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3. 20: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마음은 없다 / 윤기붕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아니 믿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슬픈 마음이 오면 그것을 위로 받아야하고,
또 고통이 오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외로움이 오면 달래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마음은 없다.
슬픔이니 기쁨이니 고통이니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저 매 순간 그때그때의 인연일 뿐이다.
그래서 누가 말했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그런데 삶이란 비슷한 것들의 연속이니까
(사실은 전혀 다른 것들인데 허상인 마음이 그렇게 분류하고
실제로 비슷하다고 믿는다.),
그것에 반응하는 느낌들을 모아 같다고 분류하고는
실제로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역시 생각일 뿐이다.
우리는 슬픈 중에도 온갖 생각과 감정을 일으킨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본래 모양이 없기 때문에
슬픈 인연이 오면 슬픈 모양, 기쁜 인연이 오면 기쁜 모양을
텅 빈 스크린에 필름을 투사하듯 비춰주는데,
한 화면에 두 가지를 비춰주지 않고 한 화면에 하나씩만 비춰준다.
즉 우리는 매순간 하나의 감정을 일으키지
절대로 두 가지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이 인연 따라 일으키고 또 생각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우리의 인식기능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지 못하고
한 순간 하나씩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인식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 빠른 찰나의 시간에 생각이 생멸하기 때문에
마치 큰 감정은 계속 진행되고 그 속에 다른 잡다한 감정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감정의 진행은
'슬픔- 다른 생각-슬픔-또 다른 생각'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그 다양한 감정의 흐름에 있어서
현재 생각이 슬픔이란 감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그 변화과정에서 슬픔이란 감정이 더 자주 올라오고
그것에 반응하는 감정의 무게 또한 더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슬프다’라는 감정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슬픈 중에도 누가 웃기면 웃어본 적이 없는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는 슬픔이란 감정이 없다.
다만 슬픔이란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어
슬픔이 더 자주 오래 올라오기에,
또 생각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우리가 마치 슬픈 마음 안에서 동시에 웃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삶에서 반복되다보니
마치 내 안에는 슬픈 마음, 기쁜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 외로운 마음 등등이
모양을 지니고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로 받으려 하고,
치유하려고 하고,
자랑하려 하고
달래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실은 그런 마음들은 매순간 바깥과의 인연에 의해
내 생각이 반응하여 그려내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내 생각이라는 것도원래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것이 아니라
유전자와 외부 환경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그림자라는 것이다.
결국 그림자끼리 노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슬픔을 위로 받으려 하고
고통을 치유하려 하고
외로움을 달래려 하면
생각은 더더욱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고 속삭이며 우리를 지배한다.
결국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외부에서 오는 모든 것에 반응하여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
그래서 다툼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우울증이 생기고
도둑질을 하고
싸움을 한다.
마음은 없다.
그냥 매순간 인연에 반응하는 그림자끼리 노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래서 슬픈 마음이라 해도 그 실체가 없다.
그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그러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 인연이 끝나면
자연히 물러나고 다른 감정이 들어온다.
그게 우리의 삶의 실체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실제로 그러한 마음이 우리 속에 늘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애초에 어떤 감정이나 마음에 눌려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지식들이 왜 생각을 놓아라 하겠는가?
마음의 실체가 없는데 자꾸 있다고 믿고 쥐려고 하니 놓아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없다.
믿고 안 믿고는 보는 자의 몫이다.
또 믿더라도 그저 지식의 단계에 머물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그러한 감정들을 마음이라 이름 붙여, 있다고 믿고, 쓰다듬고 있다면
평생을 실체도 없는 마음을 치료한다고 삶이 늘 수고로울 것이고
죽을 때까지 그림자 같은 마음에 붙들려 생사의 고통에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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