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8. 20:3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호흡관찰명상 / 법상스님
오늘 날씨가 많이 그래도 좋습니다. (네~)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이 아마 더 날씨가 하늘이 아주 청명한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항상 매년 보면 이렇게 봄꽃이 한창 필 때
벚꽃이 벚꽃은 오래가지 않잖습니까? 곧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다문 일주일이나 이주일이라도 좀 만끽을 했으면 좋겠는데
매년 한번 가만히 한번 살펴를 보면요.
벚꽃이 만개할 때 쯤에 야속한 봄비가 내립니다.
그래서 좀더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봄비가 와서 이 꽃잎들을 그냥 후두둑 떨어지게 만들어 버려요.
이 한편으로는 야속한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구나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듭니다.
이 아름다운 것은 조금 더 오래동안 우리가 느끼고 싶고 또 감상하고 싶고
그런 마음도 하나의 우리의 바램이고 집착이고 마음속에 어떤 한가지 머물고자 하는
그래서 너무 과도하게 너무 좋은 것에도 너무 집착하고 너무 머물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또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어느 한 극단에 우리가 집착하고 치우치게 되면 그것은 언제나 아~ 문제를 가져오더라구요.
하다못해 정말 올바른 것, 정말 이것은 진리가 분명한 것 그것 조차 집착하게 될 때,
그것은 진리성을 잃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거기에 집착하는 순간 그 진리 자체는 아름답지만
그 진리에 집착하는 자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 아카데미를 나오니까 좋다고 얘기도 많이 하시고 또 그렇게 하시는데
이것 또한 과도하게 집착할 바는 없는 겁니다.
오늘은요 아주 중요한 오늘은 벚꽃이 한창일 때라.
가장 많이 오실것을 예감 하고 오늘 가장 중요한 공부를 준비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제가 말씀드릴 명상수행 방법이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수행 방법이고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만을 한다면
모든 공부를 다른 것 굳이 찾아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가장 중요한 겁니다.
많이 알고 계신 분은 많이 알고 계실텐데 실망하지 마시고
부처님께서 신수심법 사념처 가운데 가장 많이 법문을 하시고
별도의 경전을 만들어서 법문을 하시고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호흡을 관찰하는 호흡관입니다. 호흡을 관찰하는 것
이것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은요?
아.. 먼저 이 말씀을 한번 드리겠습니다.
어떤 큰스님께 큰 기업의 회장쯤 되시는 분이 찾아가서 부도가 나기 직전인거예요.
그래서 큰스님께 찾아가서
'큰스님~ 부도가 나기 직전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이 선택을 할까요? 저 선택을 할까요?
저는 어떻게 생활해야 됩니까?' 물었더니
큰스님께서 '지금 니 호흡을 관찰해라'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스님 스님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지금까지 스님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으니까
이제는 그런게 필요한 게 아니고 당장 내일 넘어갈지 모레 넘어갈지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니까 답을 주세요' 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죠.
그랬더니 '그렇기 때문에 얘기한다. 잘들어라. 너 호흡을 관찰해라' 그렇게 얘기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급박한 상황속에서 뭔가 답을 줬으면 좋겠고 그럴텐데
그러한 가장 급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조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호흡을 관찰하는 거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 제가 여러분에게 수없이 많은 여러분들이
온갖 아픔이나 고민이나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런 많은 고민들에 대해서 제가 최상으로 할 수 있는 답변중에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호흡을 관찰하라는 겁니다. 호흡을 관찰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어떤거냐면요? 여러분이 태어나자마자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쉬기 시작해서 숨을 쉬기 시작해서 어느 한 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어요.
즉 호흡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삶이고 생명입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우리가 단 한번도 우리와 떨어져서 있어 본 적이 없죠.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생생한 삶의 현상입니다.
과거나 미래를 쫓아갈 수가 없어요. 호흡을 관찰하게 되면,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호흡을 가만히 한번 관찰해 보면,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우리가 화가 날 때 호흡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하고
또 우리가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때 호흡이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릅니다.
마음속에 작은 어떤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들 하나도 호흡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세하게 호흡을 관찰해 보면 그 호흡속에 이미 나의 많은 하루 일과들이
호흡이 가지런함과 고요함과 아주 거친 파도와도 같이
호흡도 그러한 파도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면 아~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이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구요.
반대로 내 상황에 따라 호흡이 거칠어지고 고요해지고 하는 것처럼
반대로 삶이 거칠어지고 힘들고 화가 나고 온갖 파도 칠 때 그때 호흡을 관찰하게 되면
거꾸로 호흡이 우리 삶을 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호흡이 거칠었던 호흡이 우리가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호흡이 고요해지기 시작하고
호흡에 집중해서 호흡이 고요해지기 시작할 때 내 삶도 함께 고요해지기 시작합니다.
내 호흡이 고요해지면서 막 정신없고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온갖 과제들
온갖 풀리지 않은 숙제와 과제들이 우리앞에 놓여 있어요.
그것을 답을 내고는 싶은데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그 답은 생각으로는 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생각을 아무리 동원을 해도 거기에 답을 내지 못한다.
그때는 그야말로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근원적인 힘, 지혜의 내면에 있는
자성삼보에 내 안에 있는 부처, 내 안에 있는 다르마, 법, 지혜
여기에 의지해서 올바른 지혜의 답변을 들어야 됩니다.
자꾸 바깥으로 쫓아 다니면서 생각을 통해서 온갖 정보를 쌓아가지고
답을 얻으려고 해서는 올바른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흡을 관찰하면서 호흡을 관찰하게 됐을 때 그 호흡이 가지런해지면서
호흡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좀 방편으로 표현을 쓴다면
호흡이라는 호흡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 호흡을 통해서 깊은 내면에 있는
본래의 나, 본래의 지혜, 본래의 자성삼보와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호흡이라는 어떤 배를 타고 우리가 고해바다를 건너듯이 호흡이라는 어떤 도구를 가지고
호흡이라는 배를 타고 호흡을 따라 들어감으로써 우리 내면의 무한한 지혜의 보고
그곳에 우리가 접촉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호흡에 집중하게 되었을 때 그 고요함속에 어떤 직관이나 영감이 드러나게 되기도 하고
또 그 호흡을 타고 우리 근원과 마주 했을 때 근원에서는 바다를 만납니다.
즉 우리 여러분 개개인의 한명 한명의 사람들이 파도라고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은 성난 파도처럼 거친 파도의 마음 상태일 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고요한 마음일 때도 있고
또 같은 사람도 파도가 격하게 칠 때도 있고 고요할 때도 있거든요.
우리의 상황에 따라 우리의 표면에 드러나는 어떤 파도는 달라집니다.
또 사람들에 따라 다 다른 파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파도는 이렇게 주변 상황에 따라서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치면
파도도 같이 거칠어지고 해가 뜨고 고요할 때는 파도도 같이 잔잔해지잖습니까?
그런데 그 밑에 바다는 언제나 고요하고 언제나 한결같다.
그 겉의 파도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을 띠기는 할지언정
그 내면에는 심연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고요함을 잃지 않는 근원이 있습니다.
너의 파도가 있고 나의 파도가 있지만 그 바다로 들어가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예요.
언제나 둘이 아니게 함께 하나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이라는 것을 통해서 바다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서 무엇을 만나냐하면? 내 내면에 있는 자성삼보도 만나지만
내안에 있는 부처, 법 수행자의 마음도 만나지만 그 안에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우주법계와 내가 둘이 아닌 법신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지혜의 도움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지혜가 바로 우주법계의 가득한 지혜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주법계의 도움을 받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방향으로...
어떻게 내가 한생각 일으켰는데 상대방이 나를 도울 수가 있습니까?
내가 지금 부도나기 직전인데 호흡만을 관찰해가지고 어떻게 부도를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발로 쫓아 다니면서 부도를 막으려고 하면 수백 수천명을 만나야 될거예요.
수백 수천명을 만나도 될까 말까죠.
그런데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발로 뛰어 다니지 않더라도
저절로 신족통이 열려서 온우주를 다 뛰어다닌 것 이상의 신통장이 열린다 말이죠.
그래서 갑자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주법계는 그런 방식으로만 일이 되어지는 방식으로만 일을 만들어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그게 호흡을 관찰한다고 잘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 눈으로 보기에,
그런데 이 우주법계에는 눈으로 보기에 성공, 실패라고 느끼는
그러한 비좁은 인식에 갇혀 있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봤을 때는 실패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더 큰 의미에서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 방법만을 우리에게 보내 줍니다.
특히 이렇게 호흡을 통해서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게 되면
우리는 수행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 아카데미 나온다고 해서
점점더 좋은 일이 생기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남편이 착해지고
아들이 말을 잘듣고 공부를 잘하고 나쁜일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상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더 큰 차원에서 언제나 우주법계가 나를 돕는다라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고
또 더 신속하게 내가 받아야 될 내가 이생에 감당함으로써 깨달아야 될 많은 일들을
명상을 통해서 먼저 깨쳤기 때문에 먼저 깨달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깨닫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가볍게 왔다 가거나 작게 오거나 아예 안 올 수도 있는 것이죠.
제가 늘 말했듯이 이 세상은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업장을 소멸하는 것도
내가 악업을 지었을 때 그 악업에 대한 과보를 받아서 고통을 받음으로써
업이 소멸되잖습니까?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고해의 사바세계라고 하잖습니까?
그래서 사바세계 즉 인토, 감인토라고 그러는 거예요.
감내하는 세계입니다. 인내하는 세계입니다.
그 고통을 인내함으로써 깨달아 갈 수 있는 세계다.
그런데 그 고통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고통을 통해 깨닫기도 하지만,
반드시 고통을 통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탁 깨달음을 얻으시고
아~ 중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구나.
이것을 고통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뿐이구나.
저 꿈은 언젠가 깨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꿈꾸는 사람 악몽을 꾼다고
그 꿈속에 들어가서 꿈속에 있는 그 사람을 구제해 줄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차피 깰거니까, 굳이 꿈속에서 아파하는 사람 구제해 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구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보셨어요. 잠깐 착각하고 있을 뿐이구나.
그러니 굳이 구제해줄 필요가 없구나.
이들도 모두 부처구나!
그런데 범천이 와서 권청을 한다 말이죠.
'부처님~ 그러더라도 이들이 고통에 빠져 있으니 건져 주십시요.'
그 범천이 자비롭기 때문에 부처님이 자비롭지 못하기 때문에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였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범천은 완전히 깨치지 못했고 중생의 이 아픔을 어떻게 하면 이 꿈과 같은 아픔이지만
이것이 진짜인줄 착각하고 있으니 이 착각을 좀 빨리 깨줄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것을 부처님께서 해주십시요.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부처님께서 그것을 해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수행을 알려주셨고
마음공부를 알려주셨단 말이죠. 즉 그 말은 뭐냐하면?
앞으로 있을 힘들고 고되고 고통스러운 어떤 이 지구별에서의 남은 여행을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깨닫지 않을 수 있다.
명상을 통한다면 호흡관을 통한다면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여러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막 고통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서 이걸 받아들인다 그러죠.
그래서 그래 내가 이제 죽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때가 온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깊은 평화가 찾아온다고 그래요.
깊은 고요함이 찾아와서 갑자기 하나 하나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한다고 그럽니다.
병원에 있는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에서 비춰오는 햇살이 이렇게 따스하고
이렇게 경이롭고 이렇게 놀라울 수가 있구나.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햇살을 왜 느끼지 못하면서 어리석게 살은 것일까?
밖에 산책하러 나갔을 때 피는 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에 내 뺨을 스치는 촉감이 이렇게 감동스러울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바람 한줄기를 맞으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그럽니다.
제가 봄에 벚꽃이 흩날릴 때... 그리고 어느 가을에 산을 가는데
문득 낙엽이 한 몇개의 낙엽이 바람이 휙 불어와서 몇개의 낙엽이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낙엽이 몇개의 낙엽이 그냥 떨어지고 있는데 이 잔잔한 피아노 반율에 음악이 어디선가
이렇게 들여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쨍하는 순간, 반짝이는 순간이 드러나는 겁니다.
제가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면서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똑같은 안좋은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고 온갖 동일한 삶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많은 순간에 더 많이 반짝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더 많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고 감동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아무리 힘들 때라고 한생각 탁 돌이키면 그 자리에 이 아름다운 대자연이 나를 맞이 하고 있구나.
또 언제 어떤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이 대자연을 마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콘크리트 벽속에 앉아서 뭔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할 때
갑자기 또 다른 차원의 빛이 내 삶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하고 하다가 이제 명상 수련 센타를 갑니다. 혹은 선원을 갑니다.
선원에 일주일에 세시간씩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삼일 하루에 한시간씩이나 두시간씩
시간을 내서 선원에 가고 선방에 가서 한 삼십분씩 한시간씩 차를 몰아서 선원에 가서
한시간 앉아 있다가 한시간을 돌아오는 걸 매주 반복을 해서 몇년씩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앉아서 호흡을 관찰해요.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꼭 그러지 않아도 한생각 돌이키면 지금 이자리가 바로 선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그 자리가 선방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시간이 쭉정이처럼 쓸데없이 흐르던 시간들이 놀라운 한 시간을 어렵게 가서
한 시간을 앉았다가 한 시간을 와야되는 이 힘들려서 돈을 내고 힘을 들려가지고
가서 공부를 해야 되는 그 엄청난 노력을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언제나 할 수가 있습니다.
차가 안온다고 짜증을 내는 그 시간에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에
무의식중에 스마트폰을 켜서 뭔가를 자꾸 봐야되는 그 시간에 이제 심심하지 않아도 되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만 계속 보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시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일주일을 기다려서 아카데미를 오겠다. 이런 마음을 안가져도 언제나 매순간이
그 자리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들을 실습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될 수가 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이제 수용하고 나면은요?
하루 하루의 삶에 쭉정이로 내버릴 시간이 없구요.
잠깐 잠깐 시간이 날 때처럼 고마울 때가 없습니다.
차를 타고 운전하고 가는 동안은 빨리 도착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는 동안 호흡을 관찰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면서 갈 수가 있고
그것은 곧 내 내면에 있는 근원의 자리와 연결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게 되고
어떤 중요한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간다? 그때 최고의 방법은 내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그 사업 파트너의 마음속에 직관을 일으키게 할 수가 있어요.
이 사람과의 거래가 성사 될 수 있게 그 사람의 마음을 놀랍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것처럼 우리는 호흡을 통해서 우주법계와 연결되기 시작하고 내 고통을 소멸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을 지금 전 세계적으로 언론에서도 그렇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명상 명상을 얘기한다 말이예요. 호흡을 관찰하라고 얘기합니다.
다 얘기합니다. 이 좋은 것을 이 얘기 들어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거예요. 몇억 인구가 넘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하지 못하죠.
호흡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 벽을 넘어서게 되면
그래서 시간을 내서 하루에 처음에는 앉아서 20분 30분도 좋고 꾸준히 10분도 좋습니다.
5분도 좋고, 그 시간을 꾸준히 내서 늘려나가 보시고
또 일상생활속에서는 언제나 1분명상 2분명상을 호흡을 관찰하는 거예요.
1분 2분 동안 그것을 꾸준히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호흡 명상이 가져오는 놀라운 공부는 뭐가 있냐면은요?
호흡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호흡을 내가 통제하던가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아 지금부터 들숨을 쉬어야지 지금부터 날숨을 쉬어야지
하고 내 스스로 내 의지로 호흡을 쉽니까? 아니죠.
그냥 내가 숨쉬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지가 알아서 쉰다 말이예죠.
만약에 우리가 생각해서 숨숴야지 하고 생각해서 숨을 쉰다면 하. 우리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숨쉬는 거 까먹어서.. 그런데 우리는 숨쉬는 걸 까먹지를 않아요.
우리가 다른 거 때문에 온갖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순간에도 호흡은 지가 알아서 숴 줍니다.
호흡은 누가 그렇게 알아서 쉬고 있을까요?
다시말해서 그것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호흡의 관찰함을 통해서
아.. 내 삶을 내가 통제 하는 것이 아니였구나!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존재가 내 인생을 맘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였구나!
이게 내가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체가 아닌 것이구나.
뭔가 이 호흡을 저절로 쉬게 하는 말로 할 수 없겠지만 내가 찾을 수는 없지만 뭔가가 있구나.
그럼으로써 내가 자아의 집착을 내려놓게 됩니다.
내가 진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찾아야 할 뭔가가 있구나. 아 이 호흡을 쉬게 하는 그 놈이 누구지?
그게 내가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뭐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말이죠. 그게 바로 간화선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이것이 누구지? 이 숨을 쉬는 자가 누구인가?
생각이 일어나는 자가 누구인가? 감정을 느끼는 자는 또 누구인가?
이렇게 앉아 있는 자는 누구인가? 보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은 있게 마련이고 숨은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숨은 단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뭐 어떤 무슨 무슨 명상센타니 이런곳에 보면 뭐 단전호흡이니 이런데 보면
호흡을 고요하게 해야한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여된다.
그래서 호흡이 어떤 사람은 한번 호흡하는데 몇분이 걸리기도 하고 아주 가늘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해야된다. 뭐 이렇게 가르치는 곳도 있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가르침에서 호흡을 관찰하는 방법은 호흡을 내버려 두는 거예요.
지금까지 내버려 뒀던 것처럼 호흡을 내버려 두는 겁니다.
호흡을 통제하러 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호흡이 지 혼자 쉬었고 나는 호흡이 어떻게 쉬는 지를 몰랐다면
이제는 알기 시작하는 거예요.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호흡이 이렇게 들어오고 이렇게 나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이제 인식하는 겁니다.
보고 있는 겁니다.
호흡이 들어올 때 아 들숨이 쉬어진다는 거를 그저 보기만 하면 되요.
호흡이 나갈 때 나간다는 거를 보기만 하면 되고
때론 화가 났을 때 호흡이 거칠어진다면 내 호흡이 거칠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고 있습니다. 그 호흡이 가늘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탓할 필요가 절대 없다.
호흡이 깊이 아랫배까지 끌어 내려 지지 않는 다고 해서 나를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호흡이 얕게 위에서만 가슴에서만 얕은 호흡만 쉬어진다
그걸 가지고 나자신을 뭐라 할 필요도 없어요.
괜찮습니다. 가슴으로 숴도 괜찮고 아랫배로 내려와도 괜찮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언제 여러분은 옳고 언제나 아름답다.
여러분이 화를 낼 때도 짜증을 낼 때도 과거에 아무리 큰 잘못을 지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여러분은 아름답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과거의 최악의 죄를 지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공허한 과거의 일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의식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의 의식은 과거의 의식과 전혀 같지 않다라는 게 부처님의 말씀이예요.
제행무상으로 모든 건 변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과거의 의식에 얽매여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거고, 거기에 사로잡혀서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해버리는 거예요.
강력한 힘의 원천인...
과거에 이미 지나간 의식의 수준 그 수준에서는 그렇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옛날에 어떤 이가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바라보면 됩니다.
진정한 참회가 바로 이거예요. 그렇다고 참회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죠.
참회하되 참회하되 지금 이 순간은 전혀 다른 의식입니다. 여러분은
전혀 다른 존재고, 전혀 다른 미립자고 전혀 다른 세포를 가지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영화 한편 본 것처럼 여러분 과거에 잘못도 영화 한편 본 것처럼 가볍게 넘길 수 있어야 됩니다.
그와 같이 지금 이 순간에 호흡을 이 순간의 호흡만을 관찰하되
호흡이 잘 알아차려진다? 알아차려지지 않는다? 상관없습니다.
오늘 내가 호흡을 좀 오래 봤어야 되는데 오래 못봤다. 탓할 필요 없다.
그전에 한번도 안봤는데요. 배우기 전에는 한번도 안봤는데요.
그러면 다 나쁜 놈들인가요?
야 오늘 내가 참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하지? 나는 왜 오늘은 호흡을 열번밖에 못봤어.
평생 한번도 안보다가 지금 이제 비로소 열번씩이나 본겁니다.
그러니까 평생동안 안하던 것을 이제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나 성공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언제나 성공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는 거는 최악의 어리석음이예요.
부처님께서 정말 하지 말라고 했던, 남들은 호흡관찰을 이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호흡관찰을 못하지? 남들 호흡관찰하는 거를 들어가 봤습니까?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내 호흡을 보면 된다.
그래서요. 너무 막 애쓰고 집착해서 막 기를 쓰고 보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이거 죽비를 한번 보세요. 지금 봤을 때 힘들었습니까? 그냥 보잖아요?
그냥 보는 거죠. 그냥 보지 이게 힘들게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냥 봐야되요. 기를 쓰고 보면 안됩니다.
여러분 명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상기병이 자꾸 오는 이유가
기를 쓰고 집착해서 수행을 해요. 바라면서 수행을 하고 뭔가 이것을 하면 뭔가 확 열릴거야.
뭔가 이거를 하면 뭔가 영감이 팍 떠오를거야.
뭔가 우주법계와 나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것을 체험할거야.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면 집착을 하게 되고 뭔가 바라게 되고
집착하고 바라면 기를 쓰고 하게 되요.
수행은 그리 심각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중도적이지 못한
부처님께서 중도를 말씀하시면서 고행주의를 배격하셨지 않습니까?
고행하면서 두시간 세시간 열시간 앉아 있지 말라고 하셨다 말이예요.
놀이하듯, 놀이하듯 하실 수 있습니다. 수행은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근기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즐겁게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유쾌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호흡을 봐라 보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근기의 사람만 할 수가 있습니까?
호흡을 봐라 보는데 뭐 그렇게 엄청난 것이 필요하겠어요?
그냥 호흡을 쉬고 있구나라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아 내가 지금 이순간 호흡을 쉬고 있구나.
지금의 호흡은 조금 부드러워졌구나. 조금 거칠구나. 그냥 보는 겁니다.
호흡을 보게 되면 저절로 호흡에 집중하니까, 호흡에 집중하니까,
생각이 놓여지겠죠. 생각과 망상이 놓여집니다.
그런데 호흡에 집중하다보면 다시 생각과 망상이 백프로 들어옵니다.
그럴때도 마찬가지로 탓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거니까, 어 왔구나 하고 반갑게 웃어주는 거예요.
너 또 왔지? 너야 뭐 항상 그렇게 왔으니까, 그 탓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게 그 친구의 속성인 겁니다. 생각은 언제나 그냥 그렇게 불쑥불쑥 뜬금없이 찾아오는 겁니다.
아 너가 찾아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면 된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호흡으로 돌아가는 연습.
뭐 어디 보니까, 어떤 책에 보니까, 96%의 생각은 다 쓸모 없는 생각이다.
전혀 바꿀 수도 없는 생각이다. 계획 한다고 해서 그 계획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획해서 그 일을 추진하는 것보다 그 순간에 즉해서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디서 막 아주 훌륭하신 분들이 모여서 아주 저 뭐 사회 저명하신 분들이 모여가지고
뭐 엄청난 무슨 강의료를 준다고 하면서 그 귀한 시간에 와서 이걸 아주 감동있게 해주십시요.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전에 갔었을 때 야 이거 잘해야 되겠구나.
야 이 분들이 귀한 시간을 내 얘기 들으려고 왔고 이렇게 엄청난 뭔가 가지고 왔는데
야 정말 잘해야 되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니까, 뭐 도대체 맨날 하던 얘기 하면 될텐데
뭔 얘기를 해줘야 될지를 모르겠는거예요.
그 한시간 안에 그 엄청난 그 얘기를 해달고 하면서
그러니까 야 참 어떻게 얘기를 해야 이 한시간 안에 정말 이 사람들을 해 줄 수가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생각을 탁 내려놓고 나니까,
그래 내가 뭐 뭘 그렇게 엄청난 얘기를 해 줄 수가 있겠나.
그 시간동안 그냥 탁 내려놓고 났더니만 그냥 편하게 맨날 했던 얘기를 그냥 했단 말이죠.
그래 제가 그래요. 예전에는 일요법회를 할 때도 ppt로 일요법회 준비를 다해서
탁 ppt를 만들어가지고 하나 하나 보여줘 가면서 설법을 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저 딴에는 엄청 열심히 만들고 무슨 동영상도 짤라 갖다 붙이고
사진도 갖다 붙이고 뭐 해서 이렇게 탁탁 멋있게 착착 했단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꼭 그렇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꼭 그렇게 ppt를 하셔야겠습니까? 이거 안해 주실 수 없겠냐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저는 다들 너무 좋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설법을 들어보셨던 분들이 ppt로 하니까,
이게 오히려 인위적이라는 거예요.
다 계산을 해놓고 생각 해놓고 그것을 와서 이렇게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게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를 못하고 그 다음 ppt을 넘어가면 그다음 얘기 시작해야되고
그 다음 ppt 넘어가면 그거 또 시작해야되고 이거 자꾸 분산이 된다는 거예요. 집중이 안되고
그래서 그냥 이 ppt를 탁 내려놓고 하니까 또 좋고 또 한번은
그냥 그날은 어느날 갑자기 질문하시는 분이 계셔서 그날 준비한 것을 이야기 못하고
그 법회 직전에 그 분이 질문 한 것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분이 한 분 더 그거와 관련해 또 질문을 하길래 그 질문에 답변을 드렸어요.
그랬는데 아무 준비 안하고 시작한거였는데, 오히려 저 스스로도 더 집중이 되고 몰입이 되고
또 그 분들도 더 좋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좀 놀랐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때는 오히려 그냥 그냥 그렇다가
별 생각없이 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오히려 더 좋았다고 하니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을 때는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을 때는 그냥 그냥 그랬는데
준비없이 가서 얘기 하니까 더 나을 수도 있구나. 있구나.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획해야지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획하는 대신 그 시간을 조금 더 많이 호흡을 관찰하는데 한번
투자해 보세요. 그렇게 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어디가서 뭘 발표를 하더라도 계획해서 발표하는 것보다
갑자기 그 시간에 몰입이 돼버리면 그 시간에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탁 나타나서
갑자기 그 이야기를 발표를 하게 되었다가 그것이 그것을 주목받아서
갑자기 이렇게 인정을 받고 이런 일이 많습니다. 회사 같은 데서 그런 일이 많다고 그래요.
어떤 프리젠텐이션 자기가 중요한 발표를 해야 되는데 발표를 계획 할 때까지만 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안났던 거예요. 그런데 이거 잘못하면 진급에도 영향이 있고
아 참 힘들다 말이죠. 그런데 그 준비 다 해놓고서는 결과적으로는 좋은 게 안나왔어요.
안나와서 적절히 요 정도만 해야지 하고 어차피 나는 안되는구나 하고 탁 포기를 해버렸어요.
이 분이, 탁 포기를 하고 그냥 준비한 거만 열심히 하자 하고 완전히 내려놓고 나니까,
그 임원들이 있는데 앞에서 다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이렇게 하다 보니까, 리렉스가 되는 거예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놓여지니까, 그냥 쭈욱 보고 하다 보니까, 갑자기 몰입이 되었어요.
그래서 막 보고를 하다 보니까, 갑자기 여기 몰입이 되었는데
갑자기 그 순간에 퍼득이는 아이디어가 탁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실지 않았지만 이러 이러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한마디가 그 ppt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어서
그 사람의 발표가 놀라운 발표가 되었다는 거죠.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계획적으로 생각으로 만들어 냈던 것들은 그러한 것을 만들어 내지를 못해요.
저도 이렇게 설법을 할 때 보면은요.
제가 설법 한 것을 끝나고 제가 이렇게 녹취록을 제 스스로 한번씩 항상 봅니다.
그런데 왜 그려냐하면? 제가 준비해서 했던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렇게 저를 놀라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글을 쓸 때도 그렇구요 어떤 분들이 질문을 해서 거기 답변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그 질문에 답이 탁 떠올라 가지고 답변을 항상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문이 왔는데 막막할 때가 많죠. 제 스스로도
그런데 일단 할 수 있는 답변부터 시작을 하다보면 몰입이 되어서 그냥 저절로 답이 나오는데
나중에 제 스스로 읽어보면 어 내 생각으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답인데 어떻게 이 답을 했지?
하는 때가 항상 대부분 많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제 생각만이 제 생각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제 안에 무한한 창고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다르마의 보고, 불법승 삼보라는 자성삼보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다르마의 보고에서 우리가 어느 한가지 몰입 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그 답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호흡을 관찰하고 집중함으로써 어떤 한가지에 몰입하게 된다면
그것을 일상적으로 꺼내어 쓸 수가 있게 됩니다. 일상적으로 꺼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쓴 글을 보고 나중에 제가 이렇게 죄송합니다~. 재수 없게 해서 (하하하)
제가 쓴 글인데 제가 나중에 깜짝 놀라요. 어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그 글이 항상 보면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제가 썼지만 제가 쓴 글이 아니구나. 아 이거 내가 쓴 글이 아니구나.
나의 아상 나의 에고가 쓴 글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잘했다고 할 게 아무것도 없고,
아 그냥 아 이것이 바로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어떤 이 영감들이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영감들이 몰입을 했을 때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런데 잠깐 호흡을 관찰하고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게 되었을 때.
그런 것들은 더욱 더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생각으로 삶을 꾸려가던 것이 뒤바껴서 영감과 직관이
놀라운 영감과 직관이 나를 끌어가는 힘으로 작용을 한다.
그 접촉점, 나와 근원의 다르마, 근원의 지혜가 나를 이끌고 가게 하는 접촉점,
그게 바로 호흡입니다. 호흡으로 호흡을 통해서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시되 들어올 때 호흡이 들어오는구나, 나갈 때 나가는구나. 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지켜 볼 수 있는지 즉 여러분 하늘을 보면 구름이 떠가죠.
어떨 때는 구름이 많고 어떨 때는 구름이 적고 어떨 때는 구름이 빨리 떠가고
어떨 때는 천천히 떠갑니다. 그런데 그 구름의 바탕은 언제나 파란 하늘 그 자체죠.
먹구름이 뜰 때도 있지만, 그 구름만 왔다 갔다 흘러갈 뿐이지. 하늘은 그대로잖습니까?
그것처럼 여러분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것이 오고 가지만 언제나 그대로다.
우리가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바라보듯이
여러분이 호흡을 관찰하다가 잡념이 일어난다면 웃으면서
그 구름을 관찰하는 것처럼 그 하나의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이렇게 관찰해주세요.
그러면 관찰함과 동시에 그 잡생각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서 호흡을 관찰하는 겁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내 호흡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것을 어떻게 관찰할 수 있는지,
한번 오늘은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그저 내가 들어올 때 나갈 때
관찰할 수 있는지를 먼저 한번 경험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시간부터는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조금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방법들도 한번 알려드리겠어요.
그런데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오늘 한번 경험해 보겠습니다.
네 우리 좌선자세를 하고 앉으시구요.
반가부좌가 만약에 어려우신 분들은요.
한쪽 발을 다른발 허벅지위에 올리는 게 좀 어려우신 분은
한쪽 발을 허벅지 밑으로 내려서 요렇게 바닥에 놓으셔도 괜찮습니다.
평좌도 괜찮다. 그래서 평좌나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나 중에 한가지를 이렇게 취하시구요.
죽비를 세번 치면 오늘은 내가 호흡을 관찰한다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한번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한번 자신의 호흡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호흡을 관찰하다 잡생각이 잡념이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는 연습입니다.
아.. 지금부터 죽비소리에 맞춰서 호흡을 한번 관찰해보겠습니다.
탁, 탁, 탁.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발심수행장·수행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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