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 청담스님

2015. 6. 14. 18: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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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 청담스님

 

 

우리가 꿈에서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소위  현실이라는 것도 그대로 꿈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생시가 바로 꿈이라고 하면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대들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 꿈(생시)이 영원한 꿈인데도 꿈인 줄 모르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똑같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연애해 가지고 아들딸 낳아서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또 장가들이고 시집보내서 손자를 보고 하여 잘 산다.

이처럼 우리가 꿈속에서 겪는 세계나  생시의 일들이 너무도 같기 때문에

 그 꿈을 깨기 전까지는 그게 꿈인 줄 모르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태양이 있고 지구가 있고, 산소 수소가 있으며 온 우주가 다 거기있다,

 꿈에서도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고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날씨가 차고 더우며

어린애들 낳아서 키워보면 어려서부터 점점 자라서 커간다.

그러니 아러한 것을  어떻게 꿈인 줄로 알 수 있는냐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꿈을 깨어볼라치면 시간은 불과 몇 분도 채 안된다.

 
인생이 꿈같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꿈이다. 꿈으로 한 일,

 그게 사실로 한게 아니고 모두 거짓말로 한 것이다. 성불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다.

성불 아닌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불했다는 말이 있는 거지 성불해야겠다는 말까지도 그게 꿈이다.

정말  실상자리에서 보면 제대로 되있으니 꿈꿀 사람도 없다.
 
사람이  자는 시간도 대체로 하룻밤에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이므로

 내가 잠이 든 전시간 동안에 꿈을 꾸었다고 해도 여덟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 들어가서는 여덟 시간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잠자는 동안 꿈속에서 경험한 시간은 닷새 사는 때도 있고 한  달 사는 때,

한 해 사는 때,몇 해 사는 때 까딱 잘못하면 한평생을 사는 때도 있다.

그러니까 밤을 새워가며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여덟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꿈에 들어 가서는 일평생이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루나 반나절 꿈도 꾸지마는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나절 꿈도 꾸지마는 저녁마다 일평생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이므로

생시에 반 시간보다 꿈 속에서 사는 시간이 훨씬 더 많게 된다.

 
꿈과 현실이  똑같은 것은 다 한마음이 세계이기 때문이다.

 꿈을 꿀 때에도 이 몸뚱이 처자 재산을  다 그대로 놓아두고 마음만 나아가서 꿈세계를 창조헤 놓는다.

꿈울  깰 때에도 꿈 속에 있던 몸뚱이 재산 처자를 만들어서 꿈하고 똑같은 세계를 만든다.

 
꿈만 꿈이 아니라 꿈 아닌 것도 꿈이다. 망상은 꿈을 이룬다.

 이것은 곧, 주관은 객관을  조화한다는 실증을 말하는  것이다.

주관밖에 개관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주관이 곧 객관이며 객관이 곧 주관이다.

뜨겁고 찬 것이 불과 물에 있을 수 없다. 주객이 둘이 아니므로 

 우리의 인식밖에 기둥과 기둥이 있을 수 없으며 기둥과 기둥의 모양 밖에 인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주관을 쉬어버린 때에는 객관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을 쉰 이 청정한 본래의 마음법에는기둥도 기둥 모양도 없다.

 그러므로 저 기둥 한가지를 볼 때에는 곧 기둥이 나타나는 이치와

그 기둥을 나타낸 이 마음의 본연면목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이 저 만물을 다루면 된다.

 꿈이 아무리 헛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을 깨기 전에는

꼼짝없이 사실인 고와 낙을 받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을 깨치지 못한 종생들을

업습에서 일어나는 천당 지옥의 꿈을 벗어날  길이 없다.

꿈에서 죽고 꿈에서 태어난다.

 
우리 승려들은 꿈이 없다는 소리를 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중 노릇을 제대로 하는 수자들은 꿈이 없다.

 또 대인들, 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들도  확실히 꿈이 적다.

수양이 되면 마음이  비어서 번뇌망상이 적으므로  꿈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낮꿈은 평생  살아봐도 70년, 80년밖에 안된다.

 그것도 잠자는 시간, 병 앓는 시간 다 빼고 나면 몇 십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밤꿈은 몇 백년 몇 천년을 산다.

따라서 생시는 얼마 안되는 시간을 산 것이고 밤꿈은 낮꿈의  몇 배, 몇 십배를 더 사는 결과가 되므로

정말 꿈은 밤꿈이 아니라 생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밤꿈에만 우주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깬 낮꿈에도 우주를 창조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꿈이라고 하면 낮꿈 밤꿈이 다 꿈이다.

밤 낮 금생 내생이 다 꿈인데 이 꿈 가운데  꿈이 아닌 것은 꿈을 꾸고

우주를 창조해 내는 우리의 마음뿐이다.

 밤꿈에는 이 마음 이대로이고, 낮꿈에 더 이 마음 이대로이다.

그런데 생각은 그  때 그때 환경에 따라서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 라고 느낀다. 

 생각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만 추우면 추운지 알고, 더우면 더운지 아는 이 마음은 불변의 나다.

생사의 변천이 없고  질량의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이 나는 모든 지식의 주체인데, 

이 마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지가지고 큰 것은 크다, 작은 것은 작다고 하는 것이다.

육신도 마음이 만든 피조물인데 중생들이 육신을 주인으로,

 마음을  육신의 종으로 삼아서 주객을 뒤엎고 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주관 대 객관으로 벌어져 있는 이 우주와 인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을 다루려고 드는 통에

 온 우주의 주인공인 유아독존의 자아가 깜빡하는 순간에

도리어 창해일속으로 한 개의 적은 육체의 인간으로 전락되어서

이 생사대몽을 이루어서 윤회와 인과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안생이 사는 것도 꿈이요, 죽는 것도 또한 꿈이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고통이나 괴로움은 단지 나의 진실에 반해서 살지 말라는 경고임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삶의 진정성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 때도 무르익지 않았고 나도 그럴 준비가 안 되었음을 알면서 누군가에게 나의 바람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체면을 손상하는 것인지 알았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자존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른 삶을 동경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이 성장을 위한 격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성숙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언제 어떤 일에서나 올바른 시간과 공간에 서 있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때부터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자존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건강에 해로운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 음식, 사람, 사물, 상황 등. 나 자신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나를 끌어내리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건전한 이기주의'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나는 그것이 자기애라는 것을 안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겨가며 미래를 위해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일을 멈추었다. 요즘은 재미있고 즐겁고 좋고 가슴에 웃음을 선사하는 일만을 본래의 내 방식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춘다.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성실성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언제나 올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을 중단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방황이 줄어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삶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계속 과거 속에 살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현재 나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이 순간, 생존할 뿐이다. 나는 요즘 매일같이 이렇게 살며 그것을 완전한 삶이라고 부른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생각이 불쌍하고 병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자석의 힘을 요구했을 때, 이성에게 중요한 파트너가 생겼다. 이 결합을 나는 요즘 마음의 지혜라고 부른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대립이나 갈등, 문젯거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별들도 떨어져 나가서 흔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그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찰리 채프린 - 희망을 가진 자의 행복 만일 우리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 해 보자. 인간의 삶을 고통스런 바다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삶이란 괴로운 것이란 뜻이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내일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괴로움과 좌절과 실패를 극복 해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시인은 "우리의 생활이 뼈에 사무치도록 슬퍼도 좋다. 우리는 푸른 들길에 서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그리움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슬픈 짐승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내 마음을 살찌우는 소중한 비타민--
      You Mean Everything To Me - Neil Sed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