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 16:0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사폭류(四暴流) • 사연(四緣) • 사취(四取) • 사념처(四念處) • 사정근(四正勤)
사폭류(四暴流)
폭류는 모든 선(善)을 떠내려 보낸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1) 욕폭류(欲暴流) : 욕계에서 일으키는 탐(貪)·진(瞋)·만(慢)·의(疑) 등의 번뇌.
(2) 유폭류(有暴流) : 색계·무색계에서 일으키는 탐(貪)·만(慢)·의(疑) 등의 번뇌.
(3) 견폭류(見暴流) : 욕계·색계·무색계에서 일으키는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 등의 그릇된 견해.
(4) 무명폭류(無明暴流) : 욕계·색계·무색계에서 일으키는 치(癡)의 번뇌.
* 탐(貪) : 탐욕(貪欲)으로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탐내는 마음. 오욕(五欲) : 재물(財物)•색(色 : 性)•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 진(瞋) : 진에(瞋恚)로 자기 의사에 어그러짐에 대하여 성내는 일. 진심(嗔心).
* 치(痴) : 우치(愚癡)로 현상을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무명(無明)과 같음.
* 만(慢) : 나를 믿고 스스로 높다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거만하고 오만한 마음.
* 의(疑) : 의심하는 마음.
* 유신견(有身見) :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고, 또 오온은 자아의 소유라는 그릇된 견해.
* 사견(邪見) : 삿된 견해, 바르지 못한 견해이다. 집착된 견해이며, 정견(正見)의 반대말이다. 자신도 모르며 아는 체 남을 속이는 것이다.
* 견취견(見取見) :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 계금취견(戒禁取見) :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 변집견(邊執見) : 극단으로 치우친 견해.
사연(四緣)
[ 1 ] 육식(六識)의 발생을 바탕으로 하여 원인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
(1) 인연(因緣) : 육식이 의존하고 있는 육근(六根)을 말함.
(2) 등무간연(等無間緣) : 육식에 의해 식별된 전후 두 현상이 동등하게 끊임없이 생멸하는 관계에서 전 현상을 말함.
(3) 소연연(所緣緣) : 육식의 대상이 되는 육경(六境)을 말함.
(4) 증상연(增上緣) : 육근과 육경, 곧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 2 ] 인식 주관의 네 가지 지향 작용.
(1) 인연(因緣)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 곧 인(因)을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작용.
(2) 등무간연(等無間緣) :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작용.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서 다음 생각으로 연결시켜 주는 작용.
(3) 소연연(所緣緣) : 바깥 대상을 인식 주관으로 끌어들여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작용.
(4) 증상연(增上緣) : 인식 주관에 들어온 대상을 분석하고 분별하는 작용.
사취(四取)
취(取) : 12연기(十二緣起,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의 하나. 싫어하는 것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취하는 취사선택의 행동이다. 생존을 반복해 나가는 원동력인 유는 무엇으로 인하여 형성되는가? 이 유가 있게 된 원인을 탐구하여 발견된 것이 `취(取)`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취란 `취착(取着)` 혹은 `집취(執取)`의 의미인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이것이 네 가지로 성립되어 있다고 설합니다. 그 네 가지란 욕취(欲取)·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아어취(我語取)인데, 바로 이 네 종류의 취로 말미암아 업을 짓고 유가 축적되어 생(生)이 거듭되는 것입니다.
(1) 욕취(欲取)
: 욕취란 다섯 가지 욕망(五欲)을 탐하여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가지 욕망이란 이른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인 눈·귀·코·혀·신체가 그 대상이 되는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각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다섯 가지의 욕심인 빛깔에 대한 욕망(色欲)·소리에 대한 욕망(聲欲)·냄새에 대한 욕망(香欲)·맛에 대한 욕망(味欲)·촉각에 대한 욕망(觸欲)입니다. 이러한 욕망들은 좋은 것만을 추구하고 거슬리는 것은 거부하며, 또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다섯 가지 욕망의 근원인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제어함이 바로 수행입니다. 만약 이 다섯 가지를 제멋대로 놓아버리면,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우리들의 현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제24>에서는 이 구체적인 욕망활동의 형태를 역시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른바 재물에 대한 욕망(財欲)과 이성(異性)에 대한 욕구(色欲)와 음식물에 대한 욕심(飮食欲)과 명예를 추구하는 욕망(名欲)과 수면에 대한 욕구(睡眠欲)의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의 끝없는 추구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사항이고, 따라서 이것의 탐착에 의해 우리들은 업을 짓고 유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2) 견취(見取)
: 견취란 견(見)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견이란 생각이라든가 견해 혹은 사상을 일컫는 말로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사상적 이데올르기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한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하는 무견(無見), 자신이 사후에 상주한다고 하는 유견(有見), 인과의 도리는 없다고 하는 사견(邪見) 등도 견에 포함됩니다. 나아가 신체를 자기라고 보는 유신견(有身見)이 있습니다. 이러한 견에 집착하는 것이 견취입니다.
이 외에도 견취에는 자기 종교나 혹은 자기가 믿는 사상적 이데올르기를 절대적인 진리라고 신봉하여 타인의 그것을 배격하는 습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믿는 종교가 따로 있는가 하면,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신조에도 가지각색이 있습니다. 때문에 각자에 맞는 신조는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약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여 자기의 종교나 이념이야말로 유일절대라고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국가 간에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싸움은 진리와 진리의 대결이 되기 때문에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결국 물리적으로 힘이 샌 자가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의 우열을 폭력으로 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합니다.
타인의 종교를 능멸하여 자기 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전쟁에 호소한 예는 세계역사상 특히 서양 사회에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전쟁에 호소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아 종교 본연의 자세라고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종교의 탈을 쓴 폭력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 종교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전 세계를 자기의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세계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종교는 적은 것 같고, 그 때문에 세계에는 끊임없이 종교에 바탕을 둔 전쟁이 일어납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종교전쟁을 하지 않은 유일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능력에 따라 각자의 견해가 다른 것을 부처님은 용인하였고, 따라서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린다`라고 하는 견해에 떨어지지 말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견취`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큰 약점임과 동시에 업을 짓는 원인이 됩니다.
(3) 계금취(戒禁取)
: 계금취란 잘못된 수행방법에 집착함을 말합니다. 즉 원인과 도(道)가 아닌 것을 원인과 도라고 집착하여 거기에 따라 수행하는 고집입니다. 그 가운데는 세상의 원인이 창조주에 있다고 하는 견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깨달음의 수행을 위해서 물 속에 들어가거나 불에 몸을 던지는 삿된 고행이 행해졌는가 하면,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소나 개가 하는 짓이 행해졌다. 소처럼 풀을 먹고, 개처럼 똥을 먹는 것이 청정을 얻는 방법이라고 고집했다. 이러한 틀린 수행법은 지금도 일부에서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창조주가 세상의 원인이라면 인간으로서는 할 일이 없어집니다. 물 속에 오래 있는 것이 깨달음의 길이라면 개구리는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다만 오래 앉아있는 것이 선정을 얻는 방법이라면 산 기슭의 바위는 벌써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자명해지는 것을 어리석음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가르침과 수행법에 집착하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빗겨가고 있습니다.
(4) 아어취(我語取)
: 아어취란 언어로써 표현된 `자아(自我)`에 취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곧잘 `나(我)`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신체처럼 명료한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들은 마음 가운데 어떤 것을 나라고 상정해서 그것을 언어로써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언어로써 표현된 자아가 그대로 실재한다고 집착하고, 거기에 따른 자기 것에 탐착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번뇌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한 자아가 그대로 실재한다고 하는 증거는 없습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자아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보면, 마음은 무상하여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아가 생멸하지 않고 실재한다고 하면 무상한 마음과 실재하는 자아는 분리하는 것이 되고, 관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역으로 만약 자아가 마음의 영향을 입어서 고락을 느끼고 변화한다면, 그것은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이해한 대로 자아가 그처럼 마음 가운데에 실재한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자아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언어로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중생은 이상의 네 가지 취에 의해서 업을 짓습니다. 때문에 취가 있는 한 업은 계속되고, 유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 까닭에 경에서는 `취로 말미암아 유가 있습니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사념처(四念處)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네 가지 수행법.
깨달음을 얻고 지혜를 얻기 위한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첫번째 수행 방법이다. 사념주(四念住)·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하며, 자신의 몸[身]과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의 세 가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념처(身念處)·수념처(受念處)·심념처(心念處)·법념처(法念處)의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신념처(身念處)
: 자신의 몸과 관련된 현상, 즉 호흡·동작 등을 관찰하여 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몸 안팎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육신은 죽어서 썩을 부정(不淨)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2) 수념처(受念處)
: 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감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깨달아 음행·자녀·재물 등의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3) 심념처(心念處)
: 마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 있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다면 욕심이 없는 참뜻을 알아 모든 마음의 참뜻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4) 법념처(法念處)
: 정신적 대상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앞의 세 가지 외에는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통하여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하여 깨닫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수행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여 어느 하나만이라도 성취하면 곧 해탈하여 궁극적으로 아라한과를 얻거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괴로움을 없애고, 나쁜 법을 없애고, 바른 법의 이익을 얻게 하니, 그것이 곧 사념처’라 하였다. 석가모니가 개발한 비파사나 수행법의 한 부류로서, 주로 남방불교 승려들이 사용한다.
사정근(四正勤, 사단의四斷意, 사의념단四意念斷, 사의단四意斷, 사정단四正斷, 사정승四正勝)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네 가지 바른 노력.
(1) 단단(斷斷) :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함.
(2) 율의단(律儀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함.
(3) 수호단(隨護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함.
(4) 수단(修斷, 수소단修所斷) :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 이 각각을 단(斷)이라 일컫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나태함과 나쁜 행위를 끊을 수 있기 때문임.
*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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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안걸리게 뇌를 보호하는 방법
평소 사리에 밝고 총명하셨던
78세의 저희 어머니께서 약 3년 전부터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민하고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성격으로
체격은 왜소하고 위장이 약합니다.
혈압약을 복용하신 지는 4년쯤 되었고
당뇨나 고지혈증은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의사인 아버지께서
입원실이 많은 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그 때는
연탄불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각 입원실마다 연탄을 손수 갈면서
독한 연탄가스를 많이 마셨다고 하는데
특별한 사고는 없었습니다.
재작년쯤
버스 타고 집으로 오는데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 생소하게 느껴졌답니다.
모 대학병원에서
치매검사와 MRI검사 결과
경도인지장애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로 넘어가는 단계이고
해마가 약해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치매약을 드시고 있습니다.
요즘 어머니의 상태는
시간을 잘 모르고
계절도 정확하게 모르고
방금 한 일을 잘 잊어버립니다.
혼자서도
가까운 곳은 다니시지만
집주소를 외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고치기 어렵고
단지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치매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치매치료를 받고 있는 뇌의 평면 MRI./조선일보DB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사회활동하고,
술 담배 멀리하고,
타성에 젖어 편안하게 살기보다
새로운 일을 찾아
불편을 극복하면서 살고,
매일을 반성하면서 살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치매예방 생활수칙을 지키는 것은
치매환자의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잘 먹고 잘 자야 합니다.
부자가 점심값으로
매일 만 원씩 지출한다 해도
부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되겠지요.
치매는
뇌세포라는 돈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매일
뇌세포라는 돈이 많이 빠져나가면
가난한 뇌는 부자 뇌에 비해
돈이 적으므로
금방 뇌가 나빠지는 표가 납니다.
치매환자에게는
뇌세포의 적은 손실도 금방 표시가 납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잘 잘 때보다
뇌세포의 손상이 심해지므로
음식 값을 평소보다 많이 내는 꼴이고,
잘 먹지 못하고
탈수가 생기거나 영양결핍이 되어도
뇌세포가 잘 손상되므로
가난한 뇌에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치매환자가
하룻밤을 설치거나
장염이나 몸살을 앓게 되어
식사가 부실해지면
생각보다 훨씬 심한 정도로
치매가 나빠집니다.
물론
많이 자는 것이
잘 자는 것은 아니고
많이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은 아니지요.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치매환자는
매일 잘 짜여 진 스케줄에 따라
많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활동은
꼭 바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에서도
사회생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 보다
환자와 많은 대화를 해 주고
같이 놀아주는 것도 사회생활입니다.
치매환자가
술 담배를 하거나
새로운 일을 극복하게 하거나
매일을 반성하면서
살게 하기는 어렵겠지요.
뇌에 충격이
많이 가해지는 권투선수에게는
외형상으로 뇌진탕이나
뇌 타박이 발생되기도 하지요.
회복되고 나면
특별한 후유증 없이 살 수도 있지만
일부의 경우
나이 들면서 치매나
파킨슨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뇌세포의 미세손상으로
뇌세포의 수명이
단축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연탄가스 같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정도가 심하면
치매가 바로 오거나
때로는 회복되다 약 1개월 쯤
갑자기 치매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라도
권투선수에게 오는 치매처럼
뇌세포의 미세 손상을
일으킬 정도의 중독이 되었다면
나이 들면서 치매가
올 수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물리적 충격이나 가스중독,
과다한 음주로 뇌를 골탕 먹이면
뇌는 골병이 들고
나이 들면서 골병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뇌를 힘들게 할 정도로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체를
보하는 것 이상으로
뇌를
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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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조선일보. 김철수.[동네병원의사 김철수의 예쁜 치매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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