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사상과 보살도

2015. 8. 29. 19: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대승사상과 보살도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생활철학상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을 얻는 일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해탈을 얻은 사람만이 보람있는 진정한 생활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탈에도 소극적인 입장과 적극적인 입장이 있는데 소극적 해탈은

위험천만한 일면이 있다. 물론 ,진정한 해탈이 아닌 ,

잘못된 풋내기 해탈을 일컫는 말이다.

 

구할 것도 없고 탐할것도  없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은둔생활만을 한다면 ,

자기 일신만은 청정하고 결백하여 무사안일하여 이것 보다

더 좋은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

 

이것은 사회활동이 전혀 결여된 너무나 소극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야말로 독선기신

 ( 獨善其身 /남을 돌보지 않고 자기 처신만을 온전하게 함)

이 돠고,겸선천하

 (兼善天下/착함을 세상과 함께 하다) 가 되지 못하는것이다.

 

이웃을 몰라볼정도로 높은선비가 되여 훌륭한 학식과 포부를 갖고도 

사회에 기여가 없다면 이것을 불교에서는 소승 이라 하여 크게 배격한다.

 

차라리 민중속에 뛰어 들어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며

희비애락을 같이 나누는

범부우인 (凡夫愚人)만도 못한것이다 .

 

왜냐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을 만들수가 있으니

 

소극적인 해탈에 떨어진 사람만은 부처님이 출생하고

천 성인이 출생 하더라도

구제할수가 없는 까닭이다 .

 

그런데 불교 역사상 나타나 있는 사리불,목련,가섭,아난등 10대 제자들을

후세에 이르러서는 성문이니 ,나한이니 하여 ,

 

소극적이고 인건미 없는 말라붙은 사람들로

묘사하여 소승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

 

 이것은 나중에 발전된 대승불교의 일부학자들의

편견과 오해 에서 나온것??불가하다 ,

 

왜냐하면 불타와 그 제자들의 전기를 볼때

그네들이 그렇게 자기 일신의 해탈만을

주장하고 도탄에 빠진  인간사회를 몰라보는 분들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훌륭한 대승이 였다.말하자면 소승중의 대승이라고나 할까 ,

그것도 어패가 있는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불교에는 소승 ,대승이 없다,

 

흔히 말하기를 남방불교는 소승불교이고 북방불교는 대승불교라고 하지만

태국이나 인도,스리랑카의 불교 승려들은 자기네가 소승불교라고

 자인한 말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소위 비구승이란 분들이

정화운동을 일으키면서 부터 사판승을 대처승이라고 규정했지만

 

마치 사판승 자신이 스스로 대처승이라고  표명한 일이 없는것과 같다.

대승과 소승도 그러하여 후세에 대승불교가 일어나서

 

원시불교,부파불교의 승려들을 가리켜 소승불교 라고 규정짓고

대승 ,소승의 구분을 하였기  때문에 소승은 대승이 불교가 아니라 하고 ,

 

대승은 소승이 불교가 아니라고 하여 서로 싸워 온것에 불과하며 ,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따로 있을 이치가 없다 ,

 

대승사상과 보살도 ( 2 )  / 일붕 서경보 큰스님

 

 불교의 이념으로서는  독선주의는 소승이고,겸선주의는 대승이니까

소승불교라고 자칭하는 승려 가운데도 사회교화에 적극성을

띤 이는 소승 중의 대승이고 ,대승불교라고 자칭하는 승려 가운데도

염세 독선주의로 소극성을 띤 이는 대승중에 소승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후세의 대승 불교학자가 세존 당시의 제자까지도

일괄하여 소승 이라고 한것이다.그러면 부처님까지도

소승불 이라고 해야 할것인가? 그러나 세존을 깍아 말하면

도리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되므로 감히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것이다.

 

하여간 불교의 이념으로 봐서 자기 혼자만 해탈하여 4성제를 깨치고

독선기신 [獨善其身= 남을 돌보지 않고 자기 처신만을 온전하게 ]

으로 침공체적 ( 沈空滯寂 =경계에만 집착해 공부가 조금도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

한 이는 소승이고 ,자기는 비록 깨닫지 못하였더라도

 6도만행 ( 6도만행재수(六度萬行齋修) 6도라함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6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다 ).

보살도를 닦아서 미래세가 다 하도록 중생을 먼저 건지고

맨 나중에 성불하겠다고 발심한이는 대승불교 라고 하는것이다

 

[화엄경] 을 보면

발심과 성불의 두가지가 다르지 않네

이 두마음에 첫발심이 더욱 어려우니

나는 성불을 못하더라도 남부터 먼저 성불 시키려는'

그 마음인 것이다 .

그래서 첫 발심한 그를 예경 하노라 .

 

그러므로 자기 혼자만 불도를 깨달아서 도를 얻었다고 도사리고 앉아서

호사가 불여무사好事不如無事(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 없는 것만 못하니라.)

라 외치며 의복의 먼지나 홱홱 불고 손가락을 톡톡 튕기고 있기만 하다면

이러한 해탈은 위험하다 하지 않을수 없다.

 

인간이란 모여서 함께 대화하는 광장이 없으면 쓸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도 항상 1천2백 대중을 거느리고 다니신 것이다.

일지반지一知半知= 수박 겉핥기 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중생교화의 자비심과 실천이 없다면 소승불교 임에 틀림없다,

 

설사 무학,무식 하더라도 남을 위해 희생하고 일을하고

공덕을 깨쳐주면  대승불교 인 것이다.

 

빈민을 위해 병원을 짓고 무료로 의술을 배풀며 일생을

봉사한 슈바이처,라든지 .세게일류의 구제를 위해 적십자병원을

창설한 나이팅 게일 여사와 같은 이는 현대판 지장보살이요,

 

부하들의 생명을 구제하기 위해 잘못터진 수류탄 위에 엎어져서

희생한 강재구 소령 같은이는 현대판 관세음보살 이다.

 

땅을 여의고는 큰 집을 건축할수 없듯아 중생을 버리고는'

불국토를 건설할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유마경>에도 이르되,

 

'높은언덕과 육지에는 연화가 날수가 없고, 낮고 얕아서

물이 질퍽질퍽한 땅에라야 이 꽃이 나느니라" 했다

 

마치 바다밑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진주를 구할수가 없는것과 같아서

중생이 들끊는번놔 대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일체지의

보배를 얻어낼수가 없는 것이다,

 

사홍서원 가운데 있는 중생무변서원도가 대승불교의 정신을

대표했다고 해도 좋다,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

 

 
 

     

     

     



     

     

     

    가사(袈裟) - 승려가 장삼 위에 걸쳐 입는 법의(法衣)  (0) 2015.09.05
    이미지(image)/강병균 교수   (0) 2015.08.29
    불교 최고 원리는 중도(中道)  (0) 2015.08.29
    가부좌(跏趺坐)의 여러 가지 형태(形態)   (0) 2015.08.29
    참나: 무비스님의 한 물건(一物)/강병균 교수  (0) 201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