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일어나 춤을 추니 / 진묵(震黙) 대사

2015. 6. 26. 11: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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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일어나 춤을 추니 /  진묵(震黙) 대사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고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 삼고 구름을 병풍 삼고 바다를 술통 삼아

크게 취하여 슬그머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되노라.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천금지석산위침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대취거연잉기무    각혐장수괘곤륜

 

 

도를 닦는 사람들은 겁이 없다. 걸릴 것도 없다.

언어를 사용하되 언어의 장벽에 걸리지 않는다. 활달무애하다.

이것이 또한 선기(禪氣)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글의 주인공 진묵(震黙, 1562~1633) 대사는 살기도 그렇게 살았다.

온갖 일화가 많다. 파격적이며 그릇이 얼마나 큰지 모를 정도로 걸출한 선승이었다.

신통력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이 마음이 얼마나 크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고 산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가. 따로 집이 있을 리 없다.


 스님은 평소에 곡차(술)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한다.

그의 술자리에는 달이 촛불이 되고 구름이 병풍이 된다.

바다는 그의 술동이가 된다. 한껏 마시고 대취하면 슬며시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춘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는 그만이 안다.


행여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하늘을 날며 춤을 추는 옷자락이

저 높은 곤륜산에 걸릴까 하는 것이다.

그토록 큰 그릇인데도 마음에 염려가 되는 진묵 스님의 곤륜산은 무엇이었을까.

선심(禪心)은 그냥 툭 터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한 점 여린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는 것이 또한

선자(禪者)의 선자다운 매력이기도 하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나무아미타불 음악과이미지 

행운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을 때 찾아오고

 

날마다 범사에 감사하시면 복이 온답니다.

 

 

      삶은 기다림이 아니라 다가감이다 항상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분해해서 확인하고 조립하듯 생각을 하고, 그것을, "이래도 되나?"를 거듭 묻곤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것이 인간이다. 오늘도 정신이 멍해지는 문제에 대해서,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호소하며, 어떻게 하면 정신이 맑아질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것 이었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규칙적이고 리듬감이 살아있는 생활 습관을 들이는 것 임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충분해진 후에나 일하는 것이 아니고, 노력을 하면서 일도 찿아서 하고, 또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배일 것 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될까요?" "일을 하면 의식이 명료해지고, 일을 잘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묻는 것 이었다. 모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다음에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지,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면서 머뭇거리는 것 이었다. 준비를 갖추고 난 후에 하는 일도 있지만, 숨 쉬면서 밥 먹듯이, 동시에 해 나가면서 조율하는 일도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계속 보이고 있는 것이, "될까요?"라는 질문과 불안함이었다. 생존은 되는 것 이지만, 사는 것은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생존은 의지의 산물이 아닌 것 이고, 사는 것은 의지의 산물인 것이 아닐까? 될 수 있으니까 사는 것이 아니고, 될 수 있다 되게 끔 노력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삶은 광야에서 길 가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있는 길, 나 있는 길, 준비된 길을 찿아서, 그 길을 그냥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길 없는 광야에서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길이 없으면 길을만들어서라도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분명히 잡고, 계속 그 목표를 놓치지 않고 붙잡고 나아가면, 언젠가 소망하던 곳에 이르겠지만, 목표에 도달해야 삶이라기 보다는,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은 기다림이 아니라, 다가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