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 이모저모 / 서경보스님

2015. 7. 18. 13: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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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편지지..18(사랑스런)

해탈의 이모저모 / 서경보스님 

 

우리나라에는 옛날에 금강산에 율봉선사라는 유명한 스님이계셨다 ,

그 스님이 볼일이 있었서 서울로 오게 되였다. 동대문밖에 이르렀을때 

어느 양반집 아이들이 큰 길가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것을 봤다 . 

 

율봉선사는 멀리서 부터 그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슬슬 기어가다시피 하며

'소승 문안드립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승려를 천시하는 때 였다. 때마침 심술궂은  한 양반집 소년이

무슨 인사가 그 모양이냐 하며 발길로 스님을 찼다. 

 

스님은 미나리 강으로 뒹굴어 떨어졌고, 소년의 신도 발길질하는 바람에

미나리 강에 빠졌다.

스님은 손자같은 그들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이 발길질한 소년의

가죽신을 얼른 건져서 자기 옷으로 물을 닦아 그 아이 앞으로 가서 말했다. 

 

 " 이 노승이야 다 죽게된 목숨이니 아무리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서방님의 발이나 다치지 아니하셨습니까? " 하며 신을 신겨 주었다.

그 한말에 소년은 감화가 되었다.

세력이혼천동지 하던 김대감이란 사람이 바로 이 소년이 였는데,

그는 그뒤에 스님을 찾아 사과하고 각별한 대접으로 존중하였으며

금강산의 절일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또 옛날 우리나라에 학산 스님이라는 고승이 계셨다.

그 스님을 신봉하는 신자가 염불양식이나 하라고 십여 두락의 논을

사드렸다 .그 뒤에 소작을 주어 도지를 가져오면

갖다주는대로 받을뿐 적은데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는일이 없었다.

 

소작인은 그 스님이 무욕담박한 도인스님으로 알기때문에

갇다주고 싶은대로 가지고 갈 뿐이었다.

마음이 내키면 얼마를 더 가지고 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3분의 1도 가지고 가지 아니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스님의 상좌들이 보니까 너무 하는것 같아서

타작하는 마장에서 반씩 갈라오기로 했다.그러나 소작인들이

벼 7,8말을 헤여담고도 한 섬이라고 속이기가 일쑤였다.

어느 해는 상좌들이 큰스님이 보시는데

말로 되어 담게하면 나을까 싶어 억지로 스님을 모시고 갔다.

 

벼 타작을 다하고 섬속에 말로 되어 담는데 보통 다섯말 정도를 빼고 담는다.

그러나 스님은 지장자 지팡이를 짚고 서서 먼 산 만 바라보고 선정에 들어있다.

상좌들이 이꼴을 볼수가 없어서 ,

"스님 저 소작인들이 말을 건너뛰어 불러서 한 섬이란게 여덞말도 담지 않는데

스님은 어찌 현장에 오셔서도 모른체 하십니까? "  하고 화를 내며 원망을 했다,

그러나 스님은, "" 이놈이 먹으나 네놈이 먹으나

그놈이 먹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고 하시는것이 아닌가

 

또 강원도 금강산 신계사 보광암에 나응스님이라는 대덕이 계셨다.

신자들이 그 스님을 위하여 논몇 섬지기를 염불양식으로 사드렸다.

그러나 스님은 소작인에게 3분의 1의 추수를 못하고 있었는데 봄이되면

다른동리 사람들이 와서 처자식을 데리고 농사가 없이 살수가 없으니

그 논을 떼어달라고 애원했다.그 말을 들은 노장님은 즉석에서 허락을 했다.

또 다른사람이 와서 역시 살기가 여려우니 소작을 떼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한다.

 

 이렇게 몇사람이나 와서 애원하면 또 그렇게 하라고 주어 버리곤했다.

그래서 정작  농사철이 되어서 일을할려고 할때 서로 노장님께서

논을 얻었다고 하는 소작인이 몇인지를 셀수가 없게 되였다.

그들은 싸우다 못하여 관가에 소송을 하기로 했다 .

 

 군수가 노장님을 불러서 문초 한즉,누가 하든지 소작료를 갖다

주지않기는 마찬가지니까 누가와서 달하고 하면 없는 사람들 끼리

서로 지어 먹으라고  그와 같이 허락했다는 것이었다.

 

군수가 껄껄 웃고  ' 과연 도인스님이군 ' 하고 먼저 하던 사람이

다시 맡아 하라고 판가름을 한후 열섬을 추수하면  한 두섬의

쌀이라도 갖다드리고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 

 

이상에 든 이야기는 물욕에 해탈한 사람이 아니면 될 수가 없는 일이고 ,

무심도인이 아니면 들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불교경전을 보면  " 반야개공 ,일체개공 " 이라는 말이 있다 .

이는 마음가운데에 집착이 없는 해탈의 경지를 가리킨다 .

이것이 경전 전채를 통해 흘러내려오는 불교사상의 본질이다,

 

마치 바람이 부는데로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정체함이 없고,

말하자면 자기를 내던져서 어디에나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스런 생활을

가리킨 것이다,

이런 생활에 들어가면 무리가 없어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울뿐이다 ,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잘뿐이니

근심을 잊어버린 해탈의 경계라 하겠다.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가는자는 붙들것이 없고,오는자를 막을것이 없는,

분별을 여윈 경계일다름이다.

 

이 원리를 깨달으면 심오한 인생의 생활철학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의 생활을보면 어떤 물건에 든지 얽매어

고뇌의 종자를 만들고 있다. 

 

밭이 있으면 밭을 근심하고 ,밭이 없으면 없는곳을 근심하며,

집이 없어도 근심이고 집이 있어도 근심이다. 재산이 있어도 근심이고

없어도 근심이며,명예와 지위가 있어도 근심이요, 없어도 근심이다.

우리는 항상 없으면 얻으려는 근심이 있고 ,있으면 잃어버릴까 근심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활을 해나가는데는 오직 해탈을 얻어야먄 근심을 면할 수있다.

어찌해야 해탈을 얻을것인가?

모든 사물에 대하여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 이슬 ,번개와 같으니,

깨달아야 비로소 괴로움을 면할 수 있다. 


    토인비의 ‘청어 이야기 세계적 역사가 토인비박사가 즐겨 하던 이야기이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먼 거리의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운반하는가의 문제였다. 어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 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그러나 꼭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산채로 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긴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그 어부는 좀채로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동료들의 강요에 못이긴 어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어부는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놈은 청어를 두 세마리 밖에 못 잡아먹지요. 그러나 그 통안에 있는 수백 마리의 청어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길 후에 런던에 도착해 봐도 청어들은 여전히 살아 싱싱합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청어들을 건강하게 살아 있게 한 것이다
      = 삶의경구, 좋은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