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5. 20:2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도도(盜道)와 무아위조범(anatman counterfeiter) |
I. 위조범들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의 유명한 도둑 도척(盜跖)이는, 졸개가 9,000명이나 되는 군도(群盜)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공자의 친구 유하계(柳下季)의 아우인데, 그를 교화하러 찾아온 공자를 오히려 꾸짖었다: “너는 농사짓지 않으면서도 먹고살며, 길쌈하지 않고서도 옷을 입으며, 입술을 놀리고 혀를 차면서 멋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천하를 미혹하여 혼란에 빠뜨린다(불경이식 불직이의 요순고설 천생시비 이미천하지주 不耕以食 不織以衣 搖脣鼓舌 擅生是非 以迷天下之主).” 그는 ‘도둑놈도 도(道)가 있느냐’는 부하의 질문에, 도둑놈의 도로 ‘성·용·의·지·인(聖勇義知仁)’을 들었다: 어떤 집의 소장품을 추측하는 것이 성(聖), 도둑질할 때 공범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훔칠 물건인지 아닌지 아는 것이 지(知), 그리고 훔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다. 소위 도둑의 오상(盜賊五常)이다.
놀랍게도, 서양에도 도둑의 도(道)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96년에 발행된, 무아레, 시변색 잉크, 워터마크 등으로 중무장한 난공불락이라고 알려진, 미국 100불짜리 신권(New Note)을 위조한 사건이다. 2001년에 체포된 미국인 아서 윌리엄스는 총 500만~1,000만 달러를 위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위조범들이 100만 달러를 채우지 못하고 체포당한다는 점을 볼 때, 아서의 경우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단행본 ‘아트 오브 메이킹 머니’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미합중국(美合衆國 United States of America)은 나라가 탄생할 당시부터 화폐위조범이 들끓었다. 독립국가에 해당하는 13개의 주가 각기 다른 화폐를 발행했으며, 각 주에서도 은행들이 각기 화폐를 발행했기 때문에, 화폐종류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어느 돈이 가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기간(1861~1864)에 비로소 처음으로 연방화폐가 발행되었다. 이 지폐 앞면에는 당시 대통령 링컨의 얼굴이 들어갔으며, 뒷면은 푸른색이라 greenback이라 불린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미국이 세계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 달러화도 기축통화라는 ‘세계화폐’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달러는 전 세계 화폐위조범들의 로망이 되었다. 골머리를 싸맨 미국 화폐국은 1996년에 회심(會心)의 신종 화폐를 만들었다. 이 신권에는 3가지 첨단기술이 도입되었다. 스캐너를 통해 복사할 경우, 본래의 원고에는 없던 지문형태의 무늬가 생기는 현상인 ‘무아레’, 우주왕복선 창문 코팅에 이용된,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시변색 잉크’(optically variable ink), 등불에 비춰보면 나타나는, 지폐 안에 숨겨진 이미지인 ‘워터마크’ 기술 등이다. 이 화폐를, 육안으로는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한 사람이 아서 윌리엄스이다.
아서 윌리엄스는, 이혼녀 어머니의 애인인, 다빈치라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지폐 위조기술을 배웠다. 다빈치가문에는 화폐위조기술이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전승되어왔다. 자식이 없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다빈치가, 아서를 아들로 받아들여 기술을 전수한 것이다. 스필버그 감독, 디카프리오 주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잡을 수 있으면 날 잡아봐(Catch Me If You Can)”의 주인공 애버그네일(Frank Abagnale, 1948~)은 프랑스에서 수표위조기술을 배웠다. 진실로, 이태리와 프랑스는 진짜건 가짜건 모든 예술의 고향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러나 14살 여자친구를 임신시켜 아들을 봐 벌써 아버지가 된, 그래서 돈이 궁한, 아서를 사기꾼세계로 입문시키면서, 위조지폐기술 스승 다빈치는 다음의 금언(金言)을 가르쳤다. 산문(山門)에 든 자가 맨 먼저 배우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처음으로 도를 닦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이 스스로 경계하는 글)에 해당한다.
1. 자기 동네에는 유포시키지 마라.
위조화폐농도는 인구수에 반비례하므로, 좁은 지역에서는 발각 날 위험이 몹시 크다. 게다가 자기 동네에는 익명성이 없다. 동네 사람들이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으니, 위조지폐가 돌아다니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수행자는, 공부가 무르익었을지라도, 고향에 가서 가르침을 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사람들로부터 “나사렛에서 쓸 만한 인물이 나온 적이 있느냐?”는 모욕을 당했으며, 옛 부처의 화신인 고불(古佛)이라고 불린 조주스님은 고향에 들렸다가 무시당하고는 “고향에 가지 말라”고 신음했다. 현자 디오게네스는, 고향 시노페에서는, 주화위조범에 지나지 않으며, 거룩한 승가의 일원이 된 연쇄살인범 앙구리마라는 고향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추악한 살인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의 몸은 피를 흘렸지만 마음은 평온하였다.
2. 위조지폐를 한 장소에 너무 많이 유포시키지 말라.
위조화폐 유통량이 증가할수록, 위조화폐가 거쳐 가는 사람 수가 증가하므로, 발각 날 확률이 증가한다. 위험은 분산시켜야 한다.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법이 아니다.
도를 얻지 못한 자는 한 장소에서 너무 많은 법문을 하지 말라. 본모습과 밑천이 쉽게 드러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사이트에, 한 곳에서, 너무 오래, 실명으로, 글을 쓸 일이 아니다. 자기가 쓴 글들이 빛의 속도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로 한 말을 또는 아직 설익어서 나온 말을 나중에 다시 주워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3. 누구에게도, 자기가 위조지폐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친구 가족 애인에게도 말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자기마음을 믿지 말라” 하셨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진부한 표현이 될 정도로, 마음은 절대 믿을 게 못 된다. 사념처 수행에도 ‘심무상(心無常)’이라고 관하는 법이 있다. 그만큼 마음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고 믿을 수 없으니, 자신의 위조지폐사업을 남에게 알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화폐위조는 외로운 직업이다. 수타니파아타의 가르침처럼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한다.”
4. 증거를 남기지 말라. 그날 증거는 그날로 모두 정리하라.
밤새, 작업실에, 경찰이 들이닥칠지 누가 아는가? 조금이라도 잘못 만들어진 것은 모두 소각해 폐기처분하라. 이놈도 저놈도, 잘난 놈도 못난 놈도, 다 내 자식이라는 식으로, 미련을 갖지 말라는 얘기이다. 도공(陶工)이 잘못 만들어진 그릇을 가차없이 깨버리는 것처럼, 잘못 만들어진 위조지폐는 남김없이 태워버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에 더 완벽한 위조지폐를 만들 동기를 부여하며, 잡힐 확률을 감소시켜 살아남을 수 있다.
수행을 하는 것도 그렇다. 밤새 죽음의 신이 찾아올지 모르니 머리에 불이 붙은 듯 열심히 도를 닦아라. 목숨은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으니, 한 순간 숨이 넘어가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매순간 깨인 마음으로 불법을 닦으라는 말이다. 탐욕, 갈애, 분노 등 사악한 감정은 흔적을 남기기 마라. 마음에 조금이라도 앙금을 남기면 안 된다. 선불교적인 표현으로는, “하되 함이 없이 하라”이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다. 더 나아가서는, 한 생각도 일어나면 안 된다.
5. 방심은 금물이다.
철저히 계율을 지켜라. 중국선불교 3조 승찬스님은 ‘신심명(信心銘)’에서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나면 하늘땅 사이만큼 어긋난다)”이라고 하셨다. 슬금슬금 어기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다. 오계(五戒)는 고사하고 소소계(小小戒)를 지키는 것조차, 벌거벗고 맨발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처럼 어려워졌다는 것을.
돈은 만인의 관심사라, 사람들은 돈에 조금만 수상하고 이상한 점이 보여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심신을 갉아먹는 노동과 경쟁으로 피땀을 흘려야 버는 돈을 위조했으니, 사람들의 시기와 분노가 언제 당신을 겨냥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아무리 조그만 위험징조일지라도 무시하지 마라. 조심, 조심, 또 조심하라.
6. 욕심을 버려라.
위조지폐를 적당량만 만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한번에 10만 불(약 1억 원) 이상 만들지 말라.
‘욕심을 줄이고 버리는 것’이 행복의 첩경(捷徑)임은, 시공을 통해 불변하는 황금률이다. 다음의 가르침들을 보시라.
부처: ‘소욕지족(小欲知足)의 도’를 알아라. 예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다. 경주 최 부자: 벼슬은 진사 이상을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을 넘지 마라, 흉년에 논을 사지 마라, 그리고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최씨 가문은 가훈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조선조에 300년 동안 만석재산을 유지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으며, 해방이 되고나서는 남은 재산으로 영남대를 세웠다. 고래등 같은 최 부자 저택은 지금은 고급 한정식집 ‘요석궁’으로 바뀌었다. 훌륭한 음식솜씨로 명성이 자자하다. 욕심은 재산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갈증의 크기에 비례한다.
7. 기술전수는 은밀히 하라.
함부로 기술을 전수하고 유통시키다가는 화를 부른다. 제자가 많을수록 발각날 확률은 높아진다. 어리석은 제자나 욕심많은 제자를 둘수록 이 확률은 급증한다.
종교에서 교의의 전수도 마찬가지이다. 무아론(無我論)처럼 대중의 상식과 믿음에 어긋나는 충격적인 교리일수록, 함부로 전수하다가는 박해를 불러와 살해당해 멸종하거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살아남아도 왜곡되기 쉽다. 살해당하기 전에, 손제자(孫弟子)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상근기 제자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의 생존은 ‘더하기 빼기’이다. 아무리 많이 죽어도, 그보다 더 많이 낳으면 된다.
모기향, 전자메트, 해충제, 물고기 떼, 새 떼 등에 대량학살당하고도 멸종당하지 않는 모기가 좋은 예이다. 한국인들이 볶음·구이·탕·찜·회로 무섭게 먹어치우는, 멸치, 참치, 꽁치, 갈치, 고등어, 명태, 조기, 동태, 낙지, 문어, 오징어 등의 물고기는 겁나게 알을 많이 낳아서 멸종당하지 않는다.
스승 다빈치는 아서에게 에픽테토스를 소개했다. 에픽테토스는 로마에 살던 그리스인 노예였는데 철학자로 유명했다. 그는 그의 명성을 질투하는 주인에게 당한 구타로 불구가 되어, 외모는 늙어갈수록 추해졌지만, 그의 철학은 즉 ‘생각과 말’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유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본시 화폐위조범이었다. 그는 부친 트레시우스에게 기술을 전수받았으며, '주화에 불순물을 섞은 죄'로 부자가 터키북부 흑해 연안 도시 시노페에서 추방당했다. 그런 그가 후에 '무소유의 성자'가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무통속에 살고 있는 그를 알렉산더가 찾아가 “소원을 말하면 들어 주겠다“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부탁했다. 탐욕의 상징인 돈을 위조하던 사람이, ‘달리 원하는 게 없는’ ‘무욕의 성자’가 된 것이다!
이미 2,300년 전에, 불세출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왕으로부터 금관의 금함량이 부족한지 알아내 달라고 의뢰받은 일에서 볼 수 있듯이 ‘위조의 역사’는 유구하다. (자연계에서 위조는 생사의 문제이다. 나뭇잎벌레를 보라!) 그는 목욕탕에서 ‘비중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유레카(eureka 발견했다)!”라고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순간, 그 충격으로, 감히 왕관의 금함량을 속인 금세공업자가 즉사하지 않은 것을 보면, 법계신호전달은 무척 느린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에픽테토스처럼 되지도 못했고, 디오게네스처럼 되지도 못했다. 스승의 금언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감옥살이를 두 번에 걸쳐 10년이나 하고 있으며, 가족들은 비참한 일을 당했다. 자신은 2007년에 화폐위조죄로 체포되어 형을 살고 있으며, 그 후 자신의 18살 난 아들 역시 화폐위조죄로 검거되어 징역형을 살고 있다. 여동생은 투신자살하고 공범인 친아버지는 수감 중에 죽었다. 에픽테토스처럼, 악천후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렉산더는,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나라인 페르시아를 정복하고도, 욕심을 부려 인도를 침략했다가 풍토병을 얻어 33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영웅이건 도둑이건,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속세(俗世)건 종교계건 차이가 없다.
속세: 이석기 사건이 있다. 지하에서 은밀히 활동하던 종북좌파들이 점점 공개적으로 이적활동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튀어나온다. 그 결과가 2013년에 터진, 국회의원 이석기 주동의 내란모의사건이다. 이석기 일당은 혁명기구(RO, Revolutionary Organization)라는 대단위 모임을 만들고, 한곳에 모여 한국전력 등의 국가기간시설파괴를 논의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여파로 통합진보당은 법무부에 의해 고발당해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해산심판을 받는 중이다.
(단현 : 강교수님이 현상을 잘못 파악하고 있을 수 있음)
종교계: 참나 또는 진아(眞我) 스캔들이 있다. 현각(숭산스님 제자), 혜민, 혜국, 경봉, 서암(전 조계종종정), 진제(현 조계종종정) 등 크고 작은 스님들이, 대놓고 ‘참나’(진아 眞我)를 주장하고, 마구 ‘참나’라는 용어를 이용한다. ‘진아’가 꼬리가 잡힐 때가 되었다. 역으로 과학계는 ‘무아’의 꼬리를 잡을 때가 되었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무아’가 숨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피, 심장, 뇌, 송과선, 회음부, 후두(喉頭), 두정(頭頂 정수리), 단전(丹田), 미간(眉間), 달, 태양, 북극성 그 어디를 찾아봐도 ‘아(我 아트만)’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진아이건 무아이건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진아(眞我 참나)론자들은 ‘가짜 무아(無我)론자’라는 점에서 ‘무아위조범’들이다.
예전에야 과학이 발달하지 못해, 유아(有我)를 무아(無我)인 척 위조하더라도 밝혀낼 수 없었다. 즉 힌두교 등 유아론자(有我論者)들과 이교도들이, 난해하고 복잡한 교리라는 속임수를 통해 유아론을 무아론으로 위장하고 둔갑시켜도, 그게 유아론인지 무아론인지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은, 위조를 하면 발각날 수밖에 없다. 작게는 뇌세포에, 크게는 삼천대천세계에, ‘아트만(atman 眞我 참나)’이 숨어있을 곳이 없어졌다.
초기경전인 아함경, 법구경, 수타니파아타와, 초기 대승경전인 반야경, 금강경 등에 참나(眞我 진아)라는 용어가 어디 등장하는가? 조계종이 소의경전으로 삼고있는 금강경은 ‘진아적 개념’인 ‘아상(atman 我), 인상(pudgala 중음신 中陰身), 중생상(sattva), 수자상(jiva 불생불멸의 청정한 순수 영혼)’을 죄다 배척하는데, 그리고 ‘이일체제상 즉명제불(離一切諸相 卽名諸佛: 모든 상을 떠나야 부처이다)’이라 선언하는데, 어디 참나가 설 자리가 있다는 말인가? 한국 스님들이 주창(主唱)하는 ‘참나(진아 眞我)’는 금강경의 아·인·중생·수자를 모두 합친 괴물이다. 부처님 열반 후 2,500년 만에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우주 최초로 나타난 신종생물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금강경을 개정하라.
“모든 상은 허망하나(凡所有相 皆是虛妄), 오직 ‘참나(眞我 진아)’만이 상주불변(常住不變)으로 진실하고 영원하다”라고!
2014년판 개정 ‘참나’형 금강경:
범소유상 개시허망, 유일진아 상주불변, 진실불허 영생불멸, 어제상중 약견진아 득견여래 즉명보살(凡所有相 皆是虛妄 唯一眞我 常住不變 眞實不虛 永生不滅 於諸相中 若見眞我 得見如來 卽名菩薩).
여러 사람이 주장하듯이 참나(眞我 진아)가 있다면, 모든 사람은 참나위조범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참된’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살인범, 강간범, 유괴범, 강도 같은 중범죄자들조차도 그리 생각한다. 자신들은 단지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모습은 참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쭙잖은 참나위조범들이다. 즉 ‘참나’이론은 사람들을 ‘참나’위조범으로 만드는 괴이한 이론이다.
II. 적반하장 무아위조범 유아론자들의 매뉴얼
:무아론자의 공격을 물리치는 법
“참나(진아 眞我)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참나가 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유아론(有我論)이 아니냐고 의심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지금까지 위장이 벗겨지고 본색이 드러나 발각 날 지경이 되더라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고 침착하라. 참나가 곤경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하라.
1. 유아론이 아니라고 일단 부인한다.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용만 유아론이면 되므로, 유아론이라는 꼬리표와 이름표는 일단 부인을 한다. 뻐꾸기의 탁란(托卵)작전을 하는 것이다. 무아론의 둥지에 유아론의 알을 낳는 작전이다. 이 작전의 효용성은 다음을 생각해 보면 명확하다. 당신이 남자라면,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평생 같이 자겠노라”는 여자를 택하시겠는가, 아니면 “당신을 사랑하지만 단 하루도 같이 잘 수는 없다”는 여자를 택하시겠는가? 참고로, 인류역사상 제왕들은 하나같이 전자를 택했다. 적을 죽이고 적의 부인, 첩, 딸을 자기 여자로 삼았다. 잠자리를 거부하면 죽였다. 이조 양반들도 사화를 일으켜 정적을 죽이고 그 부인과 딸을 자기 여자로 취했다. 인류역사는 기본적으로 ‘동물의 왕국(animal kingdom)’이다. 이런 인간들도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시니, 부처님은 정말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분이다.
힘이 있는 자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이웃이 필요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고단하다. 그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필자 같은) 빈자들을 위한 가르침이다. 부자들은 돈으로 서비스를 사면 되지만, 빈자들은 서로 품앗이를 하는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쾌락을 사느라 바빠 시간이 없지만, 돈이 없는 빈자들은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다. 특히 예수시대에 그러했다.
구(舊)소련의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친구였다. 민주자본주의가 아닌 공산관료제 사회에서는, 돈이 아니라 빽(연줄, 콴시關係)이 훨씬 더 중요했다. 친구가 100명 정도 있으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빵, 옷, 신발, 비누, 치약, 칫솔, 야채, 치즈, 식용기름, 책, 보드카, 집, 집수리, 학교배정, 열차표, 극장표, 연주회 입장권, 발레 ‘백조의 호수’ 관람권, 여행, 호텔, 자동차, 자동차수리 등을 해결해주는 친구들! 이런 일이 있었다. 십년 동안 어렵게 주택구입비를 모은 이바노비치가 주택성을 찾아갔다. 집값을 지불하자, 관리가 10년 후 ‘오후’에 오라고 했다. 반나절이라도 더 기다리기 싫은 그가 “왜 하필이면 오후냐? 오전에 오면 안 되겠느냐?”고 묻자, 관리가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그날 오전에 제 집에 배관공이 오기로 되어 있읍니다”! 소련은 돈이 있어도 안 되는 사회였다. 살 물건이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래서 망했다.
2. 상대방이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대면, “유아론적인 표현은 비유와 상징일 뿐”이라고 하며, 빠져나간다.
글이 일단 저자의 손을 떠나면, 그 해석은 읽는 사람 맘이다. 하물며, 오래된 책은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저자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누가 밝힐 수 있을 것인가? ‘비유와 상징이라는 주장’은 종교적 ‘우황청심환’이다. 위기에 빠질 때마다 이 말을 상기하라. 그러면, 세계최강의 논리와 지식으로 무장한 적들로부터도 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다. ‘비유와 상징’을 내밀면, 웬만한 상대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고, ‘참나’는 ‘비유와 상징’일 뿐이라고 주장하라!
3. 부처님은 무아론이 아니라 비아론(非我論)을 가르치셨다고 우긴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진짜와 가짜가 있는 법이니, 우리의 아(我)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진짜 참기름 가짜 참기름, 진짜 꿀 가짜 굴, 진짜 돈 가짜 돈, 진짜 사랑 가짜 사랑, 진짜 가슴 가짜 가슴, 진짜 코 가짜 코, 진짜 결혼 사기 결혼, 진짜 영광굴비 가짜 영광굴비, 진짜 박사학위 가짜 박사학위, 진짜 마술사 가짜 마술사, 진짜 도사 가짜 도사, 진짜 스님 가짜 중, 등등. 그러니 어찌 ‘나(我)’라고 진짜, 가짜가 없을 소냐! 따라서 부처님 말씀은 “아(我)가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가짜 나’는 ‘진짜 나’가 아닐 뿐이다”, 즉 “가짜 아(我)는 비아(非我)라는 것”이라고 우기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암, 있제, 없으면 되남? 이케 있는 걸 어케 부정한다 말이가? 이상한 아~들이네! 가짜 나만 없애뿔면 된다 아이가. 참나를 찾그레이” 이렇게 되기 십상이란 말이다.
4.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코너에 몰리면 역공(逆攻)을 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무아론은 허무주의라고. “설마, 부처님이 무아론을 설했겠느냐? 무아론을 주장하는 당신은 분명 허무주의자다. 몹시 역겨운 허무주의자 같은 이라고는!” 하고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5. 유명한 수행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당신이 그 사람들보다 도가 높으냐? 도가 낮으면, 겸손하게, 도가 높은 사람들 말을 믿고 따라야지!”라고 윽박지른다.
번듯하게 수행 한 번 안 해본 사람이라면, 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6. “체험을 안 해서 그런 말을 한다, 체험해보면 다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생업에 바빠 참선이나 명상을 안 해본 사람은 기가 죽는다. 불교 내에서도 서로 다른 수행체계와 종파가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무시한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남방은 참나(진아 眞我)를 부인한다는 사실 역시 무시한다.
7. 논리에서 밀리면, ‘당신은 스승이 없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승들도, 당신들처럼,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예를 들어, 현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의 스승인 향곡스님과 성철스님은 수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다. 한번은, 법거량을 하다가 흥분한 성철스님이, 큰 돌로 향곡스님을 내리친 적도 있다. 향곡스님은 성철스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숙면일여’(熟眠一如 꿈이 없는 깊은 잠 속에서도 의식이 초롱초롱 깨어있는 경지)를 믿지 않았다. 또, 한글역경사업의 위대한 공을 세우신 대강백 운허스님은 윤회를 믿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스승이 있다고 항변하면, ‘잘못된 스승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공격하는 순발력을 발휘한다.
8. “84,000경이 거짓말을 할 리가 있느냐”고, 경전의 어마어마한 ‘양(量)’에 호소한다.
경전을 열심히 읽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신이 생소한 경전을 들먹이면, “진리는 저 멀리 오지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믿는 대중은, “이크! 내가 모르는 심오한 경전을 읽고 배운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행여 무식이 드러날세라, 즉시 꼬리를 내린다.
9. 사람들은 ‘있다(有)’를 좋아하고 ‘없다(無)’를 싫어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사바세계는 고통(苦痛)의 세계라,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중생들은, 약효가 있는 식물에 관심이 있지, 약효가 없는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만약 누가 암에 특효가 있는 식물을 모아 책을 만들면 제법 팔리겠지만, 약효가 없는 식물을 모아 책을 만들면 한 권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 병을 고치는 신통력이 있다” 하면 귀가 솔깃하고, “누가 병을 고치는 신통력이 없다” 폭로하면 들은 체도 안 한다. 그러므로 굴(屈)하지 말고 줄기차게 “참나가 있다”라고 외쳐라. 사람들은, “참나가 있다”는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이지, “참나가 없다”는 강병균 교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낙원, 이상향, 천국, 극락정토 가는 법, 벼락부자 되는 법, 돈벼락맞는 법, 복권 당첨번호 찍는 법, 머리털 나는 법, 젊음을 찾는 법, 영원히 사는 법(長生不死), 부자나 권력자로 환생하는 법,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변강쇠나 옥녀가 되는 법, 수학의 왕도, 공부 안 하고 공부 잘하는 법, 놀고먹는 법, 떼돈 버는 법, 일확천금하는 법에 혹하지, “그런 법은 없다”고 하면 옆에 오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속기 위해서는 거금을 내지만, 속지 않기 위해서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사마천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불교색깔을 입히고 내세워, 돈에 대한 욕망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무명중생들을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있다. 정신나간 불교방송은 이런 자들을 출연시킨다. 시청률 상승은 광고수익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생들의 무명제거라는 불교방송 설립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다.
‘머리에 착용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머리띠를 제작·판매하는 기업도 존재한다. 아직 이 기업이 재벌이 되지 못한 것을 보면, 뭔가 제품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은 있다(有)이고 죽음은 없다(無)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삶을 싫어하고 죽음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므로, 불법(佛法)은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고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없이 높고 깊고 미묘한 진리이며, 수백억 광년이 지나가도 만나기 힘든 가르침이다. 지구상에 불법이 아직 살아남아 있는 것은 진실로 기적이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시린 진실을 직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자유가 어디 쉽게 얻어지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어떤 것도 아(我)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아이다”(일체비아 시고무아 一切非我 是故無我).
도교, 힌두교 수행자들은 "참나(진아 眞我)가 작기는 겨자씨만 하고, 크기는 삼천대천세계만 하다"고 주장하지만, 입자가속기로 소립자를 두들겨 까보아도, 허블망원경으로 은하계를 샅샅이 뒤져도, 그 어디에도 참나는 없다. 이 우주에는 끝없는 명멸(明滅)하는 상호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무아(無我)이다.
화폐이건 무아론이건 끝없는 위조의 대상이다. 하지만, 눈부신 과학의 발달에 따라, 위조는 속계(俗界)의 일이건 성계(聖界)의 일이건 모두 코너로 몰리고 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내일보다는 지금이 순간을
내일 물을 주려던 그 꽃은 이미 시들어있고
내일 보러가려던 그 사람은 이미 떠나버리고
내일 고백하려던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랑하고 있고
내일 전해주려던 그 말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있다.
과연 나에게도 내일이라는 것이 있을까?
내일 해야 하는 백가지 일의 이유 보다 지금하고 싶은
그 한 가지 일의 이유가 더 소중하다는 것
불투명한 삶 속에서 내일을 기대하기보다는 지금을
더 소중히 간직하고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후회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내일이라는 단어 때문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것 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일보다는 오늘을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만약 나에게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 있나요?
사람은 죽음을 늦어지게 만들 수는 있어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 사람은 생명을
복제 할 수는 있어도 재창조할 수는 없다는 거
인생을 소중히 여겨 미래보다는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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