼슬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그 이치가 매우 깊으니 이를 통해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왕이 다시 “원컨대 그 이치를 듣고자 하오” 하죠.

“근원이 깊어야 강물이 흐르고, 물이 흘러야 물고기가 생기는 이치입니다.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나무가 잘 자라야 열매를 맺는 이치입니다. 군자는 군주와 뜻이 맞아야 긴밀히 화합하고, 그래야 일이 이루어지는 이치입니다."

결국 문왕이 본심을 드러내죠. 

“어떻게 민심을 수렴해야만 천하를 귀순하게 만들 수 있겠소?”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만민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득을 천하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군주는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이득을 홀로 차지하려는 자는 반드시 천하를 잃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단번에 의기투합했는데 문왕은 자신의 선조 고공단보가 언젠가 성인이 주나라를 도와 강성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면서 "우리가 태공 선생을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라며 감격스러워했고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와 '사(師)'에 임명하죠. 

3.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 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이 고사도 바로 그의 일화에서 탄생한 것이죠.

그는 70이 넘도톡 오직 글공부만 했고 따라서 집안 살림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죠.

하루는 아내가 일을 나가면서 멍석에 깔아놓은 보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돌볼 것을 당부했죠. 

그러나 그는 방 안에서 공부하느라 비가 쏟아져도 전혀 몰랐고 아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 대부분이 젖어 물에 떠내려간 상태였죠. 

화가 난 아내는 대성통곡을 하며 끝내 떠나게 되죠.

이후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가 80이 가까울 즈음 많은 공을 세운 그가 제나라 왕이 되어 금의환향하는데, 이때 한 노파가 그의 길을 막고 뵙기를 청하죠. 

다름 아닌 그의 전처였는데 그녀는 그에게 다시 같이 살기를 청하죠. 

이에 그는 병사에게 물 한동이를 담아오라고 시킨 후 병사가 물을 담아오자 그녀에게 물동이의 물을 바닥에 쏟으라고 하죠. 

그녀가 마지 못해 그의 말대로 물동이의 물을 땅바닥에 쏟았는데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아 보라고 하죠. 

결국 그는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말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이 고사를 볼 때마다 다음의 의문을 지울 수가 없네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망각하여 부인에게 모든 걸 떠넘겨 고단한 삶을 살게 한 건 괜찮고 본인을 버리고 떠나는 건 안 된다는 것인지?

만약 그가 가장으로서 최소한 생계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부인이 그를 버리고 갔을지?

4.목야 전투(牧野戰鬪, BC 1050년 경, 무왕 11)

"지금 저 상나라는 너나할 것 없이 홀려서 끝없이 색을 밝히고 있다. 내가 저들을 보니 잡초가 곡식을 뒤덮고 사악함이 정직함을 이기고 있다. 관리들을 보니 도적처럼 포악해서 법을 깨뜨리고 형벌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런데도 위아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망국의 때가 온 것이다."

결국 그는 오랜 준비끝에 상나라 정벌의 기치를 높이 들고 출정하는데 그런데 뜻하지 않게 출병에 앞서 친 점복의 점괘가 '불길'하다고 나오죠. 

게다가 폭풍우를 만나 중무장한 전차가 빗물에 잠기고 깃발이 세 동강이 나는 등 불길한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이에 주공 단과 산의생 등은 "하늘이 돕지 않으니 거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죠. 

무왕도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에게 정벌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데 이때 그는 이렇게 말하죠.

"성인은 천지간에 쇠퇴한 난세를 타고 일어납니다. 거북점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뼈를 말려 치는 것이고, 산가지점이라는 것은 풀을 꺾어 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길흉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결국 무왕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폭우를 뚫고 군대를 동쪽으로 진군시켰고, 3백 개의 전차와 3천의 정예병, 4만 5천의 병사들 그리고 제후들의 연합군이 물밀 듯 상(商)의 수도로 밀려갔는데··

이 전투의 승리로 주(周)는 마침내 상(商)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달성하죠. 

80이 되어도 목마른 말이 시내를 향해 달리는 듯한 기상과 비전, 열정으로 끝내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룬 태공망 여상,

그를 볼 때마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되네요.

5.마치며

"천하를 얻으려는 것은 마치 들짐승을 쫓는 것과 같아 천하가 모두 고기를 나눌 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또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 물을 건너고 나면 모두 그 이익을 나누고 패하면 모두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인민들과 더불어 같이 아파하고, 같은 마음으로 일을 이루고, 좋지 않은 일은 서로 돕고, 좋아하는 일에 서로 모이면 군대 없이도 이기고, 무기 없이도 공격하며 참호 없이도 지킬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인의(仁義)도덕'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와 '물질적 이익'이 전쟁의 승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갈파한 냉철한 현실주의자 태공망 여상,

그는 고대 병학(兵學)의 최고봉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2서(書)인 '육도삼략(六韜三略)'의 대부분을 저술할 만큼 뛰어난 병법가이자 위대한 정치가였죠.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방법으로, 비상한 업적을 이룬 비상한 인물 태공망 여상,

그는 유가(儒家), 도가(道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등 다수 학파들이 그를 시조로 모시고 있어 '백가종사(百家宗師)’로 불릴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민간에서는 뭇 귀신을 다스리고,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약한 자를 돕고 악한 자를 처벌하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 받고 있죠.

한평생 선(善)을 보기를 목마른 듯이 하고, 악(惡)을 보기를 눈먼 사람같이 하였으며,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않았던 태공망 여상,

그는 언제나 자신을 귀하다 하여 남을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크다 하여 남의 작음을 비웃지 않았으며, 용맹만을 믿고 적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기에 최후의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있었죠.

“군자는 항상 조심하여 의심을 받을 곳에는 있지 않는다.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 오얏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 ( 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해와 달이 아무리 밝아도 엎어놓은 항아리의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죄 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며, 뜻밖의 재앙도 조심하는 집 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못한다."

항상 그처럼 '은인자중(隱忍自重)'하여 '대기만성(大器晩成)'하는 회원님들 되시길··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법상스님

 

세상 누구라도
자기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또한 비밀의 선도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내면에 가지고 있는 비밀을
10단계로 구분지어
지하1층에서부터 지하10층까지로
나눈다고 생각해 보았을 때,

어떤 이에게는 지하 1층 정도만
또 다른 이에게는 지하 5층 까지도
또 어떤 이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그 이외에는 절대 보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지하 9층, 10층 정도의 비밀을 쉽게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하 3층 정도까지의 마음만을
상대에게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지하 7층 정도의 깊은 마음까지도
상대방에게 쉽게 드러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유롭지 못하며
건전한 마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내면에 있는 마음을
좀 더 깊은 곳에까지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지하로 3층, 4층, 5층,...

이렇게 깊은 곳에까지 수면위로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일수록,
마음은 좀 더 자유롭게 되고
맑고 향기로운 일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밝은 모임의 '마음 나누기' 장에서는
자신의 못 난 모습, 이기적인 모습, 비겁한 모습에서부터
도저히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까지
자유롭게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어느 누구나 그를 향해 마음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할 지 모릅니다.

나의 못난 모습,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드러낸다는 것은
나를 비울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무거운 비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나다' 하는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저 사람이 나를 멀리하면 어쩌지?

이렇듯
그 안에는 '나'라는 것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은
아상을 비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비밀 때문에 고민하고,
비밀을 남이 알게 될까봐 걱정하는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니
세상이 두려운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놓아버렸을 때
그 안에 밝에 빛나는 '참 나'는
고고히 빛을 발하며 드러날 것입니다.

집착을 놓고
마음은 자유로워 지시기 바랍니다.

고백도를 높여야 합니다.
비밀이 많은 사이일수록 맑아지기 힘이 듭니다.

비밀이 많다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아상이 전제된다는 것은
이기심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먼저 다가가
나의 비밀을 열어 보십시오.
내가 맑아지만 상대도 맑아지게 되어 있는것이
법계의 이치입니다.

상대방 또한 비밀이며
내면의 마음들을 하나 둘 씩 끄집어 내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좀 더 진실된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좀 더 사심없이 맑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마음은 그저 텅 비워 버리시고,
방하착 해 버리시고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다가가
내면의 지하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그 모든 탁한 마음들을 끄집어 내십시오.

지하 1층, 2층, 3층...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맑히시면 됩니다.
더이상 내면 가운데 지하의 층수가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고백도를 높여 보세요.

못 난 모습,
이기적인 모습,
못 사는 집안 사정,
별 볼 품없는 나의 직장,
보기싫은 부모님,
과거부터 숨기고 있었던 죄의식들까지...

이런 나의 모습들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마음이 일으킨 '죄의식'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는 것이 죄라면 죄일 수 있습니다.

숨기고 있던 그 모든 모습들을 버리고
또 다른 예쁘게 포장한 '나'만을 드러내려 해선 안됩니다.

미운 모습, 예쁜 모습,
잘난 모습, 못난 모습,
이기적인 모습, 이타적인 모습
이 모든 모습 모습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나'가
진정한 나의 모습입니다.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비워야 합니다.
내가 없다면 부끄러워 할 나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눈에 이러 저러하게 보일 나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아상을 놓고 나면
저 깊은 곳에 잠 자고 있던 고요한 '참 나'가
가만히 드러날 것입니다.

맑은 나의 모습을 보며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신비한 샘물... 

어떤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더는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너무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해요."  

 
의사는 한참 고민하다가 처방을 내렸습니다.  
"우리 병원 옆에 신비한 샘이 있습니다.
샘물을 한 통 길어서 집으로 가져가세요.
남편이 귀가하면 샘물을 한 모금 머금으세요.
그런데 머금기만 해야지 절대 삼키면 안 됩니다.
처방대로 하시면 금방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부인은 처방대로 샘물을 길어서 돌아갔습니다.    
그 날도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평소처럼 짜증과 잔소리를 아내에게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인도 맞받아쳐 싸웠을 테지만,
그 날은 처방대로 신비한 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었구요.    
얼마가 지나자, 남편은 잠잠해졌습니다.

 
그 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이지요.    
그 날부터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부인은 어김없이 신비의 샘물을 입에 머금었구요.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신경질이 줄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행동도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신비한 효과에 깜짝 놀란 아내가
의사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신비한 샘물이 너무 좋더군요.
우리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변한 것은물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덕분입니다."

 
침묵의 힘...
말싸움이 끝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억울하다. 이 말을 꼭 해줬어야 했는데."

 
상대를 설득하려고,
논리적으로 시비를 가리고,
때로는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논리적인 설득은 인간관계에 오히려 독이 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과정에서
상대를 찍어누르거나 자기를 과시하기 쉽습니다.
무심코 뱉은 말이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한 번 상처받은 상대는 어떤 논리로도 설득할 수
없고요. 무리하게 설득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상대는 귀를 막고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말보다 침묵이 효과적입니다.
생각 할 시간을 주면 상대 스스로 깨닫게 되니까요.
침묵은 상대에게 스스로 돌아볼 여유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화났을 때 하려던 말을 노트에 적어놓고,
다음날 다시 읽으면 할만한 말은 절반도 안 된다고 합니다.
열흘이 지나서 다시 보면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요.

 
‘말을 배우려면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려면 60년이 걸린다’ 

 
말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할 때도 안다고 합니다.
설득하고 싶다면 침묵하세요. 침묵이 웅변보다 강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