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8. 11:2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잡아먹기 전에 한 번 생각을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불교닷컴 강병균 교수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 사라져가는 전통 장터가 나왔다. 포항 인근의 5일장 모습이었다. 한 할머니가 귀여운 강아지를 샀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네 발로 브레이크를 거는 강아지를 목에 줄을 매고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무슨 용도로 사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대답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비실비실 거려서, 자기 몸이 안 좋은 참에 잡아먹으려고 샀다는 것이다. 잡아먹기 전에 미리 대체 강아지를 산 것이었다. 용의주도한 할머니였다. 안 끌려가려고 기를 쓰고 버티는, 팔려가는 강아지는 동족에 대한 이 늙은 암컷 인간의 천견공노(天犬共怒)할 무시무시한 흉계를 눈치채거나 느낀 것일까? 그래서 안 끌려가려고 버틴 것일까? 치료해주거나 보약은 못해줄망정, 잡아먹을 생각을 하다니!
정말 비극적인 일은, 속셈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면 그 비실거리는 개가 아무것도 모르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댈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 직접 확인한 천재적인 개가 있다(YouTube로 시청가능. 개 이름은 ‘체이서 Chaser’이다). 이 개는 1,000개 인형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타이슨이 “Find Monkey(몽키를 찾아와)”라고 명령을 내리면 이 개는 인형더미로 가서 정확이 해당 인형을 찾아 물고 온다(인형에 각각 이름이 적혀있다). 아마 이 개는 1,000개의 음성단어와 1,000개의 (인형)냄새를 둘씩 짝지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타이슨이 개가 전혀 모르는 ‘아인슈타인’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힌 새(新) 인형을 개가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다른 인형 10개와 섞어놓은 다음, 개에게 “Find Einstein(아인슈타인을 찾아와)”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개는 인형들이 놓인 소파 뒤로 가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몰래 카메라로 보면, 개는 여기저기 뒤적거리지만 찾지 못한다. 포기하고 나와서 타이슨을 쳐다본다. 마치 “당신, 명령을 제대로 내린 게 맞아?” 하고 묻는 눈치이다. 재차 타이슨이 같은 명령을 내리자, 타이슨이 실수로 엉뚱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개는 즉시 그 아인슈타인 인형을 물고 나온다. 이름을 아는 인형을 다 골라내고 남은 낯선 (냄새의) 인형이 아인슈타인 인형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확히, 사지선다(四枝選多) 시험을 잘 보는 비결이 아닌가? 추론을 하는 개의 출현이다!
타이슨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똑똑하다고 칭찬을 해주자, 이 개는 아인슈타인 인형을 문 채로 고개를 좌우로 빠르고 힘차게 흔들며 말할 수 없이 기뻐한다. “우하하하! 난 정말 똑똑하다니깐! 난 아인슈타인이야!”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총명함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정말 신기한 개다.
개가, 어느 날 갑자기 잡아먹히더라도, 인간과 같이 사는 이유는 잡아먹히는 날까지 배를 곯지 않고 잘 얻어먹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거지근성을 지닌 늑대들이 음식쓰레기를 얻어먹으려고 인간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개로 진화한 것이다. 이 똑똑한 개 체이서는 거지같은 조상을 두었다는 죄밖에 없다. 더 성능 좋은 컴퓨터(뇌)만 갖춘다면, 즉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노벨상도 문제없어 보인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떤 개든지 잡아먹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죽는 순간 개들이 원망할지 모른다.
“잠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요. 맨날 ‘어이 똥개 워리워리’만 했지, 해준 게 뭐 있어요? 저도 제대로 교육만 시켜줘 보세요. 1,000개는 몰라도 100개 인형이름 기억은 문제없다니까요” 하고 불평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체이서의 놀라운 능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의 동족들이 그리 생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개가 음식과 돌연사(突然死)를 맞바꾸는 것은 인간도 다를 바가 없다. 인간도 아름다움, 젊음, 사랑, 학문, 능력, 이념, 사상, 인생관, 양심, 의리를 권력이나 부와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개가 음식을 탐내다 결국은 음식이 되는 것처럼, 인간도 그릇되고 비열하게 부와 권력을 탐내다 마침내 그릇되고 비열한 부와 권력이 되고 만다.
몽테뉴 성의 지혜로운 영주이자 위대한 수필가인 몽테뉴는, 일찍이 400년 전에, 다른 개도 이 똑똑한 개 체이서(Chaser)가 보유한 추론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크와 ‘박물지’의 저자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동물우화가 있다. (무대를 조금 각색했다.) 주인과 같이 제주도 오름을 산책하던 개가 딴짓을 하다가 그만 주인을 놓쳤다. 주인이 남긴 냄새를 추적해서 주인을 찾아가던 개가 세커림질(세 갈래 길)에 당도했다. 왼쪽 길을 킁킁거리며 가더니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가운데 길로 킁킁거리며 가더니 다시 돌아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전혀 킁킁거리지 않고 쏜살같이 오른쪽 길로 달려갔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개가 오른쪽 길에서는 전혀 냄새를 맡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몽테뉴는 이 우화의 개가 삼단논법적인 추론능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개의 삼단논법은 다음과 같다.
1. 주인은 세커림질 중 한 길로 갔다. 2. 주인은 왼쪽 길과 가운데 길로 가지 않았다(왜냐하면 주인의 냄새가 없으므로). 3. 따라서 주인은 오른쪽 길로 간 것이 틀림없다(그래서 냄새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체이서는 우화에 등장하는 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위대한 개다. 몽테뉴가 논증한 바와 같이, 체이서는 개가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세계적인 천문학자 타이슨으로부터 직접 검증을 받았다. 이 개는 전설적인 영웅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서 모든 개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대 위업을 이룩했다.
그러므로 개를 잡아먹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정말 꼭 이 지성적인 동물을 잡아먹어야 하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복(伏)날이 가까워 온다.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을 바치는 견공(犬公)들의 운명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불볕더위에 뜨거운 가마솥으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
예전 개들의 운명은 정말로 비참했다. ‘복날 개 패듯’, ‘복날 개 잡듯’, ‘복날 개 맞듯’이라는 야만적인 표현들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입맛을 다시며 가하는 사내들의 몽둥이찜질에 산채로 맞아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비명을 지르다 혀를 길게 빼물고 죽었다. 그렇게 몽둥이찜질을 한 이유가 허망하다. 그래야 더 맛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흔히 벌어졌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체이서로 인하여 견권(犬權)이 획기적으로 신장되기를 기원한다.
무엇이든 얻어먹는 자의 운명은 비참하다(인간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인간주위를 얼씬거리다가 비명횡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얻어먹은 것을 자기 살과 뼈로 다 갚는 것이다. 중생계의 비정한 계산이다. (개에 대한 우화는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 259쪽에서 인용)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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