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7. 10:4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조선의 승려 긍선(亘璇)의 참선수행자들을 위한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의 요지(要旨)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
조선 후기의 승려 긍선(亘璇)이 불교 참선수행자들을 위하여 저술한 책. 이 글의 요지(要旨)는 대개 다음과 같다.
① 언어도단(言語道斷)과 심행처멸(心行處滅)의 바른 눈으로써 일체의 법(法)을 보면 일체가 그대로 정법(淨法)이요, 사(邪)된 눈으로 법을 보면 일체가 염법(染法:옳지 못한 법)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② 교(敎)는 사구(死句)요, 선(禪)은 활구(活句)이다. 만약 마음의 본성이 원래 깨끗하고 번뇌는 본래 공(空)하며 이 마음이 곧 불(佛)임을 돈오(頓悟)하여, 이에 의하여 수행하면 이를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한다.
생각마다 끊임없이 닦아 익히면 자연히 백천삼매(百千三昧)를 이루게 되는데, 이렇게 믿고 수행하면 정안(正眼)이 있는 곳이라 하였다.
③ 식심(識心)이 제거되면 생사(生死)가 저절로 끊어지고 참된 본성만이 스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 만큼, 이 식심이 스스로 없어지게 하는 방법은 오직 선정(禪定)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④ 사구로써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을 의리선(義理禪)이라 말하고, 활구로써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을 여래선(如來禪)이라고 주장하였다.
⑤ 삼세공적(三世空寂)을 완료하여야만 몽환삼매(夢幻三昧)를 거쳐 무념삼매(無念三昧)와 시방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들이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세계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⑥ 무념공적(無念空寂) 중에서도 현전(現前)의 일념(一念)으로 아무런 재미도 없는 격외(格外)의 활구에 참여하게 하라고 하였다.
⑦ 참선하는 자에게 많이 앉기를 강조한 것은 이루기 쉽기 때문일 뿐, 오래 선을 닦으면 움직이고 누울 때도 통할 수 있는 것이므로 평소에 정신단좌(正身端坐)와 조식(調息)·조신(調身)·조심(調心)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⑧ 어떤 수행자가 염불(念佛)을 통하여 왕생(往生)하기를 구하여도 마음 밖에 정토(淨土)가 없음을 알고 생각마다 고요히 알아서 본성을 어기지 않고 관행쌍조(觀行雙照)하면 심불쌍망(心佛雙忘)과 상통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때의 쌍망은 정(定), 쌍조는 혜(慧)를 의미한다.
⑨ 마음의 본성이 본래 깨끗한 것인 만큼 견성(見性)하는 것을 최상승(最上乘)으로 알아서 수행해야지, 예불(禮佛)하고 불상을 만들며 경(經)을 베껴 쓰는 것만을 일삼지 말라고 가르쳤다.
⑩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명리세계(名利世界)에 사로잡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 것을 가르쳤다.
⑪ 문수보살의 게송(偈頌)을 인용하면서, 일념의 깨끗한 마음이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⑫ 안선정려(安禪靜慮)가 아니면 죽은 뒤 고혼(孤魂)을 면하지 못하고 윤회의 순환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⑬ 단정히 앉아 외상(外相)을 취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면 취하고 버릴 것이 함께 없어지며, 옳고 그른 것이 함께 융화되어 부사의해탈(不思議解脫)에 이른다고 하였다.
⑭ 보리(菩提)에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오직 인도(人道:인간)뿐이므로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제도할 것인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도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불선(儒佛仙) 3교를 통찰하여 볼 때,
유교는 유(有)를 숭상한 끝에 상견(常見)에 막히고,
도교는 무(無)를 중시하여 단견(斷見)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불교만이 유도 무도 아닌 중도(中道)를 나타낸 것으로, 한결같고 움직임이 없는 진여(眞如)의 경계를 체득할 수 있다는 불교우위론을 펴고 있다.
이 책의 끝에는 <사중규승 社中規繩>이 첨가되어 있다. 이는 동지들이 실제로 지켜야 할 일종의 계율로서, 일곱 가지를 정하고 있다.
① 자성을 돈오(頓悟)하는 것을 급무(急務)로 하고 예불하고 경을 읽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② 중생의 제도를 항상 잊지 않는다.
③ 정계(淨戒)를 엄수한다.
④ 인욕(忍辱)으로서 순역(順逆)의 경우에 대처한다.
⑤ 걸식(乞食)으로 자활한다.
⑥ 늙은 병자는 같이 들어온 동지가 부양한다.
⑦ 회중(會中)에서 불청정한 자는 제명하여 쫓아낸다는 것 등이다.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전통 선법을 계승, 후학들의 수행을 독려한 저술로서 고려 지눌(知訥)의 ≪정혜결사문≫과 함께 선가(禪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긍선(亘璇) :
1767.4.11 ~ 1852.4.24, 호 : 구산, 별칭 : 법호 백파, 출생지 : 전라도 무장.
속성 이(李)씨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호는 구산(龜山) 법호는 백파(白坡)이다. 1767년 전라도 무장(茂長) 출생하였다. 12세 때 선운사(禪雲寺)에 들어가 시헌(詩憲)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승려가 되었고, 설파(雪坡)·설봉(雪峰) 문하에서 불도를 닦았다. 후에 장성 백양사(白羊寺)로 옮겨 후학을 지도하는데 노력하였고 청도 운문사에 머물면서 선(禪)의 지침서인《선문수경(禪門手鏡)》을 저술하였다. 1830년(순조 30) 구암사(龜巖寺)로 옮겨 선강법회(禪講法會)를 열어 선문(禪門) 중흥의 종주가 되었다. 1840년 이후에는 화엄사 암자에 머물며 좌선하였으며 그해 4월에 입적하였다. 나이 86세까지 법랍 73세 였으며 평생동안 불교 발전을 위해 힘썼다. 선운사에는 김정희(金正喜)가 쓴 비가 남아 있다.
저서에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선문수경(禪門手鏡)》 《오종강요기(五宗綱要記)》 《법보단경요해(法寶壇經要解)》 《선문염송기(禪門拈頌記)》 《금강경팔해경(金剛經八海經)》 《선요기(禪要記)》가 있다.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
* 저자 : 긍선(亘璇),
* 권수·책수 : 1권 1책,
* 제작시기 1822년(순조 22)(저술), 1860년(철종 11)(간행)
1권 1책. 목판본. <백파대사약전 白坡大師略傳>에서는 ≪정혜결사문 定慧結社文≫이라고 하였다.
이 결사문은 1822년(순조 22)에 저술된 것이나 현존본으로는 1860년(철종 11) 천마산(天摩山) 봉인사간본(奉印寺刊本)이 전하고 있다.
* 성불하소서. - 서상(방계석) -
느리게 가는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는데.
느리게 가는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는데.
느리게 가는 소달구지는
하루 종일 가봐야 50리를 가겠나?
그러나
달구지 위에는 어린이도 절름발이도
안전하게 타고 갈수가 있다.
그렇지만
날쎄게 달리는 마상에 앉아 달리면
150리 정도 가지 않겠나
그러나
어린이나 환자는 그 위에 탈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어릴 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생각난다.
거북이는
결국은 이기기도 하지만
천 년을 산다고 하지 않나…
요즈음은
1년이 멀다 하고 사는게 달라지고
쏟아저 나오는 문명의 이기로
삶의 질도 빠르게 달라 지고있다.
우리 같은 늙은이는
그것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것들 쓸려고
공부하다가 보면
알 때 즈음되면 바로 또 다른 것 나오고
그것 쫓아가느라고 숨 가쁘다.
또
그 놈들 때문에 어설프게 꾸며진
말 안장 위에 앉아서 달려가는 것처럼
항상 조마 조마하고 불안하다.
삶과 죽음이
항상 같이하는 시대 인 것 같다.
‘저승이 먼 줄 알았더니 죽고 나니 문 턱일세…’
라는 좀 구슬픈 가사는
예전 농경시대의 상여가의 한 구절이다,
그때 사람이 죽으면
동내 젊은이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위에 한 사람이 올라 앉아서
‘저승이 먼 줄 알았더니….’ 하면
상여꾼들은 따라 부르며
동네 밖앝으로 떠나 간다.
그 구슬픈 소리가
요즈음 간혹 떠 오르기도 한다.
또
‘치 오푼 저쪽이 저승이란다,
밤이면 그 저승을 등에 업고 잠을 자고,
낮이면 그 저승을 딛고 일을 한다 …..’
이것은
뱃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한 구절이다.
즉
바다 속이 저승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뭍에 올라오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돈을 물 쓰듯이 쓰고
여자에게도 정신 없이 즐길려고
하였는 거 아닌가 한다.
치 오푼은,
배 밑바닥의 약 4,5cm 정도의
나무판자 뚜께를 말한다.
그런데
요즈음도 다르지 않다
요즈음은
자동차 비행기 그 얇은 철판과
유리창 속이 저승이 아닌가 한다.
위에
노래에 가사를 살짝 바꾸면
“얇은 철판 유리창 속이 저승이란다,
눈만 뜨면 그 저승과 함께 산 단다….” 라고
하면 될까? ㅎㅎ
아침밥 먹고 멀쩡히 나간 사람이
그 놈 때문에
하루에도 수없이 저승으로 가기도 한다,
박아서 죽고
박혀서 죽고
깔려서도 죽고….
그 사랑스럽기도 하고
흉측스러운 물건 말고도
며칠 전에 보니
땅 파는 천공긴가 가 넘어저서,
전봇대가 넘어지고 수천세대 전기가 정전되고,
자동차가 깔리고,
집을 덥치고 해서 걸어서 가던 사람도 죽고
차 속에 있던 사람도 죽고 하였다고 하던데,
도무지
어디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 십 건식
이런 기사를 접 하다가 보니
간혹
나도 내 가족과
이 작은 행복이 얼마나 가겠나
하는 못된 생각도 들 때가 있다.
60년대에
운전기사들 운전석 앞에
‘오늘도 무사히’ 라는
작은 문구가 쓰인 것 붙여서 다니고,
그 후
조금 지나서는
가족 사진을 붙여서 다니는 것 보았다.
그때는 길이
요즈음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길이 나쁘니
빨리 질주하지도 못했는데
더 발전하고
더 살기 좋게 만든다고 한 것이
지금은 저승이
옆에 더 가까이 있는 세상이 되었다,
또
예전에는 어른들께 인사말이
"밤새 안녕하십니까?" 였는데
요즈음은
"낮 중에 안녕하십니까?"라고
‘밤새’를 '낮중에’로 고쳐 져야한다.
더 좋은 길,
더 빨리 가는 차,
물을 필요 없이 가르켜 주는 데로
질주만 하면 되는 네비 게이션,
그 놈이 가자는 대로 가다가
언덕에 처박힌 사람도
며칠 전에
뉴스에 시간에 보니 있더라,
그 차 운전사
안 죽고 살아서 하는 말
“갑자기 길이 끊어저서 부레이크 밟았으나….”
어처구니 없는 말 같기도하고….
그래도
우리는 사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무성히 자라도록 가꾸어야한다.
좀더
차분히 아는 길도 물어보고
아무리 바빠도 옆 한번 돌아 보고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생각도 좀하고
저승은 강 건너 저만치 아니,
수평선 저 넘어
가기 힘든 곳에 두고 살자.
빨리 너무 좋아하다가
그 만큼 빨리 저승 갈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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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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