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나를 비우면 기적이 일어난다 / 우룡스님

2015. 7. 25. 19:1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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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나를 비우면 기적이 일어난다 / 우룡스님

 

가족에게 삼배를 올릴 때도 그렇고 참선, 염불 등의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비우고 무아(無我)를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꾸준히 절, 염불, 참선 등을 하면서 ‘나’를 비워가고 공부의
힘을 키워가면 기적과 대영험은 저절로 찾아듭니다.

하루 두 세 차례, 가족을 향해 절 삼배를 하는 것이나, 하루 30분
정도의 염불이나 참선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꾸준히 할 때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여러 해 전부터 여러 불자들에게 ‘다만 꾸준히 할 것’을
권해보지만, 한결같이 하는 이는 참으로 드뭅니다. 아무리 부탁을 해도
하지 않는 이, 답답한 일이 생기면 조금 시작하다가 그쳐버리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부디 무엇 하나든 꾸준히 해 보십시오. 얄팍한 꾀를 부리지 말고,
지극한 정성으로 계속하면 큰 힘이 생겨남은 물론이요 이루지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내가 1960년대에 김천 청암사에 있을 때, 김천 시내 안경과 시계를 파는

경안당이 있었습니다. 경안당의 주인은 오선생으로, 이 오선생님을
중심으로 하여 거사 몇 분, 보살 몇 분이 모여 조용히 앉아 대화도 없이
참선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꾸준히 수행을 하자,
어떤 스님네는 ‘경안당 오거사가 사도에 빠졌다. 옆길로 빠졌다.’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여전히 모여 앉곤 했습니다.

당시 김천 시내에는 초등학교 상급학년인 여학생이 벌레가 척추를
갉아먹는 가리에스라는 불치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세가 심하다보니 당자나 부모 모두 그리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너무나
안타깝고도 답답하여 어느 날 오선생과 함께 대 여섯분을 청했습니다.
“오늘 밤에 아픈 아이가 있는 우리 집에 와서 좀 앉아 주시면
안 될는지요?”
그 요청에 따라 오선생 일행은 허리가 아픈 여학생의 옆방에서 밤새도록

앉아 선정에 잠겼습니다. 소녀가 누워 있는 방으로는 들어가지 조차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소녀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오선생님이 밤새도록 내 곁에서 내 몸을 쓰다듬어 주셨어.
그래서인지 지금은 기분이 매우 좋고,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 같아.”

그날 이후 소녀의 몸은 조금씩 나아져서,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완쾌되어 결혼도 하고 딸 둘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김천에 살고 계십니다.


약 30년 전, 부산에 일흔을 넘기신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연배의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글을 배우지 못한 분들이
많았는데, 그 할머니도 글을 읽기조차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부터 어디서 누구에게 권유를 받았는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렀습니다. 몇 년을 ‘관세음보살’만 열심히 불렀는데,
어느 날부터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참 안 됐구나. 얼마나 아프겠느냐?”
그리고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아픈 몸을 한 5분 안팎으로 쓰다듬어
주시는데, 신통하게도 통증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배 아프고 머리 아프고 속이 답답한 병에만 영험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교통수단이 별로 없어, 어른과 아이 모두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도랑에라도 굴러 떨어져 다리가
골절이 되고 피를 흘리던 아이도 할머니가 잠시 만져주면 거뜬히
일어나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할머니가 부르는
‘관세음보살’ 소리와 자비로운 손길을 경험하면 쾌차되었던 것입니다.


김천의 오선생이나 부산의 할머니처럼 믿어지지 않는 일을 행하는
분들을 우리는 가끔씩 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적’이라 하고,
‘신통력’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꾸준히 공부한 힘이 만들어낸 현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꾸준히
공부를 함으로써 기적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 세상에 올 때 대우주 전체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나’와 대우주는 본래 하나이므로 대우주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뇌망상과 미혹으로 그 기운을 쓰지
않고 살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다가 참선, 염불, 주력,
참회 등의 실천을 꾸준히 하게 되면 다시 그 힘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되찾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 힘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을 되찾은 것입니다. 바깥에서 무엇을
얻어오거나 남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 어른들이 신통을 부렸다거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셨는데,
어디까지나 이것은 공부의 힘일 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40년 50년 전까지만 하여도
그런 기적 같은 일을 나투는 보살님네나 거사님, 스님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앉아서 정진하는 참선단체도 많고,
절에 다닌다는 신도도 상당히 많아졌으며, 천수다라니를 하느니,
화두를 하느니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도 그런 힘을 나타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요? ‘나’가 비워질 때까지 진득하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을 볼 때까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되면 적당한 수준에서 그만두고,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하면 솔깃하여 그쪽으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편의 옛이야기를 이와 관련시켜 음미해 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 가운데 한 분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선생은 조선시대 역사상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삼공(三公: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에까지 오른 매우 뛰어난 분입니다.

이 미수선생의 증조할아버지인 허자(許磁)는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었으나 당쟁에 연루되어 홍원 땅으로 귀양을 갔다가 죽었고,
할아버지 허강(許橿)은 뛰어난 글재주가 있으면서도 초야에 묻혀
기인들과 교류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미수선생의 아버지인 허교(許喬)
에게도 많은 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세가 기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수선생의 어머니는 조선 중기의 풍류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의 딸입니다. 그런데 백호 임선생의 직계
자손들은 그 집안에서 부리던 사람의 깊은 원한 때문에 대(代)가
끊어졌고, 다만 딸인 미수선생의 어머니는 두 명의 아들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한에 사무친 귀신들은 외손 계통으로 뻗어나가는 백호선생의
대도 끊기 위해 미수선생의 어머니가 낳은 두 아들도 하나같이
돌을 넘기기 전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멀쩡한 자식을 둘이나 낳았으나
모두 죽어 허씨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하게 되자 내외간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좌절하지 않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우리 매일 기도를 하여봅시다. 기도를 하여 자식을 다시 얻도록
하십시다.”

낮에는 시부모님 모시랴 집안살림 하랴 틈이 없었으므로, 밤이 되어
뒷산으로 5리 정도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들 내외는 연고가 없는
수백 년 묵은 묘를 말끔히 손질하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하기를 백일, 꿈에 갑옷을 입은 대장군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누운 지가 어언 5백년, 아무도 나를 보살펴주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너희 내외간이 지성으로 기도하니 너희의
원을 들어주고자 하노라.”

이어서 미수선생의 어머니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너희 친정의 윗대에 원통하게 죽은 시종들의 원혼이 너의 친정집안
대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너를 기점으로 하여 외손들이 뻗어나가는
것까지 원혼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너희에게도 자식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며 간절히 원을 하니 내가 그 원혼들을 달래어
자식을 하나 주리라. 하지만 이 아이는 농사나 지을 그릇일 뿐이니,
글을 가르칠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마침내 기도의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마음을 모았습니다.

“우리, 기도를 백일 동안 더 합시다. 우리 가문에 농사만 짓고
살아야 할 자식이라면 낳으나 마나 하니까, 조금 더 눈이 밝은
아들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부부는 장군의 묘 앞에서 다시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다시 꿈에 나타났습니다.
“정성이 갸륵하구나. 그렇다면 향교에 출입할 수 있는 자식을 주겠다.”

옛날에는 군 단위로 향교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 향교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을 안의 선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더욱 크게 원을 일으켰습니다.

“지금부터 천일기도를 다시 시작합시다. 몰락한 집안을 빛내고
온 나라를 빛낼 수 있는 자식을 하나 달라고...”

내외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천일기도를 마친 날 밤, 대장군은 다시 나타나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지성이 옥황상제님께 닿아 소원과 같은 자식을 주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너의 친정 윗대의 원결 맺힌 사람들 때문에
자식의 모습이 굉장히 이상할 것이다. 그것만은 하는 수가 없다.
나라 안에 이름을 드날리고 끊어져 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되, 윗대에 얽힌 원한 때문에 아이의 모습이
괴상한 것을 어쩔 도리가 없구나.”
이렇게 하여 태어난 분이 미수 허목선생입니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원결을 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옥상상제나 부처님의 도움으로 더 커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기도나 공부를 조금 더 하라는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아침저녁으로의 3배, 기도, 염불, 참선 등을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지 말고 더욱 더 하라는 것입니다. 미수 허목 선생의 부모처럼
처음의 백일기도를 이백일 기도로 바꾸고, 다시 천일기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험이 생겨나지 않을 까닭이 없고, 기적 같은 성취가
눈앞에 전개되며, 신통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더 하고자 하십시오. ‘나’는 별 존재가 아닙니다. 교만하고 의심 많고
어리석고 욕심 많은 ‘나’일 뿐입니다. 이 ‘나’를 인정하면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이 ‘나’와 타협하면 어떠한 신통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아(無我)! 곧 무아를 체득하는 것입니다.

이 ‘나’를 철저히 무시하십시오. 무시하고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나’를 없애버리고자 해야 합니다.
완전히 비우고자 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은 뜻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가족이 화목하고 공부가 성취되며, 남들에게 한없이 이익을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행복이 저절로 찾아들어 넘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