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에 깨치면 북소리에 꺼꾸러진다 / 춘식스님

2015. 1. 10. 04:0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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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에 깨치면 북소리에 꺼꾸러진다 / 춘식스님 

 

다관에 차를 우리고 마주 앉자 스님은 이 공부길에서 사람 만나기의 어려움을 말씀하셧다.

삼광전 기둥 주련에 걸린 설봉스님의 게송에도 이렇게 되어있다.

 

옛과 지금 세상에 장부들은 많건만                  古今天下丈夫多 

도를 묻고 선을 배우는 이는 세명도 되지 않네    問道學禪未作三

 

일단 눈 밝은 선지식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이 공부에 진정 발심한 공부인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인지 매주 찾아와 법을 묻는 사람이 어여삐 여기셨는지

오늘따라 노파심절한 법문이 장광성이 되어갔다.

특히 실제로 이 공부를 하기 보다는 학문적 이해나 생각을 통해 선을 연구하는 태도를

극히 경계하라 하신다.

 

설봉스님께서도, <莫將閑學解 埋沒祖師意 - 한가한 학문의 알음알이를 가지고

조사의 뜻을 매몰시키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신신당부하신다.

견성에 있어서도 그저 법신경계를 보았거나 무정설법을 알아듣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동산스님의 일화를 들려 주셨다.

 

동산스님이 평소 남양혜충국사가 無情이 설법한다는 말에 의심을 품고 있다가

위산스님에게 물었으나 계합하지 못하고 운암스님이란 분을 찾아가 물었다.

"무정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커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

"듲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했는가? 아미타경에서 '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 라고 했던 말을 . ."

동산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신통하구나 신통해 !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 하여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바야흐로 알 수 있

 

나중에 운암스님과 헤어질 때 동산스님이 다시 물엇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꾸할가요?"

운암 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 뿐이라네"

동산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햇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동산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에 계합하리라

 

무정성법에서 깨친 바가 있던 동산스님도 운암스님의 '그저 이것 뿐!' 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햇던 것이다.

정말 이 공부에서는 철저하게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님은 재삼 당부하셧다.

' 나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네'

오직 이것 뿐임을 깨치면 곳곳에서 '이것'을 확인하여, '그는 바로 나이나',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지만,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이것'이란 것도

따로 세우면 어긋나 '여여'하지 못하게 된다 이르셨다.

 

이어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받은 게송이야기를 하셨다.

 

일체법을 요달해 알면 了知一切法

자성이 있는 바 없네   自性無所有

이처럼 법성을 알면    如是解法性

곧 노사불을 보리라    卽見盧思那

 

실제로 자성을 깨치고 보면 자성이라 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셧다.

 

점심공양을 하면서 평소 육조단경 가운데 의심나는 구절을 물었다

"육조단경 반야품에 '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반야가 끊어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반야가 생긴다'는 구절이 아무리 방편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허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반야가 어리석다고 끈어지고 지혜롭다고 다시 생기겠습니까?

이것은 二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그런 말은 깨친 분상에서 맞는 말이다. 올바른 지견이라도 그것을 지켜서는 않된다.

종소리에 깨치면 북소리에 꺼꾸러진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말이라는 가르침을 주셧다.

그렇게 의심나는 것을 묻는 것이 곧 탁마라 하시면서

육조스님의 말씀은 오직 스스로 견성하는 것을 가리켜 보일 뿐이라 하셨다.

오직 스스로의 안목이 어리석느냐 지혜로우냐의 문제이지 반야가 끊어지고 생겨나는

문제가 아니라 하셨다.

 

'길 에서 검객을 만나면 칼로 바치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라' 는 말처럼

사람의 근기에 따라 설법도 달라져야 한다시며 지음자를 만난듯이 기뻐하셨다.

이처럼 고구정녕한 가르침에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따스한 5월 훈풍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사람 만나기 어려운 것이 이 공부다.

 

 

* 원명 심성일님의 <취생몽사>에서 발췌한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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