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순선시대純禪時代*)/청화큰스님

2015. 5. 1. 17: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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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순선시대純禪時代*)

청화큰스님

 


 

   달마대사(達磨大師, ?~528)로부터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

,638~713)까지를 통칭(通稱)하여 순선시대(純禪時代)* 하는데, 그것은

달마대사(達磨大)의 친찬(親撰)이라는 『소실육문(少室六門)』의 「이

입사행(二入四行)」의 법문(法門)이나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부터

삼조승찬대사(三祖僧璨大師, ?~606)의 『신심명(信心銘)』을 거쳐 사조

(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

便法門)』과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의 『수심요론(修心

要論)』과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師)『육조단경(六祖壇經)』에 이

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자성(自性-자기본성己本性 진여불성眞如佛

)에 온전히 귀의(歸依)함을 간곡심절(懇曲心切)게 역설(力說)하고 있

는 것이다. 



   특()히 단경(壇經)에서는 자성(自性)ㆍ불성(佛性)이란 표현(表現)을

황본(煌本)에는 팔십여(八十余)번, 유통본(流通本-덕이본德異종보

宗寶本)에는 백여(百余) 번이나 되풀이 강조(强調)하였는데, 혜능대사

(惠能大師)께서는 귀의삼신불(歸依三身佛) 설할 때 대중(大衆)들에게 혜

능대사(惠能大師) 자기(自己) 입[,]을 따라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에 귀의(歸依)하고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에 귀의(歸依)하고 천백억화신

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歸依)합니다.』를 세 번씩 삼창(三唱)을 되풀이

하도록 하여 제각기(各己) 자기자성(自己自性)을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는

열화(烈火)같은 투철한 서원(誓願)으로 대중(大衆)으로 하여금 깊은 감분

정진(感奮精進)을 다짐케 하였다.

 

   이렇듯 자성불(自性佛) 신앙(信仰)이 확립(確立)되면 필수적(必須的)으

자성(自性)을 깨닫는 수행(修行)을 결행(決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출처; 육조단경 해제 중 2.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


 

 

 

 

 

*청화큰스님께서 언급한 순선시대純禪時代에 대하여-경주

 

청화큰스님께서는 법문 중에 순선시대純禪時代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청화큰스님께서 순선시대라는 용어를 쓰신 예에 의거해 아래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 청화큰스님의 순선시대純禪時代가 지칭하는 시기; 윗글을 비롯한 여러 법문에서 달마대사에서 6조 혜능대사까지의 시대를 순선시대라고 하였다.

 

2. 순선시대純禪時代의 유래; 윗글에서 ‘---통칭(通稱)하여---’라는 표현을 쓰셨다.

학자로서 논문을 쓰신 것이 아니므로 용어가 사용된 전거를 거론하실 필요는 없으셨을 것으로 사료되며, 법문 중에 말씀하신 것으로 통칭하여라는 표현은 큰스님께서 임의로 조어(造語)한 것이 아니고, 이미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3. 청화큰스님의 순선의 정의; 청화큰스님께서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 바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으나, 윗글에 의해 정의를 추출해보면, ‘자성불(自性佛) 신앙(信仰)을 확립(確立)하여 필수적(必須的)으로 자성(自性)을 깨닫는 수행(修行)을 결행(決行)하는 선임을 유추할 수 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 남편에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 남편에게 제 남편은 새벽을 달리는 화물트럭 운전기사 입니다. 눈 비비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누룽지밥을 먹고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싸가지고 매일 12시간이 넘도록 운전대 앞에 앉아 운전을 하는 힘든 삶을 하는 남편입니다. 그러나 늘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아이가 둘이나 생긴 행복남이라고 외침니다. 부부란 이름으로 함께 시작한지 2년이 좀 넘은 늦까기 마흔살의 부부랍니다. 둘 모두 한번의 아픈기억을 갖고 시작한 저희들이기에 남들의 따가운 시선에 서로의 각오가 남달랐죠. 지금 초등학생인 제 딸아이를 남편이 데려오라고 하여 작년부터 데려와 키우고 있는데 그 때 남편에게 느꼈던 미안, 아니 고마운 마음에 흘린 눈물은 말로 할수 없답니다 그런데 최근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느끼게 할 또 하나의 엄청난 일이 생겼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데리고 있는 딸 외에 아들이 한명 더 있는데 아들의 아빠가 재혼을 하였는데 같이 지낸지 5개월이 된 지금 아들이 새엄마에게 맞아 아동학대라는 기막힌 사연으로 현재 보육시설에 가있답니다. 아이는 현재 아빠에게 가기 싫다며 저에게 데리고 가달라고 울부짖고 아들의 아빠 또한 아이를 키울수 없다고 합니다. 전 결국 지금의 남편에게 이 모든 사실을 얘기하게 되었고... 남편은 며칠동안의 고민끝에 힘들고 어려운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결정을 내려 주었어요. "그 어린애가 무슨 잘못이냐.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지말고 우리가 데리고 오자. 그리곤 아들녀석도 딸아이처럼 최선을 다해 키워보자. 친자식처럼 내가 열심히 키우도록 노력할께" 남편이 이렇게 결정을 내려준 덕분에 이번 주말에 아들을 데리러 보육시설에 가기로 하였답니다. 제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길가에 핀 이름모를 들꽃도 아니 잡초들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정말 고맙고, 제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아니 우리의 자식으로 이쁘게 키워줄 우리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저녘, 지쳐 돌아올 남편을 위해 따끈한 김치찌개와 소주한잔을 준비할랍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갈 우리가정을 위해 화이팅을 외쳐 주세요 . . . 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