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阿彌陀佛) - 청화큰스님

2015. 1. 3. 12:0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정토삼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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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阿彌陀佛)

청화 큰스님

 

   

아미타불은 줄여서 아미타 또는 미타라고도 하며 범본경전(梵本經典)에는 아미타유스붇다(Amitayus-Buddha 무량수불)ㆍ아미타바붇다(Amitabha-Buddha 무량광불)의 이름이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아밀리타붇다(Amrta-Buddha 감로왕불)의 이름 등이 있으나 보편적으로 아미타불이나 무량수불로 불리워지고 있다.

「정토삼부경」에는 구원겁(久遠劫) 전에 법장보살이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세워 조재영겁(兆載永劫)의 오랜 수행을 쌓고 이미 십겁(十劫)전에 성불하여 현재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신 부처님을 아미타불이라 한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의 삼신(三身)을 겸전한 부처님이 아미타불이라 하였고, 선종(禪宗)과 화엄종에서는 자성미타(自性彌陀)ㆍ유심정토(唯心淨土)라 하여 일체 만법을 원만히 갖춘 참성품인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이며 극락세계 또한 청정한 마음 위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경계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그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나, 비유와 상징을 떠난 근본 뜻을 생각한다면 시간ㆍ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으로서, 영겁(永劫)을 통하여 끊임없이 十법계(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불)의 의(국토)ㆍ정(마음과 몸)을 성기(性起)하는 우주 자체의 인격(人格)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경」에도 그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불이요 광명이 무량하므로 무량광불이라 하였으니, 그 무량한 수명은 영원한 시간과 자비를 상징하고, 무량한 광명은 무한한 공간과 지혜를 상징하므로, 자비와 지혜를 원만히 갖춘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아미타불임을 의미하였다.

   

또한 더욱 구체적인 이름으로 「무량수경」에서 十二광불(光佛)이라 하여 무량수불 외에 무량광불(無量光佛)ㆍ무애광불(無碍光佛)ㆍ무대광불(無對光佛)ㆍ염왕광불(王光佛)ㆍ청정광불(淸淨光佛)ㆍ환희광불(歡喜光佛)ㆍ지혜광불(智慧光佛)ㆍ부단광불(不斷光佛)ㆍ난사광불(難思光佛)ㆍ무칭광불(無稱光佛)ㆍ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 등을 들고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의 실상이자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며, 그래서 여러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이름) 또한 진리의 대명사인 아미타불의 그 인연에 따른 상징과 비유의 이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소유 하는법 / 법상스님

 

가만히 세상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늘 복을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늘상 복을 까먹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복'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정해진 실체가 없기에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 이에게는
한량없는 무량대복(無量大福)으로 다가오지만
그릇이 작은 이에게는
자신의 그릇만큼의 복 밖에는 가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널려 있더라도 말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모든 대지를 골고루 적셔 주지만
컵에는 컵만큼의 물만...
그릇에는 그릇만큼의 물만...
대야에는 대야만큼의 물만이 차고
나머지는 모두 흘러내려 다시금
대지로 되돌아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릇을 키우는 일에 무엇보다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릇을 키운다는 것은 몸과 입과 생각을 잘 다스려
일상 그 자체가 복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을 받고자 한다면
첫째가 복을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언제나 복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복 짓는 마음이란 언제나 베푸는 마음입니다.
주는 마음 처럼 풍성하고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삿된 소견으로
어리석은 분별심으로 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나의 것'을 다른 이에게 주기를 아까와 합니다.
내 것이 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유'의 관념처럼 우리의 삶에
활력을 넣어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의 삶을 불행에 빠지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행복과 불행으로
우리의 마음을 철저한 노예로 만드는
우리 마음의 지독한 '마장(魔障)'인 것입니다.
소유의 관념, 그 하나의 잣대를 붙잡고
세상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전도된 망상인 지 모릅니다.
진정... 참으로... 베풀었을 때 부자가 되는 도리를...
우린 너무도 알지 못합니다.
'아깝다'는 그 마음이 바로 아상(我相)입니다.
바로 이 놈, '아상'과의 싸움이 바로 수행입니다.

언제나 베푸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는
당장에는 부족한 듯 보여도
그 사람은 세상을 한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한마음 속에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의 복 그릇은 참으로 한량없습니다.
이런 복을 일러 '무량대복(無量大福)'이라고 합니다.
셀 수 없이 무량한 복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당장은 필요한 물건만 있으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행여 가난해 보일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모든 소유의 관념을 깨고 살기에
온 천지 내 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모든 것이 '나의 것'으로 화해 줍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으로..
물건이 필요하면 물건으로...
인연이 필요하면 소중한 인연으로...
그렇듯 마음 먹은 대로 모든 것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큰 한마음에는 어떤 것도 당해 낼 재간이 없습니다.

법계의 모든 돈 또한 그의 한마음에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마음 내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텅 비어 오히려 충만한 그 한마음속에
모든 것을 넣어두기만 하면
법계 어디에선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법계의 이치입니다.
그럴진데...
우린 너무도 필요치 않은 것들을 많이도 쌓아 두고 삽니다.

집안을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우리 주변에는 필요치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습니다.
필요치는 않더라도 가지고는 있어야 마음 편한 줄로 압니다.
그야말로 '남 주자니 아깝고 내겐 필요치 않은'
그런 물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까운 마음이 내 복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내게 필요치 않은 것은 절대 쌓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널리 베푼다면
언젠가 다시 필요할 때 분명 다시 생기게 될 것입니다.
베푼다는 것은 소비생활이 아닌 엄청난 저축 습관인 것입니다.
이 넓은 법계에, 이 우주에 통째로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필요 할 때 한마음 내어 가져다 쓸 수 있도록...
좁은 소견으로는 인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꾸만 아상을 거스르는 '베품'의 습관을 길러야
인과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른 이를 위한 베품에는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텅 빈 마음으로 내어 줄 줄 알아야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들에는
작은 것이라도 아껴쓰고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늘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이것 또한 참으로 커다란 복전이 됩니다.
또한 이웃을 위하여 밝은 마음 내는 것...
사회를 향한 베푸는 마음...
나의 업장을 참회하는 수행심...
어른을 공양 하는 것...
밝은일에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것...
올곧은 수행자에게 공양 하는 것...
탐, 진, 치 삼독심 차 버리는 것...
이웃을 위하여 축복을 기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소중한 복의 밭이 됨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수행하는 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참답게 살아간다면...
바로 이사람이 무량대복의 소유자입니다.
마음 가운데 세상을 소유하고 있기에
마음 먹은 데로 언제든지 끄집어 내어 쓸 수 있는
진정 세상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가족을 구하는 길

 

 

불자님들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화목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였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 섬기고

부자간 의가 좋으며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을 공경하고

마을사람들이 서로 돕고

오순도순 잘 살며

백성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는

인륜과 도덕이 땅에 떨어져 병든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지난해 사회뉴스를 보면

가정이 파괴되는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부부이혼, 부부간 상해, 살해는 물론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표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우리나라는

가히 크게 병든 사회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1945년 광복 후 서구의 극단적 이기주의의 물결이 밀려와

우리의 미풍양속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극단적 이기주의란 한마디로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말합니다.

 

이웃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가족만을 먼저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기보다 자신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자식을 잘 기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드렸지만

결국 이기적인 사람으로 길러버렸기 때문에 나중에 부모를 봉양하기는커녕

부모에게 평생의지하려고 하고, 또는 늙은 부모를 버리기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 늙은 부모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때리거나 죽이는 자도 있습니다.

정말 말세(末世)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병든 사회를 고칠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길이요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이 병든 사회도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길

 

무량수경에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 형제, 부부, 가족, 안팎의 친척사이에

서로 경애하여 미워하지 않으며,

서로 화목하여 말과 안색이 화평하며

서로 뜻이 어긋나지 않으며

서로 돕는데 인색함이 없어야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장아함경에도

 

사람은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 친척을 경애해야 한다.

다섯 가지가 무엇인가하면

첫째는 물질을 급여함이요,

둘째는 좋은 말이요,

셋째는 서로 이롭게 함이요,

넷째는 협력이요,

다섯째는 속이지 않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가족을 구하는 길과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길은

바로 이기심의 극복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며,

나아가 내 가족과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자비로 바라보고,

다른 이를 위해 베풀게 됩니다.

 

불자님들

이와 같이 을미년 한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배우고 실천하여

가족의 화목부터 이루어 봅시다.

또한 나도 살리고 남도 살려서

사회와 나라에 봉사하여

오순도순 잘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나무붓다야

나무달마야

나무승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