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과 科學

2015. 9. 5. 18:58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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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과 科學  

 

생명의 컴퓨터 프로그램화가 발전되면 생물이 종(種)에서 이루어지고 종이 모여 자연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종래의 생각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 것이며 간단한 키보드에 프로그램을 입력함으로써 종(種)간의 벽을 초월하여 신종 생물으리 모든 것을 프로그램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의 DNA 분자 속에는 대백과사전 천권의 정보에 맞먹는 정보가 삽입되어 있으며 인간은 그와 유사한 바이오칩이라는 기억소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말하자면 손톱만한 상자속에 대백과사전 천권 혹의 그 이상의 책속에 들어 있는 전 단어를 삽입해 넣을 수 있는 기억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화엄사상에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필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밝힌 바 있거니와 화엄경 속에는 이르는 곳마다 사물과 사물이 서로 상호관통하는 사사무애(事事無 )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체의 국토가 일체의 국토에 들어가고 하나의 국토가 일체의 국토에 들어가며 일체의 세계가 하나의 터럭(毛孔)속에 들어가고 하나의 터럭이 일체의 세계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중생의 몸에 들어간다는 법문(法門)이 그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 티끌 속에 온 세계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 하나의 티끌속이 다 그러하며 그 속에는 각각 무수한 부처님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무량원겁의 영원 속에 들어가는 가 하면 일체의 부처님법이 한 법에 들어가며 일체의 음성이 한 음성에 들어가고 한 음성이 일체의 음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곳에보면 삼천대천세계만한 큰 경전이 있고 그 책 속에는 그 삼천대천세계의 삼라만상에 관한 온겆 글이 쓰여져 있는데 그것이 한 티끌 입자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 하나의 티끌 입자가 다 그러하고 그 반대가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설파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의 어떠한 기억 소자(素子)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기억 소자(素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놀라운 불교의 우주론은 앞으로의 정보화시대에 있어서 무한한 상상력과 이미지를 제공할 것이다.
나가르쥬나(龍樹)는 일찍이 사물들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상호적 작용에 의해서만 그것들의 존재와 자연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실재물들이 서로 동일하면서 다르다고 하는 미묘한 일은 원인과 결과, 실체와 속성, 전체와 부분, 주체와 객체 등이 서로 의존되어 상호관통하고 있는데 연유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 우주는 인간의 내적 세계에 대한 외적 세계로서 인간과 우주는 동일한 물질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에 있어서 모든 에네르기 내지 사사물물(事事物物)들과 모든 정신적 의식과 영혼들은 횡계(橫系)와 종계(縱系)의 관계와 같아서 물질의 실들과 정신의 실들이 서로 연관지어져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끝없는 우주망(宇宙網)을 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성론(寶性論)》의 여래장품에 나오는 일체중생유여래장(一切衆生有如來藏)이라는 말의 의미는 일체의 중생(여기서 일체중생이란 우주의 삼라만상 일체를 의미한다)이 여래장 즉 불성 다시 말해서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단지 그것이 오염되어 음복되거나 깨닫지 못하여 감추어져 있을 뿐 깨닫게 되면 불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컨대 불교의 우주관은 현대의 첨단과학의 세계와 천문학의 우주론을 함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통일적 세계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의 이른바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불광(佛光)에 빛나는 불경계(佛境界)요 그 불광은 서로 방해 받지 않고 상호관통하여 우리들 심광(心光)이 또한 그와 같아서 백삼천대천세계를 시방십중(十方十重)으로 주회(周廻)하여 비추니 주관(心)과 객관(境)이 하나로 합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관통한다는 부처님의 진리의 설법은 진실로 진리 중의 진리요 지혜 중의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광(光)반도체 소자(素子)를 개발하여 초고속 초대용량의 정보처리 장치를 개발하여 초고속 초대용량의 정보처리장치를 실현함으로써 대량의 정보의 두뇌를 지탱하는 소자(素子)를 탄생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초밀도의 정보처리장치들은 앞으로 더욱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것이지만 그것은 불교의 우주관을 더욱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불교의 우주론이 현대과학의 우주론과 같은 수준의 과학적 세계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 세계로만 향하는 과학의 발전이나 과학적 우주론은 결코 인간의 참된 삶이나 가치내지 구원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불교의 우주관이 현대화학의 우주론에 결여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내지 내적 세계의 중요성이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없는 종교는 맹인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우주적 종교성이 가장 강하게 되어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한 일이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이와같은 종교관과 우주관에서 본다면 불교의 우주관은 바로 과학성과 종교성을 동시에 함유함으로써 새로운 우주시대를 여는 오늘의 세계에 가장 바람직한 우주적인 세계상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엄사상 (華嚴思想)

            물리학적인 세계상

전 물리학적인 세계상은 "자연은 일정한 시스템 안의 정보전달이다."라고 하는 새로운 분자생물학의 세계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공업기계로부터 컴퓨터로, 조립에서 처리로, 공간적인 것에서 시각적인 것으로, 공업화 시대의 우주론에서 정보화 시대의 우주론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살고 있다. 오늘날 일체의 생물은 왓슨(G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에 의해 발견된 DNA(일종의 유전자)라는 기초적 생물 단위로 분해할 수 있고, 그 DNA는 실험실에서 추출하여 인간이 재조립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우수한 생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간단하게 키보드에 프로그램을 입력함으로써 종속간의 벽을 초월하여 신종 생물의 모든 것을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사는 세계는 인간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종 생물들이 넘쳐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우리는 인간의 두뇌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DNA 분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무게가 약 1,500g의 핑크색으로 된 젤리형의 덩어리면서, 그 속에 약 2백억 개의 신경세포를 함유하고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다수의 수지상돌기의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크기는 약 100분의 1mm의 세포체와 거기에서 길게 뻗은 하나의 신경섬유로 되어 있다. 이 하나의 신경세포는 최근의 미니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능력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신경섬유는 전선의 역할을, 세포체는 전기 신호의 발신 및 수신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것은 신경세포의 발신·수신의 작용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배후에 있는 구름과 같은 전기회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크기가 약 1억분의 1cm의 분자의 화학적 변화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분자생물학은 바로 이와 같은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는 분자의 세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눈의 감각세포는 매초당 약 백만 개의 신호를 신경섬유를 통하여 대뇌로 보내고 있다. 하나의 DNA 분자는 그 폭이 약 백만분의 2mm 정도의 가늘고 긴 끈의 형상을 한 분자로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은 1.5m가 될 만큼 긴 것으로서 코일 형상으로 감겨져 있다.
DNA 분자의 구조는 4종류의 염기(아데닌 A, 구아닌 G, 시토닌 C, 티민 T)가 연쇄상으로 일렬로 연결된 것이 2개가 중첩되어 있고, 그 분자수는 무려 약 50억 개나 되며, 비유를 한다면 1천 권의 백과사전과 맞먹는 것이다. 모든 개체가 저마다 형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바로 그 4개의 염기의 서열이 다르게 배열된 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화엄경」에는 DNA 분자의 구조를 훨씬 능가하는 천문학적인 수량의 내용이 표시되어 있다. 「화엄경」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불자(佛子)여,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만한 양의 대경권(大經卷)이 있고 게다가 그 대경권 속에는 삼천대천 세계가 전부 완전하게 씌어 있다. ‥‥‥이 대경권은 하나의 극미의 먼지알[粒子] 속에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1극미진(極微塵) 중에 그 대경권이 투입되어 있는 것과 같이 다른 일체의 극미진 등에 있어서도 그 양만큼의 대경권이 그 안에 투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오오 불자여, 여래지(如來智)는 한없는 양(量)의 지혜요, 무애의 지혜로서 일체 중생의 몸에 전부 들어 있다.
여기서 여래지는 불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대 분자생물학에 있어서의 정보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DNA 분자는 최초의 수정란과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하여 생물을 만드는 설계도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총지휘자 겸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정보체이다.
이것은 불교의 불성(불성, 여래지)이나 유전자 속에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의식도 없고 듣는 의식도 없는 곳에 일종의 언어 범주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서, 종교적·생물학적 정보의 신비성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선불교의 이심전심이나 염화미소의 경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화엄경」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 光明遍照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법신불이 있다. 이것은 우주 자연 전체에 편만되어 있으면서,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현현하는 그 응화(應化)의 당체로 작용한다. 이 비로자나 법신불은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개별적 존재들로 하여금 불가분리의 유기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게 하는 연기의 주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불교 경전의 사상이 그러하듯이 마음[心]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원효(元曉)는 물론 그것을 일심(一心)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비로자나 법신불은 물질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분자생물학에 있어서, 분자나 유전인자가 물질성을 가지면서 그 자신 속에 유기적인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불교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의 사상은 유전자의 정보 교신의 경우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보성론」의 일체중생유여래장품(一切衆生有如來藏品)에 보면 '일체중생유여래장(一切衆生有如來藏)'이라고 할 때의 여래장은 '소섭(所攝)의 의(義)'와 '은복(隱覆)의 의(義)' 그리고 '능섭(能攝)의 의(義)'등의 3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제1의는 "일체 중생은 모두 여래지안에 있으며, 그 속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생이 여래장이다."라고 말하고, 제2의는 "여래가 스스로 숨어 나타나지 않고 있으므로 여래성은 범부에 있다 하더라도 번뇌에 은복되어 중생은 이것을 보지 못하므로 중생은 여래장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제3의는 "능섭을 장하는 여래로서의 일체의 공덕을 중생이 섭지하고 여래로 되었을 때, 전부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생은 여래장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승장엄경론」의 여래장과 진여, 2개의 관계를 보면, 산스끄리뜨어본[梵文] 9의 37송(頌)에, "진여(眞如)는 일체의 것에 무차별이고, 청정(淸淨)에 달하면 여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일체의 유신자(有身者, 衆生)의 태(胎)이다."라고 설하여 있다.
「승만경」 제14게(偈)에도, "세존이시여,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고 여래장(如來藏)이 있으며, 여래장을 떠나지 않고 법신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열반이라는 것은 바로 여래 법신이다."라고 하여, 여래장과 법신이 동일자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경에는, "사리불이 말하기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는 것은 곧 중생계이고, 중생계라는 것은 곧 여래장이다. (그리고) 여래장이라는 것은 곧 법신(法身)이다." 라고 설하여 있다. 이것은 중생계와 여래장과 법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본적으로 문제자 되는 것은 '법신과 진여의 의미가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여의 체(體)를 법신이라고 하는데, 인식론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법신은 능연(能緣)의 주체성을 나타내고 있고, 진여는 소연(所緣)의 대상성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제법 실상의 양면에 불과한 것으로서 진여는 물리학적으로는 역장(力場), 생물학적으로는 정보장, 심리학적으로는 정신장(精神場, 프사이場)과 대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여는 무기체와 유기체의 잠재적인 장으로서, 진여(眞如)가 현상화한 것이 삼라만상이요 그것의 자각점이 법신이라고 볼 수 있고, 그것의 기체(基體)를 불성 혹은 여래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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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한다스 카란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어록 

 

  • 권리의 진정한 근원은 의무이다. 
  • 기도하는 것은, 늙은 여인의 게으른 넋두리가 아니다. 적당히 이해되고 활용된다면 가장 유력한 도구이다.
  • 나는 살기 위해, 봉사하기 위해, 또 가끔 즐기기 위해 먹은 적은 있어도 향략을 위해서는 먹지 않았다.
  • 나는 인도의 한 시민으로서, 또한 양심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위해 정의를 행하고자 한다. 이 신념 때문에 처벌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중죄인이 될 명예를 얻고자 할뿐이다.
  • 나에게 있어서 애국심은 인류에와 동일하다. 나는 인간이요, 인간이기 때문에 애국자이다.
  • 내가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속에 있는 양심이다.

     

  • 도의(道義)란 전쟁에서는 금지물이다.

     

  • 만약 한 사람의 인간이 최고의 사랑을 성취한다면,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미움을 해소시키는데 충분하다.

     

  • 모든 사람의 눈으로부터 온갖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 무살생·비폭력(Ahimsa)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최상의 법칙이다. 이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폭력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

     

  • 문명이란 궁핍을 배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궁핍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오직 문명만이 참 행복과 만족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또 그것은 봉사를 위한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개념은, 그 체제하에서는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강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박애(博愛)를 실천하려면 한층 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 부당한 법률은 그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다. 그 법률 위반에 대한 체포는 더한 폭력이다.

     

  • 비폭력은 내 신앙의 제 1조이며, 내 강령의 마지막 조항이다.

     

  • 비폭력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기 정화이다.

     

  • 비폭력은 악을 행하는 인간의 의지에 얌전하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자의 의지에 대해서 온 영혼을 던지는 것이다.

     

  • 빈자(貧者)에게 있어서 경제는 영적인 것이다.

     

  • 삶은 죽음에서 생긴다. 보리가 싹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

     

  • 시민의 불복종은 시민의 타고난 권리이다.

     

  • 신을 심판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비의 무한한 대양(大洋)에 있는 물방울이다.

     

  • 애국심이란 인류애와 같다. 나는 인간이며 인간적이기 때문에 애국자다.

     

  • 어떤 사람이든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불쾌한 일을 참고 견디는 힘이 없다면, 그는 결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결코 빛나는 명성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인내는 정신의 숨겨진 보배이다.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 여성의 직관은 때때로 남성의 오만한 지식에서 오는 자부심을 능가한다.

     

  • 외국 지배의 여러 가지 죄악 가운데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는 피지배 지역에서 모국어를 빼앗는 일이다.

 

 

 

  •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이다. 누구나 각각 신성한 불멸(不滅)의 힘을 갖고 있다.

     

  • 일을 선택할 때에는 자신의 소질과 사회의 수요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전쟁은 절대악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한 가지 좋은 일을 한다. 그것은 공포를 몰아내고 표면상 용기를 자져다 준다.

     

  •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만이 나의 희망이요, 나의 목표이다.

     

  •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자국의 나쁜 정부보다 다른 나라의 좋은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 진리가 나를 인도해 주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흙보다도 더한 겸허를 지녀야 한다.

     

  • 진리의 신에 대한 충성은 다른 모든 충성을 능가한다.

     

  • 진실은 정당한 명분을 결코 해치지 않는다.

     

  • 추위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은 차츰 춥고 더운 것에 대한 저항을 잃게 되고, 그만큼 약한 사람이 된다.

     

  • 틈만 나면 이런 기도를 하자.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최상의 용기를 주소서. 이것이 나의 기도이옵니다. 말할 수 있는 용기, 행동할 수 있는 용기, 당신의 뜻을 따라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일체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남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 홀로 서서 세파를 헤쳐 나가는 용기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자.

     

  • 폭력이 짐승의 법칙인 것 같이 비폭력은 인간의 법칙이다.

     

  •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 한 나라의 위대함은 짐승을 다루는 방법으로 판단할 수 있다.

     

  • 훌륭하게 이행된 의무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리는 가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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