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불교 / 김성구 교수

2015. 9. 19. 21:35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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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물리학과 화엄사상 -“신과학”과 불교에 직접 관련된 자료- 

2002.01.19

가장 최근의 과학이론서 중 하나인 <신과학 산책-김재희 역 1994 김영사>에서 발췌한 내용에 소승이 불교적으로 연관되어지는 사상이나 단어를 생각나는대로 { }안에 넣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과학불교”란 이름으로 몇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아래 내용들은 주로 화엄사상과 대비시켜 보았습니다. 좀 어려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하고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성 법> 

=중략= 
일상생활에서는 물질{色} 
이란 게 그냥 그렇게 어떤 재질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원자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원자는 양자로 이루어져 있는데{事事無碍} 
이 양자라는 것이 도무지 물질적인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理事無碍} 

양자는 아무리 뜯어보아도 거기에 물질적인 재질{色} 이 존재하지 않습니다.{色卽是空} 거기 존재하는 것은 쉬지 않고 서로 변형되는 역동적인 구조들과 끊임없는 에너지의 춤일 뿐입니다.{眞空妙有} 

현대물리학이 보여 주는 세계상은 옴살스럽고(holistic) 생태론적(ecological)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현상{諸行또는 因} 이 서로 얽히고 설켜{緣} 드러나는 이 세계상{實相} 에는 그들의 결속 관계 그리고 상호의존의 관계들이 두드러져 나타나며{相依相關, 緣起}, 그들 자체의 물리적 실재란 내부에 존재하는 ‘역동성’ 다시 말해 끊임없는 움직임과 활력 그것뿐입니다.{果또는 諸法無我} 

그런데 생명체, 즉 살아 있는 유기체를 이러한 관점에서 관찰하여 보면 이제 단순한 물리의 세계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상이 드러납니다. 
현대물리학의 개념을 훨씬 멀리까지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사상체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체계를 보통 ‘시스템이론(system theory)’이라고 칭합니다. 

시스템이론에서 드러나는 세계상은 아주 많은 관계로 이루어지지만 결코 낱낱으로 떼어 놓을 수는 없는 하나의 옴살스런 전체(wholeness)입니다.{重重無盡緣起} 

따라서 시스템이론에서는, 개개 구성요소 각각의 특성을 연구하는 대신 그들이 서로 얽혀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어 가는 원리의 기본적인 특성들을 강조합니다.{一卽一切多卽一} 

이러한 시스템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예는 자연에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미세한 박테리아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물체 각각의 개체마다 모두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꾸려 가는 시스템입니다.{一中一切多中一} 

예를 들어 모든 생명체의 최소단위라고 일컬어지는 세포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의 살아있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으며{一微塵中含十方}, 생체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세포조직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가지 부속기관도 모두 그 나름으로 옴살스런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습니다.{一切塵中亦如是} 

인간의 두뇌는 이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시스템의 예입니다. 시스템적인 측면은 사회현상의 모든 단위, 예컨대 한 가정이나 작은 모임과 같은 사회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기물을 흡수하고 또 배출하는 다양한 생물체로 이루어진 생태계 전체{仍不雜亂隔別成} 도 역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적 시스템은 모두 그 통째가 하나의 옴살스런 전체로서, 구성요소들이 얽히고 설켜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특정한 기능이나 활동{理事冥然無分別} 을 영위해 나갑니다. 

=중략=.

 

002  양자론과 법성게 -신과학 이론의 핵심중 하나인 “양자론”과 불교사상(주로 법성게)-

2002.01.20

신과학 이론의 핵심중 하나인 “양자론”과 불교사상(주로 법성게)을 대비해 봅니다. {▶}안의 글은 역시 소승의 곁다리 입니다. 
<성 법> 

=중략= 

양자역학을 통해 자연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특이한 섭리는, 상호 연결이라는 것이 공간적인 접촉에 위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묘하고 깊고깊은 극미한 진성이여, 제자리 벗어나듯 세계를 나툼이여} 

이 말은 다시 말해 입자와 입자들이 혹은 장(場)과 같은 힘의 다른 요소와 입자들이 거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이들은 모두 실제에 있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뜻입니다.{▶九世十世互相卽: 삼세와 구세십세 엉킨 듯 한덩인 듯} 

따라서 세계는 그저 공간적으로 근접해 있을 때에만 힘의 작용이 성립하는 제각기 분리된 물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一中一切多中一: 하나에 모두있고 많은속에 하나있어} 

물질을 이루는 기본요소인 입자끼리 서로 이어져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데에는 공간적인 거리의 제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一卽一切多卽一: 하나곧 전체이고 전체곧 개체이다} 

이러한 개념은 벌써 고전물리학의 기계론식 사고방식{▶이것을 현대 물리학자들은 뉴튼(Newton)식 이분적(二分的) 사고, 즉 기계론식 세계관-흑백논리라고 비판합니다}과 엄청나게 어긋납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인슈타인의 제창한 힘의 장에서도 공간이라는 요소는 임의로 삭제될 수 없었습니다. 

‘힘의 장’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실체인 입자{▶色}나 장{▶空間}이 밀집도에 의해 서로 접촉하거나 공간적으로 아주 가까이 있을 때에만 국부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지, 서로가 본래의 성질{▶本性, 自性}상 내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가상했었습니다. 

이와 같은 양자이론의 세가지 특성이 기계론식 세계관에 어떻게 모순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선 모든 움직임이나 그들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종국적인 단위는 더 이상 쪼개어 지지 않는 양자(量子)입니다. 

다시 말해 삼라만상의 모든 요소는 항상 움직이고 서로 부딪치면서 작용을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간다는 뜻입니다.{▶眞性甚深極微妙,不守自性隨緣成: 묘하고 깊고깊은 극미한 진성이여, 제자리 벗어나듯 세계를 나툼이여} 

따라서 이 세상은 서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조각들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하나에 모두있고 많은속에 하나있어, 하나곧 전체이고 전체곧 개체이다.} 

또한 양자역학에서는 이 세상을 관찰하는 자와 그가 관찰하는 이 세상, 이런식의 분리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경계 바탕이 한몸이니} 

고전물리학에서는 나라는 관찰자와 분리하여 존재하는 외적(外敵)세계가 따로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현대 물리학에서는 “뉴튼식”, 철학에서는 “데카르트적” 이분론이라 이미 배척되었다} 

나아가 외부세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그것을 관찰하고 측정하고 또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양자물리학에서는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특정한 입자의 현상에 대해 서술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양자론과 불교를 연결시키는 핵심이론 입니다. 마음과 물질이 상호작용 속에 있다는 다시말해 나의 마음이 물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흔히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이 물리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다음 계속되는 설명을 읽으시면 명확해집니다} 

일상생활과 같은 거시세계에서는 상상하기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아원자의 미시세계에서는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산출할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다시말해 관찰자가 둘 중 하나를 선택(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치와 운동량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확히 알면 다른 하나는 전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mer Heisenberg)가 주창한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이 문제는 “아인쉬타인”까지도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수용하지 못 했었을 만큼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난제였습니다}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 중에서 어느 한쪽만을 알 수 있는 것이 물질이 본성이므로, 관찰자는 이 두가지 속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관찰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여야 합니다. 

측정할 속성을 관찰자가 선택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관찰자 스스로가 관찰대상의 속성을 함께 지어낸다는 뜻입니다.{▶理事冥然無分別: 있는듯 이사분별 그러나 걸림없고} 

따라서 양자역학에서는 대상을 그대로, 즉 인간의 경험과 동떨어진 하나의 개관적 현실로 관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화엄의 法界緣起-四種法界를 양자역학에서 증명해 주고있습니다.} 

=중략= 

 

003  과학과 신비주의 -“시간과 공간” ‘ “마음과 물질”등에 관한 과학자의 견해-

2002.01.21

이번엔 총체적 이해를 위해 곁다리를 붙이지 않겠습니다. 
<성 법> 


=중략= 
신비가들은 3차원의 일상적인 현실을 쉽사리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의 경지로 오르는 체험을 하는데, 수리 아우로빈도(Sri Aurobindo : 1872~1950) 같은 성자는 명상적 체험을 통해 4차원의 세계를 투시할 수 있는 심오한 체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드러나는 현실은 마치 상대성원리나 양자역학에 따라 드러나는, 일상과는 다른 차원인 미시세계 혹은 거시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로는 표현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물론 신비가와 물리학자가 ‘다른차원’이라는 표현을 할 때 세세한 내용까지 서로 일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아마 구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비가들은 초월체험(3차원의 공간과 불가역(不可逆)의 시간이라는 환경의 조건에 제한되는 인간신체의 다섯 가지 감각능력, 즉 시각/미각/청각/후각/촉각의 경험세계를 뛰어넘는 광활한 감수성의 체험. 본서에 실린 그로프 편 ‘초월심리학’참조)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간과 시간을 이해하는 바와 첨단에 선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현대과학의 시공(時空)에 대한 이론적 견해는 너무나 유사합니다. 

예컨대 다양한 부류의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을 훑어보면 신비가들은 분명히 상대성원리에서 말하는 시공연속체의 속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시간과 공간은 서로가 완전히 결합하여 있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시간성을 배제한 공간이란 있을 수 없고, 공간성을 배제한 시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순수한 경험적 사실’이라고 불교의 석학 스즈키 다이체스(鈴木大拙 : 1870~1966) 박사는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구절은 분명히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를 소개하는 모든 교본에 표지제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과학에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상은 이처럼 철저히 생태론적인데, 이는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방지해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환경보호라는 개념을 뛰어넘습니다. 

생태론적인 세계관이 서구문명의 전통에서는 물론 현대과학에 의해 새롭게 확립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이는 원래 과학의 범주에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 감수성에 바탕을 두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도 생명이란 우주안에서 여러 차원의 계층과 주기적 변환을 그리며 발현하는 다채로운 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직관적 인식과 체험을 통해서도 우주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며 결국은 한 몸을 이룬다는 시스템적이며 생태론적인 세계관의 근간을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태론적인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는 것은 곧 우주와 내가 하나로 되는 그런 직관에 관통됨을 뜻합니다. 

내가 더 이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와 완전히 하나로 합치는 그러한 강렬한 체험은 생태론적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체험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생태론적인 마음상태란 종교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라틴어에서는 종교라는 말이 ‘religio(結合)’, 부연해 본다면 인간과 신이 혹은 개인과 우주가 밀착되어 다시 결합한다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서양어의 종교에 해당하는 ‘요가’는 합일(合一)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생태론적인 새로운 세계상이 신비가들의 체험에 따른 직관적 세계상과 일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중략= 

인용:”신과학 산책” 중 <카프라(Fritjof Capara)>편 에서

 

004 형태장과 업 -최신 생물학의 “형태장(形態場)”에 관한 이론-

2002.01.22

아래 글 중 형태장을 “업(業)” 혹은 “공업(共業)과 대비시켜 이해해 보십시오 
<성 법> 


=중략= 
형태장의 구조는, 그 형태의 장을 갖는 생물의 종 내에서 시간적으로 앞서 존재하였던 유사한 개체들의 실제 형상에 따라 꼴지워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양이의 모습을 정해 주는 장(場), 다시 말해 고양이의 형태장은 이제껏 존재했던 고양이의 실제 형상이 모두 합해진 일종이 누적물입니다. 

그런데 형태장의 영향력은, 유전물질인 DNA속에 담겨있다가 물리적인 작용과 화학적인 반응을 겪으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벗어난 원격(遠隔)적인 활동을 통해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한 마리의 고양이가 지금 태(胎)의 상태로 발생하기 시작했다면, 이 고양이의 태는 이제껏 존재했던 유사한 고양이의 실제 형상이 모두 합해진 결과인 고양이의 형태장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장은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1875~1961)의 ‘집단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반복이 다 합해져 누적된 인류 공통의 기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종류의 생물체에 누적되어 있는 모든 사건은 그 생물종이 공통적으로 영향을 받는 그 종의 형태장에 기억됩니다. 

여기서 저장된 요소들은 새로 발생하고 탄생하는 다른 개체가 꼴을 갖추는 데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까 한 종에 속하는 모든 개체의 활동은 그 생물종의 형태장에 영향을 주며, 이러한 영향을 통해 조금씩 변형되어 가는 형태장은 다시 새로 발생하고 탄생하는 미래 개체의 모양새를 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상호작용에 대해 여러분은 분명 커다란 의심을 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지껏 학교제도를 통해 교육받고 몸에 익은 뉴턴 식 과학의 사고방식으로는 너무나 불합리한 설명이어서 얼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좀 일목요연하게 표현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기 위해 우선 하나의 모형을 그려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모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종의 형태장이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간략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식물이나 동물은 지구 생태계에서 이루어지는 진화의 과정 안에서 하나는 특정한 시점을 잡아 지구상에 출현하므로, 그 종(種)에 속하는 모든 개체는 하나의 시조(始祖)에서부터 번성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첫번째 시조가 지구상에 어떻게 등장하는지, 그 점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이론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다음부터를 다룹니다. 

그토록 다양한 생물체의 종이 지구상에 각각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 제 연구의 초점은, 이미 출현하게 된 하나의 생물종이 독특한 모양새를 유지하여 생태계에서 그 모습으로 자리를 굳혀 가는 과정의 수수께끼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 
-①----②-----③--------④-------⑤- 
[a]---[ab]---[abc]----[abcd]---[abcde] 
------------ 시간 ------------------>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에 살았던 조상으로부터 형태공명의 영향이 축적되어간다. 
======================================================== 
<도표> 

위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첫번째 조상, 그러니까 이 종(種)의 시조에 해당하는 그 개체의 형상은 두 번째 세대뿐만이 아니라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등등으로 전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대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등등으로 계속 영향을 미치며, 세 번째 세대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등등으로 해서, 한 종이 생물체 안에서 첫 시조로부터 대대손손 내려온 경험이 모두 누적되어 새로운 개체가 형태를 갖추어 가는 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중략= 

# 소승은 이 글에서 많은 것을 연상 할 수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하나 소개하면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은 한량이 없어 우리 모두 가피를 입고 있지만 무명(無明)으로 모를뿐>이란 새삼스럽고 당연한 말씀입니다.

 

005   형태장과 아함에서 화엄까지 -생물학의 형태장(形態場)에 관한 이론-

2002.01.22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중략= 
대학이나 연구소 혹은 제약회사나 다른 화학산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면 화학반응을 통해 분자들이 재배열되면서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바로 이 현상을 제 이론과 관련시켜 해석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태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물질이 형성될 때에는, 그러니까 화학적으로 말해서 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분자가 새롭게 배열될 경우에는 이 결정구조에 해당하는 형태의 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방식이 결정형태가 없었을 테니까요. 

따라서 처음에는 이 물질이 결정되어 생성되기가 좀 어려울 것입니다. 

적어도 그 새로운 물질의 형태장이 나름대로의 모양을 굳혀 독자적인 기능을 발휘할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만 할 것입니다. 

제 이론이 맞다면, 일단 그 물질이 한번 새로운 결정구조를 형성하게 된 후 두 번째부터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라도 그 반응이 비교적 쉽게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결정구조의 형태장은 그 모양새를 가진 물질이 다시 이루어지는 반응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동일한 사건이 반복됨에 따라 형태장의 성격이 더 분명해질 것이므로 세 번째는 좀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네 번째는 더 쉬워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게 되면 전세계 어디에서라도 어려움 없이 그 물질이 생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화학자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인데, 어떤 새로운 물질이 처음으로 합성되는 것은 어려워도 일단 이루어진 결정구조는 전세계 어디에서든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수월하게 합성됩니다. 

이러한 일은 무수히 일어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일하는 화학자들은 몸소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어떤 식으로 풀이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이 실험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화학자에게 직접 그 요령을 배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는 물론 설득력 있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개선된 실험요령이 새 물질이 결정효과를 높인다는 설명 외에 화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좀 우습게 들릴 다른 해석도 한 가지 있습니다. 

이미 합성된 결정구조의 분자가 그 실험에서 성공을 거둔 화학자의 옷 속에 그리고 특히 그의 수염 속게 숨어 있다가 적당한 때에, 그러니까 다른 장소에 있는 실험실에 들었을 때 살짝 빠져 나와선, 다시 기회를 보아 그 곳에 있는 실험용기 안으로 들어가 동일한 결정구조가 쉽게 합성되도록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화학자들이 긴 수염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다님에 따라 그 물질의 결정이 수월히 진행되는 효과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화학자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상당히 경험에 입각한 추리극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화학자를 친구로 두신 분이 계시면, 이런 일을 실제로 겪은 적이 있는지 한번 넌지시 물어보시기 바람니다. 

그 중 몇 사람은 분명히 수염에 얽힌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교과서에 실려있는 어떤 이론은 아니어도 화학자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은 담소거리로, ‘효과적인 화학반응의 확산성’에 대한 공공연한 해석으로 간주됩니다. 
=중략= 

# 소승은 처음 이 이론을 대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메모를 해두지 않은 이 부분을 찾기 위해 책을 몇번 다시 읽는 어리석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소승이 “화엄경 총론”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소승은 불교사상의 핵심적인 난제들에 대한 이해를 경전이 아닌 오히려 현대 물리학이나 생물학의 최신 이론등에서 해결한 바가 큽니다. 

일상의 예를 들어 위의 이론을 부연 설명하면 가전제품의 경우 TV, 세탁기, 냉장고 등 최신의 제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회사가 있음에도 거의 같은 주기에 비슷한 성능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쟁관계인 그들이 제품의 정보와 출시시기등 회사의 생존이 걸린 비밀을 “정보교환” 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소승은 위의 한 예에서 “空”, “業”에서 “重重無盡緣起”에 이르기까지, “아함에서 화엄에 이르기까지” 온통 법계를 한바퀴 돌아본 듯 하였습니다. 

<성 법> 

 

006 물리학과 불교적 체험 -총체적 사고로- 

2002.01.23

앞에서 제시한 자료 과학불교(1)~(5)까지를 읽어 보셨다면 이번의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교적 용이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이번에는 글의 단락에서 회원님이 직접 불교사상을 대입시켜 보십시요.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다만 “총체적 사고”로 접근하셔야 합니다. 
<성 법> 

=중략= 
물리학자인 나에게 평생을 두고 새로운 성찰을 만들며 그럴 때 마다 새삼스레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벅찬 사건이 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이란 금세기 초 약 3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물리학의 기본개념과 물리에 대한 사고방식의 극적인 대변환을 말합니다. 

물질에 관한 현대물리학의 모든 이론은 이 근본적인 변환을 발판으로 하여 새롭게 편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에서 얻어진 새로운 개념들은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길들어 있던 기존의 세계관을 철저히 바꿔 놓았습니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데카르트와 뉴턴식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더 이상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옴살스럽고(holistic) 생태론적인(ecological) 아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옴살스럽다 : 모두가 ‘한 몸같이 가까운 사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신과학은 분석을 위주로 하는 종래의 과학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며 개별 요소들 간의 보다 유기적인 관계,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내면적으로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관점을 강조한다. 
이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그리스어 ‘holos(온, 모든)’에서 유래한 ‘holistic’, ‘holism’, ‘wholeness’ 등등에 대응하는 적당한 말고 ‘옴살’이라는 순수 우리말이 있다고 서강대학교의 김영덕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당장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기왕 있던 우리말이니 자주 쓰다 보면 쉬 친숙해지리라고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물리학의 발전으로 얻어진 새로운 시각이, 고래로 어느 시대 또는 어느 전통에도 존재하였던 여러 신비가들의 체험적 진리와 대단히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동양의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서구의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시각이나 청각 혹은 촉각이나 후각과 같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는 분명히 서로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는 사물이나 현상도 결국은 서로가 얽혀 있고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설사 외형상으로는 완연히 구별되어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본래는 모두가 동일한 실재에서 비롯된 서로 다른 가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사물이나 현상들은 각각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한편, 우리 자신을 이 세상과 맞서 있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망상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외관으로 구별하고 양적으로 분별하여 측정하고자 하는 지성이란 사실상 똑똑함이 아니라 어리석음, 곧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의 전통에서는 이를 진정 극복하여야 할 정신의 혼란상태라 하여 무명(無明 : Avidya)이라고 일컫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접하는 대자연의 삼라만상에서 각각의 현상과 사물을 구별하고 분석하는 행위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유용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 그렇게 구분시키는 절대적인 기반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동양의 종교전통이나 가르침에서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여 모든 현상과 사물을 변화무쌍한 흐름 안에서 파악하였습니다. 

우주만물은 기계적이며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며 역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서구전통의 기계론식 세계관과는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철저히 생태론적이고 옴살스런 안목의 사고방식이 발달했습니다. 
=중략= 

 

 

 

 

007 물질,반물질과 色,空

2002.01.23

이번 글은 “반물질”에 관한 기사입니다. 
<성 법> 

빅뱅(Big Bang·우주대폭발) 직후 반물질(antimatter)이 사라지면서 오늘날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미·일 등 14개국 공동연구팀은 2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고에너지 물리 국제 학술회의’에서 “쌍으로 만들어진 물질과 반물질의 붕괴율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반물질은 모양과 질량 등 모든 성질이 물질과 같으나 전기 전하만 서로 반대값을 갖고 있는 입자다. 물질이 양화라면 반물질은 음화인 셈이다. 현대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약 150억년 전 빅뱅이 일어난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쌍으로 생성됐다. 

그런데 양화와 음화를 합치면 형태가 사라지고 회색 배경만 남듯이 물질과 반물질이 충돌하면 둘 다 소멸하고 에너지만 남는다. 따라서 물질과 반물질이 쌍으로 생겼음에도 원자·분자·별·은하 등 물질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우주가 버젓이 존재하는 것은 물리학계의 큰 수수께끼였다. 

연구자들은 일본 쓰쿠바에 위치한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에 세계 최고 성능의 입자가속기를 설치해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소립자)의 하나인 ‘B-중간자’와 그 반물질인 ‘반B-중간자’ 쌍을 만들었다. B-중간자는 생성된지 약 1조분의 1초 만에 붕괴돼 사라진다. 

연구자들은 찰나에 불과한 이 기간에 B-중간자와 반B-중간자의 붕괴율 차이를 측정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물리학과 김선기 교수는 “B-중간자 3100만쌍의 붕괴자료를 분석한 결과 B-중간자와 반B-중간자가 서로 다른 붕괴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즉 똑같은 수의 쌍으로 생긴 물질과 반물질 중 반물질이 먼저 붕괴했다는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주는 빅뱅 초기 생성된 물질 중 반물질과 만나지 않아 살아남은 것들로 이루어졌다”며 “이런 모든 상황은 빅뱅 직후 1초 이내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 뒤 우주가 급팽창하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살아남은 불안정한 소립자 물질은 전자·양성자 등 안정된 입자로 바뀌어 오늘날의 우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물질}+{반물질}=쌍소멸{에너지} 을 설명하고 있는 이 글을 간단히 불교식으로 도식화하면 {色}+{色}=쌍소멸{空-에너지(妙有)}---{色卽是空}, {事事無碍}등 

소승의 비약적 억지 주장일까요. 
아니면 소승이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불교의 논리를 현대과학이 이제 증명해 주고 있는 하나의 작은 예” 일까요. 

<성 법>

 

008 (8)-과학불교(7)추가자료 

2002.01.24

- 이 글은 과학불교(7)에서 소승이 밝힌 견해를 보충해주는 추가자료 입니다.-
< 성 법 >

- 물리적 진공, 복잡한 그물망으로 연결- 
- 색계도 단면일뿐 …모든것 서로 이어져 - 

물리적 진공에 에너지를 주었을 때 입자-반입자의 쌍이 생성되는 쌍생성,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자신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쌍소멸의 현상만으로도 반야심경이 표현한 공불이색 색불이공은 더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잘된 표현이지만 쌍생성과 쌍소멸은 물리적 진공의 성질을 나타내는 현상중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진공은 기술(記述)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상태에 있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몇가지 종류의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소립자마다 짝이 되는 반입자가 있는데 입자-반입자가 결합하여 서로서로 끊임없는 상속작용을 하면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물리적 진공이다. 

이 그물망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창조와 소멸을 되풀이 하고있다. 끝없이 쌍생성과 쌍소멸도 일어난다. 

그뿐 아니라 갖가지 종류의 입자와 반입자가 제멋대로 생겨났다가 제멋대로 사라지는데 단지 인간에게 관측되지 않고 그물망 속에서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이다. 

이 그물망은 모양도 없고 크기도 없고 끊어진데도 없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된 것은 인간이 볼 수 없다. 

강한 에너지를 주면 이 그물망의 한 곳을 절단할 수 있는데 절단면이 바로 우리가 보는 물질계를 이루는 입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철사줄로 된 그물망을 예로 들겠다. 철사망의 한곳을 잘라 철사를 구부리면 두개의 면이 나타난다. 한쪽면이 입자이고 다른 면이 반입자다. 

실제의 그물망은 두곳을 잘라 철사조각 하나를 완전히 그물망에서 들어낼 수 있지만 진공의 그물망에서는 철사조각 하나를 완전히 들어낼 수가 없다. 철사조각 하나를 들어냈다고 가정하더라도 철사조각 중간부분이 다시 다른 철사줄로 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입자를 가상입자(假想粒子, Virtual Particl)라 부르고 우리가 보는 물질계 즉 색계(色界)를 이루는 입자를 그냥 입자라 부를뿐 가상입자나 실제입자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색계를 이루는 입자도 다른 입자와의 관계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입자를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색계의 입자 모두는 다시 철사줄에 비유한 가상입자를 통해 진공의 그물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실제의 입자는 단지 잘라진 철사줄의 절단면에 불과하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상입자는 철사줄이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이와같은 그물망으로 물리현상을 다루며 계산하고 있다. 

그러니 색계라고 해서 진공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 무엇이 아니라 단지 그물망의 여러곳을 절단하여 철사를 구부려 그면이 보이게 했을 때 보이는 절단면에 불과하다. 

중요하기에 한번 더 강조하지만 색계를 절단면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물리학자들이 실제 문제를 풀고 계산하는 방법이요 모델이다. 

그물망과 절단면은 자연에 대한 실제모델이니 즉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입자가 절단면에 불과하다면 연결되지 않고 존재하는 절단면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물망의 모델대로 입자는 가상입자를 주고받으면서 다른 입자와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 즉 색계는 다시 진공과 가상입자를 주고받으면서 연결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 상호작용의 효과를 실제로 이론적으로 계산하고 실험적으로 측정한 것은 대략 50년전 쯤의 일이다. 

이것을 최초로 계산한 사람은 램(Lamb)인데 색계와 진공과의 상호작용에 관해 램이 발견한 효과를 램-이동(Lamb Shift)이라 부른다. 

색계가 단순히 그물망의 절단면에 불과하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것을 색불이공이라 불러야 할까? 공불이색이라 불러야 할까? 이 두마디의 말은 어딘가 부족한데가 있다. 

그대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그냥 진공에나 있는 하나의 절단된 자국에 불과하다. 그러니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일 수 밖에….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그물망의 모델을 표현할 말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떠나 달리 찾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반야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009 (9)-과학불교(2)추가자료 

2002.01.24

- 이 자료는 우리의 마음이 물질에 직접 관여 한다는 소승의 과학불교(2)에 대한 보충입니다.-
< 성 법 >

- “입자의 위치·속도 동시에 알수없어 ”- 
- ‘본다’는 생각이 존재를 창조한다 - 

색수상행식이 다 공한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자연이 이렇게 전개되어 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일체즉 유심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공한 가운데서 이렇게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 자연을 설명하자면 물리학만으로는 부족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 설명하는 것도 일체즉 유심조와 비슷한 점이 많다. 

물리학에서도 인간이 관측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관측자 자신이 창조하여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확정성 원리와 이 원리를 일반화시킨 상보성원리라는 것이 바로 일체즉 유심조를 뒷바침하는데 먼저 불확정성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사물을 관찰한다고 해서 사물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북한산 꼭대기의 백운대를 쳐다본다고 해서 백운대의 모습이 바뀌거나 백운대가 어디 다른데로 옮겨가지 않는다. 

누가 쳐다보든 말든 백운대가 항상 거기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면 백운대는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의 본질이라면 이러한 자연에 일체즉 유심조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포함하여 모든 물질과 자연현상의 기본을 이루는 미시적 세계 즉 원자(原子)이하의 세계에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때 물리학자들은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알려진 고전역학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순간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입자에 관한 모든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의 세계에서는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치를 알아내는 순간 속도가 크게 변해 다음순간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속도를 알아내면 이번엔 어느 위치에서 그런 속도를 갖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어머니가 밖에서 노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나를 알기 위해 살펴볼 때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서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린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사라진 아이를 찾아 여기저기 살피다가 냇가에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또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이 관찰행위는 언제나 관찰대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된다. 

관찰대상과 관찰자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기에 관찰자의 관찰행위는 관찰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물리적인 양으로 표시한 것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이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라는 것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이다. 매우 간단하지만 이 표현속에 바로 일체즉 유심조에 이르는 원리가 있다. 

사람이 입자의 위치를 알고자 하면 이 입자에 빛을 쪼여 빛이 입자에 부딪친 후에 나오는 빛을 보아야 하는데 입자에 부딪친 빛이 입자를 때려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마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때려 튕겨나가게 하는 것과 같이 빛이 입자를 때려 튕겨나가게 하는 것이다. 내가 입자의 위치를 아는 순간 입자의 속도가 크게 변하는 속도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속도를 재면 위치가 변하여 어디에 입자가 있는지 모르게 된다. 

불확정성 원리가 말하는 것은 사람이 입자의 위치를 관찰할 때는 입자와 사람사이를 강한 빛으로 묶어 놓아야 하는데 이 강한 빛이 입자의 속도를 바꾸어 놓는다는 뜻이다. 

관찰할 때마다 변화를 주게되니 ‘본다’는 것은 관찰자가 관찰하는 것을 창조해서 보는 것이다. 

그러면 관찰하기 전에 입자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가? 있었기에 빛을 쪼여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빛을 쪼여 입자를 보기 전까지는 입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할 확률만이 전 공간에 파동처럼 퍼져 있었을 뿐이다. 

빛을 쪼인 순간 확률파는 붕괴되어 버리고 어디선가 입자가 불쑥 튀어나올 뿐이다. 사람이 입자를 창조해서 보는 것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의식한다는 뜻이다.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창조하여 의식하는 것이다. 

김성구<이화여대 교수·물리학과>

010 (10)-과학불교-신과학과 불교

2002.01.27

다음은 “초월심리학”의 “그로프”란 학자의 글입니다. { }안은 역시 소승의 곁다리 입니다. 
<성법> 

=중략=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서구과학의 기계론식 사고방식은 사상누각이 되어 허물어졌습니다. 

프리초프 카프라(Fritijof Capra)가 그의 책 「物理學의 道(The Tao of Physics, 1975)」와 「전환점(The Turning Point, 1982)」에서 명약관화하게 보여 준 것처럼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물리학은 새로운 발전을 거듭하여, 항상 불변하며 확정적이라고 믿어 왔던, 뉴턴과 데카르트의 소위 기계론식 합리론에 입각한 여태까지의 과학모델에서 상정하였던 가설(假設) 모두를 의문에 부쳤습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즉 원자물리학과 우주물리학에서 입증된 우주만물의 새로운 질서는 17세기에 확립된 기계론식 세계관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실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이 이론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까지 계속되어 거시세계의 “지동설”적 사고의 전환을 미시세계에도 요구하게 되었다.} 

우주를 형성하는 기본단위인 원자{▶色-물질} 는 본질적으로 비어 있다{▶空} 는 사실이 구체적인 실험과 이론에 의해 밝혀지면서, 뉴턴 물리학의 특성인, 물질은 고정적이며 없어지지 않는다{▶이 고전 이론을 굳이 종교철학에 비유하면 미래는 예정되어 있는대로 흐른다는(뉴턴의 물리학과 천문학적 방정식과 같이“宿明論”이나 “예정조화론”이 세상의 실체가 되고 맙니다. 아인슈타인까지도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선듯 받아들이지 못하였다)}는 수백 년간의 신화가 깨어졌습니다. 

양자·전자·중성자로 환원되는 원자는 더 이상 개별적으로 어느 특정한 위치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존재{▶이 이론은 불교 “俱舍論”의 물질관이기도 하다.} 가 아닙니다. 

원자란 오히려 수백개의 아원자(亞原子)입자가 고에너지 상태로 융화되며,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生住異滅 또는 成住壞空} 

확률적 ‘경향’임이 판명된 것입니다.{▶미시세계가”확률적”이라는 의미는 거시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고전이론의 “숙명론”은 부정되고, 과정[緣]에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果報]가 나올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소립자{▶微塵} 들은 빛이 가지는 특성을 띠기 때문에 실험상황에 따라 입자(粒子)도 되고 파장(波長)도 되는 모순된 성격{▶”緣”에따라 “果”가 다르게 나타 난다는 의미다.} 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고정되어 있는 물체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이 세계는 이제 끊임없는 과정(過程)과 사건(事件)의 연속적인 춤 그리고 얽히고 설키는 그들의 관계 속에 자욱하게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인드라망”과 같은 “重重無盡緣起”나 화엄의“四種法界”를 연상케 한다} 

원자를 구성하는 아원자를 분석하면서부터 딱딱했던 뉴턴의 물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율동과 형상 그리고 추상적인 질서의 꼴이 나타난 것입니다.{▶”色卽是空”이고 “카오스”적인 “무질서의 질서”의 현상을 말함} 

수학자이며 물지학자인 제임스 진스(James Jeans:1877~1946)의 말대로, 우주는 이제 더 이상 기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커다란 ‘마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주와 내가 “주인공”인 한 몸, 곧 부처와 중생이 한 몸이 되는 순간이다} 

공간은 3차원이고 시간은 따로이 존재하는 1차원이라는 뉴턴의 생각은 아인슈타인에 와서 허물어졌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아무런 연관없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4차원으로 된 하나의 시공연속체(時空連續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영락없이 “법성게”의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삼세와 구세십세 응킨 듯 한덩인 듯, 그러나 따로따로 뚜렷한 만상이여]를 설명하고 있다} 

곧이어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객관적 세계는 저 혼자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항상 관찰자의 주관(主觀)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마음이 물질에 관여 한다”는 이론, 전자의 위치나 질량을 파악하려면 동시에 두가지를 다 알 수 없으므로 위치와 질량 중 어느 것을 파악할지 관찰자가 미리 결정해야 한다} 이 증명되면서, 수백 년 동안 서구 과학을 지배해 온 직선적 인과율의 절대법칙, 그러니까 우주의 모든 현상은 항상 특정한 원인과 일정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기계론식 사고체계{▶자연과학에서는 “뉴턴식”, 인문철학에서는 “데카르트적”이분적 사고체계라 부른다.} 가 무너져 내렸습니다.{▶그 결과는 아래의 말과 같이 이 우주에 “神”이 설 자리가 그 많큼 좁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의 성립으로 이제 우주는 더 이상, 한치의 오차도 없도록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신(神)이 제작해 놓은 거대한 시계(時計)에 비교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확고부동한 뉴턴식 인과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측불허한 수많은 사건과 그들의 관계로 얽히고 설킨,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요동하는 새로운 우주관이 탄생하였습니다.{▶지금까지 소승이 미흡하나마 대비시킨 이론들을 상기하십시오.} 

우주를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그래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게된 것입니다.{▶이 이론대로 라면 역시 고전적 의미의 “神”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집니다} 

=중략= 

 

011 과학불교(11)-형태공명과 인과

2002.01.29

<쥐의 행동양식에 대한 흥미있는 실험입니다. 불교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말미에 몇자 적겠습니다.> 

=중략= 
실험실에서 쥐들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관찰하는 일은 용이합니다. 

실험실에서는 동물의 행태를 연구하는 기본재료로 쥐를 널리 사용하기 때문에 쥐의 행동심리에 관한 연구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자료를 종합하여 검토해 보면 다시 제 주장에 부응하는 형태공명이 효과가 역력히 드러납니다. 

물론 이 실험의 결과만을 증거로 제 이론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전에 이루어졌던 이 실험들의 결과를 제가 다시 인용하는 까닭은, 마침 제가 주장하는 형태공명의 이론이 이 분야에서 나타난 불가해한 결과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1920년에서 1954년 사이에 행해진 유사한 실험들 중에서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만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는 1930년대에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 교수였던 맥더걸(William McDougall : 1871~1938)에 의해 실시되었습니다. 

맥더걸 교수는 쥐에게 물에 잠긴 꼬불꼬불한 미로에서 빠져 나오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맨 처음 이 훈련에 참여했던 쥐들은 이 기술을 배우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쥐들은 실수를 할 때마다 전기쇼크로 체벌을 받았습니다. 

아주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는 유감스럽게도 동물실험에서 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출구를 제대로 못찾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놈은 매번 전기쇼크를 하여 다시 제길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쥐는 수백 번까지 실수를 되풀이하였습니다. 

맥더걸 교수는 이제 이 쥐들을 교미시켜 새끼를 치게 한 수, 다음 세대에 오는 쥐를 상대로 같은 실험을 되풀이하였습니다. 

이 훈련에서 새 세대의 쥐들은 앞세대의 쥐들보다 길을 찾는 요령을 빨리 습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쥐들은 더 빨리 익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근거로 맥더걸 교수는, 획득형질(獲得形質)이 유전된다고 주장하는 라마르크(Lamarck)식 유전법칙을 지지하는 입장에 동조하였습니다. 

1920년대까지만 하여도 유전법칙에는 정실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 다윈설(다윈은 획득형질의 유전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여, 진화는 오로지 돌연변이와 열등종의 자연도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과 라마르크설은 팽팽히 맞선 채 양편에 속하는 유사한 의견의 대립이 대단히 분분했다고 합니다. 
=중략= 

▶다소 전문적인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결론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소승은 이 글속에서 부처님의 성품[佛性]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겠구나 하는 위안과, 지구상의 생명체로서의 “한 중생”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꼈습니다. 

한 생각, 무심코 한 말과 행동이 여지없이 인과의 과정에 포함되니 얼마나 무섭도록 실증적인 교훈입니까? 
이 글 이면에는 화엄의 깊은 뜻도 접혀있지만 이 정도로만 해두겠습니다. 

<성 법> 

 

012 과학불교(11)-형태공명과 인과

2002.01.29

<다시 “초월심리학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과학불교(11)에 대한 보충 자료입니다. 이번 것은 인간을 예로 들었습니다 > 

=중략= 
저의 이론이 타당한 것이라면, 이제껏 서술한 형태공명은 기타 동물에게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탔을 터이니 더불어 자전거타기를 배우는 일도 좀 수월해졌으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자전거가 발명된 이후 지금까지 수천만의 인구가 자전거타기를 배웠을 테니까 말입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법을 퍽 쉽게 배웁니다. 

물론 지금 한 이 진술 역시 과학적으로 허점 투성이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자전거타기를 쉽게 배우는 데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많이 있으니까요. 

옛날에 비해 요새 자전거는 아주 많이 개량되었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니까 요령도 쉽게 터득할 수 있고, 또 이웃아이들이 모두 다 타니까 꼭 배워야 할 종목이 되었고 등등 여러 요인이 추가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 아이들이 자전거타기를 더 쉽게 배우는 이유를 오로지 100여 년 동안 자전거를 타 온 그 운동행태에서 비롯하는 형태공명과 관련지어서만 설명한다는 것은 물론 무리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 형태공명의 가설에 들어맞는 예는 우리 주변에 우연치고는 너무나 많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시면 제 가설이 그저 황당무계한 것으로 일축될 수만은 없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이론은 종래의 유전(遺傳)법칙에도 매우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여태까지의 유전은 오로지 DNA분자라는 유전물질이 갖는 유전정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각 세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유전자, 즉 유전물질인 DNA에 의해 형성되며, 동물의 경우 유전되는 행태, 즉 본능적인 행동양식도 바로 이 DNA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포 안에 존재하는 유전물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면 DNA,즉 디옥실보뉴클레익에시드(deoxyribonucleic acid)라는 화학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분명히 유전현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유전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DNA에 작은 변화가 올 경우 생체 전체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저의 이론에서는 생명체의 모양새나 조직은 원칙적으로 유전자가 원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형태의 공명현상에 따라 조상에 해당하는 모든 개체로부터 유전된다고 주장합니다. 
=중략= 

▶이제는 형태공명(形態共鳴)이란, 신과학의 造語가 불교의 어떤 사상이나 용어와 대비 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시지요. 
<성 법> 

인용: “신과학 산책” 중 <셀드레이크 Rupert Sheldrake>편 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건과 인물들 [7]


사진의 제1차적인 사명은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진
사건과 인물들의 기록을 소개하는 일곱번째 시간입니다.

(기존의 자료와 일부 중복되는 사진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나찌 경례를 거부하는 남자.



2. 자기화 이동장치 실험실에 앉아있는 니콜라 테슬라.



3. 2차대전중 새 신발을 받은 아이.



4. 1888년 네덜란드의 천주교 아내와 개신교 남편의 무덤.



5.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최초의 완주 여성

캐더린 스위쳐를 제지하는 행사 주최측.



6. 1956년 의료용 치료의 일환으로 사용된 동물들.



7. 1965년 베트남에서의 이름 모를 병사.



8. 1922년 투탕카문 무덤의 봉인 (3245년간 묶여 있었다.)



9. 롱아일랜드,

낫소포인트에서 여름을 보내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1939년)


이 사진은 칼라도 있네요^^



10. 생명의 키스.

고압선에 감전된 후 동료에게 응급처치받는 노동자 (1967년).



11. 1969년 첫 우드스탁때 모인 군중



12. 1967년 좌측운전에서 우측운전으로 바뀐 스웨덴의 첫날 아침



13. 1937년 에펠탑 도색작업



14. 1911년 1월 5일 영국 남극탐사대의 빙산의 동굴.



15. 아넷 켈러만의 원피스수영복 입기를 위한 여권신장 운동
- 그녀는 불경죄로 체포됨.



16. 1990년 106세의 아르메니안 여성친위대 집.



17. 1906년 물위에 떠있는 마지막으로 알려진 타이타닉호의 모습.



18. 1961년 카페테리아의 디즈니랜드에 고용된 직원들.



19. 1914년 브룩클린 다리의 도색공들.



20. 1927년 실제 위니-더-푸우 와 크리스토퍼 로빈.



21. 1918년 얼음을 나르는 여자들.



22. 한나스틸리. 1746년에 태어나 1840년에 촬영.
아마 영화에 촬영된 최초의 개인.



23. 1958년. 군대에서의 엘비스 프레슬리.



24. 1961년 12월.

애들러샷 클럽에서 단지 18명을 위한 비틀즈의 연주.
그들은 그후 일년반 뒤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25. 1955년 런던 뮤직스토어에서의 고객들.



26. 1862년 런던 에지웨어 로드역의 최초의 지하철 여행.



27. 1938년 영국. 방독면을 쓴 여성.



28. 1938년 사용된 아파트에서 아이에게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충분히 쐬도록 허용된 아기 바구니.



29. 1965년 라헬웰치의 유명한 초상화를 완성하고서

그녀의 손에 키스하는 살바도르 달리.

(주: 라헬웰치는 쇼생크 탈출의 그 유명한 포스터 주인공)



30. 1920년대 수영복이 너무 짧은지 검사를 받는 여성들.
아마도 그녀들은 벌금을 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